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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10-28 10:18 조회 1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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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기억 매년 엄마는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나는 이 여정에 매번 동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한 일정에 맞추어 동행하려고 한다. 그렇게 며칠 전 대구에 다녀왔다. 인천을 떠나 동대구역에 내려 영천행 열차를 탔다. 하차 후에는 택시를 타고 할머니가 계신 산소로 향했다. 그런데 매번 산소로 향할 때 엄마가 하는 행위가 있다. 택시 타기 전 인근 시장에 들러 소고기 10만 원치를 사는 것이다. 이 고기를 산소 오르는 길에 보이는 평평한 집 마루에 놓고 오는 것이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소고기를 샀고, 택시를 탔고, 산소 오르는 길에 소고기를 그 집에 놓았다. 그런데 올해는 소고기를 놓고 오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소고기를 놓고 가려는 순간 그 집의 어르신과 만나게 된 것이다. 여러 번 동행했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이다. 그분께서는 처음엔 엄마를 못 알아보시다가 이름과 사정을 듣고는 눈물을 흘리며 와락 엄마를 가슴에 끌어안는다. 한 걸음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90이 넘은 할머니가 80으로 향하는 엄마를 끌어안는 장면은 무엇인가 낯설면서도 짠하게 다가왔다.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차 시간이 늦어질 수 있어서 정중히 인사하고 그렇게 다시 택시에 올라타 영천으로 향했다. 사연은 이렇다. 먹을 것이 없었던 소녀 시절, 밥을 굶고 있던 엄마에게 당시 형편이 나쁘지 않았던 그분이 자신의 도시락을 조금만 먹은 후, 여러 번 엄마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엄마는 굶주리며 살던 때, 도움을 받은 고마움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매년 소고기를 사서 그 집 앞에 놓고 갔던 것이다. 오늘은 다행히 그분이 집에 계셔서 이렇게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누군가의 심장을 오래도록 붙잡는 기억(경험)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만화 <서울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인물의 기억 이런 생각을 하면서 KTX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싣고 만화가 해성의 <서울행방불명>(접는선, 2026)을 읽었다. 이 텍스트는 같은 반 학생의 괴롭힘과 부모님의 이혼, 학업에 대한 강요 등으로 집을 떠나야만 했던 청소년들이 공동의 거처를 마련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다. 어른의 입장에서는 이 아이들이 위태롭게 보일 수 있으나, 자발적으로 가사 노동을 분담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뜰하게 살아간다. 텍스트 속 아이들에게 이 공간은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이자 낙원으로 보인다. 그들에게 이곳은 "낡고 조악한 건물의 소꿉장난 같은 집이지만, 어쩐지 안심"되는 장소이다. 그러니 이곳을 아이들의 유토피아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이곳에 도착해서야 아이들은 편안한 숨을 쉰다. ▲  〈서울행방불명〉 표지 ⓒ 접는선 아이들은 이 공간에서 돈독하게 살아간다. 이 끈끈함을 유지하게 해주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억으로 인해 가능했다. 등장인물 '여로'에게 있어서 학창시절 가장 친하게 지냈던 '민지'와의 기억은 또 다른 등장인물 '박하얀'을 의무적으로 책임지게 한다. 민지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던 학생으로 같은 학년 아이들의 거짓 소문으로 힘겹게 생활한다. 결국엔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전학 가게 된다. '여로'는 그런 민지를 기억하면서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민지와 사정이 비슷한 박하얀을 옆에서 돕는다. 등장인물 '지우'의 기억은 또 다른 인물 '유월'과 엮여 있다. 지우 역시 학창 시절 때 잘 적응하지 못했다. 재미도 없고 성격도 좋지 않다. 하지만 친구 유월이 다가와 준 덕분에 학창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 "유월이 너가 친구 안 해줬으면 나는 진작 자살"했을 것 같다는 그의 고백에는 적응할 수 없었던 그 시절의 괴로움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유월 덕분에 삶을 다시 살 수 있었으니, 지우에게 유월은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다. "재미가 있지도, 성격이 좋지도 않은 나랑 친구 해줘서 고맙다고... 어떻게 갚아야 할까" 친구의 도움으로 인해 삶을 지킬 수 있게 된 지우는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지 유월에게 묻는다. 유월은 이 대답에 "나한테 갚지 말고, 다음에 너 같은 애 만나면 그 애"들을 챙겨 달라고 스치듯이 말한다. 지우는 이 말을 흘려듣지 않고, 이른 시일에 실행한다. 방황하는 아이들을 자신의 집에서 아무런 대가 없이 머무르게 한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히 하면서 자기 또래의 아이들을 돌보게 된다. 이런 상황이 가능했던 것은 모두 소중한 기억 때문이다. ▲  〈서울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위에 왼쪽부터 여로, 박하얀, 나루, 이수, 우주 아래쪽 왼쪽부터 이수, 유월 ⓒ 접는선 이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독자들은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던 기억이나, 자신을 일으켰던 기억이 타인을 살릴 수 있게 만든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게 지우는 이혼 후 외국으로 떠난 아버지의 도움으로 살게 된 재개발지역 옥탑방 아파트 전셋집에서 이수, 나루, 하얀, 여로, 우주에게 따뜻한 장소를 제공한다.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돕니다. 과거에 지우를 도와주었던 유월도 상황이 바뀌어 이 공간에서 도움을 받는다. 기억이 만드는 '손'의 기적 만화가 해성의 이 텍스트가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라면, 캐릭터 지우는 작가의 소망을 담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를 통해 사회가 정한 규약이나 틀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당신은 이곳에서 충분히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한다. 어른의 도움이 아니어도 선한 마음이 있는 동료의 도움으로 힘든 나날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듯하다. ▲  〈서울행방불명〉의 ‘손’ 연출과 ‘원탁’ 연출. 만화가 해성은 이런 연출을 통해 칸과 칸 사이에 감정을 불어넣는다. ⓒ 접는선 이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만화가 해성은 여러 연출을 사용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손' 이미지다. 눈 오는 날 계단이 많은 지우의 집에 올라가다 유월이 미끄러졌을 때 유월의 팔을 향해 내밀어지는 지우의 손 연출이 그렇고, 유월이 기절했을 때 내민 지우의 손이 그렇다. 아이들이 바다를 보기 위해 인천으로 놀러 갔을 때 많은 관광객 사이에서 조심하라며 동료의 손을 끌어당기는 장면도 그렇고, 여로에게 의지하며 살았던 하얀이가 힘껏 여로의 손을 잡아당기는 장면도 그렇다. 아이들은 서로 그렇게 손과 손으로 서로를 챙겨준다. 집이 없던 아이들의 공동체를 책임졌던 지우가 미성년자 신분으로 담배와 술을 대리 구매하다 경찰에 잡혀 곤란한 상황에 놓였을 때, 육각형으로 칸을 연출해 머리를 맞대며 해결책을 찾는 장면 역시도 곁에 있는 동료의 우정이 가볍지 않음을 만화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 끈끈함은 갑작스럽게 공간이 사라지면서 유지되지 못한다. 이 사건으로 더는 공간을 유지할 수 없게 된 지우가 아버지가 있는 미국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흩어진다. 안타깝게도 그 이후 지우는 미국에서 적응하지 못해 여러 번 자살 시도를 한다. 이 과정에서 팔목에 피가 흐르는 것을 부여잡게 되는데, 이것도 그 손의 쓸모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읽힌다. 이처럼 만화가 해성은 상징적인 손의 연출로 소외된 존재들의 우정을 다룬다. 서정적인 손의 정서를 통해 연대적 의미를 강조한다. 기억의 의미를 생각하며 이런 생각을 쏟아낼 때 즈음에, 서울행 KTX 열차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60년 전 밥을 얻어먹었던 시절의 고마움을 잊지 못하는 소녀의 기억은 만화가 해성에 의해 재구성된 <서울행방불명>의 인물이 경험했던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을 고마운 감정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서울행방불명>의 '손길'은 텍스트 속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감정의 형태로 전염된다. 이 만화를 읽고 나는 어떤 기억을 누군가에게 어떻게 전달했는지 생각하게 된다. 타인에게 나쁜 기억만을 전달한 것은 아닌지 후회하기도 한다. 이 만화를 읽고 나면 당신도 자연스럽게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지도 모른다. 눈이 펑펑 오는 날 지우의 집으로 향하는 유월의 발걸음이 담긴 이 만화를 곧 다가올 겨울에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 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이 평론집으로 2023년 5회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수상했습니다. 바다이야기게임 그밖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2021)과 「좋은 곳」(2022)과 「무제」(2023)를 발표하면서 만화평론을 시작했습니다. 분에 삶을 다시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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