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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국고채 금리가 고공 행진하면서 중앙은행이 국가 재정 건전성의 ‘파수꾼’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재정정책은 정부의 고유 권한이지만 정부의 부채와 이자 부담이 커질수록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기 어려워지고 결국 통화정책의 독립성이 약화돼 ‘재정 우위(Fiscal dominance)’ 현상이 공고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도 최근 국정감사에 출석해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계속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영국 금융정책 싱크탱크인 공적통화금융기구포럼(OMFIF)은 홈페이지 기고문을 통해 “중앙은행이 재정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부채가 급증하면 정부가 금리 인하나 국채 매입을 압박하고 결국 통화정책의 독립성까지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OMFIF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기준금리를 3%포인트 인하하면 연간 1조 달러를 절감할 수 있다고 압박한 사례를 들며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 책무를 지키는 동시에 재정정책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분명히 시장에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인 KPMG도 이날 보고서에서 “미국의 국채 공급 확대와 그에 따른 이자 비용 증가로 장기물 금리가 높은 수준에 머물 것”이라며 설령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려도 시장 금리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실상 재정 리스크가 통화정책 효과를 잠식할 수도 있다며 중앙은행이 재정 위기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시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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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금융시장에서 통화와 재정정책은 엄격히 구분되는 것이 상식으로 통한다. 영국의 경우 1997년 이전까지 사실상 재무부가 금리 결정권을 가지면서 통화정책이 선거에 좌우되는 사례가 많았고 이에 따라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면서 만성적 고물가와 파운드화 변동을 겪었다. 우리나라도 한때 한은을 두고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라는 별명으로 부를 정도로 통화정책의 독립성이 낮았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겪으면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분리가 상식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주요국 재정 건전성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무너지면서 통화정책의 운신 폭이 좁아지고 있다. 실제 2026년 회계연도 미 연방정부의 순이자 비용은 2020년의 약 3배인 1조 달러에 육박해 사상 최고 수준이고 2036년에는 연간 2조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미 국고채 30년물 금리는 이달 5.31%까지 올라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미 연준은 물가 안정이 시급한데도 정부의 이자 부담을 고려해 금리를 올리기 어려워진다. 설사 금리를 내린다고 해도 재정 적자 리스크에 시장 금리는 계속 높은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유럽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IMF에 따르면 프랑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2020년 115%에서 2031년 123.6%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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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프랑스 국채 10년물 금리는 19일 4.925%까지 급등해 20여 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중앙은행(ECB)은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할지, 프랑스의 국채 안정을 위해 동결해야 할지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결국 재정 부담이 통화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을 막으려면 중앙은행이 재정 위험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경고해야 한다는 게 국제 금융계의 문제의식이다.
한국에서도 확장 재정에 대한 중앙은행의 견제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12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내년도 총지출을 올해보다 12.8% 늘리고 미래대응기금에 45조 원을 투입하는 정부 예산안을 문제 삼았다. 반도체 경기 호황에 따른 세수 증가를 기대해 지출을 확대했다가 세입이 줄면 국채 발행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취지다. 박 의원은 신 총재에게 “제동을 걸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왜 제대로 목소리를 안 내느냐”고 지적했고 이에 신 총재는 “조화롭게 운영되도록 저희 의견을 계속 내겠다”고 답했다.
국내 금융권에서도 중앙은행이 정부의 재정정책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정부의 이자 부담이 중앙은행의 긴축 의지를 약화시키고 시장이 이를 예상해 인플레이션 기대와 장기금리가 더 높아지는 구조를 고착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반도체 호황기에 늘어난 세수를 미래 성장 동력 확충과 재정 건전성 확보에 생산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우리도 제2의 프랑스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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