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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드라마틱하지, 작품이 아니지 않나.”
미술사학자 최열도 한때 이중섭(1916~1956)을 그렇게 생각했다. 몇 .의 유명한 소 그림, 애들 낙서처럼 보이는 작은 그림들. 가족과의 이별, 가난과 요절로 이어지는 극적인 생애 때문에 ‘신화화’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었다. 공부할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하나하나 볼 때마다 모든 게 뛰어났어요.” 뒤엉킨 사실을 바로잡고자 쓴 책이 <이중섭 평전>(2014)이었다. 평전을 내고도 아쉬움은 남았다. 생애를 복원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 정작 그림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 당시 책을 함께 만든 편집자 이현화 혜화1117 대표도 같은 생각이었다. 두 사람이 12년간 품어온 아쉬움은 이중섭의 거의 모든 작품을 한 권에 담아낸 전작 작품집 <이중섭, 그 예술의 전모>로 이어졌다.
책에는 회화와 소묘, 은지화와 편지화, 삽화와 책 표지, 병상화까지 이중섭의 작품 500여 。 중 485.을 실었다. 전작 조사 작업에도 참여했던 최열은 지난 23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이번 책을 “최열 버전 전작집”으로 소개했다. 널리 알려진 작품 가운데 빠진 것도 있다. 그는 선과 면, 색, 구도, 재료와 분위기에서 드러나는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를 살폈다. “저는 감정가가 아닙니다. 뺐다고 가짜라는 뜻은 아니에요. 훌륭한 작품도 있지만, 아직 제가 자신 있게 서술할 능력이 안 돼서 뺀 작품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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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첫인상은 도판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 그 사이사이 이중섭의 생애가 함께 엮여 있다. 그가 거처를 옮기며 어떤 형편으로 살았는지, 그때마다 작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따라가는 구성이다. “처음에는 장르별로 엮으려고 했어요. 유화는 소재별로 나누고, 편지화는 편지화끼리 묶고요. 그런데 하다 보니 시기마다 집중한 장르가 있더라고요. 부산에서는 재료가 없어서 색판선화와 은지화가 나오고, 통영에서는 물자가 풍부해지니까 소 그림과 풍경화가 나오는 거예요. 몸과 정신의 상태, 물자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작품이 달라지는 거죠. 처지와 장르가 맞물려 있으니 분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중섭의 현전 작품 대부분은 서귀포 피란 시절인 1951년부터 사망한 1956년까지 약 5년에 집중된다. 부산과 통영, 진주와 서울, 대구를 떠돌며 작업한 시간이다. 최열은 그 짧은 기간에 거듭된 장르의 창안과 표현의 변화에 주목한다.
부산 시절 창작의 원동력은 가족과의 이별이었다. “가족이 일본으로 떠나고 혼자가 됐을 때, 외로움을 견디는 유일한 길이 작품이었던 거죠. 그런데 난민 처지에 재료가 없잖아요. 고작 두세 가지 물감으로 색을 겹쳐 칠하고 긁어내는 색판선화를 만들고, 버려진 담뱃갑 은박지를 가져다가 은지화를 그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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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열은 은지화 속 이중섭의 초상에서 ‘나는 화가다’라는 뚜렷한 자의식을 읽는다. 자기만의 예술 세계에 삶을 걸었던 근대 예술가의 태도다. “버려지는 쓰레기로 하나의 예술 매체를 창안해냈다는 것만으로도 기가 막힌 일이에요. 홈을 파고 다른 재료를 채워 넣는 상감은 공예 기법이잖아요. 그 원리를 순수미술에 적용해서 성공한 거예요.”
언뜻 단순한 선 그림처럼 보이지만, 뉴욕현대미술관(MoMA) 소장 ‘낙원의 가족’에서는 은은한 색채도 볼 수 있다. 그의 은지화 세 。은 1956년 한국 작가의 작품으로는 처음 MoMA의 영구 소장품이 됐다. “선을 보면 사람과 사람, 사람과 게나 동식물이 하나로 연결돼 있어요. 너하고 나하고 연결돼 있다는 거죠. 고독과 외로움을 견디는 조형 언어예요. 그 작은 화면에 인간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세계를 모아놓은 겁니다.”
통영은 이중섭만의 양식이 꽃핀 ‘황금시절’이었다. 공예가 유강열의 도움으로 나전칠기전습소 강사로 일하며 비교적 안정된 환경을 얻었고, 물감과 공업용 도료도 활용할 수 있었다. 그의 상징인 소 그림이 쏟아졌다. 최열은 이중섭의 호를 따 ‘대향양식’이라고 부른다. 섬세하고 정교한 선묘와 거칠고 분방한 색채 표현, 이른바 ‘섬세정교(纖細精巧)’와 ‘조야산만(粗野散漫)’이라는 상반된 특성을 하나로 조화시킨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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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는 모순되는 것을 조화롭게 통일시키는 힘이 있어요. 소 그림을 보면 한쪽을 과도하게 키워서 무너질 것 같은데, 놀랍게도 무너지지 않아요. 다리가 버텨준다든지, 앞으로 나아가려는 힘을 뒤에서 당겨준다든지 하는 거죠. 한쪽으로 쏠리고 뒤틀리면서도 힘과 방향성이 생겨요. 그걸 유려하고 힘이 넘치는 선이 다 잡아주는 거예요.”
이런 소 그림 가운데 최열이 최고로 꼽는 작품은 ‘진주 붉은 소’(1954)다. 붉은 화면에 황금빛 소가 긴 울음을 토해낸다. 눈여겨보면 곳곳에 푸른색이 박혀 있다. “색이 부딪치면서 반짝거리는데, 그게 눈물과 침, 땀처럼 보여요. 입가에서 아치형으로 퍼지는 붓질에선 번져나가는 소의 울음을 감각할 수 있죠.” 우리가 막연히 멋있다고 느끼는 소 그림의 바탕에는 탁월한 조형과 구성이 있다는 얘기다.
최열은 연구할수록 이중섭이 “20세기 한국 최고의 작가”라는 생각이 강해진다고 했다. “다른 근대 거장들도 저마다 성취를 이뤘지만, 자기 작업언어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이중섭은 매체를 바꾸고 장르를 넓혀가면서 죽을 때까지 변해요. 유화면 유화, 소묘면 소묘 하나하나가 최고 수준이고요. 창의성에서 ‘대체 불가’ 작가예요.”
독자에게는 자신의 설명보다 그림을 먼저 보라고 권했다. “그림을 하나씩 넘겨가면서 본인의 감각으로 받아들이세요. 더 좋아지고 궁금해지면 그때 글을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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