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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회사 연체채권을 정부 재정으로 일괄 매입하는 방식만으로는 취약계층의 경제적 재기를 돕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국세·지방세 등 공공채무까지 포괄하는 통합 채무조정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민금융연구원은 19일 연체채권 일괄매입 정책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며, 조세채권의 우선변제권 완화와 체납 세금 감면 제도를 포함한 종합적인 재기 지원책 마련을 촉구했다. 금융회사 대출뿐 아니라 세금과 사회보험료까지 연체한 채무자들이 금융채무 조정만으로는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복귀하기 어렵다는 게 핵심 논지다.
서민금융연구원이 낸 정책 제언은 채무자의 빚을 단순히 없애 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상환 능력을 기준으로 민간 금융채무와 공공채무를 함께 조정하고 다시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초.을 맞췄다. 다만 재정 투입의 적정성과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 금융시장의 도덕적 해이 문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과제는 남는다.
“원금 1%에 사들인다” 주장, 현실과 달라
서민금융연구원이 지적한 문제는 정책 당국의 부실채권(NPL) 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일각에서는 금융회사들이 무담보 신용대출 연체채권을 원금의 1% 수준에 매입채권추심업체에 넘긴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거래가격은 이보다 높다는 설명이다.
서민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일반적인 무담보 신용대출 부실채권은 채무자의 상환 능력과 신용 상태 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원금의 10~15% 수준에서 거래된다. 정부가 부실채권을 매입하려면 이 같은 시장가격과 금융회사의 매각 유인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시장가격보다 현저히 낮은 원금의 5% 수준에서 일괄 매입을 추진하면 금융회사들이 매각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반대로 시장가격인 10~15% 수준을 적용하면 막대한 재정이 필요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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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계층을 돕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을 안길 수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매입 대상 채권이 예상보다 빠르게 불어날 수 있다는 。이다. 금융회사들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연체채권 외에도 자산건전성을 관리하기 위해 매년 대손상각이나 매각 등의 방식으로 부실채권을 정리한다. 정부가 연체채권을 일괄 매입한다는 기대가 형성되면 금융회사들이 자체적으로 부실을 인식하고 정리할 유인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게 서민금융연구원 측 진단이다.
그동안 금융회사 내부에서 처리되던 잠재 부실채권까지 정부 매입 대상으로 몰릴 경우 재정 부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서민금융연구원은 이런 가능성을 고려하면 정부가 부담해야 할 채권 규모가 80조원에서 최대 100조원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 재정 소요액은 매입 대상과 가격, 채권의 회수 가능성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막대한 규모인 것은 분명하다.
연체채권 일괄매입 정책의 성패는 결국 얼마나 많은 채권을 사들이느냐가 아니라 어떤 채권을 어떤 가격에 매입하고, 채무자의 재기를 어떻게 뒷받침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서민금융연구원의 주장이다.
성실 상환자만 손해…금융 문턱은 높아져
채무조정 정책을 설계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이다. 정부가 연체채권을 일괄 매입한 뒤 폭넓게 탕감하는 방식이 반복되면 상환 능력이 있는 채무자까지 상환을 미루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데도 정부의 추가 지원을 기대해 상환을 늦추는 사례가 늘어나면 금융시장의 신용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
고금리와 고물가 속에서도 허리띠를 졸라매며 원리금을 성실하게 갚아온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무시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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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형편에서도 빚을 갚은 사람은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상환을 중단한 사람만 지원받는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정책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약해질 수 있다.
금융회사들의 대응도 변수다. 정부가 부실채권을 반복적으로 매입하거나 탕감해준다면 금융회사들은 향후 손실 가능성을 더 보수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대출 심사를 강화하고 저신용자에 대한 여신 공급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책의 의도와 달리 취약계층이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나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저신용자와 영세 자영업자, 청년층이 은행 등 제도권 금융에서 대출받기 어려워지면 불법 사금융에 의존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채무조정을 단순한 채무 감면과 구분해 설계해야 하는 까닭이다. 상환 능력이 없거나 급격히 악화된 채무자에게는 재기의 기회를 제공하고, 상환 능력이 있는 채무자에게는 합리적인 상환을 유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을 확보하고 금융회사의 정상적인 신용평가 기능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정책 과제라는 지적이다.
금융채무만 해결해선 재기 어려워…마지막 족쇄 세금
서민금융연구원은 채무조정의 범위를 금융회사 대출에서 국세·지방세 등 공공채무로 확대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사업에 실패하거나 갑작스러운 생활고를 겪은 서민들은 은행 대출이나 카드 빚만 연체하는 것이 아니다.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등 국세, 취득세와 재산세 등 지방세, 4대 보험료까지 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민간 금융채무를 조정하더라도 공공채무가 그대로 남으면 경제활동을 정상화하기 어렵다는 게 연구원 측 제언의 출발。이다.
서민금융연구원은 현재의 제도적 한계로 세금 체납액의 면책 문제를 꼽았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566조와 제625조에 따라 국세와 지방세 체납액은 비면책채권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파산면책이나 개인회생 절차를 거치더라도 원칙적으로 체납 세금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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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금융회사에 대한 채무는 법원의 면책 결정이나 채무조정 절차를 통해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세금 체납액은 별도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금융채무를 조정해도 세금과 가산금이 남아 압류나 징수 부담이 지속된다면 채무자가 다시 경제활동에 나서는 데 상당한 제약이 된다.
국세청과 지방자치단체가 영세사업자의 체납액 징수특례나 소멸시효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적용 요건이 까다롭고 제도 운영에도 한계가 있어 실질적인 재기 지원 수단으로는 부족하다.
서민금융연구원은 개인회생과 워크아웃, 파산 등 채무조정 절차에서 금융권 민간채무뿐 아니라 국세와 지방세 등 공공채무도 함께 조정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통합 채무조정 체계가 마련되면 채무자는 여러 기관을 상대로 각각 채무를 해결해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서민금융연구원은 채무조정 절차가 시작된 경우에는 조세 체납정보 제공에 따른 불이익과 재산 압류 절차를 일정 기간 중단해 최소한의 경제활동 기반을 보장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공공채무를 조정 대상에 포함한다는 것이 모든 체납 세금을 일률적으로 탕감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납세자의 소득과 재산, 상환 능력, 체납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하고, 생계형 체납자와 고의적인 납세 회피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미국·영국·독일, 세금도 조정…韓 제도개선 검토해야
서민금융연구원은 미국·영국·독일 등 국가처럼 한국도 조세채권의 우선권과 면책 범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연방파산법에 따라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소득세 채무에 대해 파산 절차에서 면책을 허용할 수 있다. 세금 신고 후 3년 경과 등 일정한 요건을 충족한 소득세 채무에 면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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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세청(IRS)의 '오퍼 인 컴프로마이즈(Offer in Compromise·OIC)' 제도는 파산 절차 밖에서도 납세자의 실질적인 상환 능력을 평가해 세금 채무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한다.
영국은 개인파산이나 개인자율협약(IVA) 절차에서 국세청이 일반 민간 채권자와 함께 채권자로 참여하도록 한다. 독일도 도산법상 잔여채무면책 절차를 통해 일정한 변제 기간 동안 성실하게 소득을 제공한 채무자에게 잔여채무 면책의 기회를 제공한다. 탈세 등 형사처벌 대상 범죄가 아닌 단순 체납 세금이 면책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해외 사례는 조세채권을 무조건 우선시하기보다 채무자의 상환 능력과 재기 가능성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을 시사한다. 물론 국가마다 세법과 도산제도, 면책 요건이 다르기 때문에 해외 제도를 국내에 그대로 도입하기보다는 한국의 법체계와 재정 여건에 맞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게 전제다.
조세채권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수입이라는 공적 성격을 지닌다. 민간 채무와 동일하게 취급할 경우 성실 납세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고, 무분별한 감면은 납세 의무에 대한 인식을 약화할 수 있다. 반대로 상환 능력을 상실한 생계형 체납자에게 회복 불가능한 부담을 계속 지우면 복지 지출과 사회적 비용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핵심은 공공채무의 조정 자체를 허용할 것인지에 그치지 않는다. 어떤 채무자를 대상으로, 어느 범위까지, 어떤 조건으로 감면할 것인지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체납 세금 감면하고 신용회복 지원…‘탕감’보다 ‘재기’에 초.
서민금융연구원은 공공채무 통합 조정과 함께 생계형 영세 체납자에 대한 조세채권 감면 제도를 도입할 것도 제안했다.
최저생계비 이하의 취약계층이나 생계형 영세 체납자에 대해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복지적 관。에서 세금 원금과 가산금을 감면하거나, 일정한 조건 아래 변제 배당권을 포기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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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IRS의 OIC와 영국의 관련 구제 제도가 참고 모델로 제시됐다.
일괄 감면이 아닌 선별적 지원이다. 소득과 재산이 거의 없고 정상적인 상환이 사실상 불가능한 채무자에게는 과감한 조정을 허용하되, 상환 능력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분할납부나 상환 기간 연장 등 부담을 낮추는 수단을 우선 적용하는 방식이 고려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서민금융연구원은 채무조정 계획을 성실히 이행하거나 법원의 파산 선고와 면책 결정을 받은 경우에는 체납 기록을 정리해 신용회복을 돕는 방안도 제시했다. 체납정보의 삭제 범위와 시。, 법적 요건은 현행 법률과 신용정보 관련 제도에 맞춰 별도로 검토해야 할 과제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정부가 채무자의 재기를 지원하려면 빚을 줄여주는 데서 정책을 끝내서는 안된다”면서 “채무조정 이후 다시 일하고 소득을 얻으며 세금을 납부할 수 있도록 경제활동 복귀의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회사 대출은 조정됐지만 세금 체납과 압류 때문에 사업을 재개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채무조정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연체채권 일괄매입은 당장 채무 부담을 덜어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대상 채권의 규모와 매입 가격을 둘러싼 논란, 재정 부담, 도덕적 해이 가능성을 고려하면 이를 취약계층 재기의 유일한 해법으로 삼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조성목 원장은 “정책 목표는 부실채권을 정부 장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채무자가 다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며 “금융채무와 공공채무를 함께 살피고, 상환 능력에 따른 차등 조정과 성실 상환 유인을 결합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빚을 갚지 못한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것과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사람의 신뢰를 지키는 것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선별적 채무조정과 공공채무 제도 개선을 통해 두 목표를 함께 달성할 수 있는 정책 설계가 요구되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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