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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3일 라빈 타망 씨(30)는 낯선 번호로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주한 네팔 대사관입니다. 파상 타망 씨를 알고 계십니까?” 파상(37)은 그의 형이었다. 대사관은 ‘형이 다쳐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업주의 연락을 받았다’고 전했다. 형은 충남 홍성에 있는 돼지 농장에서 일했다. 현장에 있던 네팔인 동료는 당시 상황을 영상으로 남겼다. 구급대원이 돼지 농장에서 쓰러진 형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영상 속 형은 작업복을 입은 채였다.
형이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은 뒤늦게야 알았다. 사망진단서에 적힌 사망 일시는 7월11일 밤 9시35분. 가족들이 연락을 받은 건 사망 시。에서 이틀이나 지난 뒤였다. 파상 씨의 아내인 람피아리 지렐 씨(45)는 “뒤늦게 들은 소식이 병원 입원이었기에 처음에는 남편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지렐 씨는 이후 경찰 사건 보고를 통해 구체적 정황을 알게 됐다. 7월11일 작성된 경찰 보고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7월11일 오후 6시20분,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기숙사에 파상 씨가 나타나지 않았다. 동료들이 축사 주변에서 파상 씨를 찾아 나섰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 8시5분, 파상 씨가 축사 입구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발견됐다. 파상 씨와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인 작업팀장이 농장주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농장주가 119에 신고했다. 구급대원들이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파상 씨를 병원 응급실로 이송했다.
파상 씨의 사망진단서에 기록된 사망의 종류는 ‘기타 및 불상’이다. 사인을 알 수 없다는 의미다. 경찰 사건 보고에도 “알 수 없는 이유로 파상 타망 씨가 축사 입구에 심정지 상태로 누워 있는 것을 확인했다”라고 적혀 있다. 라빈 씨는 형의 사망 후 3개월이 지난 10월 현재까지 “정확한 사망 이유를 알지 못한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모르겠다. 대사관에 문의할 때마다 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답변만 들었다”라고 말했다.
파상 씨는 2022년 고용허가제(EPS)를 통해 한국에 왔다. 이전까지 네팔 카트만두에 있는 네팔 상수도공사에서 일했지만, 살림살이가 늘 빠듯했다. 파상 씨보다 먼저 한국에서 일한 건 동생 라빈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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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 되던 2016년, EPS로 전남광주에 위치한 한 조선소에 취직했다. 라빈 씨는 “용접과 사상(용접이 끝난 울퉁불퉁한 철판을 그라인더로 매끈하게 갈아내는 일) 일을 했는데, 일이 예상보다 너무 힘들었다. 사장에게 회사를 바꿀 수 있게 사업장 변경에 동의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당초 정해진 3년을 채우고 네팔로 돌아왔다”라고 말했다.
라빈 씨는 형의 한국행이 걱정됐다. “형에게 ‘한국 생활이 힘들고 녹록지 않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형은 ‘일단 가겠다. 만약 도저히 견딜 수 없다면 그때 미련 없이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형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거의 3년을 네팔에서 기다리다 겨우 출국할 수 있었다. 형이 얼마나 고생해서 준비했는지 아니까, 차마 가지 말라고 말릴 수도 없었다.” 라빈 씨는 이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파상 씨는 주검으로 네팔에 돌아왔다. 13살 아들은 아버지를 잃었다. 지렐 씨는 집 한쪽에 보관해둔 남편의 물건을 볼 때마다 그를 떠올린다. “가족을 많이 사랑하고 아끼던,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남편은 생전에 전화할 때마다 ‘곧 네팔에 돌아가겠다. 그러면 둘이 같이 살아야지’라고 말하곤 했다.” 그 미래가 산산이 부서졌다. 지렐 씨와 아들은 파상 씨가 매달 보내는 돈으로 월세, 학비 등을 내며 삶을 꾸려왔다. 당장 생계도 막막해졌다.
가족들은 파상 씨의 죽음이 산업재해라고 의심하고 있다. 지렐 씨는 “남편이 이전까지 몸이 아프다는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일했던 네팔인 동료도 ‘농장에서 한창 일하고 나오다 쓰러진 것이니 명백히 산업재해가 맞다’고 이야기했다”라고 말했다. 라빈 씨는 “폭염에 농장에서 일하다 쓰러졌다. 그런데 여전히 사망 이유조차 모른다”라고 말했다. 기상특보 현황에 따르면, 파상 씨가 사망한 7월11일 오전 11시, 충남 홍성 지역에는 폭염주의보가 발효됐다.
1년 전에도 폭염 속에서 일하던 네팔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2025년 7월24일, 우다야 슈레스타 씨(당시 50세)가 산속에서 제초 작업을 하던 중 쓰러졌다. 우다야 씨는 사망 사흘 전 포항시가 발주한 ‘숲 가꾸기 사업’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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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계약업체 소속이 아니라 현장을 옮겨 다니며 일하는 현장 팀 일용직이었다. 시작할 때만 해도 우다야 씨를 포함해 12명이었던 팀원이 이틀 만에 8명으로 줄었다. 그만큼 일이 고되었다.
폭염에도 그만두지 못한 이유
일을 그만두고 싶은 건 우다야 씨도 마찬가지였다. 아내 삼자나 슈레스타 씨(45)는 사망 이틀 전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남편이 ‘여기는 너무 더워서 일하기가 힘들다’고 하길래 ‘그렇게 더운데 왜 거기서 계속 고생을 하느냐. 그러다 몸 망가지니까 당장 나오라’고 말렸다. 그랬더니 남편이 ‘혼자 나가고 싶어도 길도 모르고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버티는 중이다. 곧 작업이 끝난다고 하니, 이 일을 마치면 다시는 이런 현장에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다야 씨는 2018년 12월 한국에 왔다. 그는 이전에도 말레이시아, 아프가니스탄 등을 오가며 이주노동을 했다. 삼자나 씨는 “형편이 넉넉하고 살 만했더라면 다른 나라로 일하러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네팔에서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결혼 후 고향에서 카트만두로 상경하며 ‘여기서 어떻게든 살아보자’고 다짐했는데 도무지 생계가 풀리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미등록 신분으로 한국에 입국한 우다야 씨는 7년 동안 일용직으로 돈을 벌었다.
한국은 우다야 씨가 생각한 마지막 해외 일자리였다. 한국을 끝으로 고국인 네팔에 정착하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우다야 씨는 2025년 7월24일 오전 10시40분께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작업이 이뤄진 즈음의 포항 기온은 33~34℃를 오갔다. 나흘 전부터 폭염특보가 발효됐고 우다야 씨는 사흘째 풀을 베고 있었다. 119 신고는 우다야 씨가 쓰러진 지 1시간이 지나 이뤄졌다. 험한 산악 지형 탓에 병원으로 이동하는 데 1시간이 더 걸렸다.
우다야 씨는 이송 중 체온이 42℃까지 올랐고, 오후 2시54분 열사병으로 사망했다. 지난 1월 근로복지공단은 우다야 씨의 사망을 온열질환으로 인한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삼자나 씨는 “(작업 현장에서) 제대로 안전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거기 갈 때는 이렇게 해야 위험하지 않다’면서 필요한 장비를 챙겨서 보냈다면 우리 남편이 죽지 않고 오늘 내 곁에 있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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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뜨거운 데서 일하면 죽을 수 있다는 걸 남편은 전혀 몰랐다”라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법과 관련 규칙은 폭염 작업 환경에서 사업주가 지켜야 할 예방조치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다야 씨가 일한 현장에서는 보호 조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우다야 씨는 사망 당시 털이 들어간 기모 바지를 입고 있었다. 풀베기 작업 특성상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외에도 안면보호구 등을 필수적으로 착용해야 했다. 이는 작업자의 체온을 빠르게 올리는 원인이 된다. 하지만 폭염에도 작업은 중단되지 않았다. 냉감 조끼 같은 온열질환 예방 물품은 지급되지 않았고, 그늘막이 있는 휴게 공간도 없었다.
우다야 씨가 네팔을 떠날 때 여섯 살이던 둘째 아들은 어느덧 열네 살이 됐다. 캐나다에서 유학 중이던 스물두 살 큰아들은 학비를 보내던 아버지의 사망 뒤 학업을 접었다. 삼자나 씨는 “큰아들은 말도 안 하고 계속 집에만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는 병원에서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지금은 친정 도움을 받고 있다. 아이들 공부를 시키려면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혼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보내는 경고
남편 생일 선물로 준비한 반팔 티셔츠는 끝내 주인을 찾지 못했다. 한국에서 넘어온 남편의 지갑에는 그가 좋아하던 네팔 식당 명함이 들어 있었다. 한참 지갑을 쓰다듬던 삼자나 씨는 “한국에서 일하는 네팔 사람들이 건강하게 일하다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삼자나 씨보다 1년 늦게 한국에서 남편을 잃은 파상 씨의 아내 지렐 씨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네팔 사람들에게는 남편과 같은 사고가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파상 씨의 동생 라빈 씨는 에베레스트산과 맞닿아 있는 네팔 솔루쿰부 지역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 학생 대부분은 EPS를 통한 한국행을 준비한다. 라빈 씨는 학생들에게 “한국에 가면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라고 말했다. “일할 때만큼은 안전 문제에 대해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우리 형처럼 사업장에서 목숨을 잃어도 유족들은 사과를 받기는커녕 그 이유조차 알지 못한다. 이게 현재 한국에서 일하는 네팔 노동자가 처한 현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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