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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10-21 16:21 조회 3 댓글 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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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넘게 산을 오르고, 국경을 넘고, 야간 버스를 타고 남미 4개국을 바삐 돌았다. 일정 동안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대륙이 거대해서 50일로는 겉핥기도 못 한 기분이다.
주로 여유롭게 여행하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다녔다. 이번 남미 여행의 종착지가 파타고니아이기 때문이다. 아웃도어나 트레킹을 좋아하면 누구라도 한번은 꿈꾸는 지구 최남단의 땅! 남미 땅을 밟았는데 못 보고 가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미리 비행기 표를 예약해 두었다. 지구 반대편까지 왔으니 이제 좀 가까워진 줄 알았는데, 칠레 산티아고에서 다시 3시간 반 가까이 비행기를 타고 나서야, 파타고니아 관문도시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른 관문도시도 몇 있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장비와 식량을 정비하며 트레킹을 준비한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차를 타고 약 2시간 달려 국립공원 입구에 닿는다. 얼마나 멋진 풍경을 보여 주려고 이렇게 가는 길이 멀고도 먼 건지! 한 달 넘게 쉼 없이 등반과 관광을 지속해서 몸도 마음도 꽤 지쳐 있어서일까. 괜히 무리해서 일정에 넣었나 싶은 마음이 들던 찰나였다.
도로를 달리는데 저 멀리 어마어마한 돌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에서 수 백 번 봤던 바로 그 풍경이다. 그런데 사진과는 감동의 깊이가 달랐다. 아직 저 멀리 있는데도 사진에서 보는 것보다 열 배는 더 가깝게 보였다.
"역시 오길 잘했다!"
산행 시작 전에 이 정도 풍경이면 대체 저 속에 들어가면 어떤 감동을 느낄 수 있을지,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산으로 향하는 도로에는 과나코guanaco가 뛰어다녔다. 사슴처럼 생겼지만 낙타과에 속하는 남미의 야생동물이다. 황홀한 풍경에 난생 처음 보는 동물까지, 진정한 모험이 시작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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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에 최소 220달러가 넘는 캠핑장
파타고니아는 하나의 특정 도시나 국립공원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라, 남아메리카 남단의 넓은 지역을 일컫는 지명으로,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걸쳐 있다. 칠레 쪽에는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이 있고, 아르헨티나 쪽에는 엘 칼라파테와 엘 찰텐을 중심으로 로스 글라시아레스국립공원의 빙하와 피츠로이산군이 자리한다. 우리는 칠레 파타고니아에서 여정을 시작했다.
토레스 델 파이네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대개 전망대까지 당일 트레킹을 하거나 가장 유명한 W 트랙을 걷는다. W 트랙은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남단을 알파벳 W 모양으로 도는 코스로 보통 3~4일 걸린다.
하지만!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비행기를 3번이나 타고 왔는데! 일부만 걷고 떠나는 것은 아무래도 아쉬웠다. 그래서 국립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도는 O 서킷Circuit을 걷기로 했다. 약 140km에 이르는 장거리 트레킹 코스로, 보통 8일 정도 잡는다. 이 일정을 우리는 5박6일로 압축했다. 일반적으론 하루에 10~20km 정도 걷는데 우리는 앞뒤 일정 일부를 하루에 몰아서 걸었다.
시간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사실 파타고니아의 캠핑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남동부에 있는 캠핑장은 1박에 최소 220달러(약 30만 원)가 넘었다. 다른 대체 캠핑장은 운영하지 않았다. 하루 캠핑에 이 정도 금액을 써본 적이 없었다. 당황스러운 금액. 그래서 대신 1박에 5만 원 정도인 저렴한 북서부 캠핑장에서만 5박 하는 일정으로 짰다. 하루에 30km 이상 걸어야 하는 첫날과 마지막 날 일정만 빼면 특별히 힘든 。은 없을 것 같았다. 걸은 만큼 돈 버는 셈이니까 의욕도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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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아무리 힘들어도, 예약보다는 쉬울 거란 생각도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시기는 성수기 끝자락인 2월 말, 3월 초였는데 2개월 전인데도 예약이 꽉 차 있어서 애를 먹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트레킹 코스라 6개월 전부터 예약하는 여행자들이 다수란다. 그래서 며칠 동안 수백, 수천 번을 예약 사이트를 들락날락거리면서 취소 표를 찾아 헤맸다. 표는 가뭄에 콩 나듯 한 자리씩 났다. 이를 가까스로 움켜쥐며 일정을 완성하고 난 뒤 절로 한숨 섞인 소리가 났다.
"대체 얼마나 아름답기에 이렇게 예약하기가 힘든 것일까?"
유명하다더니 아무도 없는 길, 왜?
트레킹 첫날 웰컴센터에서 시작했다. 이곳은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도 가장 붐비는 곳 중 하나다. 라스 토레스 전망대를 향하는 당일 트레커들이 이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조금 걷자 갈림길이 나오면서 일방통행이 된다. 산길의 폭도 생각보다 좁다. 양방향으로 사람들이 오간다면 자연히 길이 넓어지고 주변 식생도 영향을 받을 테니 취한 조치라 인상적이었다.
더 인상적인 건, 그렇게 유명하다더니 사람이 없다는 .이었다. 당시로선 연유를 몰랐다. 어찌됐든, 빙하에서 흘러내려오는 옥빛 강줄기와 우윳빛 호수를 내려다보며 걷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렀다. 좋은 경치가 내려다보이면 쉬었다 걷기를 반복하며 천천히 걸으니 종일 길을 전세 낸 것 같았다.
첫날 목적지는 딕슨Dickson 캠핑장. 31km 거리, 약 11시간의 대장정 길이지만, 파타고니아는 높은 위도에 위치해 여름철에는 해가 늦게 지기 때문에 어두워질 걱정은 안 해도 됐다. 그래서 더 느긋하게 오롯이 경치를 즐기며 걸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체크포인트에 도착했는데, 국립공원 직원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너희들 더 이상 못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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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Why!?"
알고 보니 트레일 주요 구간마다 통과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입산시간지정제와 똑같다. 늦어도 오후 4시에는 통과했어야 하는데, 우리는 오후 5시 반에 도착한 것. 전적으로 세부 규정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우리 잘못이었다.
그리고 미스터리도 풀렸다. 1시간 반이나 늦게 걷고 있으니 사람이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그것도 모르고 사람 없어서 좋다고 걸은 우리. 다행히 직원은 우리 같은 등산객이 종종 있다며 오늘은 여기서 캠핑하라고 했다. 혹여 우리나라 국립공원처럼 타협 없는 하산 명령을 내릴까 조마조마했다.
다음날은 당연히 일찍 일어났고, 서둘러 걸었다. 황홀한 일출을 바라보며 산행을 시작해 전날 목적지였던 딕슨 캠핑장에 도착했다. 어제 서두르지 않은 걸 뼈저리게 후회할 예술적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호수 가장자리 길게 뻗은 지형에 산장과 캠핑장이 있고, 호수 건너편에 빙하와 설산이 펼쳐져 있었다.
그레이빙하, 인생 풍경 Top3
풍경은 。. 더 거칠고 장엄해졌다. 사방에 빙하와 절벽이 나타났다. 걷고, 또 걷고, 고개를 들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나타났다. 이래서 다들 '파타고니아 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아직 놀라기 일렀다. O서킷의 진수는 3일차에 만날 수 있었다. 그레이빙하다. 인생에서 만난 풍경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절경이었다.
그레이빙하로 가려면 해발 약 1,200m의 존 가너 패스를 올라야 한다. 고개를 넘는 순간 눈앞이 확 트인다. 그리고 그 아래로 파란빛을 머금은 거대한 빙하가 끝없이 펼쳐진다. 그레이빙하는 산에서 흘러내린 작은 얼음 덩어리 따위가 아니다. 저 멀리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얼음의 강이다. 빙하 너머로는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산들이 겹겹이 이어져 있었다. 한참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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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같아선 잠시 앉아 간식도 먹고, 커피도 한 잔 마시면서 천천히 음미하고 싶었다. 그러나 고개를 넘는 순간 풍경 값을 받으려는 듯 파타고니아 특유의 바람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비구름이 몰려들며 비까지 쏟아졌다. 급하게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자연은 아름답다고 방심하는 순간 바로 본색을 보여 준다.
그동안 히말라야 에베레스트도 가봤고 알래스카, 알프스 등 여러 곳에서 많은 빙하를 보아왔는데 그레이빙하가 유독 색다르게 느껴진 이유에 대해 생각봤다. 찾아낸 이유는 빙하가 생각보다 낮은 고도에서 보인다는 것이었다. 존 가너 패스의 고도는 1,200m 정도다. 알프스나 히말라야에서 빙하를 보려면 이보다 수목한계선보다 훨씬 높이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여긴 이상하게도 숲 사이로 거대한 빙하가 내려다보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극이 가까운 남위 50도 지역이기 때문이다. 높은 위도와 차갑고 습한 기후 덕분에 빙하가 아주 낮은 고도까지 내려와 있다. 나무 사이로 갑자기 나타나는 푸른 빙하의 모습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푸르다 못해 파랗게 빛나는 거대한 얼음 덩어리 위로 구름 사이 햇빛이 비추더니, 어느 순간 빙하 위에 무지개까지 걸렸다. 한쪽에는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거대한 빙하, 그 위로는 선명한 무지개. 한 달 넘게 남미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풍경을 봤지만, 이 장면은 정말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드디어 마주한 파타고니아의 상징, 3개의 돌탑
4일차 그레이캠핑장부터는 W트랙과 만나는 곳이라 사람들이 더욱 북적이기 시작했다. W트랙은 그레이빙하, 프렌치 밸리, 라스 토레스 전망대, 이렇게 세 구간을 연결하는 코스다. 경치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한들 사람이 너무 붐비면 감흥이 덜할 것 같아 조금은 아쉬웠는데 이번에 새로운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사람이 많으면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즉, 엄청나게 멋있다.
남은 3일은 매일 매일 하이라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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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파이네 그란데 산장에서 프렌치 밸리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왔는데, 전체 트레킹 중 베스트 오브 베스트였다. 사진으로 감히 담을 수 없는 웅장한 돌벽이 360도 둘러싼 풍경이 압도적이었다. 어떤 사진도 이를 담을 수 없을 것 같다. 그저 실제로 가서 두 눈으로 봐야 그 웅장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마지막 날은 오전 2시에 산행을 시작해 라스 토레스 전망대를 구경하고 웰컴센터로 복귀하는 42km의 대장정이었다. 당일치기 산행으로도 유명한 코스다. 파타고니아를 대표하는 상징적 이미지인 3개의 암봉이 우뚝 솟은 모습도 여기서 볼 수 있다. 단 쉽게 볼 순 없다. 날씨가 변덕스럽기로 유명하다. 우리는 운 좋게 아주 잠깐 구름이 걷혀 암봉 바로 앞 호수의 푸른 기운을 살짝 느껴볼 수 있었다. 실제로 보니 거대한 화강암 봉우리가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줬다. 토레스 델 파이네란 이름도 이곳에서 유래된 것이다. 직역하면 '파이네의 탑들'이며 파이네는 원주민 언어로 푸른색을 뜻한다.
140km를 걷는 동안 단 한 번도 같은 풍경이 없다. 호수와 빙하, 숲과 초원, 거대한 산과 거친 바람까지. 날씨는 시시각각 변했고, 힘들게 걸어온 만큼 예상하지 못한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래서 특별하다. 단순히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려면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걸어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걷기 위해 쏟은 시간과 노력만큼,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한 보상을 안겨 주는 순간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남미 여행을 돌아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 길이다. 5박6일 140km. 긴 길 끝에 세 개의 거대한 탑을 마주했을 때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지금껏 산을 오르고, 길을 걸었던 건 여기에 이르기 위해서였구나'라고. 아주 오랫동안, 다시 걷고 싶은 길을 하나만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이 길을 말할 것 같다.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트레킹, 토레스 델 파이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베레스트도 가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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