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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주산성 대첩문 ⓒ 이완우 화창한 가을볕이 한강 풍경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었다. 지난 10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덕양산(행주산, 124.6m) 자락에 자리한 행주산성을 찾았다. 임진왜란 3대 대첩지로 유서 깊은 덕양산 어귀의 대첩문에 들어섰다. 430여 년 전 행주대첩 승전 북소리가 바람결을 타고 들려오는 듯했다. 천혜의 방어 요새 행주산성이 자리한 덕양산은 한강의 흐름을 굽어보고 있다. 북한산 백운대 아래에서 발원한 창릉천이 한강을 만나며 덕양산 주위의 저지대 습지와 어울려 천연 해자가 형성된 천혜의 방어 요새였다. 이 지리적 형세가 권율 장군이 소수의 병력으로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결정적 배경이었다. ▲  행주산성 권율 장군 동상 ⓒ 이완우 ▲  행주산성 행주대첩 전투장면 부조 ⓒ 이완우 대첩문을 지나면 권율 장군의 동상이 서 있다. 권율 장군 동상 뒤편에는 행주대첩의 역사적 장면을 표현한 조선 관군, 의병과 승병의 전투 현장과 치마에 돌을 나르는 부녀자들의 모습이 각각 새겨진 커다란 부조 조형물이 있었다. 각 부조 조형물 앞에는 도화지 크기로 축소한 작은 동판 부조와 。자판이 있어서, 손끝으로 승전의 함성을 마주할 수 있는 열린 관광지였다. 1593년 2월 12일, 행주산성 위에 포진한 조선군은 산기슭을 올라오는 일본군을 향해 대포와 강궁을 쏘고 큰 돌을 굴리며 항전 했다. 포탄과 화살이 소진되어 가자, 성 안의 여성 의병대를 중심으로 한 부녀자들이 앞치마에 돌을 주워 날랐고, 조선군은 투석으로 전투를 이어갔다. 이 부녀자들의 호국 의지가 행주대첩의 큰 동력이 되었다고 평가 받는다. 고양 지역의 구전에 의하면, '밥할머니(해주오씨)'의 향토적 기억과 전승의 자취를 만날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한양의 북한산 아래에서 여성 의병대를 조직한 해주오씨는 조선군의 밥을 지어주고 부상병을 치료하며 봉화를 올리는 등 활약했다고 전한다. 이곳 행주산성 전투에서 해주오씨는 여성 의병장으로 활동하며 부녀자들에게 앞치마에 돌을 담아 나르게 했다는 것. 후세 사람들은 밥할머니의 석상과 비석을 북한산이 잘 보이는 장소에 세워 귀한 뜻을 기렸다 메가몰릴게임 . 이러한 내용의 구전은 임진왜란의 국난 극복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였던 무명 백성들의 자부심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된다. ▲  행주산성 산성길 ⓒ 이완우 완만한 길을 따라 잠시 오르니 고즈넉한 살구꽃 동산 쉼터가 나타났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살구꽃 핀 아름다운 고을이었다. 고려 태조 23년(940년)부터 살구꽃 고을인 '행주(杏州)'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고을의 별호가 '덕양(德陽)'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 임금이 이 지역을 거쳐 가면서 위기를 피했다고 하여, '다행 행(幸)' 자를 써서 '행주(幸州)'로 굳어졌다는 구비 전승이 널리 퍼졌다. 소나무 숲이 울창한 오르막길을 한참 올랐다. 소나무 아래 놓인 긴 의자에 관광객들이 쉬고 있었다. 역사적 현장인 행주산성은 생태숲 공원이었다. 오른쪽은 충장사(권율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 방향, 왼쪽은 토성 방향의 갈림길에서 발걸음을 토성 방향으로 향하였다. 완만한 토성 길에 올라서니, 마치 430여 년 전의 역사적 현장 속으로 시간 여행을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  행주산성 복원된 토성 ⓒ 이완우 소나무 숲 사이에 허물어져 있던 행주산성 토성이 복원되어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권율 장군의 조방장 조경이 토성의 약.을 보완하기 위해 목책을 쌓았고, 승병장 처영이 이끄는 정예 승군들이 이 목책 부근에 배치되어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이 토성에 세워졌던 목책은 일본군의 기습과 공세를 저지하는 강력한 방어선 역할을 해냈다고 한다. ▲  행주산성 충의정 ⓒ 이완우 충의정 앞 너른 공터에는 태권도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이 나들이를 나와 활기찬 기합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430년 전 선조들의 호국 정신이, 오늘날 자라나는 세대의 숨결 속에 이어져 살아 숨 쉬는 풍경으로 보였다. 덕양산 높은 곳에 우뚝 솟은 행주대첩비 앞에 섰다. 430여 년을 이어온 임진왜란 대첩의 승전 기념비. 대첩비는 수백 년 세월의 풍우 속에서도 바래지 않는 생생한 민족혼의 서사였다. ▲  행주산성 행주대첩비 ⓒ 이완우 카카야마토게임장 ▲  행주산성 행주대첩비, 행주대첩 초건비 ⓒ 이완우 행주대첩비 아래에 임진왜란 직후 세워진 행주대첩 초건비가 있었다. 이 초건비 기단석의 풍화된 틈새에 얽힌 설화가 흥미로웠다. 옛날 백성들이 이 틈새에 주먹을 넣어보아 주먹이 쏙 들어가면 길조로 여기고, 잘 들어가지 않으면 스스로 행실을 조심했다고 한다. 비록 민간의 소박한 전설이지만, 행주산성이 조선 백성들에게 의미 있는 정신적 의지처였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었다. 행주대첩비 앞으로 한강 하류의 너른 품이 펼쳐졌다. 도봉산과 북한산 백운대가 아득히 조망 되고, 강 건너 양천구의 궁산, 염창산, 멀리 선유도와 여의도의 실루엣이 그림처럼 보였다. 이곳 한강 하류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역으로, 조선 시대 진상품이자 봄철 한강 최고의 별미로 꼽혔던 '웅어(위어·葦魚)'가 잡히던 행주나루가 있었다. ▲  행주산성 덕양산에서 바라본 한강 풍경 ⓒ 이완우 ▲  행주산성 덕양정 ⓒ 이완우 덕양정에서 한강을 바라보다 덕양정에 올라 숨을 고르며, 유구한 세월 유유히 흐르는 한강의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덕양정은 강 바람을 맞으며 430여 년 전의 역사적 진실을 말없이 들려주고 있었다. 덕양정 정자 기둥을 짚고 한강을 바라보며, 1593년 2월 중순의 역사 속으로 시간 여행을 잠시 떠났다. 당시 한양을 。거하고 있던 일본군은 바다와 경상도에서 조선 수군과 의병들에 의해 보급로가 끊겨 있었다. 한양에 가까운 한강 하류의 행주산성은 삼국 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였고, 벼랑 끝에 몰린 일본군은 3만의 대병력으로 이 행주산성을 향해 밀려 들었다. 차가운 겨울 강바람이 휘몰아치는 이곳 행주산성에 조선의 군관민 3천 명이 배수의 진을 치고 있었다. 정상부에 결연히 선 조선의 병력과, 밀려 드는 3만 왜군의 함성, 그 치열했던 430여 년 전의 장면이 눈앞에 선명하게 겹쳤다. 덕양정에서, 한강 하류 건너편으로 서울 강서구 가양동(궁산 및 조선 시대 양천현 관아 일대)과 망호정 터가 한눈에 마주 보였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 대가 겸재 정선(1676~1759)의 자취를 만나보았다. 몰메가릴게임 정선은 영조의 배려로 65세부터 5년 동안(1740~1745년) 양천현령(陽川縣令)으로 부임해 근무했었다. 이때 관아(양천현아)가 있던 지금의 서울 강서구 가양동 일대의 망호정에서, 정선은 한강 건너 행주산성과 행호나루 풍경을 바라보며 명작을 남겼다. 그의 작품 <행호관어도(杏湖觀漁圖)>는 행주산성 앞 행주나루(杏浦) 일대에서 웅어를 잡는 어부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그림 속 한강은 은빛 물결이 찰랑이고, 조각배를 탄 어부들은 그물질에 한창이었을 것이다. 웅어는 갈대(葦, 위)가 피어날 무렵 강으로 거슬러 올라와 갈대밭 수역에 즐겨 머문다고 해서 '위어'라고도 불렸다. 행주나루 일대는 조선 시대 왕실 진상을 담당하던 위어장(葦魚場)이 설치되었을 정도로 최고의 웅어 명산지였다. 덕양정에서 행주산성을 내려오는 길목에서 삼국시대 석성 발굴지 안내판을 보았다. 백제, 고구려, 신라가 삼국 통일의 패권을 쥐기 위해 한강 유역을 지배하고자 각축을 벌였다. 이미 1300년 전, 7~8세기경부터 석축 성곽이 축조된 군사적 요충지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조선 중기에 이르러 행주산성은 성곽 기능을 거의 상실한 채 방치되어 있었다. 임진왜란 발발 직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평화로운 한강 나루터의 풍경을 품은 야산으로 남아있었다. 권율 장군은 1593년 2월, 명나라 군대와 호응하여 한양을 수복하기 위해 북상했다. 그는 한강을 끼고 있는 덕양산의 버려진 천 년 고성을 다시 눈여겨보았다. 무너진 고성이었지만 한강 줄기를 끼고 도는 지세는 여전히 적의 허를 찌를 최적의 무대였다. 권율 장군의 조선군은 양천현 궁산에 주둔했다가 한강을 건너 행주산성에 진지를 구축했다. 권율 장군과 관민들은 토성을 보수하고 목책을 두르며 급하게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1593년 2월 12일, 행주산성은 역사적인 임진왜란 대첩의 무대가 되었다. 삼국시대부터 한강을 지키던 고대의 성곽은,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의 폭풍 속에서 조선 군관민 3천여 명으로 일본군 3만 명을 물리친 '행주대첩' 역사적 현장으로 부활하였다. 행주산성을 내려와서 한강변 도로를 달렸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의 물줄기가 시원하게 눈에 들어왔다. ▲  행주산성 덕양산 한강 풍경 ⓒ 이완우 토성 방향으로 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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