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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생 18명이 처음으로 한국 어선에 올랐습니다. 그로부터 30년. 어촌 인구 감소와 인력난 속에서도 오늘날 K-수산업은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 성장을 떠받쳐 온 건 이주 어선 노동자들입니다. 한국 어선에 오르는 선원 중 절반 이상이 외국인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현실은 ‘코리안 드림’과는 거리가 멉니다. 열악한 처우와 불공정 계약, 한국행 비행기에 타기 전부터 떠안아야 하는 막대한 비용. 그 뒤에는 여러 단계를 거쳐 비용과 책임을 선원에게 전가하는 다단계 착취 구조가 있습니다. 그렇게 한국에 온 외국인 선원들이 잡아 올린 생선이 오늘도 우리의 식탁에 오릅니다. 뉴스타파는 인도네시아 현지 독립언론 자링(Jaring.id), 글로벌 비영리단체 환경정의재단(EJF) 등과 함께 한국 이주 어선 노동자들을 둘러싼 먹이사슬을 추적해 연속 보도합니다. <편집자주>
“올해 최저임금이 올랐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받은 월급은 평소보다 줄었어요. 자세한 이유도 듣지 못했어요. 송입업체는 선주와 한국 정부가 결정한 일이라고만 말해줬어요.”
한국 어선에서 일했던 인도네시아 선원 에코(가명) 씨의 말이다.
올해부터 외국인 선원과 한국인 선원의 최저임금이 같아졌다. 1996년 외국인 선원이 처음 한국 어선에 오르기 시작한 지 30년 만이다. 그동안 같은 배에서 같은 일을 해도 외국인 선원에게는 더 낮은 최저임금이 적용됐다.
그러나 2026년 최저임금 시행 직전, 수협중앙회와 선원 노동조합이 외국인 선원의 임금에서 숙식비를 최대 8%까지 공제할 수 있도록 합의한 사실이 확인됐다. 선주들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최저임금 인상분에 맞먹는 숙식비를 공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숙식비를 최대한 공제하면 외국인 선원이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지난해보다 오히려 줄어든다.
이 합의 과정에서 정작 당사자인 외국인 선원들은 배제됐다. 최저임금 차별을 없앤 첫해, 임금 인상 효과를 숙식비 공제로 상쇄할 수 있도록 한 합의를 두고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처음으로 같아진 최저임금, 그 뒤의 ‘그들만의 합의’
지난해 12월 8일, 해양수산부는 2026년도 선원 최저임금을 월 269만 4,560원으로 고시했다. 내·외국인 최저임금이 처음으로 같아진 것이다. 외국인 선원의 최저임금은 작년보다 21만 490원(8.5%) 올랐다.
외국인 선원에 대한 임금 차별은 오래된 문제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3년과 2021년, 외국인 선원의 최저임금 차별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다른 이주노동자는 최저임금법에 따라 내국인과 같은 기준을 적용받지만, 외국인 선원은 예외였다.
해수부 고시에 따르면, 선원 노동단체와 선박 소유자단체가 단체협약으로 외국인의 임금을 달리 정할 수 있다. 단체협상에는 노동자 측 대표로 한국노총 산하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이하 선원노련)이, 사용자 대표로는 수협중앙회가 참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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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권고 이후인 2022년 1월 18일, 노·사·정은 20톤 이상 어선에 승선하는 외국인 선원의 최저임금을 단계적으로 올리기로 합의했다. 2023년 한국인 선원 최저임금의 85%에서 출발해 매년 5%씩 높이고, 2026년에는 100%로 맞추는 방식이었다.
해수부는 당시 보도자료에서 “근로여건 개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에 가능한 합의였다”고 평가했다. “외국인 선원의 권익을 보장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이 보도자료에는 최저임금이 같아지는 시。에 숙식비를 공제한다는 설명은 없었다. 2026년 최저임금을 알린 지난해 12월 보도자료에도 관련 내용은 없었다.
최저임금 올리고 곧바로 숙식비 깎았다
그런데 올해 최저임금 고시 3주 뒤인 지난해 12월 29일, 노사는 새로운 합의를 했다. 올해부터 외국인 선원 임금에서 숙식비를 공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기존 ‘어선 외국인선원 단체협약’은 선주가 외국인 선원에게 숙식을 무상으로 제공하도록 규정했다. 이번 합의에서는 단협 제11조에 예외 단서를 달았다.
“식량과 숙박시설은 고용주와 선원 간 합의에 따라 제공하지 아니할 수 있다.”
이 합의에 따라 숙식을 제공하는 선주는 최저임금의 8%까지 숙식비로 공제할 수 있다. 2026년 기준으로 월 21만 5,564원이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액인 21만 490원보다 ‘5,074원’ 많다. 법정 최저임금은 올랐지만, 숙식비를 최대로 공제하면 실수령액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줄어드는 역전이 발생한다.
수협은 지난 1월 14일, 소식지 <어업in수산>에서 이번 조치로 “어촌 경영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조업 부진 및 인건비 상승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업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수협 소식지 <어업in수산>에 나온 수협중앙회 관계자 발언(2026.1.14.)
수협은 이 소식지에서 지난해 말 근무 중인 외국인 선원을 기준으로 연간 약 250억 원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도 전망했다. 선주들이 아끼는 비용은 올해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외국인 선원들의 월급에서 빠져나가는 돈이다.
2025년 말 기준 연근해어선 선원 1만 8,097명 가운데 외국인은 9,517명(52.6%)이다.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하지만 외국인 선원들은 자신들의 임금에서 숙식비를 공제하는 협상에 직접 참여하지 못했다.
합의에 나선 노동자 대표는 선원노련이었다. 선원노련은 외국인 선원 1인당 매월 3만 원의 노조 복지기금을 선주로부터 지원받는다. 외국인 선원 규모에 비례해 노조 수입이 늘어나는 구조다.
하지만 선원노련은 외국인 선원을 정식 조합원이 아닌 특별조합원으로 둔다. 외국인 선원은 노조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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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도 외국인 어선원 단체협약은 선원노련이 대표로 체결한다.
오랫동안 이주 어선원 인권문제를 다뤄 온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는 “선원노련은 외국인 선원의 권익을 대표하는 곳이 아니고, 어떤 면에서는 이해충돌 관계에 있다”며 “최저임금 차별을 철폐하자마자 외국인 선원 숙식비를 공제하도록 합의한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지적했다.
최저임금 같아지면 내국인 역차별 받는다?
노사가 숙식비 공제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한국인 선원과의 역차별’이었다. 한국인 선원은 숙식비를 스스로 부담하는데 외국인 선원은 무상으로 제공받으니, 최저임금이 같아지면 외국인 선원의 실질 임금이 더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어선의 숙식 여건은 일반적인 사업장과 다르다. 선원법 제76조는 선주가 승무 중인 선원에게 급식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인 선원 역시 배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선주에게 육상 숙식을 제공받는 경우도 있다. 뉴스타파가 접촉한 한 한국인 선원은 “타지에서 온 한국인 선원은 외국인 선원처럼 선주에게 숙식을 제공받는 경우가 많다”며 역차별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인 선원은 어획량에 따라 선주와 수익을 나누는 보합제를 적용받아 평균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외국인 선원은 장시간 노동에도 대부분 고정급을 받는다. 김종철 변호사는 “어선에는 근로시간 제한이 없어 아무리 오래 일을 시켜도 위법이 아닌 데다, 외국인 선원 대부분이 고정급이라 오래 일해도 그만큼 더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2023년 기준, 연근해어선에서 갑판 업무를 하는 외국인 선원의 평균임금은 약 261만~289만 원이었다. 같은 해 동일 직무를 하는 내국인 선원의 월평균 임금은 약 378만 원으로 집계됐다.
최저임금이 같아졌다고 내·외국인 실질소득까지 같아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외국인 선원에게만 숙식비 공제 조항을 적용해 임금 인상의 효과를 줄이는 것은 또 다른 차별을 제도화한 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인 선원의 평균임금은 공식 발표된 통계가 없어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2023년 연안·근해어업 월평균 임금 연구자료를 인용했다. 한국인 선원은 동일 직무를 수행하는 연근해어선 갑판 부원을 기준으로, 2023년 한국선원통계연보의 통계를 활용했다.)
8%의 근거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숙식비 공제율 8%는 어떻게 정해진 수치일까. 뉴스타파는 합의 당사자인 선원노련과 수협중앙회, 합의를 승인한 해수부에 산정 근거를 물었다.
선원노련의 박상익 정책본부장은 지난 1일 뉴스타파와 만나 “솔직히 명확한 수치적 근거는 없다”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선주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맞춰진 비율”이라고 털어놨다. 실제 선원들에게 제공되는 숙식의 비용을 계산해 정한 수치가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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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노련 측은 처음부터 숙식비 공제에 동의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가맹조합에서 ‘역차별’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와 한국인 선원에 대한 숙식 지원을 요구했을 뿐, 외국인 선원의 숙식비를 공제하자고 주장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선원노련 측은 협상 과정에서 선주들의 압박이 있었다고도 말했다.
저희가 회의에서 외국인 선원들이 숙식비 공제에 동의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일부 사용주가 ‘그럼 하선시킬 거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이 회의는 없던 걸로 하고 숙식비 공제 얘기도 더는 하지 말자고 했죠. 그러자 수협 측에서 선원에게 동의서를 받고, 동의한 선원에 한해서만 공제하겠다고 했어요. 결국 선원 개인의 동의를 전제조건으로 달고 합의하게 된 거죠.
- 김근용 /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국장
당초 수협이 제시한 공제율은 8%보다 훨씬 높았다. 수협은 지난해 한국능률협회컨설팅에 숙식비 공제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보고서가 제시한 공제율은 숙소비 8%와 식비 11%를 합한 19%였다.
수협이 자체 용역을 의뢰해서 결과물이 최종적으로 19% 나왔어요. 근데 노동조합에서 그 수치는 안 된다고 격렬히 반대를 하니 낮추고 낮춰서 8%에서 맞춰진 부분이 있죠.
- 박상익 /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정책본부장
수협이 의뢰한 연구용역 보고서에는 이미 숙식비 공제의 부작용도 명시돼 있었다. 지난해 10월 발간된 용역보고서에는 ‘공제 상한을 과도하게 설정하면 외국인 선원의 실질소득이 줄어들 수 있고, 일부 선주에 의해 실질적인 임금삭감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자체 보고서가 ‘임금 삭감 수단으로의 악용’을 경고한 지 불과 두 달 만인 12월, 수협은 노조와 손을 잡고 숙식비 공제 제도를 도입했다.
선원노련 측은 결과적으로 이번 합의가 잘못됐다는 .을 인정했다. 다만 최종 책임을 해수부에 돌렸다.
제 개인적으로는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인정을 하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해수부에 건의하려고 합니다. 사실, 당시 합의안을 해수부에 제출하면서도 정부가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케이를 하더라고요.
- 박상익 /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정책본부장
공제 적절성 검토 못한 해수부…입 닫은 수협
노사합의를 승인한 해수부 역시 공제율의 적정성을 구체적으로 검토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이정로 해수부 선원정책과장은 “노조에서도 8%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저희한테 얘기한 적이 없었다”며 “승인 당시 공제율의 적정성을 내부에서 구체적으로 검토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노사가 협의해 도출한 안이어서 정부가 거부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정부가 더 깊게 살펴봤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은 못한 게 맞다”며 “앞으로 수협과 함께 숙식비 공제의 실태를 파악해 보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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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협상에서 선주를 대변한 수협중앙회는 답변을 거부했다. 뉴스타파 질의에 일주일의 답변 시간을 요구한 뒤, 지난 22일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해당 질의에 대해 드릴 수 있는 답변은 없습니다.
- 수협중앙회 공식 답변, 2026.10.22.
결국 숙식비 공제 합의를 한 노조와 수협, 이를 승인한 해수부 가운데 8%의 근거를 설명한 곳은 없었다.
배 위에서 자도 숙소비는 똑같이…“불공평하다”
외국인 선원들의 숙식 형태는 배마다 다르다. 당일 조업을 마치고 매일 육상 숙소로 돌아오는 배가 있는가 하면, 한 번 출항하면 3주 이상 바다에 머무는 배도 있다.
이한숙 이주와인권연구소 소장은 “선원은 숙식 형태가 천차만별”이라며 “수협 측에도 숙소가 이렇게 다양한데 어떻게 공제율을 8%로 정할 수 있느냐고 문제를 제기했었다”고 말했다.
물론 8%는 숙식비 공제의 상한선이다. 수협의 ‘외국인선원(E-10) 숙식비 공제기준 알림’ 공문에 따르면, 숙식비는 실제 지출한 비용을 기준으로 공제해야 한다. 선상 조업 중 식비와 개인생활비는 숙식비에 포함해선 안 된다. 실제 비용보다 많이 공제하면 임금체불이 될 수 있다.
현장에선 이 기준이 제대로 적용되고 있을까.
에코 씨에 따르면,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외국인 선원은 모두 23명. 이 가운데 11명은 육상 숙소에서 생활하고, 나머지 12명은 평소 배에서 잔다. 이들은 명절이나 긴 휴일, 태풍으로 조업하지 못할 때만 육상 숙소를 이용한다. 하지만 숙식비는 똑같이 공제된다고 했다.
저는 그래도 숙소에서 생활하지만, 한 달 내내 배에 있는 다른 친구들은 숙식비 공제가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배에서 자는데도 똑같이 공제가 되니까요.
- 에코(가명) / 현직 인도네시아 출신 선원
인도네시아 선원 인권단체 PSP(Pejuang Suara Pelaut Indonesia)의 카판디 씨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했다. 카판디 씨는 부산에서 3년 넘게 저인망 어선을 탄 전직 선원이다. 지금은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고충을 듣고, 지원하는 일을 한다.
숙식비 공제는 사실 불공평해요. 모든 배에 숙소가 있는 건 아니거든요. 한 달, 두 달 동안 딱 한 번 정박했다면 숙소에서 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공제는 똑같이 당한다고 해요. 이건 손해 아닌가요?
- 카판디 / 전직 어선원, 현 인도네시아 선원 인권단체 PSP 활동가
“어쩔 수 없이 서명했어요”...거부하기 힘든 ‘공제 동의서’
숙식비를 공제하려면 선원 개인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 에코(가명) 씨가 지난 1월 22일 서명한 숙식비 공제 동의서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사용자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듣고 이를 충분히 검토한 후 자유로운 의사로 동의함을 확인한다.’
하지만 에코 씨는 서명을 거부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저희는 그냥 따를 수밖에 없어요. 비록 마음속으로는 모두 동의하지 않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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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입업체에서 와서 공제 동의서에 서명을 요구했고, 선주와 한국 정부가 이미 결정한 사안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한국에 있는 모든 선원이 다 서명을 해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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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 씨의 숙식비 공제 동의서에는 숙소비와 식비의 세부 내역 기입란이 없다. 공제 상한인 8%, 21만 5,564원이 미리 인쇄돼 있고, 본인 확인을 위한 서명란만 비어 있었다. 이 동의서만으로는 실제 숙식비를 얼마로 산정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외국인 선원들은 한국에 오기 전 거액의 송출비를 부담한다. 입국 후에는 고용주와 송입업체에 의존해 일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서명했다는 사실만으로 선원들이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동의했다고 볼 수 있을까.
물론 모든 선주가 숙식비를 일괄 공제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무상 제공을 유지하는 곳도 있다. 문제는 행정 당국이 얼마나 많은 선주가 공제 제도를 적용하고 있는지, 실제 비용과 공제액이 일치하는지 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이다.
숙식비 공제가 시작된 지 10개월이 지났지만 해수부는 단 한 차례의 실태조사도 진행하지 않았다. 합의 당사자인 선원노련 박상익 정책본부장 역시 “숙식비 공제 실태에 대한 객관적 데이터가 현재 없다”며 “앞으로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국감에서도 지적된 숙식비 공제…수협 “검토하겠다”
지난 23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해양수산부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지적됐다.
더불어민주당 임미애 의원은 노동진 수협중앙회장에게 “숙식비를 8%까지 정률로 공제하면 외국인 선원의 임금이 지난해 최저임금보다 적어진다”며 “선주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없애는 조치라면 공제율을 재검토해야 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노 회장은 “검토해 보겠다”고 답했다.
13년 전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대안을 내놨다. 영세 선주의 부담을 덜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주거 지원에 나서라고 권고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손을 놓았고, 노사는 정부의 주거 지원이 아닌 외국인 선원의 임금에서 숙식비를 깎는 방법을 선택했다.
현재 노·사·정은 2027년도 선원 최저임금을 논의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민주노총 산하 전국선원노조도 협의회에 참여한다. 전국선원노조의 한선오 본부장은 최저임금 논의에 앞서 숙식비 공제 문제부터 논의하자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해수부도 숙식비 공제 문제를 최저임금협의회 논의에서 제외한 사실을 인정했다. 이정로 선원정책과장은 “숙식비부터 논의하면 협의가 길어질 수 있으니 우선 최저임금 논의에 집중하고 제도 개선 문제는 별도로 논의하라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해수부는 지난해 12월 ‘시간이 없다’며 8% 공제율의 적정성을 따져보지 않고 승인했다. 올해는 최저임금 협상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숙식비 문제를 논의에서 제외했다. 그 사이, 명확한 산정 근거가 없는 ‘8%’는 외국인 선원들의 임금에서 매달 빠져나가고 있다.
뉴스타파 홍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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