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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11-01 09:39 조회 15 댓글 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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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항상 주무시던 방의 잘 마련된 병풍 뒤에 삼일을 모셨다. 그 사흘 동안 우리 여자 상주들은 한복으로 된 흰 상복을 입었고, 남자 상주들은 전통 상복인 굴건제복을 입었다. 머리부터 종아리까지 흐르는 삼베를 이마 위와 허리춤에서 짚으로 꼬아 만든 새끼줄로 동여매고 죽장을 짚고 서서 곡을 한다. 집 마당과 집 앞 벼를 거둬들인 마른 논바닥 위 멍석에 자리한 조문객들은 식사와 술을 대접받는다. 삼일째 염을 하고, 입관을 하고, 힘센 친척들에 의해 관은 꽃으로 장식된 상여로 옮겨진다. 선소리꾼이 앞에서 요령을 찰랑이며 이생과의 이별 선소리를 하고, 상두꾼은 그 소리에 추임새를 넣으며 상여를 메고 아버지의 살아생전 발자취를 따라 온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돈다. 모든 동네 사람들은 그분이 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배웅 나온다. 그리고 뒷산에 묻히셨다.
모든 인사를 끝내고 아버지 생전의 방에 누우니 창문을 통해 아버지 무덤 근처가 보인다.
‘여기서 이렇게 묻히신 곳이 보이다니...’ 신기했다. 그 후 나는 되도록이면 죽음의 현장들을 피하며 지내왔다. 죽음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했다.
이제 대부분의 장례는 병원의 장례식장에서 치러지며, 요즘은 요양원의 장례식장이 따로 있기도 하다. 그곳에는 죽음이 느껴지지 않으며, 형식과 절차들은 죽음이 가져온 의미를 희석해 버린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나이가 들어, 죽음을 피할 수 없고, 누구나 나이가 들면 죽는다는 걸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게 되면서, 가시는 분들을 아름다운 환경에서 보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절차가 아닌, 천천히 살아생전과의 시간을 갖고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상주들은 슬픔에 이것저것 따져 볼 겨를도 없고, 누가 알아서 챙겨주는 것이 고맙다. 그렇지만 형식만 있다. 울음에 지쳐 멍한 머리는 눈을 후벼 파는 듯한 막대 전구 형광 불빛에 자신이 꿈을 꾸는 건지 현실에 있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오랜 기간을 잘 준비한 명주 수의를 입혀드리는 공간은 차가운 창고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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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 시간이 어떻든 호텔 체크아웃처럼 정해진 시간에 장례식장을 ‘체크아웃’해야 하며, 도시의 혐오시설로 분류된 화장터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교외를 지나서도 한참을 더 나간다.
관료주의가 분류한 혐오시설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혐오감을 주는 시설. 지역 주민에게 공포감이나 고통을 주거나, 주변 지역의 쾌적성이 훼손되어 집값이나 땅값이 내려가는 따위의 부정적인 외부 효과를 유발한다고 인식되는 시설을 말한다.’ 혐오시설을 기피 시설 또는 비선호 시설이라고 우회하는 대체 용어가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와 깊게 연관된 장소들을 우리 스스로 혐오, 기피, 비선호 시설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 불가피한 시설임을 인정은 하지만 내 뒷마당에는 절대 안 된다며 혐오시설 유치를 거부하는 님비(NIMBI, Not In My Backyard) 현상은 이 역설을 그대로 드러낸다. 현대적 삶의 방식이 처한 딜레마다.
각 도시의 쾌적성과 안전을 위해 화장터는 도시시설관리공단에서 관리한다. ‘시’에서, ‘국가’에서 관리한다는 의미이다. 담당부처는 보건복지부이다. 그곳의 거의 모든 자재와 가구는 조달청 산하의 전자 카탈로그에서 고른다. 공공기관의 가구와 건축자재는 이 카탈로그가 기준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화장터에서든 도서관에서든 기차역에서든 장소의 영혼과는 상관없이 늘 똑같은 모양새의 의자에 앉게 된다. 화장터라는 공간과 도서관, 기차역이라는 공간의 경험과는 무관한 그저 저렴하며 단기간의 기능만을 위한 기계적으로 생산되는 가짜의 모음집이다. 이것은 관료주의를 위한 카탈로그이다. 우리의 요구와 경험을 위한 것이 아니다.
현대의 관료주의 공간 설계는 죽음과 삶의 감정적 연결뿐만이 아니라 인간이 살면서 거치는 모든 의례와 일상을 사무적인 처리 과정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효율을 최우선으로 삼는 규격화된 산업 시스템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그 시스템 안에 끼워 맞추라는 행정과 자본의 압박이다.
나는 모든 의식을 싫어한다. 모두 부조리하다. 장례 의식도 산 자들의 자기 위안과 자기합리화라고 여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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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주검의 화장(火葬)을 기다리며, 영면을 위한 의식 동안, 왜 우리가 화장(化粧)실보다도 못한 공간에 꾸겨져 있어야 하는지, 이것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슬픔을 넘어 분노가 커진다. 그렇게 의도된 것인가? 슬퍼하기보다는 분노를 느끼라고? 기능으로만 노골적으로 열거되어 있는 건축물. 일렬로 쭉 설치된 화장칸, 그 앞의 방 번호, 무엇을 관람이라도 하라는 것인지. 방을 찾아가는 긴 복도에 통곡으로 뒤엉킨 다른 가족들을 피해 가며 보이는 다른 화장칸들을 보며 도대체 무엇을 애도하기 위해 내가 여기 있는 것인지 망연자실하다. ‘혐오’라는 단어를 너무 표면적으로 이해한 나머지 의도적으로 혐오를 물리적으로 형상화하여 ‘시설’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혐오시설이라고 교외로 쫓겨난 시설물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산속 한가운데에, 그 아름다운 숲과 동화되지 못한 채 온 주변을 더럽히며 추물로 서 있다. 가족들이 기다리는 공간들은 정말, 정말이지 플라스틱 덩어리들의 조악한 조합이다. 잠깐, 아주 잠깐만 머무르는 공간이기에, 그저 구색만 맞추면 되는 곳이기에, 죽음은 자신들과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저 위에서 시키는 일이기에, 더구나 영향력을 상실한 죽은 자들의 공간이기에, 그곳에 영혼이라고는, 정말이지 한 치의 정성도 없다.
도시는 일상적인 공간은 천대하면서도 천문학적인 자원을 들여 산 자들에게 보이기 위해 무지막지한 허세를 지어 댄다. 크기조차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디자인센터. 용도조차 알 수 없는 시대착오적인 강 위의 인공섬. 젠트리피케이션을 선도하는 내용 없는 문화센터. 유행처럼 지어지는 박물관. 자연의 가치를 빼앗는 도시 전망대. 자연을 상품화하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테마파크. 내용 없는 스펙터클. 산 자들은 좀 더 겸손해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마저도 뺏어 버리는 이 작은 단계들부터 그 본연의 가치를 체화해야 하지 않을까? 이는 죽은 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가치에 대한 물음과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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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에서부터 가치를 찾아 나가는 곳에는 보이기식의 내용 없는 허상이 산 자들을 바보로 만드는 황당무계한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의식은 시골 동네의 집, 도로, 들판, 산에 녹아들었다. 장례 의식은 하루 동안 마을을 새롭게 정의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별을 고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상을 중첩하였다. 우리가 살던 항상 같은 공간이 뭔가 다르게 경험되었으며 우리의 기억이 물리적 공간에 더해져 마을에 의미의 켜가 하나 더 쌓였다. 이렇게 켜켜이 쌓인 의미로부터 공간의 복합성이 형성되며 감각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이 공간과 연결시킨다. 기억, 친숙함, 친밀감, 신뢰, 이 모든 것으로 만들어진 공간의 정체성. 어떠한 공간이 인간적인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감정을 축적할 가능성이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공간은 인간에게 상실감만을 안겨줄 뿐이다.
도시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모두 똑같아 보이며 고유성이 없는 오늘날의 도시에서 우리를 둘러싼 공간들은 더 이상 성찰과 환기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 않다. 건축과 공간이 더 이상 기억이나 감정적 울림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이제 우리의 기억은 항상 지니고 있는 각별한 대상물에 투영될 뿐이다. 액자 속의 사진, 엄마의 장롱, 오래된 책, 할아버지의 시계. 공간이 아닌 사물에 친밀감을 느낀다. 이 물건들은 도시가 잃어버린 정체성을 대신한다. 이러한 사물들은 우리의 기억을 충분히 담아내어 승화시킬 수 없어서 병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좋은 공간 그리고 좋은 도시라고 해서 우리의 모든 기억을 담고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촉발할 수는 있어야 한다. 사물이 아닌 공간성으로 말이다.
장례식장에서 열심히 죽음을 이해해 보려는 어린아이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흩뜨리며 뛰어다닌다. 외부가 아니라, 형광 불빛이 눈을 후벼 파는 어느 지하 공간을 뛰어다니게 하는 것이 미안하지만, 모든 식구들이 오늘 밤은 여기서 함께 보낸다는 것에 들떠있다.
그래서인지 오늘, 나의 아버지를 보내 드렸던 그 구식 의식이, 추위에 덜덜 떨었던 그 의식이, 그때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절차와 행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별의식이었으며 얼마나 정중하게 삶을 마무리하는 의식이었는지 절실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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