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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열린 '빅도어 시네마' 행사 현장.
ⓒ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는 다시 올 수 있는가. 이런 제목을 생각해 보면 지금 한국 영화가 르네상스가 아니라는 뜻이겠죠.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그때보다 더 좋은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 있기도 합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이자 명필름 대표인 이은 제작자가 진단한 한국영화계의 현주소다. 세계적으로 K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정작 국내 영화 산업은 투자 위축과 관객 감소, 창작 생태계의 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이 가운데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영화인들이 광주에 모여 그 원인과 해법을 논의했다.
지난 10월 31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열린 '빅도어 시네마' 포럼에는 이은·심재명 명필름 대표, 강제규 감독,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가 참석했다. 김홍준 전 한국영상자료원장이 사회를 맡았다. 영화 <접속>(1997), <쉬리>(1999), <미녀는 괴로워>(2006) 등 한국영화의 성장기를 상징하는 작품들의 주역들이 30여 년 만에 달라진 영화 산업의 현실을 짚었다.
기조 강연자로 나선 이은 대표는 한국영화 산업을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 전후까지의 르네상스, 이후 대기업 중심의 독과.,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플랫폼 중심의 '디지털 제국주의' 시대로 구분했다.
이 대표는 "2010년을 전후로 영화 산업이 돈이 되면서 자본을 대는 사람들이 영화 저작권(IP)도 가져가기 시작했다"며 "대기업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야 하고, 만들고 나서도 저작권을 갖지 못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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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플랫폼도 그런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짚으며 "역대 정부가 영화를 문화적 공공재가 아닌 산업적 성과로만 평가해 왔다"고 정부의 정책 기조에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공공성 확립과 공정성 회복, 경쟁력 강화다. "독립·예술영화 전용관과 온라인 상영 공간을 확대하고, 특정 영화의 스크린 집중을 제한하며, 중소 제작사에 투자금이 돌아가도록 모태펀드 운용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대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창작자와 제작사에 정부가 직접 투자하는 방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접속> <건축학개론> 등의 대중영화와 다큐멘터리 <길 위의 김대중> 등 저예산 독립영화까지 꾸준히 제작해 온 이 대표는 "독립영화는 지원을 받아 만들어지지만 관객을 만날 상영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영화를 공공적으로 바라보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자본이 창의성을 검열한다"
▲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열린 '빅도어 시네마' 행사 현장.
ⓒ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주역들이 회고한 1990년대는 창작의 자유가 폭발하던 시기였다.
심재명 대표는 "1996년과 1997년 한국영화에는 빅뱅이라고 할 수 있는 폭발적인 변화가 있었다"며 영화 제작 환경의 변화와 젊은 창작자들의 진입, 관객층의 확대를 당시 성장의 동력으로 꼽았다.
강제규 감독 역시 "우리는 굉장히 운이 좋은 세대였다"고 회고했다. "과거에는 제한된 제작사만 영화를 만들 수 있었고 검열 때문에 표현의 자유도 제약받았지만, 영화 제작의 자유화 이후 억눌렸던 창작 욕구가 분출됐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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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재 창작 환경은 오히려 다른 형태의 제약에 직면했다는 진단도 나왔다.
심 대표는 "옛날에는 검열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자본이 창의성을 검열한다"고 말했다. 투자자가 이야기의 방향과 결말, 배우의 캐스팅까지 간섭하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자본의 성격이 바뀌어야 한다. 자본이 흥행 실패를 너무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며 창작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투자 환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원동연 대표는 산업 자체의 혁신을 주문했다. 그는 "지금 한국영화 산업이 섹시한 산업이냐를 고민해야 한다"며 게임과 K팝 산업이 지속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여온 것과 달리 영화 산업은 지식재산권을 활용한 사업 확장에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천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영화 가운데 지속적인 프랜차이즈로 발전한 사례가 <신과 함께>와 <범죄도시> 정도에 그친다"는 。을 지적했다.
원 대표는 제작 준비 중인 <신과 함께3>에 대해서도 "기존 투자 구조에서 벗어나 해외 선판매와 직접 투자 등을 통해 제작비를 조달하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K팝과 K게임, K콘텐츠의 가장 큰 차이는 IP를 보유하고 있느냐 아니냐"라며 "우리가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기업의 하청 기업으로 남을 것인지, 독립적으로 IP를 확보하고 유통 구조를 극복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분기."이라고 말했다.
AI 제작 혁명과 지역 영화 소외도 화두
▲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열린 '빅도어 시네마' 행사 현장.
ⓒ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 역시 한국영화의 미래를 바꿀 변수로 거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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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 감독은 현재 협업 중인 회사에서 "약 20명의 AI 인력이 영화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며, 2시간 분량으로 기획된 작품 가운데 75분가량이 완성된 결과물을 직접 봤다고 밝혔다.
강 감독은 "전문가인 제가 봐도 이것은 혁명"이라며 "영화의 문법과 제작 방식 자체가 재편되는 시기에 와 있다"고 말했다. 제작비 절감과 창작 기회의 확대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기존 영화 제작 환경에는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역영화에 대한 지원 부족도 지적됐다. 심재명 대표는 정부의 영화 지원예산 확대 논의에서 지역영화 관련 지원이 소외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심 대표는 "정부는 지역에서 해결하라고 하고 지역에서는 돈이 없다고 한다"며 "문화 다양성에서 지역 영화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예산 규모를 늘리는 것보다 재원을 얼마나 정교하고 공정하게 배분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김홍준 전 원장은 영화산업 지원 정책이 시설과 사업 중심으로 설계돼 정작 창작 인력에 대한 투자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공성의 일부라는 것은 이제 사람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창작자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도 지원의 대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럼 말미 질의응답도 이어졌다. 영화계 진입을 희망하는 청년들이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할지 묻는 말에 이은 대표는 "30여 년 전 영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와 비슷한 지。에 서 있는 것 같다"며 "지금은 영화만 해서는 안 되고 영화를 만들면서 동시에 필요한 변화를 절박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원동연 대표는 "영화에 대한 열정과 함께 직업인으로서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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