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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10-28 18:09 조회 8 댓글 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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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언니를 보고 자랍니다. 여기 선배가 된 언니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이정표이자 버팀목이 되는 [여자, 언니, 선배들]의 일·커리어 이야기를 플랫이 전달합니다.
건축은 아무것도 없는 대지 위에 새로운 공간과 형태를 구상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건축가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생각이 도면으로, 실제 건축물로 완성되지요. 이렇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 건축입니다.
박유정 건축사(59)는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한국여성건축가협회 사무실에서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과 만나 건축 설계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의 커리어는 거의 10년 단위로 이어진다. 1991년 2월 건축공학과 졸업 후 설계사무소, 건설사 두 곳, 다시 설계사무소를 거쳤다. 직급도 사원에서 차장, 과장, 부장으로 올라갔다. 가장 마지막으로 일한 설계사무소에선 기업의 ‘꽃’이라는 임원으로 11년간 재직했다. 이처럼 빡빡한 이력 사이사이에는 건축사 자격증(2000년) 취득, 석·박사 졸업(2004년·2015년) 그리고 두 번의 출산이 자리한다.
건축업계는 대표적인 ‘남초’로 꼽힌다. 요즘도 그럴진대, 박유정 건축사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1990년대의 건축업계는 그야말로 ‘남자들의 세계’였다. 그는 그 세계에서 때로는 회사 최초의 여성으로, 결국은 자신만의 카리스마를 가진 선배로 자리잡았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야근은 기본, 철야는 필수’인 업계를 버티고, 여성성을 숨기고, 접대 자리에도 참석하고…. 박유정 건축사는 임신 중 “배가 나와서 도면이나 제대로 그리겠냐”는 말에 “배 들어가게 제도판 좀 깎아주세요”라고 되받아칠 줄 알아야만 ‘내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그때 그 시절, 나 때는’ 없이는 말할 수 없는 이야기다.
30년 넘게 버틴 선배로서 이제 그는 수많은 후배들의 멘토를 자처한다. 길을 헤매는 젊은이들에겐 아주 작은 힌트도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건축학도를 가르치는 일과 한국여성건축가협회 감사 역할도 병행하고 있다. 한편으론 자신의 ‘또 다른 10년’을 준비한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건축처럼, 커리어의 ‘다음 10년’을 쌓아가는 길에도 설렘이 가득하다.
뛰어들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건축가의 일
- 건축이라는 일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나요?
“건축은 건축주나 발주처의 요구사항, 또는 공모지침을 바탕으로 아무것도 없는 대지 위에 새로운 공간과 형태를 구상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수많은 대안 중 하나의 방향을 선택하고 구체화하면서, 건축가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생각이 도면으로, 실제 건축물로 완성되지요. 이렇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 건축입니다.”
- 그동안 해오신 일을 소개해 주세요.
“30년 넘게 건축 설계를 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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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사무소에서 10년, 건설사 설계실에서 10여 년, 그리고 또 설계사무소에서 11년 동안 임원으로 일하면서 제가 직접 수주한 프로젝트 9개를 맡았어요. 그다음으로는 각종 지방자치단체에 자문을 해왔고요. 여러 공모전 평가와 지자체 심의 위원으로도 활동합니다. 11년째 대학(원)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직전 직장에서 맡았던 프로젝트는 올해 9월에 마무리했고, 이제 다음 10년을 위해 제 이름을 건 건축사사무소를 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 다음 10년 동안에는 내가 30년 동안 갖고 있던 아이디어와 축적된 것들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 어떤 계기로 건축을 전공하고 커리어로 삼게 됐나요?
“처음엔 건축가가 꿈이 아니었고 의사나 간호사가 되고 싶었어요. 건축공학과에 다니던 중, 한번은 교수님께 ‘제가 건축에 너무너무 관심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상담을 했어요. 그때 교수님께서 ‘세 가지를 해보고도 안 되면 그때 바꾸라’고 하셨는데요. 그 세 가지는 영화 보기·만화책 보기·여행 가기였습니다. 영화를 보라는 건 영화 속 역사, 가구, 건축물 등을 보라는 의미였고요. 만화책은 건축에서 중요한 투시 개념을 배우라는 뜻이었어요. 여행은 그냥 가서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분위기, 자재, 가구 배치, 동선 등을 보면서 공간을 몸으로 느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대로 계속 해보고는 건축 써클에 들어가 배우기 시작했지요. 그다음부터는 한번 시작했으니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했습니다.”
- 건축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첫 번째는 종합예술이면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에 있다는 .이에요. 건축은 공학 기술을 바탕으로 하지만 예술적 감각은 물론 인문학, 사회학, 경제까지 두루 연결돼 있습니다. 흔히 건축의 3요소를 ‘기능, 구조, 미(아름다움)’라고 하는데요. 여행을 가면 그 도시의 건축물을 찾아보게 되는 것도 건축이 가진 문화적·예술적 가치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또 건축은 도시재생, 주거환경 개선, 문화·복합시설 조성 등 도시 변화와 지역사회 발전에 직접 영향을 미쳐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건축을 전공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라고 이야기합니다. 시대에 따라 형태와 기술은 달라지겠지만, 건축의 역할과 가치는 계속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빠져들다: 깊어지는 전문성
- 건축사 자격에 도전하셨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운전하려면 운전면허를 따야 하는 것처럼 건축을 전공했으면 당연히 건축사를 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은, 시험을 위한 시험을 볼 필요는 없다는 .입니다. 요즘은 자격증의 시대이다 보니 후배들이 건축사를 3~4년 차에 빨리 따려고 해요. 그런데 건축가는 사실 프로젝트 경험이 중요해서 건축사 자격 자체는 그렇게 급할 필요가 없거든요. 저는 7~10년 차쯤 도전하라고 조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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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9년 차부터 시작해 10년 차에 땄습니다. 건축에는 수백 명의 안전이 달린 만큼 사명감을 갖고 해야 해요.”
- 설계사무소와 건설회사에서 맡았던 일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설계사무소는 직접 도면을 그리고 계획하는 곳이고, 건설사는 그 설계도에 맞게 시공을 하는 곳인데요. 저는 건설사에서도 설계실에 있었습니다. 당시(2000년대 중반) 턴키(설계·시공 일괄입찰) 제도로 건설사가 설계사와 컨소시엄을 맺어 입찰하는 방식이 유행이었는데, 건설사에서는 아무래도 설계를 잘 모르니 설계관리하는 경력자를 뽑았거든요. 프로젝트 전체를 관리하는 PM(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을 했습니다. 설계에서 공사까지 챙기면서 사업을 보는 눈이 더 커졌던 것 같아요. 쉽게 말하자면 그림으로 그렸던 것을 실제 구현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일하고 자녀를 돌보면서 석·박사 공부까지 하셨는데, 어땠나요?
“배우자가 영국 유학을 가게 되면서 저도 ‘10년 열심히 일했으니 엄마로, 아내로, 나로서 2년을 보내고 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위에선 돌아오면 직장 잡기 어려울 것이라며 걱정 반 격려 반이었지만 나를 위해 선물을 주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남편 공부가 길어지며 저도 석사 과정에 입학했는데 동시에 둘째가 생겨 정말 힘들게 공부했습니다. (한국에서) 박사는 건설사에서 힘들게 버텼던 시기를 끝내고 바로 논문을 썼어요. 3년 반 만에 끝냈죠. 커리어를 쌓고 남성과 경쟁하는 여성으로 살면서 쉬는 날은 아이 데리고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가 느끼는 엄마의 빈자리를 충분히 메꿀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깊어지다: ‘전체’를 보는 안목과 당선의 기쁨
- 일하면서 가장 기쁜 순간은 언제인가요?
“프로젝트 공모에 당선된 순간입니다. 밤을 꼴딱 새는 온갖 노력을 하고 당선되는 순간 정말 기쁩니다. 그때마다 항상 어머니와 시어머니에게 ‘나 당선됐어요’라고 전화했던 기억이 납니다.”
- 반대로 좌절이나 어려움은 언제 발생하나요?
“일종의 징후가 있습니다. 프로젝트는 경쟁에서 이기는(수주하는) 것이 마지막 결과인데요. 제가 건설사 두 곳을 거치는 동안 한 번도 패배하지 않다가 11번째에 패배하면서 스스로 돌아보고 깨달은 내용입니다. PM으로서 설비·구조·전기·토목·조경 등 여러 업체를 지정하고 조율해야 하는데, 안 되는 프로젝트에서는 팀끼리 협력하는 것부터가 삐거덕거리더라고요. 마지막 보고서를 제출하는 시기까지 시간표대로 흘러가지 않는 식으로요. 처음 시작할 때부터 뭔가 잘 안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습니다.”
- 맡았던 프로젝트 중에서 어떤 것이 기억에 남나요?
“제일 자랑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판교 제2테크노밸리 벤처타운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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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대기업이 될 수 있도록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벤처타운을 만들자는 취지였어요. 영세기업이 희망을 갖도록 공간을 활성화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에 절실하게 준비하고 지원했지요. 3개 획지 중 하나를 정말 박빙으로 따내고 50억원을 수주했어요. 그게 작년에 완공됐습니다. 나중에 이곳에 다시 와서 공간이 잘 이어지고 있는지 분석해야겠다 생각했을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혁신육아복합센터, 육군종합행정학교, 병원 등의 프로젝트도 맡았습니다.”
- 건축사가 되기에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요?
“끝까지 진득하게 의문을 갖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왜 이럴까’, ‘안 되면 어떻게 바꿔야 할까’ 등 ‘왜(why)’와 ‘어떻게(how)’를 묻는 관.이 필요하거든요. 책임의식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건축은 결국 서비스업이기 때문입니다. ‘건축은 생활을 담는 그릇’이라고 흔히 말할 정도로 건축은 건축주라는 사람을 위한 것이고, 건축가는 건축주가 요구한 바를 대신 만들어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축가는 아집이나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면 안 되고 건축주를 충분히 알아야 합니다.”
- 일할 때 가장 중시하는 나만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프로젝트 전체를 보는 태도를 중시합니다. 내가 맡은 일만 하면 된다는 것이 보통의 견해인데요. 그렇게만 하면 당선되기 어렵거든요. 후배들에게도 프로젝트 전체에서 내가 맡은 일이 어느 단계, 어느 위치에 해당하는지를 반드시 보고, 그 일을 끝낸 다음엔 안 해본 일을 하면서 경험을 채워나가라고 조언합니다. ‘내가 지금 하는 것’만 하다 보면 결국 그것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전체를 볼 줄 아는 능력을 키우는 게 답입니다.”
넘어서다: 명예이자 굴레, ‘홍일。’
- 1990년대 여성이 거의 없던 분야로 간다는 느낌은 어땠나요?
“당시 건축은 남자의 직업 그 자체였어요. 여자는 결혼하면 그만둬야 할 때였고요. 불이익이 분명히 있겠다는 생각은 하고 들어갔죠. 남자 후배가 들어와도 제가 여자이기 때문에 3년 동안 커피 심부름, 복사, 경리 업무를 비롯한 막내 일을 했습니다. 여자는 저 하나니까 온갖 남자들이 다 복사를 시켰죠. 그러면서 본업도 했습니다. 어떨 때는 너무 속상해서 화장실 가서 울고, 눈물 닦고 다시 들어가서 ‘두고 보자’하고 일하기도 했어요. ‘야근은 기본, 철야는 필수’인 업계였기 때문에 밤 새고 퇴근하면 온 몸에 (남직원들의) 담배 냄새가 뱄습니다.”
- 어떻게 버틸 수 있었나요?
“여자보다는 동료라는 이미지를 보여줘야겠다 생각해서 치마를 아예 안 입었어요. 그 시대는 ‘어쨌든 여자는 안 된다’는 인식 때문에 고과나 진급도 누락시키던 때였으니까요. 그러한 남자들의 세계에 제가 온 것이었기 때문에, 여자를 그냥 그렇게 보는 게 그들의 생리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나 자신을 증명해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일했습니다. 늘 긴장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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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저는 직장에서 집이나 아이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또 PM으로서 분위기상 유흥업소에 같이 가서 응대를 안 할 수도 없었죠. 가고 싶지 않았지만 남자 중심의 문화라 어쩔 수 없던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건축학과에 여학생이 더 많고 현장에서 일 죽어라 하는 여자 소장들도 많은데 임원은 별로 없어요. 왜 이렇게 인색할까요? 앞으로는 많아지겠죠.”
- 여성의 리더십을 둘러싼 편견에는 어떻게 대응했나요?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상대에 대한 배려를 저만의 리더십으로 보여줬습니다. 인정받기 전까지는 철저히 가렸더라도, 관리자부터는 정확하게 자신만의 색을 보이는 게 맞습니다. 제 경우엔 관리자와 임원부터는 ‘여자’를 보여줘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장이 딱 되고 나서는 치마를 입었거든요. 다른 남자 관리자와는 달리 팀원들을 배려하기도 했고요. 예를 들어 윗사람이 안 가면 다 같이 퇴근 못 하던 분위기에서 저는 ‘나는 남을 테니까 너네는 가서 자기계발을 하라’고 했어요. 일에는 ‘선택과 집중’을 하자고요. 일만 시키는 게 아니라 함께 일하면서 대안과 방향성을 주는 임원이라 다른 임원들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빛나다: 첫 발자국을 남긴 여자 선배
- 롤모델로 삼았던 여자 선배가 있었나요?
“(돌아보니) 롤모델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최초로서 하나씩 만들어 갔어요. 남자들의 세계에서는 임신한 사람도, 결혼하고 계속 다니는 여자 직원도 제가 처음이었거든요. 결혼식 전날까지 철야했던 것도, 출산 병원을 회사 도보권으로 잡았던 것도 ‘나도 할 수 있어, 결혼한다고 해서 여자가 꼭 일 그만두는 건 아니야’를 보여주려고 그랬던 거예요. 그만큼 설계사무소에서는 임신한 여성이 일한다는 걸 상상하지 못했을 때였어요. 임신 중에 한번은 사장님이 ‘너는 배가 나와서 도면이나 제대로 그리겠냐’ 하더라고요. 그때는 제도판에서 그릴 때니까요. 그래서 제가 ‘배 들어가게 개월 수에 맞춰서 제도판 좀 깎아주세요’라고 했어요. 오기로 끝까지 했고, 출산 후 100일 뒤에 돌아왔어요. 사장님도 저를 인정하신 거죠. 나중에 집으로 꽃다발이랑 금일봉도 주시더라고요.”
- 이 분야를 꿈꾸는 후배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꿈과 직업은 다릅니다. 처음에는 직업부터 시작해야 해요. 꿈을 바로 이룰 순 없어요. 예를 들어 ‘나도 안도 다다오 같은 건축가가 돼야지’라는 꿈으로 건축과에 왔다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선 직업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꿈과 직업은 느낌이 다르죠. 꿈은 행복이고 직업은 스트레스잖아요. 직업으로서의 스트레스를 견뎌야 꿈을 향해 갈 수 있습니다. 그만큼 ‘내가 견딜 수 있나’를 스스로 결정하고 그 다음으로 넘어가야 됩니다. 다만 스트레스 속에서 자기 스스로 배워야죠. 저도 처음 설계사무소에서 일할 땐 ‘내가 공부하는데 돈 주네’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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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에서 3년, 5년, 7년, 10년 이렇게 단계별로 계획을 가지고 넘어가길 권하는데, 처음 3년은 무조건 공부하는 자세로 무엇이든지 다 해봐야 합니다. 건축가라면 그렇게 내 것을 다져가면서 꿈을 향해 나가라고 하고 싶어요.”
- 어떤 선배로 남고 싶나요?
“멘토 역할을 할 때 뿌듯하더라고요. 한번은 학생이 ‘교수님은 멘토링할 때 빛이 난다’고 했는데, 그때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깨달았어요. 멘토를 자처하는 이유는, 예전에 제가 학교 다닐 땐 ‘네가 고생해서 알아봐라’, ‘너도 고생해서 여기까지 와야 돼’하는 문화였거든요. 선배들이 하나 툭 던져주는 것을 알아내는 일도 하나의 배움이겠지만,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그때는 또 인터넷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만약 선배가 조금 팁을 주면 굉장히 쉬워지는 거예요. 내가 길잡이를 해주면 젊은 후배들이 빨리 나아갈 수 있겠구나, 나를 뛰어넘을 수 있겠구나 다짐했습니다. 갖고 있는 것을 나누기 위해 멘토 역할을 합니다.”
꿈꾸다: 또 다른 10년, 내 안의 나를 따라가기
- 이토록 오랫동안 건축을 해오신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건축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습니다. 매번 새로운 문제를 만나지요. 건축주에 따라 요구 조건이 다르고, 땅의 모양이 같은 경우도 거의 없어요. 지역의 특성, 각 지자체의 법규와 기준도 다릅니다. 매번 새로운 조건 속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최적의 안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저는 정말 좋아요.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건축 설계를 하면 머리가 쉴 틈이 없어 늙지도 않는다’고 말하곤 합니다. 늘 새로운 생각과 도전을 요구하는 분야라서 30년 넘게 이 일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 앞으로 해보고자 하는 일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2년쯤 전부터 저출생·고령화 도시 세부시설과 관련해 자문 요청이 오기 시작했어요. 어머니가 낙상해 고관절 부상을 입은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고령 친화 쪽에 끌리게 됐습니다. 지금 고급 실버타운이나 저소득층 임대주택과 비교하면 중간이 없거든요. 베이비붐 세대의 발병을 늦추고 경제에 오래 기여할 수 있도록 선순환을 이끄는 공간을 만들고,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원래 살던 곳에서 나이들어 가는 것)’를 위한 정책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간호사가 되려던 꿈이 결국 사람을 돌보는 공간으로 운명처럼 이어진 것 같습니다. 생각한 것이 언젠가는 이뤄지는 것 같아요. 결국 내 안에 있는 것을 나 스스로가 따라간다고 봅니다.”
- 새 도전을 앞두고 기분은 어떤가요?
“다음 10년이 너무 설레요. 당연히 두렵기도 하지만, ‘내 안에 있는 나’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안에 있는 나에게 질문하고, 선물을 주고, 행복을 주는 일을 자기 자신이 해야 합니다. 이 도전에서도 역시 저 스스로에게 ‘할 수 있어, 그동안 해왔잖아’라고 북돋아주고 긍정적인 마음을 주고 있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건축이듯이, 저도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니까 너네는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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