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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이요? 너무 큰 도움이 되죠. 매출의 3분의 1 이상이 기본소득 카드로 결제돼요.”
10월 12일 강원 정선군 북평면 항골의 생선구이 전문. ‘숨바우식당’. 아침 햇살이 드는 계곡 초입 정갈하게 자리 잡은 식당에서 재료 손질 중이던 주인 김금실씨(58)는 농어촌 기본소득 얘기가 나오자 눈을 반짝였다. 결혼해 이곳 항골에 정착한 지 25년, 식당 창업은 김씨의 오랜 꿈이었다. 관광객은 많이 찾지만 변변한 식당도 없고, 아무 데나 버린 쓰레기로 어수선해진 마을을 바꾸고 싶었다.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4년 전 처음 식당을 준비할 때만 해도 모든 게 순조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김씨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창업 준비는 멈췄고, 병원 생활을 하느라 항골을 떠나 있어야 했다. 언니로부터 신장 이식을 받은 2025년에야 김씨는 다시 식당 창업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때마침 정선군에서 하는 기본소득형 창업지원 공모가 올라왔다. 공모에 합격해 받은 2000만원은 함께 일하는 세 사람의 인건비와 재료비, 공과금 등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기본소득은 든든한 매출 기반이 되기도 했다. 밥값을 누가 내느냐가 달라진 게 단적인 변화다. 이전에는 자녀들이 부모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일이 많았지만 이젠 어르신들이 기본소득으로 자녀에게 밥을 사주기 시작한 것이다. 김씨는 “기본소득이 나오니까 어르신들이 자녀분들과 자주 온다”고 말했다. 식당을 연 뒤 3개월 동안 기본소득으로 결제된 매출액만 1700만원 정도다. 김씨 개인적으로도 기본소득을 식자재 구매에 쓰는 등 식당 운영에 활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변 주민들이 “식당 덕분에 산골이 이렇게 변했다”고 할 때 김씨는 보람을 느꼈다. 기본소득 사업이 지속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당연하다”고 답했다. “너무 많은 도움이 되고요. 일단 기본소득이 있음으로써 지역이 활성화가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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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이 시행 9개월 차를 맞았다. 전국적으로 17개 군, 약 50만명의 주민을 대상으로 매달 15만원 안팎의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대규모 실험이다. 정부는 주민 소득을 보완하고 지역 내 소비를 활성화해 지역 소멸을 막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달라진 게 있을까. 올해 2월부터 참여한 1차 시범 10개 군은 인구가 늘고 카드 사용액도 증가했다. 그러나 통계 속 숫자만으로는 주민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기 어렵다. 주간경향은 1차 참여 군 중 인구 증가율 2위(1년 새 5.6%)이자 군이 직접 창업 지원에 나선 강원 정선군을 지난 10월 11~12일 찾았다.
늘어난 소비…지급일 맞춰 활력 도는 장터
10월 12일 오일장이 선 정선읍 아리랑시장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곤드레, 더덕, 고추 등 정선 특산품뿐 아니라 갓 짜낸 기름과 신선한 과일을 사려는 손님들로 자주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꿀더덕주스를 파는 카페 사장 전모씨(48)는 “아무래도 지역 주민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며 “(기본소득을) 정선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기본소득이 도입된 지난 2월 이후로 조금씩 매출이 늘었다고 말했다. 지난여름 야시장이 열렸을 때는 이날보다 더 손님이 많았다며 은근히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더덕 장사를 하는 장석화씨(88)도 “손님이 많아졌다”며 소비 진작 효과를 체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돈을 받으면 뭐라도 사가지고 가지 않겠나”라며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사용한다”고 말했다.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이모씨(68)는 “전체적으로 경기가 안 좋은데 기본소득이 생겨서 그나마 낫다”고 했다.
읍·면 등 거주지에 따라 쓸 수 있는 곳이 제한되는 。이 불편함을 초래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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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정선에서 읍 주민은 군 전체 가맹.을 이용할 수 있지만, 면 주민은 원칙적으로는 면 지역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 쌀상회를 운영하는 이기우씨(44)는 “정선분들은 90% 이상 기본소득으로 결제한다”면서도 “쓸 수 있는 구역이 나뉘어 있다 보니 원래 오던 손님들이 안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주유소, 편의。, 면 지역 하나로마트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본소득액이 최대 5만원으로 제한되는 。도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실제로 일부 주민들은 사용 한도를 몰라 결제에 불편을 겪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역 내 소상공인에게 소비를 분산시키려는 취지지만 생활 서비스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주민들의 소비 선택을 제약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루 전인 10월 11일 고한읍 구공탄시장은 아리랑시장과 달리 상대적으로 한산했다. 한때 탄광으로 번성했던 이곳에선 기본소득의 효과를 체감하는 정도가 상인마다 달랐다. 시장 초입 연탄구이 식당에서 한창 장사를 준비하고 있던 정우교씨(28)는 “기본소득이 생긴 뒤 매출 증대가 있었다”며 “하루에 네 테이블 정도의 손님이 여덟 테이블로 2배 정도 늘었다”고 말했다.
30년째 정육。을 하는 고복규씨(65)도 처음에는 비싼 고기를 사가는 손님이 늘어나는 것을 봤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자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도입 초기에는 주민들이 맛보려고 등심 같은 비싼 고기를 사갔다”면서도 “지금은 28일 돈이 나오기 전엔 소비가 거의 없다. 기존 생활비가 빠지고 그 자리에 (기본소득이) 들어가 앉았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이 기존 생활비를 대신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국세청 신용카드 통계에서는 식료품뿐 아니라 다른 업종의 소비 증가세가 눈에 띄기도 했다. 가전제품판매.과 옷가게는 지난 3~4월에는 오히려 전년보다 카드 사용액이 줄었지만 6~7월에는 각각 37.2%, 28.2%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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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용실의 카드 사용액 증가율도 같은 기간 12.3%에서 43.5%로 높아졌다. 고한읍에서 ‘마을호텔’을 운영하는 유영자씨(71)는 “식구가 많은 집은 한두 달 모아서 가전제품도 산다”며 달라진 소비 분위기를 설명했다.
“아이 학원비 내고 나도 운동하고”…달라진 쓰임
“주부가 한 달에 얼마씩 개인적으로 지출하기가 쉽지 않은데 기본소득이 생겨서 애들 학원비에 쓰고 조금 남는 돈으로 운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고한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황모씨(39)는 기본소득이 생긴 뒤로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기본소득이 지급되기 전에는 아이들 학원비를 내고 나면 자신을 위해 돈을 쓰기 어려웠지만 이젠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는 단적으로 “학원비 부담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국세청 신용카드 통계에서도 교육과 운동 관련 지출이 늘어난 모습이 관찰됐다. 정선군 교습학원의 올해 2~7월 카드 사용액은 전년 동기보다 27.7%, 스포츠 교육기관의 사용액은 29.5% 증가했다.
평소 지출을 망설였던 간식이나 선물 등에 기본소득을 사용하는 주민도 늘었다. 떡케이크 가게를 운영하는 이모씨(34)는 “매출 80% 이상이 기본소득으로 다 전환이 됐다”고 말했다. 기본소득 지급일에 맞춘 소위 ‘결제 예약’도 생겼다. 이씨는 “매달 초에 예약하면서 ‘기본소득이 들어오면 결제할게요’라고 하는 손님도 있다”고 전했다.
의료비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고한읍 구공탄 시장 내 마트 주인인 최숙영씨(49)는 “기본소득이 생긴 뒤 오전에 병원을 가면 자리가 없다”며 “아픈 데도 보고 수액도 맞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르신들은 자식들이 있어도 연락이 안 돼서 혼자 어렵게 사는 분이 많다”며 “그런 분들한테는 병원 가는 게 참 힘든 일인데 부담을 덜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마을 어귀 쉼터에 모여 앉은 어르신들에게 기본소득을 어디에 쓰는지 묻자 다양한 답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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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도 사먹고, 고기도 사먹고, 세제도 사고, 쌀도 사고.” 성봉춘씨(80)는 “기본소득으로 병원도 가고 늘 찾아 먹는 약도 탄다”며 “계속 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사람이 하나라도 더 오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산골 바꾼 새 가게…창업 도전 한계도
지장천이 유유히 흐르는 정선군 남면. 인구가 많지 않은 이곳에 주민들을 위한 7월 실내운동 시설이 생겼다. “정선에 실내운동할 수 있는 데가 마땅히 없잖아요? 여기서도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해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어요.” 김병주씨(29)는 고향인 정선에 트램펄린을 이용한 헬스장 ‘스카이.핑’을 연 이유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타지에 살 때 계속 이 운동을 했는데 고향에 와보니 이런 운동을 할 곳이 없었다”며 “여기서 새로운 운동을 (주민들과) 같이 하고 싶었는데 마침 창업 지원을 한다고 해서 신청해 열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손님은 8~9명 정도뿐”이라며 “기본소득으로 결제를 많이 하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오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같은 남면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송희씨(58)도 매출이 증가한 덕분에 신메뉴 개발을 시도할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그는 “기본소득이 생긴 뒤로 조금 여유가 생겨서 신메뉴를 개발해볼까 하고 있다”며 “관광지니까 콘셉트에 맞춘 쿠키나 음료를 만들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금실씨가 창업한 숨바우식당도 마을에 변화를 만들고 있었다. 숨바우식당이 있는 북평5리 이장 A씨는 “항골계곡에 관광객이 많이 오는 게 좋지만 그동안은 머물지 않고 그냥 돌아보고 가는 곳이었다”며 “식당이 생기고는 여기서 소비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일자리도 생겼다. 김씨의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은 원래 전업주부였지만 식당이 문을 열면서 일을 시작했다. 숨바우식당에서는 현재 3명의 직원이 더 일하고 있다.
주소는 옮겼는데…청년 정착으로 이어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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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이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은 건 사실이지만, 새로운 주민 유입 등 지역 소멸 흐름을 늦추는 효과까지 이어졌는지는 의문이다. 정육. 주인 고씨는 “인구는 늘었다 카는데”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강원랜드 직원 등 가족은 밖에 두고 여기 혼자 와서 일하던 사람들이 주소를 다 옮긴 것”이라며 “주민등록상 인구는 늘었는데 실제 인구는 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마트 주인 최씨도 강원랜드 기숙사 등에 머물던 직원들이 기본소득을 계기로 주민등록을 옮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새로운 주민의 유입을 체감하기는 어려웠다. 10월 11일 만난 부동산 중개인 B씨(72)는 올해 자신이 중개한 주택 매매가 2건뿐이라고 했다. “매물을 찾기보다는 친척들 집에 얹혀살려고들 한다”는 것이다.
왜 새로 이사 오는 사람은 많지 않을까. 주민들은 일자리와 집에서 이유를 찾았다. 특히 청년층을 불러오려면 일자리·교육·문화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한 주민 성봉춘씨도 “여기는 청년들이 와봐야 강원랜드에 다니지 않으면 일할 곳이 없다”고 손을 저었다.
해질 무렵 강원랜드 사택 건물 뒤에서 만난 직원들 역시 정선에 살지 않는다고 했다. 태백에서 정선으로 출퇴근하는 강원랜드 직원 C씨는 기본소득에 대해 “배가 아프다”면서도 “(정선에서 살기에는) 개인적으로는 교육이나 병원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게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 입장에서도 유통이나 물류비도 많이 들고,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일자리 문제에 대한 의견을 보탰다.
새로 문을 연 식당 덕분에 항골 풍경이 바뀌었다는 김금실씨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김씨는 가게를 열 때 조카들에게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기대와 달랐다. “이모, 여기는 다니러 오는 곳이고 사는 곳은 아니야.” 김씨는 말했다.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살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생기지 않으면 진짜 소멸하지 않을까요.” 이 풍경이 사라지기 전에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정선군의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은 2027년 12월 종료된다.
던 정우교씨(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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