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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G 활동 잘하면 정말 기업도 잘될까?
● 기업에 중요한 ESG 이슈, 잘 관리하는 게 관건
● 화려한 ESG 활동도 성장 보장하진 않아
● ESG 이전에 기업의 경제적 지속가능성 뒷받침돼야
"ESG를 잘하면 정말 기업도 잘되나요?" 필자가 가장 자주 받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정말 효과가 있는지 묻는 핵심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솔직히 난감하다. 글로벌 의류 브랜드 파타고니아나 국내 제약회사 유한양행처럼 ESG를 잘하는 기업의 사례를 들며 "그렇다"고 답한다. 최근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가 '애국 기업' 행보로 화제가 돼 주가가 다시 오른 한성기업의 이른바 '돈쭐' 사례도 덧붙인다. 그런데도 마음 한편은 늘 찝찝하다.
이 찝찝함은 두 가지에서 비롯된다. 첫째는 일반화의 문제다. 이 사례가 소수의 예외가 아니라 대다수 기업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인과관계의 문제다. 돈이 많은 기업이라 ESG에 투자할 여력이 생긴 것이 아니라, ESG를 잘해서 돈을 더 벌게 된 것이어야 한다. 솔직히 필자도 아직 이 두 가지를 확신하지 못한다. 엄밀한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느낌이랄까.
2200여 개 ESG 연구가 시사하는 것
첫 번째 찝찝함, 일반화의 문제부터 짚어보자. 파타고니아 같은 사례가 예외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려면 방대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독일 함부르크대 연구진이 2015년 발표한 메타분석(여러 개별 연구 결과를 통계적으로 종합하는 연구 기법)은 이 분야에서 가장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연구로 꼽힌다. 1970년대부터 축적된 2200여 개 연구를 종합한 결과 약 90%에서 ESG와 재무 성과 사이에 부정적 관계가 나타나지 않았고, 긍정적 결과가 부정적 결과보다 훨씬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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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평균적 상관관계의 크기 자체는 크지 않았다.
같은 해 영국 옥스퍼드대가 200여 개의 학술 논문과 산업 보고서를 검토한 메타연구에서도 전체 연구 중 88%에서 지속가능경영을 체계적으로 실천하는 기업이 더 우수한 운영 성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를 보면 "ESG를 잘하는 기업이 대체로 재무적으로도 괜찮다"는 증거가 더 많다. 일부 사례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봐도 될 것 같다. 첫 번째 찝찝함은 이렇게 어느 정도 풀린다.
두 번째 찝찝함, 인과관계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인과관계가 있다고 말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상관관계다. ESG와 기업의 성과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둘째, 시간적 선행성이다. ESG를 잘하는 것이 기업의 성과보다 시간적으로 먼저 일어나야 한다. 셋째, 허위 관계(제3의 요인 때문에 실제로는 관련 없는 두 변수가 관련 있어 보이는 것)가 없어야 한다. 키가 큰 아이일수록 수학을 잘한다는 통계가 있다고 해서 키가 자라면 수학 실력이 는다고 결론 내릴 수 없는 것과 같다. 나이가 들면서 키도 크고 교육도 더 받았을 뿐이다. 이 세 조건이 모두 갖춰져야 ESG가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기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조건인 상관관계는 어느 정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선 연구가 보여준 그대로다. 그러나 시간적 선행성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기업은 살아 있는 유기체와도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흥망성쇠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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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썰 듯이 ESG의 시작과 성장의 시작 시。을 딱 잘라 구분하기 쉽지 않다. 앞서 소개한 연구도 이런 시간 순서를 엄밀하게 통제한 인과 설계를 갖추지는 못했다.
허위 관계가 없다는 。도 현실적으로 확인하기 쉽지 않다. ESG 말고도 기업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수히 많다. 기업이 활동하는 우리 사회는 통제된 실험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적이 탄탄한 기업은 친환경 설비나 사회 공헌에 쓸 여윳돈이 있고, 실적이 나쁜 기업은 당장 ESG 예산부터 줄인다. 좋은 경영진이 있고 장기 전략이 있으며 리스크 관리에 철저한 기업이라면 ESG도 잘하고 돈도 잘 벌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진짜 원인은 ESG가 아니라 '좋은 경영' 그 자체일 수도 있다.
ESG가 보험처럼 작동하는 이유
이 물음에 힌트를 주는 연구가 있다. 미국 하버드경영대학원 조지 세라핌 교수 연구진은 기업의 ESG 활동을 하나로 뭉뚱그리지 않았다. 철강회사에는 탄소 배출과 산업안전이, 금융회사에는 정보보호와 내부통제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봤다. 연구진은 이를 '중대한(material) 지속가능성 이슈'라 불렀다. 기업에 중요한 ESG 이슈를 잘 관리한 기업은 이후 성과가 좋았지만, 사업과 무관한 ESG 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같은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건설회사가 일회용 컵을 줄이면서 중대재해를 반복한다면, 식품회사가 나무를 심으면서 이물질 사고를 반복한다면, 은행이 사내 전기 절약 캠페인을 벌이면서 금융사고와 개인정보 유출을 반복한다면 ESG를 잘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많이 하는 게 아니라 중요한 걸 잘하는 게 핵심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ESG는 어떻게 성과로 이어질까. 필자는 이 효과가 보험과 비슷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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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보험에 가입했다고 매년 보험료보다 많은 돈을 돌려받길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사고가 나지 않으면 낸 돈은 그냥 사라진다. 그렇다고 보험 가입이 손해라고 말할 수 없다. 보험의 가치는 사고가 났을 때 드러나기 때문이다. ESG도 마찬가지다. 안전사고가 없고, 규제 위반이 없고, 배임과 횡령이 없다면 그 효과는 눈에 띄지 않는다. 문제가 터지는 순간 평소 무엇을 관리해 왔는지가 기업의 생존을 가른다.
그러나 보험으로 막지 못하는 사고는 존재한다. 프랑스 식품기업 다논의 최고경영자(CEO) 에마뉘엘 파베르는 회사 정관에 '지구와 자원을 보전한다'는 목표를 명시할 만큼 ESG 경영을 상징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생수 사업 등에서 경쟁사보다 저조한 실적이 이어졌고, 이익 전망치를 세 차례나 낮췄으며, 주가는 30% 넘게 폭락했다. 결국 2021년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압박 속에 이사회에 의해 물러났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를 두고 "기업이 이윤이라는 핵심 목표에서 벗어나는 행위가 위험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덴마크 에너지기업 외르스테드도 유사하다. 화석연료 중심 기업이었던 외르스테드는 2008년 재생에너지 중심 기업으로 전환을 선언한 뒤 10여 년 만에 세계적 해상풍력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2020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지속 가능한 100대 기업' 1위에 올랐다. 그러나 2023년 상황은 급변했다. 금리 상승과 공급망 비용 증가로 미국 해상풍력 사업의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떠안았고, 주가도 크게 떨어졌다. 2023년 말 외르스테드의 시가총액은 1년 전보다 약 40% 감소했다.
‘보험금'만으로 회사를 지켜내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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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금'이 지급된 사례도 있다. 게맛살 브랜드 '크래미'로 알려진 한성기업은 원재료 가격 상승과 소비 부진 등으로 실적이 악화하고 차입 부담까지 커지면서 지난 7월 코스피 상장폐지 가능성이 거론됐다. 하지만 6·25전쟁 참전용사를 위한 음악회를 오랫동안 후원해 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애국 기업을 살리자'는 국민적 움직임이 확산했다. 주가는 급등했고 상장폐지 우려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7월 중순 1만4520원까지 올랐던 주가는 한 달여 만에 5150원으로 64% 넘게 떨어졌다. 더구나 오너 일가가 지배하는 최대주주 회사와의 내부거래 구조 역시 오래전부터 지배구조 측면의 문제로 지적돼 왔다.
‘국민 볼펜' 모나미도 비슷했다. 학령인구 감소와 필기구 수요 감소 속에서 영업손실은 최근 3년 연속 확대됐다. 신사업으로 추진한 화장품 사업도 뚜렷한 수익을 내지 못했다. 시가총액이 250억 원까지 떨어지며 상장폐지 우려가 커지자 '토종 기업을 살리자'는 여론이 형성됐고, 주가는 보름여 만에 세 배 가까이 뛰었다. 그러나 불과 한 달 뒤 제자리로 내려왔다. 오너 일가가 대부분의 지분을 보유한 물류회사가 오랫동안 모나미와의 거래에 크게 의존해 온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지배구조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애국 기업' '국민 기업'이라는 이미지는 일시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었지만, 본업의 경쟁력과 지배구조 문제까지 대신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보험금은 지급되지만 보험금만으로 회사를 지켜내지는 못한다.
ESG는 성장의 보증수표 아냐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ESG를 잘하면 정말 기업도 잘되는가?" 많은 연구나 사례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준다. 적어도 ESG가 기업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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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것만으로 ESG가 기업 성장을 직접 만들어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사고가 났을 때 충격을 줄이고, 어려운 순간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끌어내며, 기업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 한성기업과 모나미의 사례가 보여주듯 그 신뢰는 실제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나 ESG가 사업의 경쟁력이나 잘못된 투자 판단, 취약한 지배구조까지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ESG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가 아니다. 기업의 생존과 경쟁력에 중요한 문제를 제대로 관리하고 있느냐다. 안전이 중요한 기업은 사고를 줄여야 하고, 식품기업은 제품의 안전과 품질을 지켜야 하며, 금융회사는 고객의 돈과 정보를 보호해야 한다. 아무리 많은 사회 공헌을 하고 친환경 캠페인을 벌여도 정작 기업의 핵심 리스크를 관리하지 못한다면 지속가능경영이라 하기 어렵다. 중대성 평가가 중요한 이유다.
그래서 필자는 기업의 중대성 평가를 할 때 ESG에 E를 하나 더 붙인다. E(Economic), 즉 경제다. 기업의 본업은 결국 고객에게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이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가 중요하지만, 경제적 지속가능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기업은 장기적으로 환경과 사회에 기여할 기회조차 잃게 된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는 기업은 특별한 비법을 쓰는 게 아니다. 본업에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과 환경과 원칙을 지킨다.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명우
●1983년 출생
●포항제철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 중어중문/경영 졸업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現 솔루티드(주) 대표(중소기업 ESG 컨설팅 전문)
이명우 ㈜솔루티드 대표
성장을 방해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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