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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음식을 제공할 때 값만 따질 게 아니라, 어떤 가치를 전달할지, 먹는 것을 통해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고민해야 한다.”
프랑스 엘리제궁에서 약 25년간 근무하며 역대 대통령들의 식탁을 책임진 기욤기욤 고메즈(Guillaume Gomez) 셰프가 지난 12일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열린 글로벌 미식 포럼 ‘넥스트 가스트로노미 코리아 2026(Next Gastronomy Korea 2026)’에서 강조한 말이다. 그는 한쪽에서는 비만과 과체중이 문제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충분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현실을 짚었다. 생산된 음식이 소비되지 못한 채 버려지는 문제도 지적했다. 음식이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고, 소외된 계층까지 포용하는 것이 미식의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이날 열린 ‘넥스트 가스트로노미 코리아 2026’은 글로벌 미식 가이드 ‘라 리스트(La Liste)’의 ‘라 리스트 2027 코리아 어워즈(La Liste 2027 Korea Awards)’와 함께 진행됐다. 라 리스트는 세계 200여 개국의 레스토랑·호텔·페이스트리숍을 평가해 글로벌 톱 1000 셀렉션과 특별상을 발표하는 프랑스 기반의 미식 가이드다. 포럼에서는 ‘환대를 넘어, 모든 사람 안의 특별함을 발견하다(Beyond Hospitality: Seeing the Extraordinary in Everyone)’를 주제로 미식의 사회적 역할을 논의했다.
첫 번째 세션에는 고메즈 셰프를 비롯해 프랑스 르 뫼리스 알랭 뒤카스의 아모리 부르(Amaury Bouhours) 셰프, 홍콩 VEA·WING의 비키 청(Vicky Cheng) 셰프, 태국 Sorn의 수팍손 ‘아이스’ 종시리(Supaksorn ‘Ice’ Jongsiri) 셰프가 참여했다. 이들은 미식의 유산과 정체성, 지역사회와의 관계, 주방에서 실천할 수 있는 포용의 의미를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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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메즈 셰프는 “미식이 국가 간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외교적 역할도 한다”고 설명했다. 엘리제궁에서 대통령의 식사를 책임졌던 그는 미식을 외교의 연결고리이자 소프트파워로 봤다. 정치적 입장이 달라 어려운 대화가 오가더라도 식탁에 좋은 음식이 놓이면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엘리제궁 주방에서 장애인 직원들과 함께 일했던 경험도 소개했다. 당시 자폐증과 다운증후군 등 장애가 있는 직원을 채용해 함께 일하는 시도가 있었다. 업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직원에게는 더 자세하게 설명해야 했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직원들도 일하는 방식을 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장애인 직원이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는 모습을 보고 동료들 역시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했다는 경험도 전했다. 고메즈 셰프는 “포용이란 장애인을 단순히 조직 안에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키 청 셰프도 “사람마다 다른 재능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디저트를 잘 만드는 사람을 육류 담당으로 보내서는 안 된다는 예를 들며, “운영자가 각자의 강。을 파악하고 적절한 자리에 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모리 부르 셰프는 “알랭 뒤카스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에게 교육과 연수 기회를 제공해 왔다”며 “장애인 직원을 위해 마련한 교육 방식이 다른 직원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소개했다.
셰프들은 자신의 요리를 만들어온 과정도 소개했다. 홍콩에서 태어나 프랑스 요리를 배운 비키 청 셰프는 중국 식재료와 프랑스 조리 기술을 결합한 VEA를 열었다. 이후 중국 전통 요리를 깊이 연구하면서 WING을 선보였다. 그는 시장에서 식재료 상인들에게 질문하고 다른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며 조리법을 익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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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리 부르 셰프는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시대의 요구에 맞춰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김치와 바비큐에도 관심을 보인 그는 “다른 나라의 음식을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 새로운 조리 기술을 배우고 자신의 식재료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종시리 셰프는 지역의 전통 조리법을 배우기 위해 농부와 어부, 어르신들을 직접 찾아다녔다. 게살 커리를 만들기 위해 어부들에게 게를 잡는 방법과 조리법을 배우고, 농장에서 코코넛 밀크를 만드는 방법도 익혔다. 이렇게 배운 재료와 조리법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파인다이닝 코스에 맞게 재해석했다. 그는 태국의 식재료를 사용하고 지역 생산자들이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셰프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미식과 웰니스, 그리고 사회적 가치에 대해 살펴본 두번째 세션에서는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 우창윤 WIM 클리닉 대표원장, 윤화영 프레드므아 대표(총괄셰프), 임정택 히즈빈스 대표가 참여했다.
장동선 박사는 “음식의 맛은 혀에서 느끼는 감각뿐 아니라 기억과 주변 환경, 함께 먹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함께 식사하는 경험이 사람 사이의 편견을 줄이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우창윤 원장은 좋은 식사가 영양과 건강은 물론 일상의 컨디션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식재료 선택과 조리 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윤화영 셰프는 파인다이닝에서 일상적인 빵과 음식으로 관심을 넓힌 경험을 소개했다. 고급 레스토랑이 한 번의 식사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면, 동네 빵집은 같은 손님에게 수백 번, 수천 번 좋은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매일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잘 구운 빵 한 조각이나 갓 끓인 수프 한 그릇이 주는 행복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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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택 대표는 장애인 바리스타가 일하는 카페 히즈빈스의 사례를 통해 미식의 가치를 일자리로 확장했다. 히즈빈스는 38개 매장을 운영하지만 장애인 직원이 일한다는 사실을 홍보 문구로 내세우지 않는다. 손님이 카페를 찾는 이유는 장애인 고용이 아니라 커피의 맛과 품질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더 많은 사람이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과 업무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포럼에 이어 ‘라 리스트 2027 코리아 어워즈’ 시상식이 열렸다. 글로벌 톱 1000에 선정된 한국 레스토랑으로 밍글스와 모수 등이 이름을 올렸다. 특별상으로는 주은의 박주은 셰프와 본연의 배경준 셰프가 ‘올해의 탤런트’, 메종조의 조우람 셰프가 ‘장인·명인상’, 한식공간의 조희숙 셰프가 ‘명예상’을 받았다. 시상식 후에는 국내외 셰프들이 협업한 갈라 디너가 이어졌다. 최현석 셰프와 강민철 셰프, 소울 다이닝의 김희은·윤대현 셰프, 로즈우드 홍콩의 조나단 숙데오 셰프가 참여해 하나의 코스를 함께 구성했다.
이번 행사는 파라다이스그룹과 라 리스트, 미식 콘텐트 플랫폼 메티즌, 한국·유럽 싱크탱크 KEY가 공동 기획·주최했다. 파라다이스그룹은 파라다이스복지재단을 통해 지난 30여 년간 장애인 교육·인식 개선·문화예술 활동을 이어오고, ‘아이소리축제’를 열어 장애·비장애 아동이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해 왔다. 이날 포럼 역시 이러한 활동과 맥을 같이한다. 포럼은 장애인 고용을 단순한 지원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데서 나아가, 외식업 현장에서 개인의 재능을 발견하고 지속 가능한 일자리로 연결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파라다이스그룹 관계자는 “이번 포럼은 환대의 의미를 손님을 맞이하는 데서 나아가 함께 일하는 사람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로 확장해 살펴본 자리였다”며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고 함께 일하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미식이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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