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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익의 인생 공간] 도쿄 프랑스문화원
건축 설계를 하다 보면, 건물을 짓는 일이 마치 한 사람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과정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구조라는 뼈대를 세우고 외장재로 살을 입힌 뒤, 파이프와 전선을 심어 온몸에 피와 공기가 돌게 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탄생한 ‘신생아’는 저마다의 독특한 인격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어떤 건물은 조용히 동네에 스며들어 이웃과 잘 어울리며 살고, 어떤 건물은 근육질 덩치를 과시하며 골목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한다. 결국 건축가의 일이란 어떤 인격체를 만들고, 어떤 대화를 주변 건물과 나누게 할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70년의 시간을 두고 지어진 두 채의 건물이 들려주는 흥미로운 대화를 만났기 때문이다.
도쿄 프랑스문화원(구 명칭 ‘도쿄 일불학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은 계단실이다. 위아래 층을 오가는 통로에 불과한 계단실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곳의 계단은 평소에 보기 힘든 이중 나선 계단이라 그렇다. 하나의 계단 밑에 다른 계단 하나가 숨어있어, 서로 마주치지 않고 오르내리도록 설계되었는데, 방문객과 거주자가 각자의 동선을 사용하게 하려는 기능적 배려다. 하지만 저 나팔꽃 덩굴처럼 우아하게 올라가는 계단을 올려다보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다 보면, 기능적 의도는 잊고 양쪽 계단을 번갈아 이용하게 되지 않을까.
1951년 프랑스는 자국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일본인들에게 프랑스어를 보급하기 위해 문화센터를 짓기로 결정한다. 흥미로운 .은 프랑스가 수많은 자국의 우수한 건축가 대신 일본 건축가 사카쿠라 준조를 설계자로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제자로 프랑스에서 서구의 건축을 배운 사카쿠라 준조. 그는 백색의 상쾌한 외관과 독특한 버섯 모양 기둥, 그리고 이중 나선 계단 등 자신의 솜씨를 총동원한 끝에 명작 인생 공간을 지어낸다.
이중 나선 계단에 테라스 계단으로 응수
1층 로비로 들어서기 전, 한켠에 자리한 서。 ‘파사주 리브 고슈’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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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교재를 구입하고 취향을 나누는 공간인데 짙은 나무로 감싼 외관이 무척 다정하다. 냉정한 인상의 본채 건물이 품고 있는 귀여운 구석이다. 서. 이름은 ‘(파리의)왼쪽 기슭 골목’이라는 뜻이다. 주 출입구의 왼편에 위치해서? 프랑스식 유머인가? 여하튼 불과 5m 남짓한 진입로가 이름 하나로 파리의 골목으로 바뀌었다.
인격체에 빗대자면, 이 건물은 백색 양복을 깔끔히 빼입은 프랑스 신사다. 일본의 전통 정취가 밴 가구라자카 골목 너머에 자리 잡고 서서 우아한 말투로 이렇게 말을 건넨다. “자, 이것이 새로운 시대정신이다. 이곳으로 와서 합리성과 낭만이 공존하는 프랑스 문화를 누려라.” 만약 프랑스의 거장 건축가가 직접 설계했다면 패전의 우울감에 빠져 있던 일본인들에게 다소 잘난 척하는 어조로 들렸겠지만, 양국 문화를 두루 경험한 일본인 건축가를 내세운 덕분에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70년이 흐른 뒤, 늘어난 기능을 담기 위해 신관 증축이 필요해지자 프랑스는 또 한 번 일본 건축가에게 연락한다. 후지모토 소우. 구름이나 숲처럼 자연 발생적인 형태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건축가다.
후지모토 소우의 가장 큰 과제는 대선배 사카쿠라 준조의 건물과 어떤 대화를 나눌 것인가였다. 그는 정갈하고 합리적인 기존 건물 앞에 아기자기한 마을 형상의 건축물을 세워 응수했다. 마치 선배가 “자, 보아라. 위대한 프랑스의 문화를”이라고 화두를 던지자 영리한 후배는 “아, 그것 좋은데요. 그럼 거기에 정감 있는 일본 이야기를 첨가하죠”라고 화답한 셈이다.
선배가 서구에서 배워온 이중 나선 계단을 설계했다면, 후배는 테라스 계단으로 답했다. 마을처럼 작은 집 여러 채가 모여있는 신관 건물은 넓은 계단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에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스칠 수 있다. 아마 프랑스어를 막 시작한 초보라면, 이 계단에서 프랑스어 선생님을 우연히 만나 두근거리며 배웠던 회화 문장을 꺼내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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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시, 오흐부아~.”
평일 오후, 프랑스 선생님을 따라 하는 수강생들의 목소리가 마당에 울려 퍼진다. 두 건물이 손을 맞잡듯 둥글게 이어져 있어 그 사이에 아늑한 마당도 하나 생겼다. 프랑스 회화를 배경음악 삼아, 오래된 나무 그림자 밑에 앉아 두 건물을 번갈아 바라봤다. 70년의 세월을 두고 탄생한 두 인격체의 대화 덕분에 프랑스와 일본은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며 단단한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우연히 우리나라에도 프랑스 주선으로 두 건축가가 대화하게 된 공간이 있다. 서울 서대문구 합동의 ‘주한 프랑스대사관’이다. 프랑스 상품을 소개하는 행사가 열리던 어느 오후, 그곳을 찾았다.
정문을 통과하자마자 마주하는 것은 한국의 1세대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건물이다. 거대한 유럽의 범선 같기도 하고, 전통 건축의 처마 같기도 한, 압도적인 곡선 콘크리트 지붕이 공중에 떠 있다. 과거 프랑스 대사의 집무실로 쓰였던 이 건물에는 프랑스 현대건축과 한국 전통건축을 만나게 하려는 의도가 곳곳에 배어있다. 특히 여기, 건물의 출입구 부분. 전통 사찰의 누하 진입을 서구의 기둥 구조인 필로티로 재해석해 진입부를 만들어낸 .이 재미있다.
이 건물이 세워진 1960년대는 대한민국이 전쟁의 아픔을 딛고 경제 발전에 전념하던 시기다. 낙담이 희망으로 서서히 바뀌던 그때, 사카쿠라 준조와 마찬가지로 르 코르뷔지에를 사사했던 김중업은 서구의 영웅적인 조형에 한국의 미를 솜씨 좋게 결합했다. “우리 프랑스인들은 한국의 미를 이해하는 친구로 이곳에 왔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 메시지였다.
그로부터 60년이 흘러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던 2016년, 유학생과 여행 지원 등 대폭 늘어난 업무를 수용하기 위해 프랑스대사관은 새로운 건물을 의뢰한다. 이 중책을 맡은 사람은 건축가 조민석이었다. 그는 면적은 더 크게 짓되, 건축물의 존재감은 조연급으로 낮추는, 얼핏 상충되는 디자인을 택했다. 선배의 건물 뒤로는 바닥을 좁혀 날씬하게 올린 타워를 세우고, 옆으로는 기존 건물 주변을 에워싸는 건물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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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중업이 세운 거석을 돋보이게 하는 ‘병풍 건축’이랄까.
한국 구관은 1세대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
주변에 낮은 한옥만 있던 1960년대 당시엔 김중업의 건물이 독야청청 강한 존재감을 뽐냈을 것이다. 하지만 빠르게 발전한 대한민국은 주변에 알록달록한 아파트와 오피스를 빽빽하게 지어 이 건물을 왜소하게 만들었다. 조민석은 이 변화된 환경 속에서 선배의 거석을 팔 벌려 감싸안았다. 차분한 격자무늬 신관이 훌륭한 병풍 역할을 해준 덕분에 김중업 건물의 우아한 곡선은 다시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며 빛나고 있다.
대화는 ‘맞아 맞아’ 같은 맹목적인 동의만 이어지면 재미가 없다. 그렇다고 ‘그건 아니지…’ 하며 사사건건 대립만 키우면 결국 싸움으로 끝난다. 죽이 척척 맞는 친구와의 대화란, 동의와 반론이 황금 비율로 섞일 때 만들어진다. 그런 상대와 대화를 나누고 나면, 내 주장과 타인의 주장이 부딪힌 끝에 전혀 새로운 깨달음이 싹트기 마련이다.
프랑스가 타국 땅에서 수십 년의 시차를 두고 엮어낸 것이 바로 그런 대화다. 단순히 건물을 두 채 지었다는 사실을 넘어, 두 인격체가 절묘한 화음으로 대화한 덕분에 건물들 사이에 열린 마당과 광장이 생겨났다. 사람들을 초대하고 환대를 베풀 수 있는 넉넉한 사이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이 장면을 보고 있자니 개발의 방향을 고민하는 우리 도시를 향한 조언처럼 보였다. 오래된 전통 구역을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 잊혀진 땅을 어떻게 시민에게 돌려줄 것인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구의 두 존재가 대화를 나누며 시민을 위한 사이 공간을 빚어내는 지혜다.
이 훌륭한 대화 덕분인지, 굳게 닫혀 있던 프랑스대사관도 최근 문화 행사를 늘리며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다. 이달부터는 한국 작가 이배와 프랑스 작가 장-미셸 오토니엘이 조각으로 대화하는 2인전이 열린다. 이번 가을, 건축과 예술이 빚어내는 대화에 귀 기울여 보길 바란다.
조성익 건축가. 홍익대 교수이자 TRU 건축사무소의 대표 건축가다. 맹그로브 숭인 코리빙으로 한국 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공간과 삶, 그리고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책 『건축가의 공간 일기』를 출판했다.
양국 문화를 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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