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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말과 생각, 감정과 행동은 뇌과학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우리를 움직이는 뇌. 강석기 칼럼니스트가 최신 연구와 일상 사례를 바탕으로 뇌가 만들어내는 마음의 비밀을 풀어준다.
과학 상식은 절대불변 진리가 아니다.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언제든 고쳐 쓰일 수 있는 현재까지 결론에 가깝다. 실제로 과학은 그간 상식으로 통하던 것을 뒤집으며 발전해왔다. 뇌과학도 예외가 아니다. 성인의 뉴런(신경세포)은 새로 생기지 않는다는 게 오랜 상식이었지만, 뉴런이 새로 만들어지는 '신경생성' 현상이 확인되면서 통념이 깨졌다.
최근 학술지 '네이처 신경과학'에는 뇌과학의 또 다른 상식을 뒤집는 논문이 실렸다. 그간 뇌는 하나의 전구세포에서 비롯됐다고 여겨졌다. 전구세포는 줄기세포보다 분화 범위가 좁아 정해진 유형의 세포로만 분화하는 세포를 말한다. 하지만 이 논문은 뇌가 서로 다른 두 전구세포에서 출발했고, 각각이 별개의 영역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즉 우리가 하나로 여겨온 뇌가 실은 전뇌·중뇌와 후뇌라는 2개의 뇌가 이어 붙은 복합체고, 두 부분을 구성하는 뇌세포의 뿌리가 다르다는 것이다.
뇌의 각 부위 되는 전뇌·중뇌·후뇌
대뇌와 소뇌는 들어봤어도 전뇌·중뇌·후뇌는 낯설 테다. 완성된 뇌 부위가 아니라 발생 초기 뇌 위치에 붙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초기 뇌는 관 모양으로, 앞쪽에 볼록한 마디 3개(뇌소포)가 생긴다. 앞에서부터 차례로 전뇌·중뇌·후뇌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세 마디는 각각 뇌의 다른 부위로 자란다. 전뇌는 대뇌·해마·시상과 망막이 된다. 눈을 '밖으로 나온 뇌'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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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뇌는 뇌 가운데 부분이 되고, 후뇌는 소뇌·뇌교·연수가 된다. 인간은 후뇌가 뇌 아래쪽에 있지만, 네발동물의 경우 이름 그대로 뒤쪽에 놓인다.
뇌의 기원에 대해선 1952년 네덜란드 발생학자 피터 니우코프가 내놓은 설명이 정설로 통해왔다. 니우코프는 1952년 양서류의 중추신경계 형성을 다룬 논문을 통해 외배엽으로부터 유래한 한 종류의 뇌 전구세포에서 뇌 전체가 만들어진다고 봤다.
이를 이해하려면 수정란이 어떻게 몸을 만들어가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수정란은 분열을 거듭해 수백 개 세포로 이뤄진 공 모양이 된다. 이후 세포들이 안으로 말려 들어가며 세 겹의 층이 생기는데, 이 시기 배아를 '낭배'라고 부른다. 바깥층은 외배엽, 안쪽은 내배엽, 그 사이는 중배엽이다. 각 배엽은 저마다 다른 기관과 조직으로 자라나며, 외배엽에서는 피부 표피와 뇌·척수 같은 중추신경계가 생긴다.
처음 의문이 제기된 건 줄기세포 실험실에서였다. 만능줄기세포로 만든 뇌 전구세포에서 전뇌·중뇌 세포는 얻을 수 있었지만, 후뇌 세포는 좀처럼 얻기 어려웠던 것이다. 후뇌 뿌리가 전뇌·중뇌와는 다른 게 아니냐는 의문이 생긴 배경이다.
우리를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드는 건 후뇌
카일 로 미국 스탠퍼드대 발생생물학과 교수팀은 이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생쥐 배아를 들여다봤다. 전뇌·중뇌에서 발현되는 'Otx2' 유전자는 파란색, 후뇌에서 발현되는 'Gbx2' 유전자는 빨간색을 띠도록 표지했다. 이후 발생 초기 외배엽에서 정말 두 종류의 뇌 전구세포가 생기는지 추적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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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 8일째 배아에서 파란색과 빨간색이 따로 나타났다. 이는 뇌 전구세포 단계에서부터 이미 두 유전자가 따로 발현돼 각각 전뇌·중뇌와 후뇌로 자란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전자를 '앞쪽 신경외배엽', 후자를 '뒤쪽 신경외배엽'이라고 이름 붙였다.
연구팀은 이를 토대로 인간 만능줄기세포로 후뇌 전구세포를 만드는 데 도전했다. 기존 방식으로는 Otx2가 활성화된 전뇌·중뇌 전구세포만 생겨 후뇌 세포로 분화시킬 수 없었다. 연구팀은 후뇌 전구세포가 되는 추가 조건을 찾아내 이를 후뇌 운동뉴런으로 분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간 인류 진화의 특징으로 대뇌피질 팽창이 꼽히다 보니,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 전뇌에 관심이 쏠리고 후뇌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숨 쉬고 먹고 자는 기본 기능을 맡아 우리를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드는 건 후뇌다.
후뇌 운동뉴런은 얼굴과 목 근육에 연결돼 있어 손상되면 씹고 삼키기가 어려워진다.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 폐렴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근위축측삭경화증(루게릭병)이나 척수근위축증 환자가 병이 진행되면서 겪는 증상이다.
인공지능(AI)은 이제 사람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말하고 추론한다. 그러나 AI가 흉내 내는 건 전뇌, 그중에서도 대뇌피질 기능의 일부다. 생각하는 뇌를 흉내 내는 기술이 거듭 발전할 동안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뇌는 이제야 연구 출발선에 선 셈이다.
강석기 칼럼니스트는… 서울대 화학과 및 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 연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를 거쳐 2012년부터 과학칼럼니스트이자 프리랜서 작가(대표 저서 '식물은 어떻게 작물이 되었나')로 활동하고 있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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