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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가을, 시 전문 계간문예지 『시와반시』를 창간했다. 서울이 아닌 이 지방에도 제대로 된 시 전문지 하나쯤 있어야 한다는 작고 소박한 꿈에서였다. 그 꿈의 기저에는 오랫동안 쌓인 갈증과 허기가 퇴적되어 있었다. 한 세대 전 이 땅의 문학 저널리즘은 서울에 집중되어 있었고, 지방 시인이 작품을 발표할 지면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었다. 문예지 편집자는 갑이었고 작품 생산자인 시인은 을이었다. 서울을 향해 고개 숙이지 않는 시인에게 발표지면을 얻는 일은 난망한 처지였다. "자신이 발 디딘 땅이 삶의 중심이며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이 역사의 한가운데임을 확신하는 자존"을 선언한 창간사의 일절은 서울을 향한 적개심의 발로였다. 지방은 중심/중앙에서 밀려난 변방이었다. 변방이기 때문에 새로운 문학이 시작되는 전초기지여야 했다. 고정된 관념과 낡은 관행을 밀어내고 한국 시단에 신선한 산소를 공급하는 '제삼의 심장'이 되고 싶었다. "척박한 땅에 씨를 뿌리는 그 순간의 오기와 고독이 언젠가 풍화되기를 기다리겠다."는 다짐과 기대도 창간사에 덧붙였다.
전국 독자 상대의 지방 거。 문예지 출현은 근대문예잡지 100년 역사상 초유의 일이어서 『시와반시』의 출범은 당시 한국문단의 많은 사람들이 주목한 문화적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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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에 보낸 창간호가 한 권도 남지 않고 다 팔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어느 지역 언론은 '문단의 돌풍 시와반시' 기사를 문화면 톱으로 뽑기도 했다. 부산과 광주, 제주와 강릉, 창원과 대전 등지에서 그 지역 문예지 창간이 이어졌다. 『시와반시』의 출발이 지역 문학의 물꼬를 트는 데 작은 몫을 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자랑스럽다. 크게 타락하지 않고, 척박한 풍토를 딛고, 단 한 차례의 결호도 없이(2026년 가을 통권 137호), 본격 문예지의 품격을 유지하며, 500여명의 독자 확보, 100여명의 후원회원과 함께하는 『시와반시』는 이제 지역문화 자치의 실천 사례이자 한국 문학사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산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창간35주년, 여기까지 오기까지, 1)독자시학을 찾기 위해; '반시'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詩와反詩』 독자시학의 기초는 아웃사이드적 변방성에 터 잡은 해체의 정신이다. 해체의 대상이 언어와 전통일 때 모더니즘시학으로, 해체의 대상이 지역과 진영일 때 변방시학으로, 해체의 대상이 문학적 근본주의의 아집일 때 실용시학으로 몸을 만들고 갈 길을 찾았다. 2)좋은 시를 찾기 위해; 저급한 언어의 유입을 저어하고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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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인간적 상처와 고충이 뒤따른다 할지라도 옥석을 가리고 오합지졸을 멀리하려 안간힘을 다했다. 이상이나 김춘수의 족보가 아닌 소월이나 백석의 혈족이라 하더라도 진정성이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멀리 하지 않았다. 3)빛나는 신인을 찾기 위해; 프로와 아마의 경계를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하더라도 월드컵과 골목축구는 그 몫과 의미가 따로 있다고 믿었다. 절실하되 낯선, 낯설되 뜨거운, 뜨겁되 신선한 언어를 가진 시인의 도래를 기다렸다. 80여명의 신예신인을 문단에 배출했다. 그러나 창간사에 썼던 오기와 고독은 아직도 풍화되지 않은 채 내가 보낸 한철에 대한 채무(債務)로 남아있다.
앞으로가 문제이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콘텐츠가 시공의 제약 없이 국경을 넘어 안방을 들락거리는 세상에 우편배달부의 자전거에 실려 느리게 독자를 찾아가는 종이책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그 길의 추동력을 끝없이 부대끼는 변화의 시공(時空), 시공의 변화에서 찾으려 한다. 이를테면 정신/자본, 작자/독자, 생산/소비, 디지털/아날로그, 지방/중앙, 시/반시……등 그 사이와 차이의 어름에서 푸닥거리는, 물살을 딛고 물길을 내는 창조적 변방성으로 유목의 먼 길을 떠나려 한다. 날개는 있는 것(Being)이 아니라 생성되는 것(Becoming)임을 믿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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