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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10-28 08:34 조회 15 댓글 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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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에노스 아이레스여 안녕> 스틸
ⓒ 찬란
'훌리오'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구두 가게를 운영하며 일을 마친 후엔 친구들과 동네 탱고 밴드를 함께 한다. 그는 탱고 연주의 핵심인 반도네온 담당이다. 이혼 후 노모와 딸과 함께 살지만, 밴드 활동 덕분에 외롭거나 심심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경제 위기는 그와 친구들을 엄습한다. 이 나라에 더는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훌리오는 이민을 준비한다.
친척이 사는 독일 이주와 정착을 위한 준비로 가게와 집도 내놓는다. 차를 팔아 비행기표 살 돈을 마련할 계획이다. 그러나 초보 택시 운전사 '마리엘라'가 훌리오의 애마를 들이받으며 계획에 차질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정부는 은행 계좌를 강제로 동결해버린다. 새 출발을 위한 자금은 은행에 묶여 출금할 수 없다. 새로 사귄 남자친구 때문에 떠나기 싫다는 딸의 투정도 골칫거리다. 과연 희망이라곤 찾을 수 없는 조국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너희가 탱고를 아느냐? 인생 음악으로 재정의하는 탱고
영화는 탱고로 시작해 탱고로 끝난다. 한국 관객에게 탱고란 어떤 이미지일까? 남녀가 정교한 동작으로 짝을 맞춰 정열적이면서도 세련된 무도장에서 척척 합을 맞추며 추는 도회적인 춤사위, 사교춤의 최상위 유형쯤의 위상일 테다. 뭔가 좀 고급스럽고 우아한 느낌이랄까? 영화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알 파치노의 열연이 돋보이던 추억의 명작 <여인의 향기> 속 인상적인 장면을 연상할 법하다. 근사한 재즈바에서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연주를 상상할 수도 있겠다.
작품 속 탱고는 우리가 떠올리는 그것과 같고도 다른 질감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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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적하기보단 밀고 당기듯 유려한 선율에 실린 연애의 단맛과 쓴맛, 정열과 애조가 근사하지만, 단지 춤과 유흥을 위한 댄스에 그치지 않는, 인생이 녹아든 진정한 '어른의 맛'으로 다가온다. 20세기 초반 부에노스 아이레스 밤거리 어디서나 즐길 수 있도록 탄생한 이 매혹적인 장르는 그 탄생부터 전성기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탄생케 한 나라와 뗄 수 없는 관계다.
탱고는 영화에서 여러 장소를 통해 선보인다. 처음 공연은 쇠락한 동네 클럽 로비 무대다. 전기세 낼 돈도 만만하지 않은지 손님을 끌어모을 간판조차 한쪽 조명이 지직거린다. 훌리오와 동료들은 각각 반도네온,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보컬의 실력도 아마추어 수준이 아니지만, 그들이 받은 공연비는 고작 중남미식 파이 '엠파나다' 12개다. 그나마 실력을 인정받아 유럽으로 떠난다는 보컬이 먼저 자리를 비운 바람에 남은 4명에게 3개씩 몫이 늘었다.
당장 보컬이 빠지자 그나마 자부심으로 삼던 공연도 못할 판이다. 동료 중 한 명이 기막힌 발견을 해낸다. '마에스트로' 칭호가 붙은 전설의 탱고 가수 '토르토렐라'를 찾아낸 것. 유명 가수는 옛 영광을 뒤로 한 채 양로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할 만큼 몰락한 상태였다. 그를 보컬로 영입한 밴드는 심기일전해 연습에 매진한다. 신입의 명성 덕분에 그들은 근사한 피로연 무대에 서며 제대로 보수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훌리오의 머릿속은 벌써 독일에 가 있다.
정든 고향을 떠난다는 것, 배신과 탈출의 이분법을 넘어
▲ <부에노스 아이레스여 안녕> 스틸
ⓒ 찬란
밴드가 본궤도에 오르자 훌리오의 심경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 이 나라를 떠나고자 오래 준비했건만, 자꾸만 미련이 생길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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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밴드 동료들에게 제대로 고백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친구들 상황도 좋지 않아 더 망설여진다. 한 친구는 실직한 걸 감추다 들통나 아내에게 쫓겨났고, 융통성 없는 친구는 이민을 도망이라며 맹렬히 규탄한다. 자신들이 모셔온 '마에스트로' 역시 밴드를 통해 삶의 활력을 간신히 회복한 상태라 찔린다.
처음엔 지독한 악연으로 시작했지만, 성깔이 여간 아니지만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긍정적인 마리엘라와의 만남도 그를 갈등하게 만든다. 자기만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홀로 장애가 있는 아들을 책임지며 낙천적인 면모를 잃지 않는 그녀와 거듭된 마주침은 괜히 부끄럽기만 하다. 마음 약해지면 안 된다는 위기감에 훌리오는 계획 중단을 막기 위해 온갖 연줄까지 동원한다. 강직한 친구는 거리 시위에 나가 항의하는데 자신은 부패한 정치권에 줄을 서는 꼴이다.
텔레비전에선 "울지 않으면 굶주리고 정직하면 바보인 세계"를 규탄하는 시위대 구호를 방송한다. 국립은행이 '뱅크런'을 막기 위해 강행한 출금 제한 조치는 그렇지 않아도 인플레이션에 신음하던 시민들의 삶을 파탄으로 이끈다. 상.을 약탈하는 시위대는 명품이나 귀금속이 아니라 식량을 옮긴다. 정부가 시위대를 폭도로 몰며 강경 진압하지만, 정작 그들이 생존 위기에 처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30년 전부터 계속 망해왔다는 푸념은 기나긴 절망을 상징한다.
제대로 개런티를 받기 위해 밴드는 부패 정치인 파티에서 공연을 수락한다. 하지만 강직한 바이올린 연주자는 갈등하다 악기를 두고 시위에 동참한다. 다른 이들 기분 역시 편치 않다. 멋들어진 공연을 펼치지만, 화려한 행사 분위기에 맞지 않은 구성진 선율과 퇴행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듬뿍 담은 신랄한 가사가 강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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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에선 경찰의 폭력이 도를 더해간다. 2001년 전국을 뒤덮은 시위 풍경과 기득권층의 파티 현장이 극명하게 대비되며 진한 애조를 남긴다.
아르헨티나와 한국 현대사의 기묘한 평행이론
▲ <부에노스 아이레스여 안녕> 스틸
ⓒ 찬란
탱고는 20세기 초, 당시 서구 열강 바로 아래 부국으로 떠오르던 아르헨티나 대도시에서 탄생했다. 경제성장 과실을 집중적으로 누렸던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도시가 팽창하고 치안이 정비되어 문화와 예술이 꽃핀다. 안전한 밤거리에 퇴근 후 유흥을 찾던 도시인들의 도락으로 탄생한 탱고는 이후 1930~195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한다. 세계대전의 참화를 비켜난 아르헨티나의 부가 절정에 달하던 시기다. 노동과 복지에 비교적 친화적이던 페론주의 시절이기도 하다.
유명한 '에비타'가 바로 후안 페론 대통령의 영부인 '에바 페론'이다. 친노조-친여성 정책을 펴며 복지를 확충하고 국내 기업을 보호한 페론주의 시대는 군부 쿠데타로 끝난다. 이후에도 군부가 반복적으로 정치에 개입했다. 정적인 페론주의를 말살하기 위해 군사정권은 주된 지지층인 여성과 도시노동자의 권리를 빼앗고 무차별 외자 유치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면화한다. 그 결과 부가 소수 기득권에 집중되고 빈부격차가 극심해진다. 군부의 의도적 나라 망치기였다.
영국을 도발한 포클랜드 전쟁도 독재정권의 민심 현혹 목적이었지만, 참패로 끝났다. 실정을 거듭하던 군부가 후퇴하고 민간정부가 복귀했지만, 군사정권은 단 한 가지는 성공했다. 건실하던 국민경제를 외부 의존형 좀비 경제로 퇴행시킨 것. 뿌리 깊은 아르헨티나의 경제난은 그렇게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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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으로 한국 보수언론이 '포퓰리즘'의 예시로 단골로 써먹는 아르헨티나 사례는 실제론 페론주의보다는 무분별한 신자유주의 정책 실패에 더 책임이 있었던 것.
이후 페론주의와 보수정당이 번갈아 집권하며 현재에 이르렀지만, 역설적으로 그나마 경제가 안정된 시기는 대개 포퓰리즘이라 비난받는 페론주의 계열 정부였던 기묘한 상황 가운데 우리와 마찬가지로 1997년 IMF 구제금융에 손을 벌렸던 아르헨티나의 2001년 대규모 시위가 영화 속 핵심 배경이다. 훌리오가 은행에서 예금을 돌려달라 항의하다가 쫓겨나는 장면은 실제로는 경비가 몰려든 시민들에게 총까지 쏠 정도로 훨씬 더 심각했다. 영화 속 풍경은 약과다.
격동의 시대상을 솜씨 좋게 버무려낸 탱고 찬가
▲ <부에노스 아이레스여 안녕> 스틸
ⓒ 찬란
물론 이 영화는 정치 고발 시대극이 아니다. 하지만 탱고라는 음악의 흥망성쇠와 아르헨티나 현대사의 굴곡은 기묘하게 연동한다는 .을 굳이 숨기지도 않는다. 실제 당시 거리 시위 자료 영상과 절묘하게 결합한 (의도적으로 2001년 당시를 재현한) 드라마 부분이 현장감을 극대화한다. 거친 캠코더 동영상 화면 속 생존권 투쟁 vs. 부패한 정치인과 기득권 집단의 호화 파티장의 대조는 우리가 통속적인 신파로 단정해버리던 탱고가 가진 시사성을 조명하는 장치다.
우리는 탱고를 흔히 춤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굳이 영화 속 곡의 가사를 일일이 번역해 삽입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건, 그만큼 음악적으로 탱고가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민의 삶을 명과 암을 통틀어 농축하는 음악 장르이기 때문이다. 마치 서정적으로만 들리는 프랑스 샹송이 알고 보면 신랄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것처럼. 미셸 폴나레프의 "Qui à tué grand maman?(누가 할머니를 죽였는가?)"가 '오월의 노래 3'으로 번안된 사례를 떠올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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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 탱고 가사는 우리의 선입견을 아득히 초월하는 삶의 비애와 세상의 모순을 통렬하게 지적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러면서도 격렬하고 열정적인 춤사위가 벌어질 때 마냥 삶의 생동을 포기하지 않는다. 훌리오가 절망뿐인 조국에 대해 번민할 때, 자신은 굶더라도 자식은 절대 굶기지 않으려는 마리엘라의 의지가 빛날 때, 교사인 '아틸리오'가 오래전 이민을 결심했다가 끝내 국가의 미래인 제자들을 버리지 못하고 잔류했던 순간이 탱고의 원천이 되어준다.
물론 작품 배경에서 25년이 지난 현재도 아르헨티나 상황은 썩 밝지 못하다. 인플레이션은 여전하고 세계적 식량생산국에서 대도시 빈곤층의 기아가 여전히 문제인 나라, 지금도 이민 행렬이 줄을 잇는 땅에서 버티는 게 옳은 판단일까? '한국이 싫어서' 외국으로 탈출을 꿈꾸는 청년 세대의 비명이 팽배한 현재 한국에서 이 영화 속 풍경은 '국가란 무엇인가?'에 관한 복잡한 질문을 여러 갈래로 던진다. 가볍게 출발하더라도 보고 있자면 。。 남의 일이 아니다.
영화는 복잡한 사회문제에 해답을 내놓을 생각은 없다. 다만 몇 가지 상징적 메시지를 슬며시 던지며 보는 이로 하여금 성찰하게 돕는다. 그들이 다시 의지를 북돋우며 재기를 다짐하는 동네 클럽의 이름을 유심히 살펴보자. 여전히 간판의 전기는 오락가락하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떠나지 않고 삶의 고락을 명곡과 춤사위로 달랜다. 서로 돕는 친구와 이웃, 후속 세대의 낙천을 잃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사람은 살아가게 마련이란 교훈이 탱고 선율에 실러 흐른다.
<작품정보>
부에노스 아이레스여 안녕
2023 독일/아르헨티나 드라마
2026.10.21. 개봉 94분 12세 관람가
감독 게르만 크랄
출연 디에고 크레모네시, 마리나 벨라티
수입/배급 찬란
공동제공 소지섭, 51k
size:9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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