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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 강동숲속도서관 문학상주작가·‘연중마감, 오늘도 씁니다’ 저자
도서관 에세이 수업을 하던 중, 미영씨는 그만 엉엉 울어버렸다. 작년에 떠나보낸 반려견 이야기를 막 꺼낸 참이었다. 슬픔은 마치 자동 버튼을 누르는 것만 같았다. 눈물이 쏟아져서 여태 사진조차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단다. 서둘러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당황함을 감추기 어려웠다.
인간이 동물을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좀 유난스럽다고 여긴 적이 꽤 있었다. 반려견이 생사를 오갈 때, 회사 일을 접고 식음을 전폐했던 선배 부부가 있었고, 얼마 전 반려묘를 잃은 가까운 지인은 남쪽 바다 풍광 좋고 볕이 잘 드는 곳에 무덤을 만들어 슬픔을 달래는 중이다. 묘비에 극진히 새긴 추모글을 보고 있자니, 내세엔 개나 고양이로 태어나도 괜찮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슬그머니 심술기가 돋는다. 정유정의 소설 ‘28’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도시에 치명적인 인수공통전염병이 돌자, 사람들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식 같은 반려견을 내다 버린다. ‘내 딸 마리를 잘 부탁드려요.’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사연과 변명이 담긴 쪽지와 함께.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생각한다. 이게 바로 사람이지, 지극하게 사랑해도 결국 자신의 목숨 앞에서는 달라질 수 있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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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어쩔 수 없는 이기심과 모순된 마음을 떠올리며 잔인한 상상을 하고 마는 것이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개를 사랑하기도, 한때는 먹기도 했던 쪽이다. 아버지가 그랬다. 개를 유난히 아끼고 좋아하는 동시에 개고기도 사랑하셨다. 누군가는 야만이라 하겠지만 그 시절 자연스러웠던 삶의 모습 중 하나였다. 그래서일까, 나 역시 야만의 얼굴을 감추고 산다. 가축을 탐욕스럽게 다룬 영화 ‘옥자’를 보면 고기를 못 먹는다기에 관람 자체를 망설였고, 인간과 문어의 우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며 만찬 삼아 문어숙회를 즐긴 엽기적 인간이 나였다. 지금도 열두살 반려묘를 모시고 살지만 고양이가 삶의 우선순위는 아니다.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럽고 행복한 마음이 차오르지만, 고양이를 위해 내가 무언가를 희생할 수 있을까? 유행하는 영화식 화법으로 이야기한다면 고작 이 정도가 내 ‘가능한 사랑’의 수준이다.
부산 북항을 찾은 상어, 부캉이는 조금 더 사람들 곁에 머물 모양이다. 연휴에 공개된 사진과 영상을 보니 입을 다물기 힘들었다. 지금까지 100만명 가까운 사람이 이 괴짜 상어를 보러 갔다니, 한국 사람들 참으로 대단하다 싶은 감탄과 함께, 다시 뾰족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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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캉이를 보러 간 모두는 인증샷을 찍고, 무사히 돌아가기를 응원하고, 때론 안타까워하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잊고 말겠지. 세상이 남방 돌고래 제돌이를 잊은 것처럼, 애타게 행방을 찾던 탈출 늑대 늑구의 안부를 더는 궁금해하지 않는 것처럼. 머지않아 희미한 기억으로 남고야 말겠지.
하지만 뾰족한 마음 사이, 다른 생각이 돋아났다. 설사 그러면 어떠한가. 복잡한 인간의 마음을 굳이 나누거나 폄훼할 필요는 없지 않나. 인간이 다른 생명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방식은 원래 그렇게 엉뚱하고 사소하니까. 100만명의 사람이 부캉이를 보고 돌아간 다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랑이 가짜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의 마음은 원래 그렇다. 쉽게 변하고 쉽게 잊는다. 다만 이름까지 붙이며 애정했던 그 잠깐의 마음에 아주 작은 흔적 하나가 남는다면 참 좋겠다. 앞으로 부캉이가 살아갈 바다의 모습을 걱정하는 마음들 말이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일회용 컵 하나를 고민하고, 비닐봉지 한장 더 쓸까 말까 망설이는 몸짓, 정도라도 충분하지 않을까?
물론 나도 자신은 없다. 문어숙회를 먹으며 문어 다큐멘터리를 보는 인간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 다만 한때 부캉이를 사랑했다는 말 대신 부캉이 때문에 무엇 하나를 덜 버리고 덜 쓰고 덜 망가뜨렸다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게 사랑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은 늘 이 정도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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