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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은 크고 중요한 일, 잘못하면 돌이키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미리 멀리 내다보고 준비하는 전략계획이 필요하고 실행을 위한 자원 동원이 수반된다. 신사업 진출, 기업매각 및 구조조정, 사업구조 재편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핵심 경영진 영입도 아니고 신입사원 채용이 최고경영자의 전략 과제(strategic agenda)가 되고 있다.
어떤 인재를 찾아서 함께 하려는지에 따라 기업과 경영자의 정체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나아가 학교와 사회에 대한 요구가 보인다. 미래를 위해 필요한 능력을 찾아 키우려는지, 집단의 일부로 몰아 넣어 충성만을 강요할 생각인지는 경영자의 관심과 투입되는 자원을 보면 알 수 있다.
‘인재제일’ 같은 막연한 구호가 아니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앞둔 지원 당사자와 애써 키운 자녀를 사회로 보내는 부모에게 신입사원 채용은 차 한 대 사고 투자종목 선택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기업과 경영자의 정체성이 뚜렷이 각인되는 경험이다. 경영자로서도 임직원을 시시각각 달라지는 세상에서 운명을 걸고 모여드는 젊은이들과 맞부딪혀 검증하는 의미 있는 기회다.
◆인공지능과 학력 철폐
S사는 입사지원자가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주어진 논제에 답하고 이를 바탕으로 심층면접과 집단토론에 임하는 채용전형을 도입했다. 지원자의 학력(學歷) 구분도 없앴다. 어차피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자리는 따로 채용하는 마당에 일반적 신입채용에서는 ‘본원적 능력과 소양’을 보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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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경영자는 단순한 채용방향이 아니라 기업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인 것이다.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고 외운 지식이 왜 쓸모가 없는지, 그런 지식에 매달리는 대학이 과연 어떤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지 묻는 한편 생각하고 공감하며 문제를 직접 풀어내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나름의 답을 제시한 셈이다. ‘기업이 원하는 대학’을 들먹이며 머슴질에나 딱 맞을 상식 암기를 들이댄 얄팍한 짓들보다 100만 배 낫다.
심층면접과 토론은 제한된 숫자의 대상자만 가능하니 내용 있는 인적성 평가가 필요하다. 상식 암기로 전락한 인적성 검사의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런 표준검사로 먹고사는 이권 생태계도 밝혀진다. 감사원 감사나 국회질의에서도 파헤치지 못했던 일이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문제를 남다른 관.에서 전문적 내용까지 포함해서 풀어내려면 단순한 인공지능 문답이 아닌 ‘구조화된 심층분석’이 필요하다. 단계별로 파고들며 묻고 다른 관。과 가능성을 검토하는 다단계탐색(multi-turn query)인데 학술연구나 언론취재, 법원-검찰의 심문에서 활용되는 방식이다. 정확한 답을 얻어 면접과 토론에 임하려면 모호한 말은 금물인데 개념과 논리가 뚜렷한지 현실에 부합하는지 따지는 ‘타당성(validity) 검증’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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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는 정보자료를 활용했는지, 알맞은 검증방법을 썼는지 확인하는 이른바 방법론(methodology)의 기본을 묻게 된다.
구조화된 심층분석이나 타당성 검토는 어떤 전공이든 제대로 대학을 다녔다면, 혹은 일과 삶의 현장에서 의미 있는 정보판단과 결심을 했다면 당연히 갖추었을 능력이다. 이런 전형이 확산되면 교과서 한 권 외워 객관식-괄호넣기 시험보고 ‘XX에 대해 쓰라’는 단답식 문제로 때우는 대학과 교수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논제분석과 심층면접-토론은 유능한 평가자가 필요하다. 제대로 이해하고 답했는지 무작정 긁어 붙여 무엇이 틀렸는지도 모르는지 밝히지 못하면 이력서 놓고 물어보는 면접심사만도 못하게 된다. 전공 분야의 연구물이나 활동이 아닌 ‘본원적 능력과 소양’을 탐문하려면 훨씬 높은 식견이 요구된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전형과정은 임직원이 달라진 세상을 얼마나 따라잡고 있는지, 꼰대가 되어 일과 사람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지 확인하는 기회다. 요령껏 자리만 지키는 무능한 관리자, 돈벌이 삼아 끼어든 얼치기 전문가를 박멸할 수 있다.
◆기업과 경영자의 밑천이 드러나기도
A사는 섬유류 수출에서 시작, 중상급 남녀 패션 브랜드를 키워왔다. 해외 고가 브랜드의 국내 판권도 다수 보유한 패션업계의 선두주자다. 대기업집단의 계열사로서 ‘그룹’의 든든함에 기대려는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직장이다.
그런데 A사의 최고경영자는 패션사업의 구석구석을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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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랜드 이름과 매출·원가 현황은 알지만 회사의 관리통제와 자금관리가 주된 역할이다. 주요 경영진 역시 그룹에서 계열사 통제를 위해 보냈거나 오랜 시간 판매망과 공급선을 관리한 공로로 자리를 얻은 사람들이다. A사의 글로벌 브랜드 협력전략 회의에서 세계시장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발표 화면 넘기는 상무와 배석한 부장뿐이었다.
A사가 진정 글로벌 브랜드를 새로 키우려면 탁월한 디자이너를 찾아 지분을 공유해서 스타트업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과 같이 수입과 유통이 사업의 핵심이라면 디자이너를 그것도 신입으로 채용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채용공고는 ‘세계에 도전할 디자이너’가 맨 앞에 나오고 제출된 포트폴리오와 경력을 판단할 능력도 안 되는 관계자들은 그럴듯한 학력에 우아한 말만 둥둥 떠다니는 ‘디자이너 지망생’을 채용한다.
이 회사의 디자이너 채용은 ‘회사가 어디로 갈지도 모르면서 패션 흉내를 내고 있다’고 온 세상에 광고하는 셈이다. 디자이너는 오지도 않거나 와도 말도 안 통하고 무난하게 대기업 경력이나 붙이려는 ‘패션-디자인 동호인’이 거쳐갈 뿐이다. 경영자와 대주주가 글로벌 브랜드의 환상을 가질수록 이 회사는 독한 패션사기꾼들의 먹잇감이 된다. 잘 모를수록 바른말은 절대 안 하는 것이 월급쟁이의 철칙이므로.
A사의 경영진에게 신입사원 채용은 차고 넘치는 고만고만한 지원자들 중에서 몇 명 가려내는 지극히 실무적인 일이지만 세상은 A사의 구조적 모순과 약.을 읽어낸다. 그야말로 전략적 과제가 아닌가.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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