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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창당 이래 거의 모든 총선에서 겨우 1%대 득표율을 기록하면서도 이탈리아 현대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겨온 ‘급진당(Partito Radicale)’의 활약을, 창당 당수 마르코 판넬라(Marco Pannella, 1930~2016)의 부고로 살펴본 바 있다. 3대 정당(기독민주당, 공산당, 사회당)의 틈바구니에서, 특히 바티칸과 연대한 기민당이 군소 우파 정당들과 장기 연정을 이어간 제1공화국(1948~1992)의 두터운 각질을 뚫고, 급진당은 이혼을 합법화(법률 898, 1970년)했고, 피임 금지법을 없앴고(1971년 위헌 판결), 낙태까지 합법화(법률 194, 1978)했다.
저 과정에서 이탈리아 급진당은 불굴의 투지와 비전으로 무장한 다수의 활동가와 정치인들을 배출했다. 이탈리아 최초 불법 비밀 낙태 지원 단체(CISA)를 설립하고 정당 역사상 처음 (급진당) 여성 당수를 지낸 페미니스트 아델레 파치오(Adele Faccio, 1920~2007), 유럽의회에서 녹색 정치 바람을 이끈 아델라이데 알리에타(M. Adelaide Aglietta, 1940~2000), 체르노빌 사고 직후 이탈리아 탈원전 정책을 주도한 로자 필리피니(Rosa Filippini, 1944~), 여성의 성과 육체를 정치 영역으로 편입시킨 포르노 배우 출신 의원 일로나 스탈러(Ilona Staller, 1951~)….
그리고 엠마 보니노(Emma Bonino)가 있었다. 70년대 낙태 합법화 캠페인을 선도하며 거리와 감옥을 거쳐 의회에 입성한 뒤 전 유럽을 무대로 숨질 때까지 시민권과 국제 정의, 평화를 위해 헌신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위대한 투사”라 불렸고 "명백한 영아 살인자"라고도 불렸던 그가 별세했다. 향년 78세.
1930년 무솔리니 파시즘 정권은 낙태를 ‘혈통과 민족에 대한 범죄’로 규정( 형법 제546조)해 여성에겐 최대 4년, 시술자에겐 최대 5년의 징역형을 부과했다. 70년대 말까지 이탈리아의 부유층 여성들은 해외나 국내에서 뒷돈을 주고 은밀히 낙태 시술을 받았지만, 가난한 여성들은 비위생적인 불법 시술로 끔찍한 후유증을 앓거나 목숨을 잃어야 했다. 저 법은 70년대 말까지 건재했다.
1975년 1월, 밀라노의 한 극장에서 열린 공개 토론회에서 아델레 파치오가 CISA의 낙태 지원 활동 전모를 공개해 현장에서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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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이어 급진당-CISA 활동가 다수의 ‘자백’이 봇물처럼 이어졌다. 비밀리에 해오던 낙태 정보 공유 및 시술 활동을 충격적으로 표면화한, 급진당 특유의 비폭력 불복종 캠페인이 그렇게 시작됐다.
이탈리아 전역이 발칵 뒤집힌 가운데 예심판사가 ‘낙태 알선 및 조직범죄’ 혐의로 관련자 전원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직후 핵심 활동가 일부가 프랑스로 피신했다. 그리곤 그해 6월 지방선거 투표일에 맞춰 은밀히 귀국했다. 그들의 리더가 당시 27세의 1급 수배자 엠마 보니노였다. 고향 피에몬테주 브라(Bra)의 한 투표소에서 학창시절 은사였던 투표소 관리소장의 도움으로 투표를 마친 그는 앞선 제보로 투표소 앞에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을 향해 당당한 미소와 함께 페미니스트의 상징인 ‘손가락 삼각형(자궁의 상징)’을 그려 보이며, 군중들의 환호 속에 경찰에 연행됐다. 그 장면 사진은 국내 거의 모든 신문 1면을 장식하며 ‘낙태 금지법 폐지’ 이슈를 가장 뜨거운 정치 이슈로 부각시켰다. 당연히 저 모든 과정이 계획된 스펙터클이었다.
피렌체 레 무라테(Le Murate) 감옥에 수감된 보니노와 활동가들이 보석-석방을 거부하며 감옥을 정치 투쟁의 무대로 활용하자, 여론 악화를 염려한 당국은 일주일 만에 그들을 임시 석방했다. 그리고 이듬해 6월 총선에서 만 28세의 미결 피의자 보니노는 급진당 비례대표 하원의원에 당선돼 불체포 특권을 획득했고, 의회를 교두보 삼아 시민사회와 연대하며 대대적인 공개 캠페인을 본격화했다. 78년 5월 이탈리아 의회는 낙태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켰고, 3년 뒤 바티칸과 기민당이 발의한 낙태 허용법안 폐지 국민투표 역시 68%의 지지율로 저지시켰다.
엠마 보니노는 이탈리아 북동부 피에몬테주 토리노 인근 작은 농촌마을 브라에서 태어났다. 소작농 출신 아버지는 성공한 목재상이었고 어머니는 전업주부였다. 보니노는 자신의 성장기를 “지독하게 따분한 시절”로 기억했다. “아버지는 (표준 이탈리아어를 의도적으로 거부하며) 지역 방언을 고집하던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거의 말이 없었다.” 완고한 가부장 아버지의 권위에 눌려 자신의 목소리마저 지워야 했던 당시 이탈리아 농촌의 전형적인 여성이었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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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인터뷰에서 보니노는 “나는 피에몬테 출신이다. 접촉도 싫고 포옹도 키스도 싫다. 내 몸에 손도 대지 마라. 남자들? 나처럼 심술궂은 사람이라면 생각해볼 순 있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교적이고 열정적인 이탈리아(남부)인 이미지와 달리 북부 피에몬테 지역 출신의 성정이 대개 그렇다고 한다.
“통통한 시골 소녀였지만 외모는 그럭저럭 봐줄 만했다”는 보니노는 72년 밀라노 명문 보코니(Bocconi)대 어문학부를 졸업했다. 졸업 논문 주제가 맬컴X의 글과 사상이었다. 선천성 불임이라는 의사 진단과 달리 그는 74년 원치 않던 임신을 하게 됐고, 피렌체의 한 병원 의사에게 은밀히 낙태 수술을 받으며 지독한 공포-수치심과 외로움을 경험한다. “수술을 받고 돌아오던 심야의 열차 안에서 결심했다. 누구도 다시는 절대, 절대, 절대로 이런 수모를 겪게 하지 않겠다”고.
그는 곧장 급진당에 입당해 75년의 공개 낙태 투쟁을 주도했고, 하원 당선 직후인 76년 7월 대중 주간지 ‘오기(Oggi)’ 인터뷰에서 75년 2월부터 그해 말까지 여성 1만146명의 낙태를 도운 사실을 공개하며, 당시 미국인 심리학자 하비 카르만(Harvey Karman)이 개발한 진공 태아 흡입술인 ‘카르만 낙태법’의 장。과 편의성을 구체적인 방법과 함께 적나라하게(in graphic detail) 소개했다. 카르만 법은 전신마취가 필요한 외과적 수술(소파술)이나 전통적(?) 방식들과 달리, 감염과 후유증 위험이 현저히 적은 낙태법으로 이미 프랑스 등지서 유행하던 낙태법이었다. 자전거 펌프와 잼 병을 어떻게 활용했고, 그 병을 어떻게 폐기했는지 등등. 그는 “여성들은 내가 위생용품 가게에서 산 전문적인 용기를 쓰지 않는 걸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잼 용기는 (겁 먹고 주눅 든 여성들을) 웃게 해준 소재가 되기도 한다.” 보수 진영은 당연히 경악했다. 가톨릭 매체는 그를 “명백한 영아 살해범”이라고 비난했다.
이탈리아에서 급진당 같은 군소 정당이 활약할 수 있는 바탕에는, 파시즘 독재를 경험한 시민들이 선택한 비례대표제 중심 혼합형 선거제도 '로사텔룸(Rosatellum)'과 정당연합 시스템이 있다. 의회 의석의 60% 이상을 정당 득표율에 따라 채움으로써 소수 정당도 득표한 만큼 의석을 가지도록 한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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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의 '마니 풀리테(Mani Pulite)’ 즉 대규모 정치 부패 사건으로 주요 정당들이 사실상 해체되고 제2공화국이 출범하면서 극단적인 군소정당 난립을 막기 위해 ‘3% 규칙’이 만들어져 단독 정당의 경우 전국 득표율이 3%(정당연합의 경우 10%)를 넘겨야 비례 의석을 배분받게 됐다. 그 결과 정착한 게 선거 연합- 연합 정부(연정)다. 선거-승자 독식구조의 혁파는, 잦은 내각 해산 등 정치 불안에도 불구하고, 급진당 같은 소수 정당이 주요 정당의 철조망 너머로 여론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제도적 사다리가 됐다.
유사한 취지로 한국이 2019년 도입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기본소득당을 비롯한 소위 ‘위성-편법 정당’의 등장으로 퇴행한 이유는 지역구에서 의석을 많이 얻은 거대 정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못 받거나 적게 받도록 설계된 탓이 크다. 그 결과 지역구 의석을 잔뜩 챙긴 모(母) 정당이 위성 정당을 내세워 비례 의석까지 독식함으로써 제도의 취지를 무력화하고 양당구도를 더 강화시킨 것. 이탈리아는 지역구 의석과 비례 의석이 독자적으로 병립하기 때문에 굳이 편법 위성정당을 만들 이유가 없다. 또 한국과 달리 선거 전 정당 연합도 가능하다.
이탈리아 군소 정당과 시민사회가 정치권의 벽을 넘어 사회적 변혁을 이끌어 온 또 하나의 제도적 장치는, 역시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겪은 뒤인 1948년 개정 헌법에 명시한 폐지적 국민투표(Abrogative Referendum)제도다. 헌법상 국민투표를 단 두 상황, 즉 헌법 개정과 대통령의 결정(외교 국방 등 중요 사안)에 한해 허용한 한국과 달리, 이탈리아는 유권자 50만 명 이상이 서명하면 특정 법률의 폐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청구할 수 있다. 해당 법률이 조세나 예산, 사면, 국제조약 등 국민투표 대상에서 제외된 게 아니라고 헌법재판소가 판단하면 대통령은 의무적으로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인구 5,000만 명이 넘는 거대 보수 가톨릭 국가에서 주요 기득권 정당들의 당론을 거스르며 이혼과 피임, 낙태 등 뜨거운 인권 이슈들을, 또 체르노빌 사건 직후인 1987년의 원전 폐지 등을 이룬 배경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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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노는 2022년 은퇴할 때까지 의회 상하원과 연립정부 내각, 유럽의회와 EU 집행위원회에서 의원과 장관, 집행위원 등을 역임하며 여성과 이민자 등 사회적 약자와 난민 구제, 군축과 평화를 위해 헌신했다.
프랑스 의회가 여성 의원의 바지 착용 금지 규정을 공식 폐지한 건 2013년이다. 1979년 유럽 의회 최초 유권자 직접선거로 초대 의원이 된 보니노는 당시의 보수적인 드레스코드를 무시한 채 바지를 입고 등원했다. 80년대 국제형사재판소(ICC) 설립을 주도했고, 90년대 ICC를 상설화하는 데 앞장섰다. 87년 폴란드 현지에서 야루젤스키 독재 정권을 비판하다 체포-추방당했고, 93년 발칸 내전과 인종청소 당시 ‘평화 없이 정의 없다(NPWK)'란 NGO를 설립해 유엔의 유고 전범재판소 설립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이끌기도 했다. EU 집행위원(95~99)이 된 지 이틀 뒤 유엔의 무능을 질타하며 당시 전장이던 모스타르와 사라예보를 방문해 반인권 전쟁범죄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렸고, 르완다와 아프가니스탄, 쿠르디스탄 현지에서 인도주의 지원 담당 집행위원으로 활약했다. 아프간 탈레반 정권에 의해 체포-구금되기도 했다. 요컨대 그는 야인-활동가 시절보다 더 격렬하게 활동한 정치인이었다. EU 집행위원 시절 캐나다 어로 해적행위로 촉발된 유럽-캐나다 어업 전쟁 와중에 스페인 어선을 타고 공해상에서 캐나다 어선과 맞선 투사적 이미지로 유럽 어민들의 영웅이 되기도 했다.
‘마니 풀리테’로 좌우파 비리 정당들이 와해된 직후인 94년, 급진당과 보니노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신생 우파 정당과 연합해 전통적인 지지층으로부터 격한 반발을 샀다. 보니노가 EU 집행위원이 된 것도 사실 그 보상이었다. 하지만 베를루스코니 집권 후 급진당은 대다수 정책에서 정부와 맞섰다. 99년 보니노는 의회가 간선으로 뽑는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했지만, 그해 자신의 이름 아래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걸고 치른 유럽의회 선거에서 무려 8%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7명의 유럽의회 의원을 배출했다.
낙태허용법 제정의 일등공신인 보니노는 그 법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판론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법이 규정한 ‘양심적 거부(conscientious objection)’ 조항, 즉 의사가 자기 신념에 따라 낙태 시술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그릇된 타협의 산물이라 주장했다. 지금도 이탈리아 산부인과 의사의 약 60~70%(남부 일부 지역은 80% 이상)는 저 규정을 근거로 낙태 시술을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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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 자체를 폐지하려던 보수 가톨릭계의 81년 국민투표 당시 급진당도 저 조항을 삭제하기 위한 개정안 국민투표를 시도했지만 88%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2024년 조르자 멜로니 우파 정권은 낙태 반대 단체의 가족 상담 개입을 허용하는 개정 법안을 통과시켰다.
2024년 공영방송 Rai 인터뷰에서 보니노는 “나는 평생 인권을 확장하고자 싸웠고, 쟁취한 것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영원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평생 두어 명의 연인이 있었지만 동거도 결혼도 한 적도 없었던 그가 자녀 출산을 거부한 까닭도 ‘영원’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아이를 갖는 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해. ‘영원히(for ever)’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니까. 나는 그걸 감당할 수 없었어.”
평생 골초였던 그는 2015년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면서도 2022년 피에몬테주 상원의원 임기를 마칠 때까지, 존엄사-조력자살 합법화 등을 위해 헌신했다. 2019년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신체적 정신적 자율성이 있는 말기 환자의 조력자살을 돕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보니노의 마지막 결실이었다.
중세 철학자 조르다노 브루노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며 교회와 맞서다 로마 캄포 데 피오리(Campo de Fiori) 광장에서 화형당했다. 1889년 이탈리아 지식인들과 빅토르 위고 등 당대 유럽 자유주의자들은 권위-권력에 맞선 유럽 정신의 상징으로, 바티칸(교황청)을 노려보는 형상을 한 브루노의 동상을 그 광장에 세웠다. 보니노의 집이 그 광장 인근이었다.
2024년 11월 5일, 전 교황 프란치스코가 꽃다발과 초콜릿을 들고 투병 중이던 보니노의 자택을 깜짝 방문, 휠체어에 나란히 앉아 약 1시간 동안 담소했다. 가톨릭 계율에 맞서 낙태와 이혼, 존엄사(조력자살) 합법화를 이룬 그를 교황은 “서로 가치관은 다르지만 이탈리아의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이라 평한 바 있었다. 그날 교황은 “나는 이제 늙었고 곧 죽을 테지만, 당신은 나보다 젊으니 어서 건강을 회복해 우리의 공통된 신념(난민, 교도소 인권, 소외된 이들에 대한 지원)을 계속 밀고 나가달라”고 요청했다고 교계 신문은 전했다. 교황 서거 소식에 보니노는 교황과의 우정을 회고하며 “가장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주며(…) 결코 대화의 문을 닫지 않았던 참된 거장”이라고 애도했다.
결), 낙태까지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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