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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모델 '클로드(Claude)'를 운영하는 미국의 빅테크 기업 '앤트로픽'은 2021~2022년 무렵 불법 해적 사이트에서 약 700만 건의 도서 파일을 무단 사용했다. 이어서 세계 주요 언어권의 종이책을 대량으로 매입해 AI 학습에 사용한 다음 폐기하는 '프로젝트 파나마(=파나마 프로젝트)'를 2024년에 시작했다. 전 세계의 모든 책을 스캔하여 학습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여기에는 한국어로 된 책과 영어로 번역된 한국 작가의 책도 포함되었다.
실제로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국내 주요 온‧오프라인 서.은 물론이고 도매 기능을 하는 한국출판협동조합과 지역 총판업체에까지 해외에서 대량의 도서 판매 요청이 왔으나 모두 불응했다. 업체들은 도서 목록을 제시하지 않는 기이한 대량 납품 요청을 의심했던 것이다. 하지만 국내 최대 출판도매업체인 웅진북센은 AI 학습에 대한 의구심 없이 수십만 권의 종이책을 주문 요청대로 판매했다.
웅진북센은 2025년 3월부터 2026년 6월까지 앤트로픽의 도서 조달 업체인 '베터 월드 북스'에 약 166톤의 책을 수출했다. 이러한 책의 평균 무게를 권수로 환산하면 약 41만 권으로, 매해 발행되는 신간 도서 6~7년분에 해당한다(<중앙일보> 2026.10.18., "한국 책 신간 7년치, AI학습 위해 美 앤트로픽으로…166톤 41만권"). 글로벌 무역 플랫폼 '임포트키'를 분석한 결과 파악된 수치라고 한다. 이 책들은 AI 학습에 무단으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2024년 미국 작가인 안드레아 바츠 등이 앤트로픽을 상대로 제기한 집단 소송(일명 '바츠 대 앤트로픽' 사건)에서 미국 법원(캘리포니아 북부 연방지방법원)은 해적판 도서 파일을 사용한 것에 대해 해당 작가 등에게 15억 달러를 합의금으로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미국에서 저작권 등록을 한 영어 도서가 그 대상이다. 저자들은 이 합의를 통해 한 권당 3,000달러를 지급받게 되었다. 대상 목록에는 한국 유명 작가의 영문 전자책 21종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국문학번역원이 확인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흰』을 비롯해, 황석영의 『손님』,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 김영하의 『빛의 제국』 외 3종,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외 2종, 황선미 『마당을 나온 암탉』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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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이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25명도 그 피해를 입었다. 올해 수상자인 캐나다의 앤 카슨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반면, 미국 법원은 구입한 종이책으로 AI에 학습을 시킨 행위에 대해서는 앤트로픽의 '공정 이용(fair use)'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저작물을 AI 학습에 이용하는 것은 변형적 방식이므로 공정 이용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책을 구입하여 AI 모델의 학습에 이용하는 것은 적법하고, 해적판 도서 파일을 이용하는 것은 불법하다는 판결이다. 생성형 AI 서비스가 상업적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원재료인 콘텐츠는 별도의 보상 없이 무상으로 가져다 써도 된다는 기이한 논리를 어떻게 봐야 할까. 납득하기 어려운 이 같은 결정으로 다른 AI 업체들도 공세적이고 자못 합법적으로 책 사냥에 뛰어드는 분위기다. 이제 세계는 저자의 권리와 출판사의 피해를 당연시하는 지식정보 불법 천국이 되고 있다. AI 학습 후 상업적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에 대해 적법하다는 판단은 천부당만부당하다. 미국 법원의 판단은 지금까지의 불법 도용은 물론이고 앞으로의 저작권 도용에 대해서도 앞길을 터주는 터무니없는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이를테면 클로드의 경우 이용자의 사용량 등에 따라 무료, 월 22달러, 월 100달러부터 등 다양한 개인용 요금제를 적용한다. 생성형 AI가 품질 높은 답을 내놓으려면 지식의 보고인 도서에 대한 학습이 필수적이다. 모든 AI 기업들이 과거의 책(구간)은 물론이고 앞으로 발행될 신간도 지속적으로 학습에 사용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에 따른 활용 규칙과 저작권의 공정 이용 관리가 시급한 이유다.
문제는 앤트로픽으로 그치지 않는다. 빅테크 기업인 메타가 AI 모델인 '라마'를 개발하며 책과 논문을 수집해 학습에 활용한 것에 대한 소송전도 이어지고 있다. 2026년 5월 엘스비어 등 미국과 유럽의 대형 출판사 5곳과 작가인 스콧 투로우가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뉴욕타임스>도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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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나스닥 상장사인 데이터 엔지니어링 기업 '이노데이터'가 한국과 아시아 지역의 학술서 조달 인력을 채용하려 한 정황도 포착되었다. 과학, 의학, 법률, 기술 분야의 중고책을 조달해본 경험을 우대한다고 인력 채용 플랫폼에 밝혔다. 이처럼 AI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데이터를 공급하는 업체가 학술서를 대량으로 조달하려는 목적은 AI 학습 용도 말고는 찾기 어렵다. 정보의 전문성과 정확성이 생명인 AI 답변에서 전문서‧학술서만큼 유용한 콘텐츠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대책이 가능할까. 웅진북센은 도서 수출 관리와 검토 절차를 강화하겠다고 출판단체에 밝혔다. 일본에서는 양대 출판 도매업체 중 한 곳인 닛판(일본출판판매)이 앤트로픽에 일본 도서 122톤을 수출한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거래윤리심사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처럼 새 책이나 중고책의 수출만 막으면 될까. 당장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쇄국주의와 다르지 않다. 글로벌 환경에서 AI의 진화가 거듭되는 상황인데, AI 강국이 되겠다는 나라에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한 시.이다.
AI 기업들이 책을 무단으로 학습에 이용하는 것에 대해 나라별로 작가나 출판사들이 소송에 나서는 데 이어, 이제는 국제 출판계에서 그 연대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인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서는 올해 도서전 개막일(10월 6일)에 맞춰 독일출판서.협회 주도로 <프랑크푸르트 호소문>을 발표했다. AI 학습에 쓰인 저작물의 공개, 공정한 이용 허락 체계, 저작권 수호 수단 등을 유럽연합(EU)과 독일 정부에 요구하는 내용이다.
국내에서도 출판계 주요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인회의가 프랑크푸르트 호소문과의 연대 의사를 밝히며 <정부‧국회‧AI기업에 보내는 대한민국 호소문>을 10월 16일에 발표했다. 호소문은 "책이 없으면 AI도 없습니다(No Books, No AI)"라는 표제 아래 AI 기업의 학습 데이터 출처 표기(투명성 확보), 권리자의 이용 허락 원칙 확립, 정당한 보상을 요구했다. 책임 있는 AI 활용과 공정한 협력을 촉구한 것이다. 10월 28일 저녁 기준 단체 295곳, 개인 1,304명이 연명에 참여했다.
출판계는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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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출판문화협회는 해외로부터의 한국 도서 대량 구매 실태 및 AI 학습 활용 가능성 등의 실태 파악에 나서는 한편, 저작권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또한 AI 출판데이터 공급 인프라 구축 사업을 위해 출판사를 대상으로 AI 학습용 데이터 제공 양해각서(MOU) 체결 및 데이터 제공이 가능한 도서 목록을 취합하고, 다른 한편으로 AI기업 등과 출판데이터 공급을 위한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시。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생성형 AI 모델의 학습을 통한 상업적 서비스를 위해 도서 콘텐츠가 땔감처럼 이용되는 것이 불법 행위라는 것을 법적으로나 정책적으로 명시하는 일이다. 현행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제35조의5)과 관련하여 저작물의 일반적인 이용 방법과 충돌하지 않고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는 경우로 제한한다. AI 모델의 학습 목적 역시 여기에 해당하므로 저작권법 조항에 명확히 표현하여 향후 예상되는 혼란과 저작권자 및 출판사의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
나아가 한국형 콘텐츠(출판 등) 라이선스 시장을 정립해야 한다. AI 강국을 꿈꾸는 우리나라는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위원장 대통령)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대한민국 인공지능 행동계획'의 후속 조치로 저작물의 인공지능 활용 촉진 방안을 정하였다(2026.2.26. 보도자료). 도서·음악·방송 등 거래 시장이 있는 저작물은 거래 활성화를 지원하고, 온라인 공개 게시물 등 거래 시장이 없는 저작물은 인공지능 학습 거부권 행사(옵트아웃(Opt-out))를 지원하며, 거부 표시가 없는 때에만 선사용·후보상 원칙을 적용하는 등 '창작자 권리 보호'와 '저작물 인공지능 활용 촉진'이 양립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제도 개선 방안을 속도감 있게 이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법 개정은 지체되고 있다. AI 학습용 출판 콘텐츠 거래 시장을 만들고 AI 기업이 저작권자와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적정 가격에 매매하도록 하는 것이 AI용 콘텐츠 장터의 모형이다. 분쟁의 여지를 없애고 창작-출판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AI 생태계를 키워나가자는 것이다. 이미 권리자와 이용자 사이의 협업을 위한 플랫폼도 만들어지고 있다. 기존 시장의 혼란 문제는 보다 합리적인 새로운 시장의 구축을 통해 풀어야 한다. 책과 저작권 생태계의 붕괴를 방치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공지능 활용 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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