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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기 싫어서 누워 있는 채 코 푼 휴지를 휴지통을 향해서 던졌다. 정통으로 들어갔다. 대개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투호(投壺)에 성공하고 나서 속으로 함성을 지른다. 순간 즐거워하는 애들처럼 기뻐하는 내 모습….”
이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아시는가. 우리나라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낸 뛰어난 석학인 이어령 선생. 지구별과의 작별을 고하기 전, 그는 암 투병이라는 혹독한 시간 속에서 거의 3년 동안 손글씨로 꾹꾹 눌러쓴 일기를 남겼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책이 바로 『눈물 한 방울』이다. 위 구절은 한 시대를 이끌던 사상가이자 문학가의 거창한 허울을 모두 벗어던지고, 마침내 도달한 천진무구한 동심의 한 조각이다.
■
「 눈물 나는 이어령의 투병 일기
인생은 고단하고 슬픈 미완의 집
주변의 아픔, 내 고통으로 여겨야
」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몇 번이고 눈시울이 뜨거워져 페이지 넘기기를 멈춰야 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조용히 가라앉힌 뒤에야 겨우 다음 문장으로 시선을 옮길 수 있었다.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명제와 직면한 선생이 담담하게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영적으로 깊이 성숙한 어른이 건네는 삶의 오롯한 지혜가 번뜩이고 있었다.
“오래 산 사람을 늙었다고 하고, 오래 쓴 물건을 낡았다고 한다. 사람과 물건이 다르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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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 하나로 늙은이는 안심해도 좋다. (…) 늙은이여, 쫄지 마. 이가 빠지고 머리카락이 빠져도, 손톱발톱이 부서져도….”
‘늙은이여, 쫄지 마!’ 커다란 울림과 함께 가슴을 때리는 이 문장은 독자들의 삶을 북돋우는 따뜻한 격려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질병과 쇠락의 고통 속에서 스러져 가는 자기 자신을 향해 던진 배수진 같은 주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늙은이들만 위축되는 것은 아니다. 질병과 쇠퇴, 그리고 언젠가 찾아올 죽음이라는 그늘은 나이를 불문하고 삶의 길목마다 우리를 아픔과 괴로움으로 시달리게 한다. 풋풋하고 피둥피둥한 젊음을 누리는 이들에게도 생로병사라는 고통과 괴로움은 예외일 수 없다. 우리 삶의 자리가 불완전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완전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가짐으로 생을 마주해야 할까. 미국 작가 필립 시먼스의 말처럼 ‘불완전한 것이야말로 우리의 낙원’임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참된 신앙이나 깊은 삶의 통찰을 가진 이라면, 저물녘 서산에 붉게 물드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며 창조주에게 감사할 뿐만 아니라, 캄캄한 밤중에 몰려들어 피부를 가렵게 찌르는 모기떼에 대해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아침 산책길에서 만나는 풀잎 끝의 영롱한 이슬을 바라보거나, 휘황한 보름달이 차오르는 밤바다의 경이로움 속에서 조물주의 영광을 찬양하고 기쁨을 노래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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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전쟁의 포화 속에서 굶주림과 공포에 떠는 아이들, 길가에 버려져 홀로 신음하는 행려병자나 고독한 노인들의 아픔 속에서 신의 현존을 느끼고 그 비극을 가슴으로 안는 일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그 자체로 ‘미완(未完)의 집’이다. 삶이 고달프고 고통스럽다고 해서 손쉽게 저 피안의 세계만을 갈망하며 눈길을 돌리는 것은, 지금 미완의 집에 살고 있는 생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 미완의 생이 가진 균열과 틈새까지도 온전히 사랑해야 한다.
삶이 주는 편리함뿐만 아니라 때때로 찾아오는 불편함과 결핍도 받아들여야 한다. 세월의 흠집이 나고 아픔에 쓸려 다니는 내 몸 역시 다정한 눈빛으로 사랑해 주어야 한다. 아픈 몸 또한 타인이 아닌 오롯이 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깊은 신앙심을 가진 이들은 나를 지으신 조물주가 내 몸의 통증과 아픔에도 친히 동참하고 계신다고 믿지 않던가.
한 걸음 더 나아가, 내 가족과 이웃이 예상치 못한 삶의 아픔이나 슬픔으로 괴로워할 때 그들의 손을 잡고 마치 내 몸의 고통인 양 진심을 담아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괜찮아, 쫄지 마.’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아름답고도 불완전한 지구별에 부름 받은 이유이자, 수많은 생명들과 어깨를 맞대고 공생하며 살아가는 가장 숭고한 까닭일 것이다.
고진하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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