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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영화제에서 월드프리미어로 공개하게 됐는데 최초의 관객 반응이 매우 궁금합니다.”
신작 ‘가능한 사랑’으로 24년 만에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거장의 소감은 이토록 담백했다. 이창동(72) 감독이 25일 서울 마포구 호텔나루 서울에서 열린 ‘가능한 사랑’ 제작발표회에서 주연 배우 전도연·설경구·조인성·조여정과 함께 영화 뒷이야기를 최초 공개했다.
‘가능한 사랑’은 이 감독의 일곱 번째 장편이자, ‘오아시스’(2002) 이후 24년 만의 베니스 경쟁 부문 복귀작이다. 전작 ‘버닝’(2018)에서 신자유주의 시대 청년들의 무력감과 분노, 계급 격차를 미스터리한 실종사건에 담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그가 이번엔 2000년대 한국 사회를 뒤흔든 대기업의 집단 정리 해고 사태를 되짚었다.
해고 노동자인 남편 호석(설경구)과 10살 난 아들을 둔 미옥(전도연)은 남편의 전 직장 동료 장례식장에서 해고 노동자들을 취재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와 그 남편 상우(조인성)의 인터뷰 제안에 응하게 되면서 감춰왔던 욕망을 마주하게 된다. 이 감독과 출세작인 ‘박하사탕’(2000)과 ‘오아시스’를 함께한 설경구, ‘밀양’(2007)으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은 전도연 등 20년지기 배우들이 이창동 영화에 처음 합류한 조인성·조여정과 주연을 맡았다.
이 감독은 단편 ‘심장소리’(2022)에서도 타워크레인에서 농성하는 아버지(설경구)와 우울증 어머니(전도연)를 둔 아이의 이야기를 그린 바다. 10년 전 같은 소재로 영화를 준비하던 그가 “해고 노동자의 삶을 정직하게 다룬 다큐멘터리도 있는데 왜 굳이 극 영화로 해야 하나 확신을 갖지 못해서 엎고 단편영화로 만들어 정리하려던 이야기”였다. ‘버닝’의 공동 각본을 쓴 오정미 작가가 “다른 부부의 이야기와 겹쳐서 이야기하면 영화에 다른 결이 생기고 풍부해질 수 있겠다”고 제안하면서 영화가 되살아났다.
그가 영화 제작 동기에 대해 “10여 년 전 한 대기업에서 벌어진 대규모 정리해고와 그에 맞선 노동자들의 파업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사건”이라면서도 “특정 기업의 사건이라고 받아들이지 말아달라”고 했다. “당시 노동이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우리 보통 사람들의 삶 자체가 바뀔 만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다”면서다. 이어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의 발전과 함께 노동 자체가 소멸되는 현실에 다가가고 있기 때문에 처음 영화를 만들고자 했을 때보다 .。 더 이 문제를 이야기해야만 하는 필연성이 강해졌다”면서 “삶을 지배하는 힘이 강해질수록 우리 삶을 지탱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가능한 사랑’에서 조여정이 연기한 다큐 감독이 이 감독의 시각을 반영한 페르소나 같은 캐릭터라면, 그 남편이자 제작자로 소개되는 상우 역은 ‘버닝’에서 스티븐 연이 연기했던 신자유주의의 두 얼굴, 보이지 않는 손을 상징한 캐릭터와 닮은 듯 보인다. 이 감독은 “힘 있고 잘생기고 매력적이고 모든 것에 능하지만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그런 이미지는 조인성씨만 떠올랐다. (섭외 당시 ‘휴민트’를 같이 촬영 중이던) 류승완 감독이 다리를 잘 놔줬다”고 말했다. 또 조여정에 대해선 “영화하는 사람으로서 자의식도 강하고 감수성, 공감능력을 겸비한 배우”라고 평했다.
10년 전 버전부터 함께 출연을 약속했던 전도연은 “책(시나리오)을 덮고 나서 여운이 너무 강렬했다”고, 설경구는 “불가능한 스케줄을 해결해 출연했다”고 돌아봤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1), ‘생일’(2019), ‘길복순’(2023)에 이어 4번째 장편으로 호흡 맞춘 두 사람은 “이 감독의 현장에선 마음을 최대한 열어 놓고 그 인물로 존재하는 게 준비였다”고 입을 모았다.
‘호프’로 올해 앞서 칸영화제를 다녀온 조인성은 이 영화로 베니스까지 가게 됐다. 그는 “‘호프’ ‘휴민트’까지 찍고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는데 감독님 연락을 받고 ‘가능한 사랑’까진 하고 쉬어야겠다는 마음이었다”며 작품 참여 자체가 “영광스럽다”고 했다.
‘가능한 사랑’은 이창동 감독의 첫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이기도 하다. 이 감독은 “넷플릭스 제작을 결정한 지난해 전반기가 한국영화의 체질이 가장 약화했던 시기고 그럼에도 영화는 만들어져야 했다. 넷플릭스가 극장 개봉을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켜줬다”면서 “영화산업의 구조는 이미 바뀌어가고 있고 그 변화 추세는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안에서 영화가 얼마나 관객과 가까워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능한 사랑’은 내달 23일 극장 개봉 후 11월 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그에 앞서 내달 2일 개막하는 베니스영화제에 이어 토론토국제영화제·뉴욕영화제에도 잇따라 초청됐다. 이 감독은 토론토영화제에선 한국 최초로 TIFF 에버트 감독상도 받을 예정이다.
‘가능한 사랑’은 내년도 미국 아카데미시상식 국제장편영화 부문에 한국 대표 출품작에도 선정됐다.
■ ‘가능한 사랑’ 이창동 감독 | 연출의 말 전문
「 한 편의 영화를 시작하기 전, 저는 이 영화가 저에게, 관객에게, 그리고 영화 그 자체로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그런 확신을 얻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입니다. ‘가능한 사랑’을 세상에 선보이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입니다.
십여 년 전, 한국의 한 대기업에서 벌어진 대규모 정리해고와 그에 맞선 노동자들의 파업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사건은 한국 사회를 크게 흔들어 놓았습니다. 저는 그 일을 꼭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한동안 그 영화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을 극영화로 옮겨낼 만큼 저는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다시 이 이야기로 돌아오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정말 지킬 수 있으리라고는 저 자신도 쉽게 믿지 못했습니다.
그 후 몇 년 사이에 노동의 의미와 모습은 우리 삶 속에서 놀라울 만큼 달라졌습니다. 노동은 더 이상 특정한 일터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 전체를 관통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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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변화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와 만났을 때, 비로소 ‘가능한 사랑’은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노동이나 자본, 혹은 그 어떤 거대한 힘이 우리의 삶을 규정하려 하더라도, 인간은 끝내 자유를 향해 나아가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그 마음, 어쩌면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는 그 욕망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사랑, 그리고 결국 우리가 누군가에게 건네야 하는 사랑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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