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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의 뮤직 SCENE] 가상과 현실 사이 K팝
올해 새롭게 K팝 신에 나타난 아이돌 넷 중 하나는 인간이 아니다. 춤도 잘 추고, 얼굴도 좋고, 노래도 잘하고…‘초인적’이란 수사가 아니다. 말 그대로 비인간이란 얘기다. 필자가 직접 조사한 결과, 2026년 들어 1월부터 10월 현재까지 국내에서 데뷔한 55개(그룹, 솔로 포함) 아이돌형 가수 중 23.6%에 달하는 13개 팀(또는 솔로)은 버추얼 아이돌이었다. 그러니까 2026년은 K팝 버추얼화(化)의 분수령이 되는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AI 가수의 인기도 전대미문의 경지다. 지금 가요 차트를 펼쳐 보라. 최상위권에서 그들이 인간 가수 리센느, 코르티스, 소연과 경쟁한다. 묘기 같은 칼군무, 완벽한 팬 서비스로 초인화(超人化)한 K팝의 미래는 가인화(假人化)일까. 이런 경향은 무엇을 의미할까. K팝의 미래에 인간은 존재할까.
10월 14일 현재 멜론 톱 100. 1위인 소연의 ‘퇴사할게여’, 2위인 리센느의 ‘LOVE ATTACK’에 이어 3위에 머무르의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가 올랐다. 머무르는 앨범 소개글에 “본 앨범의 보컬은 Suno AI 기술을 통해 생성되었으며”라 명시했다. 6월 발매된 이 곡은 ‘멜론 밖’에서 먼저 돌풍을 일으켰다. 유튜브 음악 차트 정상을 찍더니 멜론에서도 역주행해 지난 2일 18위까지 진격했다. 그리고 불과 열흘 만에 일회성 신드롬이 아니라 차트에 ‘머무르’는 실재가 됐다. 14일 현재 멜론 일간 차트 4위, 주간 차트 12위, ‘좋아요 급상승곡 톱 100’ 1위.
AI 생성 음악은 유튜브에서 먼저 터졌다. 숏폼과 광고 콘텐트, 버튜버(버추얼 유튜버)가 일찌감치 난입해 좋든 싫든 가상과 AI에 대한 소비자의 낯섦이 덜한 플랫폼이 거기니까. 이제는 수도 없이 산재한 AI 생성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인간이 부른 가요나 팝 대신 매장에 트는 카페가 전국에 부지기수다. 그러나 ‘인간 가수’의 보루로 생각된 정통 가요 차트까지 AI가 틈입한 것은 오래 되지 않았다.
지난달 조선힙합의 ‘마음의 숲’이 멜론 톱 100의 장벽을 뚫었을 때만 해도 가요계는 ‘파란’이라 여겼다. 그러나 불과 한 달 만에 인간 가수도 넘보기 힘든 멜론 톱 5에 머무르가 안착해 버티고 있는 것이다. 경천동지, 파죽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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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론 톱 100의 장벽을 먼저 깬 ‘마음의 숲’(조선힙합)은 ‘공기 반, 소리 반’ 창법으로 살랑대는 힐링 송. ‘지친 마음 쉬어가요/이곳에서 숨을 골라’ 하며 노래하는 2인칭 보컬은 마치 내가 뭔 소릴 하든 비위 딱딱 맞춰 주는 챗GPT를 닮은 구석이 있다. 하지만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머무르)는 차원이 또 다르다. ‘가끔은 무너지는 새벽 밤에도/겨우 겨우 버티는/작은 모난 나를 /어른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는 분명 고단한 삶을 사는 인간의 1인칭이다. 가창 역시 잔잔한 조선힙합과 달리 후렴구에 이르러 진성과 가성을 오가며 공허감과 애수를 절절하게 토로한다. 두 번째 코드로 메이저 3도를 써서 감정을 치올리는 화성 기법은 두 곡이 닮았지만 머무르는 거의 혁오, 카더가든, 오왠의 록 발라드처럼 감성을 진하게 끓여 낸다. 진짜 슬픈 사람이 낼 법한 진짜 슬픈 소리다.
영화 쪽에 ‘암살자(들)’이 있다면 가요 쪽에선 지금 머무르가 별。 전쟁터다. ‘AI라니, 역겹네’라며 별。 하나를 주거나, ‘살다가 AI한테 위로받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며 별. 다섯 개를 주는 식이다. 멜론 평균 별.은 5. 만。에 3.1로 낮은 편. 하지만 좋아요 수는 3만2000을 돌파했다. 올해 최대의 쇼츠 돌풍, ‘북부대군’ 신드롬의 ‘BAD’(에이티즈)의 3만6000여 개를 며칠 안에 돌파할 기세다.
음악계 반발에 AI 활용곡 저작권 등록 유보
‘신호탄’ 치고는 그 파괴력이 전면전 급이다. AI 음악의 인간계 침공은 이제 시간문제인가. 미국 뉴욕남부연방법원은 지난 6일(현지시간) 음원 제작자 마이클 스미스에게 실형(1년 6개월)을 선고했다. 법원이 몰수를 명령한 그의 범죄 수익은 약 809만 달러(108억 원). 법원에 따르면 스미스는 2017년부터 2024년까지 AI로 곡을 만들어 가짜 가수 이름을 붙인 뒤 스트리밍 플랫폼에 유통했다. 이렇게 올린 곡을 약 1만 개의 봇 계정으로 자동 재생하게 했다. 총 수십억 회 스트리밍을 발생시켰다.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를 뛰어넘는 수치였다. 물론 스미스의 경우는 어뷰징을 통한 통신사기였지만, 지금 한국 멜론에서 벌어지는 일은 실체적 현상이란 .에서 더욱 놀랍다.
제도는 어디까지 따라가고 있을까. 국내에서는 지난 8월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AI를 일부 활용한 곡에 대해서도 저작권 신탁 등록을 허용하는 방침을 도입하겠다 밝혔지만 음악계 내부 반발로 해당 안을 유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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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음악계 안에서 AI 활용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된 지 오래다. ‘출근할 때 왠지 우울해지는 기분을 표현하는 음악 만들어 줘’ 하고 맡겨버리는 방식이 아니라 장르, 템포, 리듬을 포함한 매우 상세한 프롬프트로 여러 음악을 생성한 뒤 세부적 편집과 조탁을 거쳐 완성하는 식이다. 특히 애당초 실제 악기 연주가 아니라 디지털과 가상의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던 K팝 부문에선 AI 활용이 더욱 적극적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중견 음반 제작사 대표 A씨는 “해외에 사는 한국계 청년 작곡가의 데모곡을 듣고 반해 연락을 취했더니 작·편곡에 AI를 상당 부분 활용했다는 본인의 답을 들었다”면서 “잠시 고민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좋은 곡을 계속 써내는 것 역시 비범한 능력이라 생각해 그와 계약하기로 했다”고 귀띔했다. 현직 가수인 B씨는 “최근 머무르의 노래를 듣고 가창력과 표현력에 충격을 받았다”면서 “노래를 잘하는 것 말고 진짜 인간 가수의 경쟁력이 뭘지 심각한 고민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결국 정도의 차이이지 AI가 음악의 창작과 실연 분야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이미 실패했다. 머무르, 조선힙합처럼 ‘AI와 함께 만들었다’를 일종의 홍보 전략으로 내세우는 경우도 있지만, 인간이 만들었다 믿는 수많은 곡이 어느 정도는 AI의 도움으로 시장에 나오고 있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미국의 마이클 스미스처럼 악의적 통신사기를 결합시키는 행태가 아니라면 AI 창작에도 저작권을 열어야 한다고 본다. (지식노동자의 핵심 업무라 할 수 있는 정보 검색에 네이버, 구글, 국회도서관 열람실 대신 클로드를 활용한 작가 C씨(나)는 이 글을 쓰고 받는 원고료의 일부를 앤트로픽과 공유하거나 원고료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걸까?)
버추얼 가수는 또 다른 이슈다. 올해 데뷔한 아이돌 넷 중 하나가 버추얼인 데는 여러 배경이 작용했다. 첫째는 버추얼 그룹 플레이브의 실질적이고 대대적인 성공이다. 2023년 데뷔한 이들은 2025년 단일 음반을 100만 장 넘게 팔고 고척스카이돔에서 공연을 열었다. 올해에는 인천문학경기장을 매진시키며 1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 시빅 오디토리엄 공연을 포함한 월드투어에 나선다. 검증된 성공 앞에 음악계뿐 아니라 벤처캐피털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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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 따르면, 올해 버추얼 가수 제작사 여러 곳은 수십억 원 규모의 VC 투자를 받았다.
2023년 데뷔 버추얼 그룹 플레이브 대성공
버추얼 가수는 제작하는 입장에서 ‘가성비’는 높고, ‘리스크’는 낮다. 어려서부터 휴대전화 속 작은 화면으로 만화 캐릭터, 버튜버와 유대를 쌓아온 지금의 10, 20대 상당수는 버추얼 가수에 대해 인간만큼 열광할 준비가 돼 있다. 바이럴을 만들어 낼 막대한 마케팅 비용 없이는 히트시키기 어려워진 데다 국내 연습생 자원까지 급감하는 실질적 제작 현실도 한몫한다. 중견 음반사 임원 D씨는 “특히 남자 연습생 수가 몇 년 새 급감했다. 미모와 끼를 가진 아이들은 이제 생활 자유도는 높으면서도 연예인 이상의 부와 명예를 가진 유튜버, 인플루언서 등의 직업을 ‘세월 갈아 넣고, 성공해도 불편한’ 아이돌보다 선망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무척 역설적인 얘기지만, 미래 K팝 ‘비인간화’의 이면엔 과거 K팝의 ‘비인간성’이 도사린다. 무대 위에선 야수처럼 현란하게 움직이면서도 무대를 내려오면 불특정 다수의 팬에게 한없이 상냥하고 순종적이어야 하는, 불가능해 보이는 ‘육각형 인간’이 돼야만 하는 게 K팝 셀러브리티의 세계 아닌가. 버추얼이야말로 (사이버 가수 아담 이후) 기술의 부족으로 유예됐던 K팝의 진짜 이상향이라면?
7월 데뷔한 AI 가수 슬릭트는 아예 세계관 자체를 ‘AI가 만든 미래 존재’로 잡았다. 스스로 AI란 사실에 혼란을 느끼지만 ‘소환자’로 설정된 팬들에 의해 인간계로 와 활동하면서 .차 예술가로 완성돼 간다. 음악과 뮤직비디오 제작에는 물론이고 팬들이 플랫폼에 올리는 글을 분석해 활동 방향을 잡는 데도 AI를 고도로 활용한다는 게 제작사 측 설명이다.
인간에게도 희망은 있다. 로봇과 함께 사는 시대에도 인간은 언제까지나 인간을 동경할 것이다. ‘나랑 똑같이 인간의 자궁에서 나왔는데 저렇게 예쁘고 상냥하며 가무에 뛰어나다니…’가 주는 감흥은 제조돼 나온 ‘AI 완제품’에 비교우위가 있다. 하지만 고도의 AI와 결합한 미래의 버추얼 가수라면? 인간 서사 못잖은 스토리, 체온을 넘는 공감 능력을 작동시킴으로써 그들은 가요계에서 어느 정도의 지분을 끝내 가져갈 것이다. 협업이냐, 전쟁이냐. 미래는 이미 시작됐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 뮤직 컨설턴트. 하이브,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에서 강연했고 뉴욕타임스, BBC에 한국 문화에 관한 도움말을 줬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국립국악원 운영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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