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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동물 소개를 넘어 현장에서 동물을 마주하는 수의사의 시각으로 멸종의 원인과 생태계의 유기적 관계를 분석합니다. 이미 사라진 동물의 '부재'를 통해 현재 위기종을 향한 '보호 의지'를 되돌아보고 성공적인 종 보전 프로젝트 사례와 일상 속 실천법을 공유합니다. <기자말>
▲ 뉴질랜드에 사는 앵무새 '카카포'
ⓒ 위키미디어 공용
세상에는 희한한 새가 정말 많지만, 뉴질랜드에 사는 앵무새 '카카포(Kākāpō)'는 좀 유별납니다. 엉뚱한데 짠하고, 어딘가 나사가 하나 풀린 것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달까요.
앵무새 주제에 세계에서 제일 무겁습니다. 평균 60년은 기본으로 살고 90세를 넘기기도 해서 조류계의 장수 아이콘으로 불리죠. 그런데 이 녀석, 명색이 새인데 위기 상황이 오면 날아가긴커녕 그자리에 꽁꽁 얼어붙어 눈만 굴립니다. 마오리어로 '밤의 앵무새'라는 뜻의 카카포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날지 못하는 앵무새입니다. 외딴섬이라는 환경이 만들어낸 기적이면서, 인간의 무분별한 개입이 어떤 비극을 부르는지 보여주는 산증인이기도 합니다.
7천만 년 전쯤, 카카포의 조상은 다른 앵무새들과 갈라져 뉴질랜드 땅에 정착했습니다. 당시엔 그야말로 천국이었습니다. 뱀이나 족제비, 고양이 같은 포유류 포식자가 단 한 마리도 없었거든요. 먹을 건 지천에 깔렸고, 조심할 거라곤 하늘을 나는 맹금류뿐이었습니다.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옛 이야기에서 카카포는 숲의 비밀을 간직한 파수꾼으로 나옵니다. 밤이 되면 숲 깊은 곳에서 나지막하게 울어 숲의 정령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열매가 언제 풍성해질지 알려주는 예언자 역할을 맡았다고 하죠.
굳이 힘들게 하늘을 날 이유가 없다 보니, 수백만 년이 지나면서 카카포의 몸도 변했습니다. 날개 근육과 가슴뼈는 쪼그라들었고, 대신 땅을 단단히 딛고 산을 오를 튼튼한 다리를 얻었죠. 지방도 넉넉히 축적해서 수컷은 몸무게가 2kg까지 불어났습니다. 이제 날개는 비행용이 아니라 높은 나무에서 뛰어내릴 때 낙하산처럼 균형을 잡는 부속품에 불과합니다.
맹금류 눈을 피하는 법도 독특했습니다. 이끼를 닮은 황록색 깃털을 뒤집어쓰고 바위에 납작 엎드려 "나는 돌이다" 하고 멈춰 서는 거였죠. 시각으로 사냥하는 맹금류한테는 이 방식이 완벽하게 통했습니다. 적어도 냄새로 추적하는 포유류 천적이 등장하기 전까지는요.
외래종의 습격과 퀴퀴하게 달콤한 향기의 비극
비극은 섬에 사람이 들어오면서 시작됐습니다. 폴리네시아인과 유럽 이주민이 배를 타고 올 때, 배 밑창에 숨어든 개, 고양이, 족제비, 쥐 같은 녀석들이 함께 내린 겁니다. 땅 위의 천적을 본 적도 없는 카카포에겐 당당히 맞설 방법이 없었습니다.
위험을 느끼면 제자리에 얼음처럼 굳어버리는 습성부터 발목을 잡았습니다. 눈으로 사냥하는 매한테나 통하지, 코를 킁킁거리며 다가오는 포유류 앞에서는 "나 잡아드시오" 하고 누워있는 꼴이었으니까요.
설상가상으로 카카포의 몸에서는 퀴퀴하면서도 달콤한 과일 향이 납니다. 오래된 목재 가구에 꿀과 꽃향기를 섞어놓은 듯한 향인데, 사람에겐 매혹적일지 몰라도 밤의 포식자들에겐 아주 친절한 이정표였습니다.
마오리족과의 관계도 얽혀있습니다. 마오리인들은 카카포의 부드러운 깃털로 귀족들이 입는 고급 외투(Kahu kākāpō)를 만들었습니다. 기름지고 향긋한 고기는 별미로 쳤고, 새 기름에 고기를 재워 오래 보관하기도 했죠.
유럽 이주민의 남획과 서식지 파괴, 포식자의 번식이 겹치면서 뉴질랜드 전역에 흔했던 카카포는 1990년대 들어 전 세계에 단 49마리만 남게 됩니다. 근친교배로 유전자가 단순해져 질병에 취약해졌고, 알의 60% 이상이 부화조차 못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리무' 나무의 결실과 5km를 울리는 저주파 구애
카카포의 생태에서 진짜 신비로운 건 뉴질랜드 침엽수인 '리무(Rimu)' 나무와의 관계입니다. 카카포는 매년 번식하지 않습니다. 2~4년 간격으로 리무 나무에 열매가 풍성하게 열리는 해에 맞춰 비로소 번식을 시작하죠.
번식기가 되면 수컷들의 구애 쇼가 펼쳐집니다. 앵무새 중 유일하게 일부다처제로 살며 수컷은 육아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데, 대신 구애에 목숨을 겁니다. 수컷들은 언덕이나 바위 옆 땅을 오목하게 파낸 뒤, 그 안에 들어가 몸을 부풀리고 100Hz 이하의 저주파 울음소리(Booming Call)를 내뿜습니다.
직접 파놓은 구덩이가 울림통 역할을 하면서 "쿵... 쿵..." 하는 낮고 깊은 소리가 바람을 타고 최대 5km까지 퍼져나갑니다. 암컷의 선택을 받으려고 서너 달 동안 매일 밤 8시간씩 목청을 높이다 보니, 번식기가 끝날 때쯤엔 수컷 몸무게가 반토막이 나기도 합니다.
땅 위를 걷는 새들의 명암 : 화식조와의 만남
날기를 포기한 새들의 비극이 뉴질랜드에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지구상에 날지 못하는 대형 조류로는 타조, 에뮤, 화식조가 대표적이죠. 타조는 아프리카, 에뮤와 화식조는 호주에 사는데, 타조와 에뮤는 빠른 발로 잘 살아남았지만 화식조는 카카포처럼 멸종 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 동물원의 화식조
ⓒ 이하늬
화식조는 생김새부터 압도적입니다. 몸은 검은데 머리와 목은 선명한 푸른빛과 보랏빛이고, 머리 위에는 투구 같은 뼈 벼슬이 솟아 있어 외계 생명체 같습니다. 아래턱에 늘어진 붉은 벼슬 때문에 불을 삼킨 새, 즉 '화식조(火食鳥)'라는 이름이 붙었죠.
덩치도 큰 데다 성질이 워낙 사납고 다리 힘이 무시무시합니다. 날카로운 발톱에 차이면 사람 배가 찢어질 정도라 영어권에선 '살인 새(Killer Bird)'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호주에서는 화식조 공격에 사람이 목숨을 잃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국내 동물원에는 카카포는 없어도 화식조는 간혹 볼 수 있습니다. 동물원에서 근무하던 중, 화식조가 갑자기 주저앉아 못 일어난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위험하다는 경고를 하도 들어서 진료 가방을 챙기는 손이 벌벌 떨리더군요.
그 날은 쌀쌀한 봄날이었습니다. 호주 출신이라 화식조는 추위에 약한 편인데 환절기라 면역력이 떨어졌었나 봅니다. 3일 동안 밥을 잘 먹지 않았다고 하더니 저체온증에 저혈당이 와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공격을 할까봐 도망갈 태세를 취하며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포도당 수액을 입에 조금씩 흘려 넣어주며 응급처치를 했습니다.
다행히 혈당이 오르자 생기를 찾더니 훌훌 털고 일어나더군요. 화식조가 일어나자 주변에 있던 사육사와 수의사가 후다닥 도망을 치며 지켜보던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그 뒤로는 별탈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무섭게 생겼지만 화식조는 호주 숲에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대형 열매를 통째로 삼킨 뒤 씨앗을 똥으로 널리 퍼뜨려 주거든요. 그래서 호주 정부도 화식조 보호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다시 울려 퍼지는 소리
뉴질랜드 자연보호부(DoC)도 1990년대부터 '카카포 회복 계획'을 세우고 본격적인 구출 작전에 나섰습니다. 현장 연구원들의 일상은 거의 첩보전 수준입니다.
1. 위장 감시: 번식기가 되면 암컷 둥지 근처에 위장 텐트를 치고 카메라로 밤새 감시합니다.
2. 알 교체: 어미가 먹이를 찾으러 나간 사이, 3D 프린터로 만든 '가짜 알'을 넣고 진짜 알은 인공 부화실로 빼옵니다.
3. 새끼 맞교환: 인공 부화실에서 새끼가 깨어나면, 다시 어미가 비운 틈을 타 가짜 알을 치우고 새끼를 둥지에 놓아둡니다.
돌아온 어미는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알이 깨어난 줄 알고 새끼를 키우게 되죠. 2014년에는 둥지에서 금 간 알을 발견하자 스카치테이프와 접착제로 봉합해 부화시킨 일화도 있습니다.
지금 카카포들은 족제비나 쥐 같은 포식자가 없는 뉴질랜드 남서부 무인도(코드피시섬, 앵커섬 등)로 옮겨져 보호받고 있습니다. 남아있는 개체마다 '시로코', '스쿼크' 같은 이름을 붙이고 위치 추적기를 달아 관리하죠.
2019년에는 곰팡이 감염병(아스페르길루스증)이 돌며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연구원들과 후원자들 덕분에 성체 개체 수가 200마리를 넘어섰습니다.
땅 위에서의 평화로운 삶을 선택했던 뉴질랜드의 카카포. 인간이 망가뜨린 생태계 속에서도 어떻게든 이들을 돌려놓으려는 노력이 조금씩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오늘도 뉴질랜드 무인도의 밤하늘 아래에서는 멸종 위기를 넘긴 카카포 수컷들의 낮고 육중한 구애 소리가 "쿵... 쿵..." 하고 나지막이 울려 퍼집니다.
덧붙이는 글 | [참고 문헌 및 출처] • [Notornis] 카카포 종합 자연사 및 보호 관리 논문 ◦ 문헌명: A parrot apart: the natural history of the kakapo (Strigops habroptilus), and the context of its conservation management (2006) ◦ 저자: Ralph G. Powlesland, Don V. Merton, John F. Cockrem • [IUCN Red List] 세계자연보전연맹 카카포 멸종위기 등급 평가 ◦ 문헌명: IUCN Red List: Strigops habroptilus (Kakapo) • [NZ Department of Conservation] 뉴질랜드 자연보호부 공식 카카포 복원 페이지 • [Australian Government] 남방화식조 국가 복원 계획 ◦ 문헌명: National Recovery Plan for the Southern Cassowary (Casuarius casuarius johnsonii) (2007) ◦ 발행처: Queensland Parks and Wildlife Service / Australian Government • [Ecology] 화식조의 씨앗 산포 기능 학술 논문 ◦ 문헌명: Cassowaries as keystone seed dispersers in the Australian wet tropics (1992) ◦ 저자: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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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J. Crome, L. A. Moore • [IUCN Red List] 세계자연보전연맹 남방화식조 평가 ◦ 문헌명: IUCN Red List: Casuarius casuarius (Southern Cassow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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