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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10-19 11:27 조회 4 댓글 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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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04 / Day 40-53
Day 50: 건식 사우나 속의 행군과 새벽의 불청객
오전 6시, 서둘러 캠프사이트를 떠나 에트나(Etna)로 향하는 도로에 오후 4시쯤 도착했다. 그런데 이곳, 차가 너무 안 다닌다. 벌써 한 시간째 엄지를 치켜들고 서 있지만 지나간 차는 단 세 대 뿐. 트래픽이 거의 없는 도로 한복판에서 나는 그저 무작정 기다리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다.
오늘 하루는 종일 양산에 의지해 걸었다. 뜨거운 태양을 피하려다 보니 시선은 자연스레 땅바닥에만 머문다. 지면에서의 열기가 다리를 타고 얼굴까지 올라오는데, 눈과 코는 바짝 말라 비틀어질 것만 같다. 비유하자면 '거대한 건식 사우나' 안을 종일 걷고 있다고 하면 딱 맞을 거다. 그래도 가끔 뻐근한 목을 들어 옆을 보면, 웅장한 산맥들이 서 있는 풍경이 꽤나 멋지다. 워싱턴이나 오레곤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치솟는 온도는 정말 절망스럽지만, 풍경만큼은 배신하지 않는다.
고된 낮을 보상해 주는 건 역시 저녁이다. 텐트를 집으로 보낸 후 계속되는 카우보이 캠핑. 캘리포니아의 밤은 여전히 더워 침낭 속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그 위에서 잠을 청한다. 그런데 오늘 새벽, 기절할 뻔한 사건이 있었다. 어디선가 들리는 바스락거리는 발자국 소리에 잠이 깨어 헤드램프를 켰다. 불빛이 닿은 곳엔 내 머리맡 불과 1m 앞에서 무언가를 우걱우걱 씹어 먹고 있는 사슴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아무리 예쁜 사슴이라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마주한 녀석의 눈망울은 공포 그 자체였다. 녀석을 쫓아내고 다시 눈을 붙이려 하면, 잠시 후 다시 돌아와 내 머리맡에서 열심히 식사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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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필 먹을 것이 내 옆에 있을 게 뭐람. 그렇게 새벽녘 몇 번이나 잠을 설쳐야 했다.
지금은 우여곡절 끝에 에트나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 마을 공원에서 감사하게도 하이커들에게 무료 캠핑을 허용해 준다. 푹신한 잔디 위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한 번 보고, 일기 한 줄을 적어 넣는다. 사슴의 방해 없는 이 평화로운 밤이 참으로 달콤하다.
Day 52: 구멍 난 신발과 발바닥의 비명
내 신발이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밑창은 닳을 대로 닳아 얇아졌고, 앞옆으로 숭숭 뚫린 구멍 사이로는 끊임없이 모래가 들어온다. 그 모래 알갱이들이 발바닥과 살을 맞대고 쉼 없이 마찰을 일으킨다. 게다가 트레일 곳곳에 박힌 돌들을 밟을 때마다 얇아진 밑창은 그 충격을 고스란히 내게 전달한다.
내 발바닥은 그야말로 불이 나는 것 같다. 오늘 45km 지。을 넘어서면서부터는 발바닥의 통증이 극에 달했다. 돌 하나라도 덜 밟아보려고 엉거주춤 뒤뚱거리며 걷는 내 모습이 스스로 생각해도 가관이다. 내일 모레 마운트 샤스타(Mount Shasta) 마을에 도착해서 새 신발을 신기 전까지만 어떻게든 견뎌야 한다. 내일은 기회를 봐서 양말부터 빨아야겠다. 땀과 모래가 범벅이 된 채 딱딱하게 굳어버린 양말 이 발바닥을 더 자극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가장 지극정성으로 돌봐야 할 것이 '발'이건만, 나는 발에 너무 소홀했었다. 머릿속으로는 아침저녁으로 스트레칭과 마사지를 하고, .심때는 시원한 물에 발을 씻겨 말려주리라 다짐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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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딴 이유가 있겠나, 그저 몸이 고되니 게을러진 탓이다. 요 며칠 해가 조금 짧아졌다는 핑계로 출발 시간이 늦어졌다. 그만큼 캠프사이트 도착이 늦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좀 더 부지런해지자. 나를 믿고 여기까지 온 내 몸에 예의를 갖춰야 할 때다.
Day 53: 길을 잃고 헤맨 1리터의 생존수와 마주한 별들의 바다
"좀 차분하자."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되뇌어 본다. PCT앱의 고도 프로파일을 보니 길이 평탄해 보였고, 무엇보다 43km 지。에 있다는 끝내주는 캠프사이트 정보에 눈이 멀어버렸다. 그 흥분 때문에 하이커에게 공기보다 중요한 '워러소스'를 놓치고 마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약 27km 지。에서 .심을 먹을 때만 해도 기분이 최고조였다. 남은 거리가 고작 16km뿐이라는 사실에 재차 흥분한 나머지, 그 구간에 물이 아예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채 1리터도 안 되는 물만 들고 길을 나섰다.
30분쯤 지났을까, 무심코 앱을 열어본 나는 경악했다. "세상에, 물이 없다!" 필사적으로 화면을 뒤지다 캠프사이트 6km 전 '세븐 레이크 정션(Seven Lake Junction)'이라는 곳을 발견했다. 800m만 내려가면 호수가 있다는 표시였다. 왕복 1.6km, 지금 내 갈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거리였다. 배낭을 벗어두고 빈 물통 3리터만 챙겨 서둘러 다운힐을 내려갔다.
하지만 무언가 잘못됐다. 내려가도 너무 내려간다. 사방으로 갈래길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순간 나는 방향 감각을 잃었다. 왔던 길을 되짚으려 했지만 낯선 길들이 계속 앞을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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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패닉이 찾아왔고, 그 때문인지 목은 더 타들어 갔다.
그때 천사처럼 나타난 두 노신사를 만났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호수를 도저히 못 찾겠다고 하니, 선뜻 본인들의 물 1리터를 나눠주겠다고 한다. 사실 내일 아침까지 버티려면 더 많은 양이 필요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생명수나 다름없었다. "아이구, 감사합니다!" 연신 머리를 숙이며 물을 받아내고 제대로 된 길 안내를 받아 겨우 PCT 본선으로 복귀했다. 한 시간을 헤맸지만, 내 손엔 1리터의 물이 있었다.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저녁 7시가 조금 안 되어 도착한 캠프사이트. 텐트를 치려다 말고 나는 멈춰 서서 탄성을 질렀다. "와~ 이런 말도 안 되는 곳이 있다니!" AT부터 지금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걸으며 마주한 모든 캠프사이트 중 단연 최고였다. 최고의 카우보이 캠핑 스팟. 일몰은 가려졌지만, 탁 트인 하늘 아래 마운트 샤스타(Mount Shasta)와 캐슬 크랙스(Castle Craigs)가 병풍처럼 펼쳐진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게다가 휴대폰 신호까지 잡히는 건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였다. 어느새 밤하늘엔 별들이 쏟아질 듯 가득하다. 눈이 부시게 아 름다운 별들이 나를 내려다보며 환하게 웃어주는 것 같다. 낮의 패닉과 갈증은 어느덧 별빛 속에 씻겨 내려가고, 나는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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