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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남자 동료와 함께 차로 행사 장소에 갔다. 주차장에서 주차대기를 하고 있는데, 앞차가 여러 번 후진하다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러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동료가 "하여간, 아줌마들이란"이라고 말했다. 운전자의 성별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내뱉은 동료의 말에 '아줌마'인 나는 불쾌하면서 동시에 긴장됐다. 앞차가 실패했던 그 자리에 보란 듯이 주차했지만, 그날 행사 내내 내 기분은 영 별로였다. 장애인 남성과 공대생 여성의 연애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는 ENA드라마 <연애박사>를 보면서 불쾌하지만 반박하지 못했던 여러 기억이 떠올랐다. 바로 이 두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의 시선이 현실에서 겪은 '미세공격(microaggression, '미묘한 차별'로 번역되기도 하나, 이 글에서는 주요 연구자들인 데럴드 윙 수와 리사 베스 스패니어만이 쓴 책을 번역할 때 사용한 용어인 '미세공격'을 사용한다)'과 매우 유사했기 때문이다. 고(故) 안판석 감독의 유작인 ENA 드라마 <연애박사> 속 두 주인공인 민재(추영우)와 유진(김소현)은 둘 다 '소수자'다. 민재는 장애가 있는 남성이고, 유진은 공대에서 극히 소수인 여성의 자리에 있다. 이 둘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태도는 지극히 평범한 듯하면서도 이들의 마음에 은근히 생채기를 낸다. 그리고 두 주인공은 이에 적응한 듯 무심히 지내면서도 때때로 불편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연애박사>에서 주인공들은 어떤 종류의 미세공격을 받는지 또 이것이 인물들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피려 한다. 장애인을 향한 말 ▲  ENA <연애박사> 스틸 컷. ⓒ ENA 주인공 민재는 장애인이다. 성장기에 골육종을 앓은 그는 암을 제거하기 위해 오른쪽 다리도 함께 제거했고, 동시에 오랫동안 키워 온 수영선수로서의 꿈도 내려놨다. 그 후 10년. 명문 공대의 박사과정생으로 있는 그는 의족으로 걷고 뛰는 삶을 유지하지만, 종종 의족착용에 따르는 후유증에 시달린다. 이런 민재는 연구 분야에서 나름 '유명인'이다. 다른 학교를 졸업하고 민재네 연구실에 새로 들어온 세진(임진효)은 학교를 둘러보러 온 날 민재와 이런 대화를 나눈다(2회). 오션파라다이스릴게임 "골육종 때문에 절단 수술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세진) "아, 그런 것도 소문났어요? 동네방네 대전까지?" (민재) "뭐, 소문이라기보다는 원래 좀 유명하시잖아요?"(세진) "뭐로 유명한데요? 장애인 연구자라서 유명한가?" (민재) "뭐, 그런 것도 있지 않을까요?" (세진) 세진은 이후 민재의 여러 모습을 '다리 때문'이라고 해석하며 바라보곤 한다. 장애를 민재가 가진 정체성의 전부로 여기고 행하는 이런 행동들은 일종의 '미세공격'에 해당한다. 미세공격은 의도와 상관없이 상대방에게 위해를 가하는 언어적 비언어적 개인 간 교류다. 눈에 띄는 차별이나 폭력처럼 한 번의 공격을 하는 건 아니지만, 미세공격이 반복되면, 조금씩 조금씩 마음과 관계를 갉아먹는다. 미세공격은 보통의 선한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저지르는 경우가 많아 알아차리기조차 쉽지 않다. <연애박사> 속 사람들도 이런 잘못을 저지른다. 유진의 가족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유진의 남자친구로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면 된다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2회). 유진의 학부 시절 교수 미란(류경인)과 유진의 오빠 유성(김민석)은 유진이 친구 수빈에게 민재와 소개팅을 주선했었다는 말을 들은 후 이렇게 반응한다. "근데, 그 장애인이라는 사람 소개팅을 주선해?" (4회, 미란) "야 그래도 무슨 그런 사람이랑 소개팅을 해준다고 그러냐. 정신없는 기지배가." (5회, 유성) 등장인물들은 이런 말을 '당연하다는 듯' 주고받는다. 이 말이 민재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겠지만, '장애인은 애인으로 부적합하다'는 전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런 분위기 자체가 미세공격이다.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 ▲  ENA <연애박사> 스틸 컷. ⓒ ENA 유진은 연구실에서 유일한 여성이다. 학부 때 의류학을 전공했지만, 대학원은 기계과를 택한 유진은 무척 솔직하고 당당한 여성이다. 낯선 전공에 도전하면서 "저 수학 부전공했고, 잘한다. 나름 기계도 좋아했다"며 스스로를 옹호하기도 하고, 민재에게 3번이나 '좋아한다' 고백해 사랑을 쟁취하기도 한다 릴게임정글북 . 하지만 연구원들은 유진을 연구원으로 동등하게 대하기보다 여성으로 바라보거나, 은근히 무시하고 흥밋거리로 대한다. 유진이 연구실에 관심이 있자, 연구실을 구경시켜 주며 유진에게 로봇을 힘껏 내리쳐보라고(여성인 유진이 로봇을 부술 만큼 힘이 없다고 생각한 건데, 이 일로 로봇은 부서진다) 하는데, 미세공격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연구실에 합류한 후에도 유진은 종종 업무에서 소외된다. 유진이 "저는 무얼 하냐"고 물어보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일단 논문 보면서 공부해 두라"는 것이다. 이는 비전공생인 유진을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비전공생인 여성은 잘 모를 것이라는 전제가 깔린 미세공격에 가깝다. 그뿐만 아니다. 동료들과 농구하는 유진을 바라보며 다른 연구원 세진은 "별로 예쁘지도 않은데. 솔직히 공대 프리미엄이잖아요."(3회)라며 유진을 품평한다. 유진에게 "우리 유진이가 아직 어리고 남자를 잘 몰라서 하는 얘긴데 남자들은 안 그래. 언제나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 수 있고 가능성도 열려 있어"(4회)라며 남자들의 세계에 대해 가르쳐주는 연구원도 있다. 드라마 초반, 연구원들은 유진을 한 사람이 아닌 '어린 여자' 프레임에 가두고 무시하는 미세공격을 반복한다. 미세공격의 심리적 영향 ▲  ENA <연애박사> 스틸 컷. ⓒ ENA 일상 속 미세공격이 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미세공격은 피해자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지만, 그것이 악의가 있는 것인지, 무의식적으로 뱉은 말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영어 잘하시네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칭찬처럼 들리는 미세공격도 있다(이 말에는 아시아계는 영어를 잘 못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렇기에 미세공격의 피해자들은 분노하고 저항하기보다는 이에 순응하는 길을 택한다. 그리고 이런 순응은 심리적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무력감, 수치심, 우울감 등을 유발한다. 민재는 다리를 잃은 후부터 꾸준히 장애에 대한 편견에 노출된 채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화를 내거나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사과를 받아내지 않는다. 카카오야마토 대신 그는 종종 힘없는 발걸음으로 귀가하고, 집에서도 침잠해 있다. 민재가 도처에 널려 있는 미세공격 때문에 에너지가 고갈되고 우울해한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반복되는 이런 일들은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으로도 이어진다. 유진의 사랑 고백에 "나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며 거절하는 민재의 모습에선 바로 이런 수치심이 느껴졌다(4회). 유진 역시 연구실 사람들의 행동에 화를 내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자신을 업무에서 배제했을 때는 "가르쳐주면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다른 연구원이 "남자들은 원래 말이지"라며 가르치려 드는 말에 불편해하면서도 대화에 끼어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유진이 순응을 강요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 이처럼 드라마 속 미세공격은 민재와 유진의 삶에 피로와 무력감을 선사하고 때로는 수치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세공격을 행하는 이들은 이것이 차별에 해당하는지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마치, 나의 선량하고 유머러스한 남자 동료가 아무렇지도 않게 아줌마인 내 앞에서 '아줌마' 폄하 발언을 하고 전혀 무엇이 문제인지 눈치채지 못했듯 말이다. 미세공격은 이렇게 피해자가 저항하기도, 공격자가 인식하기도 힘들기에 더 위험하다. 미세공격 연구자들은 미세공격을 '종이에 천 번 베이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반창고도 붙이지 않아도 될 상처들이기에 자꾸만 참아내게 만들고 결국엔 이것이 모여 삶을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중반에 이르면서 민재-유진이 마침내 커플이 됐다. 이후에도 이들은 장애-비장애 커플을 둘러싼 미세공격에 또다시 맞서야 할 것이다. 현실이라고 다를까. 매일 무수히 의도하든 아니든 누군가를 향한 미세공격이 발생한다. 어떤 때는 내가 대상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향해 미세공격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무엇이 미세공격인지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미세공격을 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 피해를 보아도 내 탓 하거나 참지 않고 대응할 수 있을 테니까. <연애박사>를 보며,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하며 미세공격을 줄이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 보고 싶다. * 참고문헌 : 데럴드 윙 수, 리사 베스 스패니어만 지음 / 김보영 옮김 <미세공격 : 삶을 무너뜨리는 일상의 편견과 차별> , 2022, 다봄교육 나는 불쾌하면서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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