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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10-02 13:49 조회 210 댓글 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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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 선생님은 충청도 두메산골에서 상경해 서울대 다닐 때 자칭 시골뜨기가 그 유명한 금아 피천득 선생에게 배운 학창 시절을 회상하며 반세기도 지난 옛이야기를 마치 엊그제같이 생생하고 흥미롭게 들려주셨다. 또 문교부 편수관 시절에 금아 피천득의 수필들을 교과서에 싣게 된 사연과 금아 선생이 편수관실을 찾아 사제간에 나눈 도타운 정을 설명할 때면 “훌륭한 스승에게는 훌륭한 제자가 있기 마련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그 강의가 다운 선생님의 이승에서 마지막 강의였고, 명강의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강의를 마친 뒤 나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짜장면’을 생각했다. 이제 강의가 끝났으니 함께 짜장면을 먹으러 가야 했다. 그러나 행사 마무리를 해야 했고 선생님께서 다른 제자들과 동행하고 나는 동참하지 못해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며칠 뒤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피천득 선생이 1977년 제1회 현대수필문학상을 받고 그 상금을 기증하여 문학상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제2회 때는 일석 이희승 박사가 대상을 받고 다운 선생님이 신인상(?)을 받은 이야기도 그 마지막 강의와 함께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피천득 문학 새로 읽기’를 성황리에 마치고 며칠 뒤였다. 그날 일들을 정리하며 미흡했던 부분은 가을에 있을 ‘금아 피천득 다시 읽기’ 프로그램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다운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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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짜장면 사 주겠다고 하신 약속을 지키시려고 하는구나.” 반갑게 받았는데 사모님 목소리였다. “선생님 지금 대학병원 응급실에 계세요.”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한걸음에 지하철을 탔다. 내 마음은 덜컹덜컹, 콩닥콩닥했다. 땀을 훔치며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들어섰다.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못 하신 채 생사 언덕을 넘나들고 계셨다. 그토록 수필을 사랑하셨던 분이 마지막 순간에는 자갈밭을 맨발로 걷는 듯한 고통 속에 계셨다. 자강불식(自强不息) 하던 선생님은 나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피안(彼岸)으로 떠나셨다. 그날은 7월 3일, 생신날이었다. 짜장면 사 주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홀연히 떠나신 것이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사흘간 머물면서 문상객들을 맞이하며 연합뉴스 K 기자와 선생님 생애에 관련된 인터뷰까지 하면서 이승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했다. 그런데도 자꾸만 선생님께서 “강의 끝나면 짜장면 먹으러 가세.” 하시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세미나 때 ‘그리운 금아 선생님’을 주제로 강의하시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었다. 선생님은 다른 분 강의 때도 경청하시며 열심히 메모하셨다. 그런 모습이 존경스럽고 매우 아름다워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는데 그 모습이 이승에서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이야.
장례식을 마치고 ‘마지막 강의 모습’과 기타 자료들을 모아서 유족인 사모님에게 보내 드렸다. 며칠 뒤 장남에게서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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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 선생님 유고집 ‘옛 이야기가 있는 에세이’(범우사·2019)를 출간했다며 감사 편지와 함께 유고집을 전달받았다.
다운 선생님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나는 가끔 짜장면을 먹는다. 젓가락으로 면을 비빌 때마다 선생님 얼굴이 떠오른다. 짜장면 한 그릇이 그토록 많은 기억을 불러낼 줄은 예전에는 몰랐다. 검은 춘장 속에 스승의 웃음이 있고, 면발 사이사이에 문학을 이야기하던 시간이 있다. 지금도 다운 정진권 선생님이 그리울 때면 다정스러운 누이처럼 나를 챙겨 주는 담원 수필가를 찾아 나선다. 담원 수필가는 내가 다운 선생을 만나러 갈 때면 늘 동행하여 나 대신 선생과 소맥을 대작하며 문학 이야기를 들려주신 문학 동무이다. 요즈음에도 담원을 만나면 다운 선생의 명수필 ‘짜장면’에 나오는 곳과 비슷한 장소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교수님보다는 선생님으로 부르는 것을 더 좋아하신 다운 정진권 선생님!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묻는다. “선생님, 강의 끝났습니다. 이제 짜장면 먹으러 가시지요.”
그러면 어디선가 선생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그래, 가세.”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선생님은 떠나셨지만, 약속은 떠나지 않았다.
김진모(금아피천득선생기념사업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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