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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개천절, 아내와 함께 함양으로 두 번째 여행을 떠났다. 지난번 함양을 찾았을 때 서암정사에서 만난 석굴 속 불상은 꽤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바위 속에 만들어진 독특한 불상이 만들어내는 이국적인 분위기가 신기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함양에 또 다른 무엇이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함양은 지난 첫 번째 반값 여행 후 환급된 지역화폐 소진을 위해 하는 두 번째 방문이었다(관련기사 : 서암정사 가려다 벽송사까지... 길 잃은 여행에서 배운 감사). 그리고 그날 아내와 우리가 처음 찾은 곳은 남계서원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남계서원
▲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 중 한 곳인 함양의 남계서원
ⓒ 최호림
조선시대 성리학의 교육과 제향, 교류가 이루어지던 서원이 바로 남계서원이다. 1552년 일두 정여창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서원으로 알려져 있다.
2019년에는 남계서원을 비롯한 9개 서원이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그 이유는 단순히 오래된 건축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조선시대 성리학이 한국의 사회와 교육문화 속에 어떻게 뿌리내렸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라는 ., 그리고 자연과 어우러진 건축과 교육·제향·교류의 기능이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왔다는 。에서 세계적으로도 보편적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서원은 입구에서부터 타임머신을 탄 듯 오래된 목조 건물들이 우리를 맞았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전쟁과 침략을 겪으면서도 다시 일어선 오늘날까지 그 존재감을 이어온 공간이었다. 단순히 '고즈넉하다'는 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한국의 미가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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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계서원 내부, 기와지붕과 나무 기둥 그리고 건물로 이어지는 반듯한 돌계단이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최호림
▲ 남계 서원 전통 한옥 건물의 대청마루이며, 상단에는 '명성당(明誠堂)' 현판이 걸림ⓒ 최호림
한참을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시장기가 찾아왔다. 우리 부주는 특별히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니기보다 근처의 오래된 식당에 들어갔다. 주문한 메뉴는 평범한 백반 정식이었다.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아침부터 주인장이 하나하나 무쳐내고 끓여냈을 국과 소박한 반찬들이 정겨웠다. 한쪽에서는 동네 주민들이 반주를 곁들여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오랜만이었다. 주차를 왜 가게 앞에 했느냐며 이동 주차를 요구하는 사람도 없었다. 물론 누군가는 아직 도시화가 덜 된 농촌이라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발전하기 전의 모습'이 반가웠다.
함양 반값여행, 이것만은 꼭 확인해야
이번 여행에서 알게 된 함양 반값여행에는 한 가지 주의할 。도 있었다. 지금까지 다녀본 다른 지역의 반값여행은 홈페이지에 안내된 관광지를 방문하고 사진으로 인원 수 대로 찍어 인증하면 여행경비를 성인은 50% ,청년들은 70% 까지 지역화폐로 돌려받는 방식이이다.
하지만 함양의 '반값여행'은 조금 다르다. 해당 지역 여행 홈페이지에 소개된 모든 관광지가 대상이 아니라, 별도로 지정된 관광지에서 인증사진을 찍어야 한다. 즉, 함양에 있는 인기 관광지를 찾아가 사진을 찍었다고 해서 모두 환급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 함양 반값 여행 참여 조건과 안내 사항을 보여주는 모바일 웹 화면 캡처 이미지
ⓒ 최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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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함양에 있는 관광지니까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먼저 여행한 뒤 나중에 신청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반값여행을 계획한다면 여행 전에 반값여행 공식 홈페이지에서 대상 관광지와 사용처, 인증 방법을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여행 팁이다.
남편 생일을 앞둔 아내의 선택
이번 여행이 조금 특별했던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10월 4일은 내 생일이다. 아내는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반값으로 여행하는데 맛있는 것까지 먹자"고 했다.
'이런 게 공공이 주는 생일선물인가?'
배부르게 소고기를 먹고 식당을 나왔는데 바로 앞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우리가 식사한 곳은 함양과 거창의 경계에 있는 곳이었다. 식당은 함양에 속해 있지만 몇 발짝만 움직이면 거창이었다. 순간 얼마 전 다녀왔던 거창 반값여행이 떠올랐다.
▲ 함양에서 바라 본 커다란 녹색 이정표가 새로운 행정구역인 거창이 시작됨을 나타내고있다.
ⓒ 최호림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곳곳에 그어놓은 경계는 결국 행정구역을 나누기 위한 선일 뿐, 사람들의 삶은 그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고 있었다. 그 선을 몇 발짝 넘어섰다고 해서 전혀 다른 세상이 되는 것도 아니다. 여기가 함양인지 거창인지 잠시 잊고 바라보면, 결국 모두가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이웃이었다.
함양 사람이 따로 있고 거창 사람이 따로 있으며, 전주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행정구역은 달라도 사람들의 삶은 서로 이어져 있었고,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었다. 굳이 이런 상황에서 사상이나 정치적 이념을 이유로 서로 싸우고 할퀴지 않아도 이웃사촌처럼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빵집에서 만난 또 하나의 생일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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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는 정말 독특한 빵집 하나를 발견했다. 가게 안을 둘러보니 함양 특산물인 산삼과 발효빵 등을 연구하고 관련 연구사업에도 참여하는 곳으로 보였다. 지역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곳이라고 했다. 우연히 들어간 빵집이었지만 함양에서는 나름 이름난 곳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아내가 아무리 진열대를 살펴봐도 빵이 보이지 않았다. 이미 오전에 다 팔렸다는 주인의 말에 아내는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때였다. 무슨 이유인지 주인장이 가게 한쪽에 남아 있던 빵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이봉투에 담아주었다. 양이 꽤 많았다.
"만 원만 주세요."
우리는 잠시 당황했다. 요즘 도시의 제과。에서 영업 마감 무렵 떨이로 판매하는 빵도 아니었다. 그저 남은 빵을 조금 싸게 파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낯선 관광객에게 건네는 그 호의가 참 고마웠다.
"아, 오늘은 정말 생일선물을 많이 받는 날이구나."
그때 아내가 사장님에게 물었다.
"사장님, 여기 제로페이 되죠?"
혹시라도 현금 결제를 바랄 법한 상황이었지만 사장님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당연하죠!"
처음 타지역으로 반값여행을 왔을 때만 해도 아내는 가게에 들어갈 때마다 "사장님, 제로페이 돼요?"라고 묻곤 했다. 마치 무슨 큰 부탁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괜히 겸연쩍고 자신 없는 목소리였다. 공공에서 제공하는 혜택인데도 혹시라도 눈치가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제는 달랐다.
"사장님, 여기 제로페이 되죠?"
이번에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확인하는 아내의 모습이 사뭇 재미있었다. 이번 함양 여행은 명목상은 반값여행이었지만, 마음으론 오히려 가득 채워진 여행이었다. 그리고 벌써부터 생각한다. 다음에는 또 어떤 계절에 함양을 찾게 될까?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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