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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달 한글(HWP) 문서 파일을 구글의 생성형 인공지능(AI) '제미나이(Gemini)' 무료 버전에 첨부한 뒤 작업을 지시했다. 그러자 제미나이는 "제공된 파일이 텍스트나 가독 가능한 문서 형태가 아니어서 본문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래서 필자는 '문서를 문서 형태가 아니'라고 하는 이유를 물었다. 이에 제미나이가 내놓은 답변 요지는 이랬다.
"HWP는 한글과컴퓨터사(한컴)의 독자적 구조를 가진 포맷이고, 대부분의 AI 및 데이터 처리 서버는 PDF, DOCX, TXT 등 표준 포맷 위주로 텍스트 추출 엔진이 구축돼 있다. HWP 파일에서 텍스트를 직접 추출하지 못하면 문서 내용을 시각화하기 위해 이미지로 만들거나 문서 안에서 글자를 꺼내 텍스트로 바꾼다. 이 과정에서 HWP 파일이 텍스트로 풀리지 않고 깨진 픽셀 조각이나 식별 불가능한 '바이너리 버퍼'(0과 1로 된 컴퓨터용 데이터 임시저장영역)로 변환됐다."
재차 pyhwp 같은 HWP 파일을 읽게 하는 '파이썬 라이브러리'를 사용해 읽으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제미나이는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라이브러리 자체의 한계 때문에 바로 읽지 못한다"고 했다.
쉽게 말해, 제미나이 무료 버전은 HWP 문서를 읽지 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실험은 지난달 한컴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내용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 'HWP는 왜 AI가 바로 읽기 어렵나요?'라고 홈페이지에 올라온 질문에 한컴 측은 "HWP는 문서 내부 구조를 해석할 수 있는 전용 '파서(parser·입력된 텍스트를 분석해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구조로 변환해 주는 소프트웨어 또는 모듈)'가 필요합니다. 글로벌 거대언어모델(LLM)에 HWP 전용 파서가 기본으로 연동되어 있지 않아서 별도 파서 없이 처리하면 문서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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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17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기관별 업무보고에서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문서 프로그램인 '아래아한글'에 과도한 편집 기능이 있어 AI가 잘 읽지 못한다면서 보고서 작성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전국 행정기관 종사자 1만4208명 중 91.1%가 보고서 등 행정 문서를 HWP나 이미지·스캔PDF 같은 AI가 인식하기 어려운 형식으로 작성한다고 답했다. 당시 위 의원은 "행정문서 대부분이 AI가 읽지 못하는 형식에 묶여 있다는 것은 AI 정부 전환의 걸림돌"이라고 지적도 했다.
HWP의 폐쇄성을 극복하기 위해 한컴은 HWP 파일 구조를 공개했고 개방형 포맷인 HWPX를 지원해왔다. HWPX는 국제표준을 따르는 XML 기반이어서 AI에 적합한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윤 장관의 발언이 화제가 됐을 때, 한컴 측은 언론에 "최근 제미나이3는 HWP와 HWPX 지원을 시작했다. 이는 글로벌 LLM이 한국 문서 포맷을 서비스 기능으로 구현하기 위한 부분이 단순 시간차 문제였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제미나이는 "제미나이 유료 플랜은 HWP·HWPX 파일을 읽을 수 있고 본문 텍스트 요약을 지원한다"고 했다. 필자가 확인해 보니, 챗GPT와 클로드(Claude)의 유료 버전도 HWP·HWPX 문서를 읽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글 문서와 AI 간 연계성에 대한 의문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순 시간차'로 치부될 일이 아니며, 세밀하게 따져보면 문제는 훨씬 심각하다. 우선 앞에서의 실험처럼, 윤 장관 발언 이후에도 상당수 한국인이 사용하는 메이저 AI의 무료 버전에서 HWP가 여전히 읽히지 않을 수 있다는 .이 확인된다. 지금까지 일부 언론은 AI가 HWP를 읽을 수 있느냐를 주로 검증해왔다. 그러나 읽는 능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업무에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HWP·HWPX 문서를 생성하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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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매일 HWP·HWPX 형태로 생산되는 엄청난 분량의 행정문서와 민간기업의 문서는 정해진 서식을 갖고 있다. 다수의 공무원과 회사원은 글꼴, 글자 크기, 자간, 장평, 줄 간격, 들여쓰기, 여백, 문단 간격, 개요 번호, 글머리표, 머리말, 쪽 번호, 다단, 테두리, 구역 나누기, 표, 기호, 글상자, 각주, 목차, 용지 크기 등 고유한 양식으로 된 문서를 작성한다.
필자는 실험을 위해 챗GPT·클로드의 유료 버전에 여러 쪽수로 되어 있고 고유한 양식을 가진 HWP·HWPX 문서를 첨부했다. 이어 이들 AI에 첨부된 양식을 준수하면서 내용을 채워 넣어 문서를 생성하라고 명령했다. 그 결과, 클로드 유료 버전은 HWP·HWPX 문서를 만들지 못했다. 클로드는 모든 요금제에서 생성 가능한 파일 목록에 HWP·HWPX가 없다고 했다. 챗GPT 유료 버전은 양식이 상당 부분 깨진 HWP·HWPX 문서를 여러 번 내놓았다. 고쳐서 쓰기 어려웠다. 생성된 텍스트만 추려서 양식의 빈칸에 '복붙'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운이 안 좋은 경우 복붙으로는 문서의 글꼴과 규격을 맞출 수 없었다. 결국 AI가 생성한 텍스트를 HWP·HWPX 문서에 일일이 타이핑해야 했다.
제미나이는 "유료 버전에서도 정해진 서식의 HWP·HWPX 파일에 내용을 채워 서식을 유지한 채 다운로드받게 해주는 기능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제미나이 유료 버전은 구글 생태계와 연동하여 Word(.docx) 등의 형태로 파일 생성을 지원한다. hwp(바이너리), .hwpx(XML 패키지)를 원형 그대로 편집·재패키징해 파일로 내보내는 전용 엔진은 구글 플랫폼에 탑재되어 있지 않다."
반면, '비교적 복잡한 포맷과 레이아웃을 가진 MS 워드 문서를 잘 읽고 그 포맷과 레이아웃을 그대로 유지한 채 내용을 채운 워드 문서를 생성해 다운로드받게 할 수 있나'는 질문에는 제미나이가 "유료 버전에서는 조건부로 가능하며, HWP에 비해 훨씬 뛰어난 완성도로 처리할 수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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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직 근로자의 주 업무는 문서 작성이다. 또 우리나라 문서의 다수가 HWP·HWPX인 상황에서 AI의 HWP·HWPX 문서 생성 역량은 현저히 떨어진다. 이런 현실로 인해, AI에 의한 사무직의 업무 효율화와 혁신이 가능할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AI 활용이 고도화될수록 AI와 호환이 잘 되는 MS 워드로 공용문서를 생산하는 여러 나라와 우리나라 간 경쟁력 격차는 。。 더 벌어질지 모른다. 한 대학은 유료 AI를 활성화해 행정인력 부족을 해소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AI가 정해진 틀을 가진 학교 한글 공문서를 잘 만들지 못하는 .을 간과한 것이다. 텍스트만 생성하는 기능으론 AI에 의한 업무대체 효과는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AI가 사업계획서 문안을 20분 빨리 써 주더라도, 직원이 기존 한글 서식의 표와 칸에 옮겨 넣고 밀린 쪽과 결재란을 바로잡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면 행정인력 부족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가 추진하는 소버린AI는 '모델 자립'에 중.을 둔다. 또한 AI 정책은 문서 작성 지원을 포함한다. 행정안전부는 AI 시대 행정문서 작성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AI를 활용해 자료 요약, 회의록 작성, 보고서 초안 생성을 수행하고 표 안의 표 등 복잡한 양식을 지양한다고 했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지난 4월 AI 인식 효율이 낮은 HWP 파일의 공공문서 유통 채널 첨부를 제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소버린AI의 진척은 더딘 감이 있고, 그 실체도 아직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HWP·HWPX와 관련해 제기되는 본질적 문제, 곧 'AI가 한글 공문서를 잘 생성하지 못한다'는 한계는 여전하다. 솔직히 말해, 이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AI시대 혁신의 최우선 과제인 동시에 출발.일 수 있다.
허만섭 강원대 디지털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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