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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10-15 07:15 조회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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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산행은 단순히 체력만 좋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산을 대하는 올곧은 태도와 이념, 탄탄한 지식과 경험을 두루 갖춰야만 안전히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넷플릭스 인기 예능 <피지컬100>에서 피지컬이 뛰어난 이를 탐구했듯, 월간<山>은 '산지컬'이 뛰어난 이들을 만나본다. _ 편집자 '내 마음 병들어 내 육신 괴롭히네 / 이 몸 죽어 예쁜 새 되어 임 가시는 길 따라가리'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신옥자씨는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냈다. 허전한 마음을 어쩔 줄 모르다가 이내 2년 전부터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던 산을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아침 일찍 북한산 숨은벽 능선을 찾으니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험한 리지 등반에 헐떡거리며 숨을 토해낼 때마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감정이 조금씩 섞여 나오는 듯했다. 정상까지 이렇게 가면 모든 감정을 다 쏟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내 사람 한 명 없는 백운대. 없어졌을 줄만 알았던 감정은 여전히 한 움큼 넘게 남아 있었다. 듣는 귀도 없는 김에 실컷 울었다. 그리고 위와 같은 글귀가 갑자기 떠올랐다. "내가 가방 끈이 긴 것도 아니고, 시도 읽고 쓴 적이 없는데 저 말이 탁 튀어나오더라고. 50년이 다 돼도 잊히지 않는 순간이야." 그렇게 산은 특별한 위로가 됐다. 그래서 곧 산이 인생이 됐다. 문자 그대로 매일매일 산에 다니는 일상을 살게 됐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갔다. 하루에 8~9시간씩 산을 다녔다. 오로지 산이다. 그러다보니 나이가 80, 90이 됐다. 그래도 산이다. 여전히 매일 간다. 여전히 바위도 탄다. 그러다보니 설악산 공룡능선 같은 난코스도 주파해 지나가는 뭇 산꾼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했다. '도봉산 왕언니' 신옥자씨다. 90세 넘어도 매년 설악 공룡 찾아 "설악산 공룡능선에서 90세 넘는 할머니를 봤어요." 이야기는 월간山 SNS에 들어온 한 제보에서 시작됐다. 곧 수소문하자 정확히는 모르지만, 만약 90세 넘는 할머니 중에 공룡능선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도봉산 왕언니'일 거란 제보가 들어왔다.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도봉산을 찾았다. 산 입구에서 만난 신씨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공룡이야 매년 가지." 한창때는 겨울에 눈이 많이 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바로 공룡으로 향했다고 했다. 민간에서 소청산장을 운영할 때 이야기다. 가슴까지 쌓인 눈을 뚫고 오르내리는 게 그렇게 재밌고 아름다울 수 없었다고 했다 온라인 . 더불어 오는 10월에도 또 공룡능선을 갈 계획이라며 자세한 일정을 신나게 털어놨다. 오세암에서 잘 것, 또 한비야 박사와 같이 간다는 것 등이다. "어떻게 하면 93세에도 그렇게 힘든 산행을 할 수 있나요?" 신씨는 곧바로 그 비결에 대해 밝혔다. 하지만 이 노하우는 한 단어, 한 문장으로 갈음되지 않았다. 그가 길고 긴 호흡으로, 다시 말해 인생으로 답했기 때문이다. 소녀가장으로 26년 일해 신씨는 1934년 일본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리고 세 살 때 한국으로 들어와 경남 창녕군 도천면에 자리를 잡았다. 할아버지가 귀국한 날 호적을 올린 탓에 주민등록증에는 1937년생이라 기록됐다. "10리 길을 걸어서 초등학교를 다녔어. 형편이 안 돼서 중고등학교는 못 갔고. 선천적으로 체력이 좋았냐고? 퉁퉁한 편이라 그리 내세울 건 없었지." 신씨는 자신의 인생을 읊으며 행간을 많이 뒀다. 그에게 있어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세월들이었다. 추억은 없고, 고생한 기억만 있다. 다만 그 시절에 고생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곤 했다. 전쟁을 넘었고, 전후의 가난을 넘었다. 14세 때부터 여공으로 일하며 실질적 가장 노릇을 했다. 1960년대에는 당시 여공 중에서 최고 수준의 재봉 기술을 갖고 있었다고 자랑했다. 너무 힘들어서 지금은 사장된 기술이지만, 양말을 기가 막히게 만들었다고 했다. "등산복도 동대문 시장에서 면 고리땡(코듀로이)을 떼다가 만들어서 입었어. 그걸 입고 설악산에 갔는데 글쎄 비를 쫄딱 맞은 거야. 그때 오고가는 데 버스로 5~6시간 걸렸는데 집에 도착해서도 옷이 하나도 안 마르더라. 지금은 여름에 옷 입고 물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금세 마르잖아. 세월이 참 좋아졌지. 등산스틱도 주물로 부어서 만든 접히지도 않는 걸 들고 다녔어." 그렇게 양말을 26년 동안 만들었다. 그리고 40대에 들어서 직장에서 퇴직했다. 퇴직사유는 돈이 많아져서도, 일하기 싫어서도 아니었다. 도무지 일을 할 수 없었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무너졌다. 그래서 1년 반 정도 요양의 세월을 보낸 뒤 몸이 회복되자 산을 다니기 시작했다. 기운이 하나도 없을 때라 조금 가다 쉬고, 가다 쉬고를 반복하며 산을 다녔다. 몸무게가 8~9kg쯤 오르니까 힘도 생겨서 어려운 산에도 도전장을 내밀 수 있게 됐다. "재봉 일이 그 정도로 힘든 거였군요." 야마토릴게임 "일도 일인데, 사실 굶어서 그랬어. 그래서 힘이 없었지." 80, 90세 생일파티도 인수봉 정상에서 체력이 붙은 후로는 산을 매일매일 다녔다. 남편을 떠나보낸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식은 두 남매를 뒀는데 21세에 낳은 딸은 이미 결혼한 상태였고, 33세에 뒤늦게 낳은 아들만 키우면 됐다. 아들을 학교 보내고 한참 산을 오르내린 뒤 돌아와 소일거리로 양말 마무리 작업 정도를 해서 생계를 이었다.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았지만, 그래도 일하면서 쌓아둔 관계들이 많이 도와줘서 이런 생활이 가능했다고 한다. "북한산을 신나게 다녔지. 정릉 칼바위에서 백운대로 가서 도선사로 내려오고 그랬어. 그때 25번 버스 종。이 들머리였거든. 산에 그렇게 다니다보니 차차 알아서 인연이 붙었어. 그래서 그 사람들 따라서 지리산도 갔고, 설악산도 가봤지." 암벽도 했다. 산에 다니다 보니 옆 암벽에서 등반하는 이들의 모습에 호기심이 생겼다. 전문 암벽화도 없던 시절이라 두꺼운 비브람 등산화를 신고, 로프나 다른 안전장비 없이 리지 등반을 했다. 그것도 혼자서. 북한산의 염초봉, 만경대, 숨은벽 등 유명 리지 등반 코스를 그렇게 다녔다. 물론 지금은 절대 할 수 없는, 위험한 행위지만 그때는 위험한 줄도 몰랐다. "바위에 붙으면 정신이 번쩍 들어. '겁이 난다', '안 난다' 같은 생각은 안 들고 그냥 재밌다는 생각만 차오르지. 새벽 6시에 그렇게 혼자서 리지 하고 다니니까 본격적으로 암벽을 배워서 인수봉도 올라보고 싶더라고. 그래서 일행들하고 같이 배워서 또 등반하고 다녔어." 해질 무렵 등반을 시작해 인수봉 정상에서 서울 야경을 바라보다가 밤 10시쯤 내려오는 게 이맘때 일상이었다. 랜턴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은 시대였으나, 달이 밝으면 환해서 충분히 등반할 만하다고 했다. 이 정도 경력이 있었던 탓에 80, 90세 생일파티도 인수봉 정상에서 했다. 고독의 길로 올랐다. 지금도 암릉산행은 즐겨 한다. 도봉산 다락능선 정도는 손쉽게 제압한다. 80세에도 히말라야 트레킹 22일 코스 소화 산에 다니면서 에피소드도 많았다. 한라산에선 시간에 쫓겨 백록담을 간신히 올랐다가 내려간 적이 있었다. 산장에 도착하자 주인은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기차소리를 내며 호흡하는 여성'을 얘기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 컵라면을 먹어봤는데 그때 먹은 게 지금도 인생에서 가장 맛있었던 라면이라고 했다 릴게임다운로드 . 침낭은 지리산 연하천에서 처음 '발견'했다. 너무 추운 겨울, 모포만 덮고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홀로 온 어떤 남성이 침낭에 누워 있는 걸 보고 도무지 궁금증을 참지 못했단다. 그래서 그가 잠시 화장실을 가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그 안에 쏙 들어가 보고 너무나 따뜻하고 좋다는 걸 확인한 후 바로 자리로 돌아와 시치미를 뚝 뗐다. "14세 때부터 재봉 일만 했잖아. 밖에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해본 적이 없고, 살림은 친정 엄마가 했었어. 그래서 순진하고, 상식도 많지 않고, 사회라곤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였지." 좌충우돌 천방지축. 그런 엉뚱한 사건사고들로 .철된 산행들이 쌓여 갔다. 그러다 1987년 10월에 삼양동 집을 팔고 현재 머무는 도봉산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됐다. 그러면서 '도봉산 왕언니'의 면모를 구축하게 됐다. 도봉산을 매일매일 오르내렸다. 그러다 대학 교수 한 명과 친해지게 되면서 히말라야 트레킹도 5번이나 가게 됐다. ABC, EBC, 안나푸르나 라운드 등이다. 일본 북알프스도 두 번이나 갔다. 마지막 해외 원정은 80세에 22일, 마나슬루 베이스캠프를 다녀오는 일정이었다. "이젠 안 가. 많이 갔다 오기도 했고, 녹내장이 심한 편이라 고산지대 가면 안압이 올라가거든. 애초에 비행기 타기도 좀 어려울 것 같고." 새벽 2시 30분에 산행하는 두 가지 이유 51년, 현재 진행 중인 산행 역사는 조기에 종결될 위기가 있었다. 6년 전 대장암에 걸렸다. 그것도 1년 새 두 번이나. 18번의 항암치료를 견뎌야 했다. 의사가 "나이를 고려해서 항암을 해야 하는데 젊은 사람들이 받듯 해야 효과가 있다"고 했단다. 암세포마저도 오랜 산행 탓에 너무 건강해서 탈이라는 투였다. "한 번 항암치료를 받고 나면 반죽음이 돼서 나왔었어. 너무 아프고 힘들었지. 그래서 입맛이 하나도 없는 거야." 찾아낸 답은, 놀랄 것도 없이 단연 산이었다. 운동이라도 해야 밥을 한 술 떠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병상에 가만히 누워 배가 고파지길 기다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만약 그 길을 택했다면 죽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람은 움직여야 살고, 멈춰 있으면 죽는다는 지론이다. "그래서 도봉산을 기어서 갔지." 처음에는 '기어 다녔다'는 게 단지 몸이 아픈 탓에 느리게 걸었다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문자 그대로 '두 손과 두 발로 기어서' 산행을 했다고 한다. 손오공릴게임 일어선 채로는 도저히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서 그랬다고 한다. 그렇게라도 움직이고, 그렇게라도 먹으니 지금은 깨끗하게 나은 상태라고 한다. "그래도 후유증은 있어서 힘든 산행은 자제하고 있지. 예전엔 일상적인 산행도 8~9시간씩 했지만 이젠 하루에 3시간 정도만 오르내려. 매일매일 말이지." "몇 시쯤 오르시나요?" "겨울에는 밥 먹고 오전 8시. 그 외 계절에는 새벽 2시 30분에 산행을 시작해." "새벽 2시에요? 그렇게나 일찍이요? 내려와도 해가 안 뜨잖아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야간산행이 주는 마음의 평화다. 혼자 산에서 수행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걸으면 좋은 생각도, 나쁜 생각도 모두 정리된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등산로에서 얽히고설키며 걸으면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외로움이나 무서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달빛과 별빛이 랜턴이다. 또 하나는 좀 무거운 얘기다. 직업병 탓이다. 잠을 오래 잘 수 없다. "옛날에 재봉 일을 할 때 일본 수출이 터진 적이 있어. 정해진 납품일을 못 지키면 세금이 왕창 붙는다고 밤에 잠도 안 재우고 일을 시켰지. 일주일 내내 일한 적도 있어. 그렇게 마감하고 나면 눈을 떠도 뭐가 보이지도 않았지. 그때부터였어. 신경이 뒤집어졌지. 22세 때부터 관리자 노릇을 했는데 내가 자면 밑에 애들도 자니까 졸다가도 팍 깨서 애들 깨워서 일시키고 그랬단 말이야. 그게 습관이 됐어." 정신적, 심리적인 압박에 짓눌렸던 세월이다. 이 탓에 지금도 두 시간 이상을 연달아서 못 자게 됐다. 자다 깨고, 또 자다 깨고 하다 멍하니 누워서 눈 뜬 채 천장을 바라보는 것. 그에게는 이게 지난 70년간의 수면이었다. 그래서 어차피 못 잘 거 아예 산이나 가자는 생각에 새벽 2시 30분에 산행을 시작하게 됐다. 건강한 정신이 건강한 신체를 만든다 사실 신씨는 그간 방송과 언론에 여러 번 출연한 적이 있다. 대부분 건강 프로그램이었다. 거기서 신씨는 저속노화하려고 부지런히 꾸역꾸역 새벽 산행에 나서는 사람, 오래 살려고 적게 먹는 사람처럼 포장됐다. 그러나 그가 털어놓은 실상은 깊은 잠에 들지 못해 새벽 산행을 나간 것이었다. 또 소식하는 것도 일부러 하는 게 아니다. 그는 "그냥 늙으면 자연히 적게 먹어. 소식해서 오래 사는 게 아니라 오래 살면 소식하는 거야"라고 시원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정말 비결은 뭘까? 그가 '바로 이것'이라고 집어주는 건 없지만, 대화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었다. 뽀빠이릴게임 "암에 걸렸을 때 '암에 좋다, 나쁘다' 이런 거 안 따지고 그냥 먹었어. 같은 병실 쓰던 사람이 있었는데 환자나 보호자나 암에 좋다는 것만 골라 먹고 나쁘다는 건 안 먹으려고 신경을 엄청 쓰더라고. 나는 그냥 신경 안 쓰고 마구 먹었어. 지금도 영양제나 약은 챙겨 먹는 게 없지. 아! 복용하는 약 하나 있네. 산이 약이지." 신경을 쓰지 않으니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다. 어쩌면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것만큼, 건강한 정신이 신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신씨는 정신적으로 완전히 해방돼 있다. '어떻게든 된다'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이다. "죽기 전에 지리산 종주를 하고 싶어. 그런데 도대체 대피소 예약은 어떻게 하는 거야? 나처럼 나이든 사람들은 복잡해서 도무지 할 수 없어. 물어봐도 모르겠고. 그래서 그냥 무작정 걷다가 대피소가 나오면 처마 밑에 쪼그려 앉아서 자다가 마저 걸을 생각이야. 그러면 안 된다고? 어쩌지. 어떻게든 되겠지 뭐. 하하하. 누구는 정 안 되면 피시방에 가서 애들한테 물어 보라고 하던데." "산은 언제까지 다닐 생각이세요?" "스틱만 있으면 100살이라도 가지. 천천히 가면 아무 문제없어." 하지만 그는 이내 "나이가 들수록 힘이 달리긴 해"라고 덧붙인다. 80대 때만 해도 여름 새벽 산에 사람이 없으면 찬물에 목욕하고 내려오고 그랬지만 지금은 힘이 안 된단다. 산행 거리도 줄이고 있다. 정상까지 안 갈 때가 많다. "그래도 오늘 산행하시는 걸 보면 충분히 매일 정상까지 가시겠는데요." "억지로라도 하면 하지. 그런데 그렇게 가면 산을 못 다니는 사람이 되는 거야. 몸이 시키는 대로 해야 돼. 몸이 안 가지는 때가 왔을 때, 안 가는 게 제일 중요해." 사람들은 산을 오르는 법만 궁금해 한다. 그러나 '내려가는 법'을 알아야 한다. 신씨는 이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예전만큼 오르지 못한다고 해도, 실망할 것 없이 그만큼 매일매일 산행을 쌓아두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인생에서 산을 놔주는 법이다. "。。 오를 수 있는 고지가 계단식으로 낮아져. 그래도 산을 너무 붙잡고 오르려고 하면 안 돼. 몸이 고장 나거든." 그렇게 쌓은 51년의 산행들이 현재의 신씨를 만들었다. 도봉산 암릉에 붙는 그를 본다. 늘 일정한 보폭에 상체의 흔들림은 거의 없고, 발은 절대 터벅터벅 내딛지 않고 사뿐사뿐 놓는다. 또 높은 턱이 있으면 억지로 질러 넘지 않고 부드럽게 돌아서 간다. 마치 스멀스멀 흐르는 거대한 강처럼. 그리고 그 강의 깊이는 도무지 헤아릴 길이 없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 8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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