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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이 소근대는 홍콩의 밤거리는 여전히 화려하다. 빅토리아 하버를 따라 이어지는 마천루와 네온사인은 세계적인 관광도시의 얼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그 뒤에는 고물가와 고임대료를 피해 중국 본토로 떠나는 주민, 줄어드는 관광객, 급증하는 상가 공실이라는 현실도 있다.
도시의 활력이 흔들리자 홍콩은 생존 방식을 다시 설계했다. 빈 .포를 메우는 단순 재개발 대신 오래된 시장과 골목의 기억을 살려 사람과 산업을 다시 연결하는 도시재생 방식이다. 그 실험이 경제적 변화를 가져왔다. 홍콩이 사상 최고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2025년 기준 5만4천달러·USD)을 달성하며 반등의 발판을 마련한 중심엔 새롭게 내세운 ‘도시 색깔’이 있었다.
■ “관광객뿐 아니라 이웃도 다시 걷게”…센트럴·셩완 ‘시티 트레일’
“홍콩의 모든 젊은이들이 ‘홍콩 탈출’을 꿈이라고 해요. 그럼 골목의 이야기는 누가 기억하나요?”
홍콩섬 서쪽의 센트럴과 셩완을 오가며 시티 트레일 안내를 하는 퐁(Fong·方) 씨는 빛나는 야경을 보며 “사진만 찍고 떠나는 관광이 아니라, 오래 머물면서 작은 가게에도 들어가 소비하는 동선을 만드는 것이 제 목표”라고 말했다.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원도심인 이곳은 금융가의 초고층 빌딩 뒤편으로 계단식 골목과 한약방, 인쇄소, 오래된 시장과 당나라식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재개발 압력이 컸던 이 지역에서 홍콩 도시재생청(URA)이 선택한 해법은 철거가 아니라 ‘걷는 도시재생’이었다.
이들은 지난해 처음으로 ‘시티 트레일(City Trail·城蹤遊)’을 선보였다. 도시재생 사업지를 하나의 도보 코스로 연결한 프로젝트로 센트럴 마켓부터 스탠턴가, 그레이엄가, 셩완 일대의 역사 건축물과 특색 있는 상。, 공공예술 작품을 하나의 동선으로 묶었다. 주민 해설사가 직접 골목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투어를 운영하는데, 퐁 씨가 그 중 하나다.
과거 홍콩 최초의 재래시장 중 하나였던 센트럴 마켓은 3급 역사적 건물로 지정돼 있다. 1939년 지어져 한동안은 노후화로 문이 닫혔지만, 지금은 URA의 지원과 주민 해설사들의 힘으로 지역 내 역사, 전통, 현대 문화와 연결하는 ‘모두를 위한 놀이터(Playground for All)’로 재탄생했다.
골목 사이사이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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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 공공예술부터 과거 인쇄 산업 등을 주제로 한 디지털 콘텐츠까지, 이곳이 관광지일까 생활공간일까 하는 생각으로 계속 ‘영업 중’ 간판을 지나게 된다.
URA는 시티 트레일을 ‘。(Point)을 선(Line)으로, 다시 지역(Area)으로 확장하는 도시재생’이라고 설명한다. 재생된 공간 하나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주변 상권 전체를 연결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골목을 걷고 소비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실제 효과도 나타났다. 프로그램 시작 한 달 만에 1천500명 이상이 참여했고, 해외 관광객들도 지도를 들고 자율적으로 골목을 탐방하기 시작했다.
퐁 씨는 “투어 참가자들이 설명을 들은 뒤 바로 옆 가게에서 사탕이나 소스를 사 가는 모습을 자주 본다”며 “골목의 이야기가 소비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도시재생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리어 홍콩 청년들도 ‘해외에서 인기가 많다’는 소식에 다시 도시에 남고 있다”고 전했다.
■ 버려지는 원단? 작품으로 재탄생…삼수이포의 창의 상권
삼수이포 패브릭 마켓(Sham Shui Po Fabric Market)에서 원단 가게를 운영하는 찬(Chan·陳) 씨는 형형색색의 천 조각을 꺼내 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옷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였는데 이젠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던 그는 “이걸로 디자이너들이 조형물도 만들고, 관광객용 기념품으로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0여년간 가게를 운영하다 얼마 전에 마켓에 입주했는데 그 어느 때보다 신기한 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구도심 삼수이포(深水埗)는 한때 섬유와 원단, 단추, 지퍼, 가죽 부자재를 사고파는 홍콩의 대표적인 도매 상권이었다. 제조업이 중국 본토로 이전하면서 이곳 상권은 빠르게 쇠퇴하기 시작했고, 빈 。포와 노후 건물이 늘어나며 ‘낡은 동네’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분위기는 과거 우리나라의 동대문종합시장과 을지로지하상가와 흡사하다.
하지만 그 삼수이포가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주려고 서서히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오래된 포목. 사이사이에는 독립 디자이너 공방과 편집숍, 로컬 카페, 디자인 스튜디오가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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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마다 전시 공간이 생겼고, 주민과 창작자가 함께 사용하는 작업실도 눈에 띈다.
이 중심에 홍콩디자인센터가 운영하는 DX 디자인 허브(DX Design Hub)가 있다. 정부 지원으로 조성된 이 공간은 작업실과 전시 공간, 교육 프로그램, 창업 지원 기능을 함께 운영하며 지역 디자이너와 소상공인을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허브 입구를 나서면 30초도 채 걸리지 않아 정면에 패브릭 마켓이 나온다. 시장 안에서는 염색과 재봉, 레이스 제작, 원단 수선까지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디자이너들은 시장에서 원단을 사고 바로 옆 작업실에서 가방, 인형, 티셔츠 등 각종 제품을 만든다.
찬 씨는 “우리 시장 상인들과 거리의 디자이너들이 함께 삼수이포를 키우고 있다”며 “예전에는 원단을 팔고 끝났다면 지금은 디자인 상품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시장 자체가 관광 콘텐츠가 됐다”고 말했다.
■ 꽃도, 금붕어도, 야시장도…골목 이름 ‘브랜드화’
홍콩 도심을 걷다 보면 다양한 거리 이름들이 시선을 끈다. 세탁거리(Laundry Street), 꽃 시장(Flower Market), 금붕어 마켓(Goldfish Street), 레이디스 마켓(Ladies Market), 템플 스트리트(Temple Street) 등으로, 각각의 골목이 하나의 산업과 문화, 생활사를 축적하고 있다.
꽃 시장의 경우 100여 개가 넘는 화훼 상。이 모여 있는 거리다. 계절마다 생화와 분재, 난초를 판매하는 상인들이 골목을 채우고, 주민들은 일상을 위해 꽃을 사고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 찾는다. 꽃을 사지 않아도 걷고 머무는 거리 자체가 하나의 관광 콘텐츠가 된 셈이다.
몇 분 거리의 금붕어 마켓은 전혀 다른 풍경이다. 관상어와 수족관 용품.이 골목 양쪽으로 이어지고, 금붕어와 열대어, 새우, 파충류까지 다양한 생물을 판매하는 상。이 밀집해 있다. 오래전부터 이어진 반려어 문화와 상권의 역사가 지금은 홍콩을 대표하는 이색 체험 거리로 자리 잡았다.
레이디스 마켓은 전통 야시장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변화하고 있다. 기념품과 의류, 생활용품을 팔던 노. 사이로 로컬 디자이너 브랜드와 수공예 상.이 하나둘 들어섰고, 길거리 음식과 공연까지 더해지며 관광객과 주민이 함께 찾는 소비 공간으로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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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템플스트리트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야시장과 노천 식당, 거리 공연이 이어지고, 오래된 상인과 젊은 창업자가 같은 골목에서 손님을 맞는다. 홍콩의 밤 문화를 상징하는 이 거리 역시 대규모 철거 대신 기존 상권을 유지하며 콘텐츠를 덧입히는 방식으로 활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홍콩은 골목마다 축적된 산업의 역사와 거리 이름을 도시 브랜드로 활용하고 있다. URA은 꽃시장 일대 재생 계획에서도 건물을 새로 짓는 데 그치지 않고 보행 환경과 공공공간을 개선하고, 꽃을 주제로 한 문화 프로그램과 축제를 연계해 사람들이 오래 머무는 거리를 만들고 있다.
URA 관계자는 “도시재생은 오래된 건물을 새 건물로 바꾸는 사업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고 머무르게 만드는 과정”이라며 “홍콩만의 골목과 시장, 지역 상인의 이야기를 지키면서 새로운 창업과 문화 콘텐츠를 연결해야 상권도 지속적으로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도시 경쟁력은 얼마나 많이 개발했느냐보다,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얼마나 오래 유지하며 새로운 경제와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홍콩의 도시재생도 그 가능성을 실험하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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