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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글씨 교정 학원. 오후 2시가 되자 하교한 학생들이 하나둘 책상에 앉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학습지에 적힌 예문을 따라 쓰는 것. 학원에 다닌 지 5개월째인 이 모(11) 양은 타이머를 맞춘 뒤 윤동주 시인의 시를 또박또박 써 내려갔다. 10평 남짓한 교실에서 “엄지와 검지에 더 힘을 줘야 한다” “한 단어는 끊지 않고 한숨에 써야 한다” 등 원장 김영 씨의 지도가 이어졌다. 김 원장은 “요즘 아이들은 손필기에 익숙하지 않아 연필을 잡는 법부터 가르쳐야 한다”며 “글자 크기가 제각각이거나 띄어쓰기를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타이핑과 터치에 익숙한 아이들이 손으로 글씨를 쓰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글씨 교정 학원이 북적이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서·논술형 확대 기조가 맞물리면서 손글씨의 중요성이 다시 주목받는 모습이다.
5일 교육계에 따르면 일선 학원가에서는 글씨 교정 수요가 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경제신문이 2일 방문한 한 학원은 지난해만 하더라도 일주일에 한두 건이던 수강 문의가 올해 들어 하루 한두 건꼴로 늘었다. 수강생의 70% 이상은 초등학생이다. 김 원장은 “‘국영수’가 우선이다 보니 방학 때 수요가 몰리는 편이었는데 요즘에는 평일 수업도 꽉 찬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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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평생학습센터가 초등학생부터 중학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바른글씨 글씨교정’ 프로그램은 이달 수강 신청자가 정원을 초과해 대기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학생들이 학교 수업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쓰기를 익혔지만 이제는 손글씨가 별도로 습득해야 하는 일종의 ‘기술’이 된 셈이다. 학원에서는 단순히 글씨를 깔끔하게 쓰는 데 그치지 않고 빠르고 편하게 쓰는 법까지 가르친다. 10년째 강남구에서 글씨 교정 학원을 운영하는 강종석(57) 씨는 “의대 준비반에 다니는 초등학생도 많이 찾아온다”며 “아이들이 생각하고 배우는 양이 많아진 반면 쓰기 능력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글씨 학원 유행의 배경에는 디지털 기기 사용의 증가가 자리하고 있다. 성평등가족부가 발표한 ‘2026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0대 청소년의 주 평균 인터넷 이용 시간은 27.3시간으로 전년보다 7.3시간 증가했다. 최근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온라인 학습이 일상화되면서 연필을 손에 쥐는 경험은 더욱 줄고 있다. 지난해부터 초등학교의 정보 교육 시수는 기존 17시간에서 34시간 이상으로 확대되는 등 손글씨보다 손가락 클릭이 학생들의 주된 학습 도구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학교 현장에서도 학생들의 필기 수준이 예전보다 떨어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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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8년째 근무 중인 교사 박 모(35) 씨는 “시험을 치르면 심한 경우 답안을 ‘해독’해야 할 정도”라며 “글씨를 알아보기 어려워 수행평가를 컴퓨터로 치르고 싶어 하는 교사들도 많다”고 말했다. 경남의 한 초등학교 교사 이 모(41) 씨는 “고학년인데도 ‘ㄹ’을 아래에서 위로 쓰는 등 기본적인 필순을 모르는 학생들이 있다”며 “특히 영어 유치원을 다닌 아이들은 한글보다 영어 쓰기에 더 익숙하다”고 말했다.
서·논술형 평가 확대 움직임에 맞춰 일찌감치 손글씨를 연습시키려는 학부모들도 늘고 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현 초등학교 6학년 학생부터 학교 내신과 수능에서 서·논술형 문항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강 씨는 “서술형 확대 얘기가 나온 뒤 중학교 진학을 앞둔 초등학교 고학년의 문의도 늘고 있다”며 “제한된 시간 내에 빠르게 쓰는 법과 오래 글을 쓰는 지구력을 미리 체화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가독성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 문해력을 기르기 위해서도 쓰기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온라인에서는 글을 쉽게 쓰고 지울 수 있지만 손글씨는 정해진 공간에서 글의 분량과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생각을 언어로 정리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글쓰기는 눈과 손의 협응을 통해 여러 인지 기능을 함께 활용한다”며 “어릴 때 손의 소근육을 발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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