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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권에 꽂힌 헌법학도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했다. 이어서 11월 21일 국민투표를 통해 '유신헌법'이 제정되었다. 이런 무거운 사회 분위기 속에 군대와 결핵병원을 벗어난 내가 1973년 3월 대학원에 진학한 것은 적극적인 장래 모색보다는 '현상의 유보' 의미가 컸다. 문학의 길을 단념한 나는 차선으로 신문기자를 탐색하기 위해 언론사에 진출한 선배를 찾았다. 그는 이런 무도한 세월에 언론사는 떠날 곳이지 들어올 곳이 못 된다며 차라리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해두라고 충고했다. 이듬해 터진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 동아-조선 등 언론사의 대량해고 사태는 그때 이미 예견되고 있었다. 나는 무엇보다 치열한 현장을 일상적으로 맞서야 하는 저널리스트의 삶에 자신이 서지 않았다. 그리하여 대학원에 진학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법학 분야 중 나는 정치적 역사성이 강하고 근대국가의 근본규범을 탐구하는 헌법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유신체제'의 짓누름에 대학 주변인의 일상도 매우 위축되었다. 시대의 격문을 쓸 역량도, 거리에 나설 용기도 없는 나는 도서관에서나마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현실의 각박함과 자신의 무력함 속에 관념으로나마 기댈 구원을 갈구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화두가 헌법적 권리로서의 국민의 저항권이었다.
헌법은 단순한 조문의 집적물이 아닌 역사적 문서가 아닌가? 역사를 모르고서야 어찌 헌법을 논할 수 있을까? 명백한 불의를 자행하는 공권력에 대해 국민은 저항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 근대 헌법은 불의에 저항하여 성공한 시민혁명의 산물이 아니었던가? 혁명을 통해 쟁취한 국민주권의 시대에, 주권자의 자격에서 국민은 국가에 대해 주장하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국가가 국민의 정당한 요구를 거부하고 오히려 탄압하는 경우에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은 무엇인가. 저항권 말고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사학자 약전(藥田) 김성식 교수
실제로 세상에 내놓을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민주헌법의 원리를 공부하는 자세만은 가다듬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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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당대의 사학자로서 한국의 현실에 대해 거침없는 필봉을 휘두르던 약전(藥田) 김성식 선생님(1908-1986)을 찾았다. 자연권과 인정(人定)권을 구분하여, 전쟁을 포함한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가 침해할 수 없는 국민의 자연권이 존재함을 역설하고, "인권의 안보가 국가의 안보다" "민주제만이 안정의 길이다" 라며 "인권운동으로서의 학생운동"을 강조하고 "고등종교의 현실 참여는 당연한 역사적 책무다"라고 주창하는 선생님의 시론에 매료되어 있었다.
선생님은 기성 기독교단이 냉담하게 대하는 '해방신학' '민중신학'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자세를 취했다. "해방신학이란 남미의 가난한 자, 눌린 자, 착취당하고 있는 모든 불행한 자 편에 교회가 서야 되고 또 공해로 어지러워져 가는 정치 사회 문제에 교회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루터는 순수한 양심적 신념에서 교회를 혁신하고자 했는데, 해방신학은 사회문제에 중。을 두고 있다." "한국 개신교도 1백년 동안 크게 성장했고 교회를 중심으로 일로 상승하였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절대화되고 우상화되고 따라서 신자들의 열정이 교회를 크게 화려하게 짓고 장식하는 방향으로 자기들 신앙의 수로를 발견했다. 교회는 가난한 자, 눌린 자, 착취당하는 자 편에 서지 못하고, 권력체에 기대고 금력체에 얽히어 가고 말았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해방신학이 민중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일기 시작했다. 개인의 구원보다는 세상의 구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치적, 경제적 기타 인간과 관계있는 이 사회의 구원인 것이다. 개인만이 아니고 사회의 구원이 교회의 사명이라는 생각이 하나의 계시와 같이 종교 지도자의 머리를 깨우쳤다. 지금은 개인주의 시대가 아니고 사회주의 시대다. 나만 보는 시대가 아니고 나의 주위에 있는 사회를 보아야 하게 되었다. 따라서 교리가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과 같이 그 교회의 실천 방법도 달라져야 했다."
('포프 신부와 종교재판', 《김성식 정치평론: 쓴소리 곧은 소리》, 동아일보사, 1986, 402-4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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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은사에게서 개인교습을 받다
첫 만남 이래로 나는 선생님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다. 오로지 선생님의 첫 제자였던 내 아버지의 후광 때문이었다. 나의 돌잔치에 친히 참석하셨다는 말씀과 함께 감격에 겨워 두 손을 내민 노인은 마치 잃었던 손자를 되찾은 듯한 자애로운 눈길을 주셨다. 그분의 정신적 힘은 투철한 민족관과 신앙에 기초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해직 교수의 상태에서 마르틴 루터의 전기를 썼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당시 신을 핑계로 내세운 교단의 압제에 대한 저항권의 발동이었고, 루터 전기를 저술한 것도 불의의 정권에 대한 저항권의 발로였다고 화갑기념문의 자서에서 술회하셨다.
저항권은 단순한 법리를 넘어선 역사, 종교 철학의 산물이다. 선생님은 친절하게도 단어 하나 하나의 어원과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주셨다. 이렇듯 저항권의 사상적 뿌리, 역사적 연원에 대해서는 선생님의 인도로 안목이 열릴 만한 문헌을 접했고 파생된 낱지식도 거둘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를 '법적' 권리로 규범화하는 작업은 막막했다. 당시에 저항권을 정면으로 다룬 헌법 교과서는 전혀 없었고, 유신헌법을 현실규범으로 받아들이는 '표준적'인 저술들에는 저항권은 '실정적 권리'가 될 수 없다는 식의 스쳐가는 언급이 있었을 뿐이었다.
1974년 겨울의 일로 기억한다. 고려대학교의 심재우 교수(1933-2019)께서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오셨다. 그분의 학위 논문이 저항권(Widerstandsrecht)을 정면으로 다루었다고 들었다. 무턱대고 고려대 연구실로 찾아갔다. 젊은 교수는 낯선 학생의 방문을 따뜻이 맞아주면서도 본능적인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 시절에 '저항권'이라는 단어는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있는 어휘가 아니었다. 논문을 빌리지 못한 채 돌아와 사정을 약전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은 친히 소개장을 써 주셨다. 약전 선생님은 고려대학교를 정년 퇴임하신 후에 경희대학교의 특별명예교수로 재직하고 계셨다. 그 대학의 설립자인 조영식 총장은 평양 숭실학교 교사 시절에 가르침을 받은 학생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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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총장이 약전 선생을 극진하게 모신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몇 달 후 약전선생님의 소개장을 들고 다시 찾아온 나를 심 교수께서는 활짝 반겨주셨다. 진작 그랬더라면 일이 쉬웠을 텐데 하며 멋쩍은 웃음을 흘리셨다. 고려대학교 세계에서 약전선생님의 위용은 엄청났다. 민족주의자, 민주 지식인의 요람으로서의 고려대학교의 학풍과 정신이 오롯이 전해지고 있는 듯했다. 심 선생님도 약전 선생님의 면모를 많이 닮았다. 그날 이후로 아주 드문드문 심 선생님을 뵐 때마다 약전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이 되살아나곤 했다. 심 교수께서 조심스레 내 주신 논문을 며칠 밤새워 손으로 베꼈다. 복사기가 없던 시절이었다.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영문 타이피스트에게 부탁하여 사본도 만들었다.
당시 우리 헌법학계에는 일본의 천황주권설을 뒷받침한 독일 국가학(Staatslehre)의 전통을 고스란히 수용하고 있었다. '철혈수상 비스마르크'의 신화도 펄펄 살아있었고. 민주헌법의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한 유신헌법도 불가피한 시대적 규범으로 받아들이는 체념의 분위기가 팽배했다. 국회를 해산한 대통령의 행위도 고도의 정치성을 띠는 '통치행위'(Regierungsakt)이므로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했다.
선생님은 1960년대에 이미 영국을 극도로 찬양하는 반면, 독일은 극도로 비판했다. 한마디로 인위적인 '우상화'로 .철된 패도(覇道)국가라고 평한 것이다. 영국의 역사는 성공한 역사인 반면 독일의 역사는 실패한 역사로 규정했다. 독일인의 역사관과 정치사상은 시민혁명을 이루지 못한 정치 후진국 콤플렉스의 발로라는 극언까지 하셨다. 선생님은 내게 영국사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셨고 기회 닿으면 읽어보라며 독서 리스트를 주셨다. 나는 그중 맨 위에 적힌 책을 무려 49년 후, 원서가 출간된 지 82년 후에 해제를 붙여 번역해 냈다.(Ernest Barker, The Britain and the British People, 1942; 안경환 옮김, 《천년의 역사를 품은 섬나라, 영국》, 한울아카데미, 2024)
안경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당시에 저항권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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