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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용 시인이 1966년에 발표한 <어느 날>이란 시는 "나는 시들어 떨어진 꽃에서/어느 아기 어머니를 보았다."로 시작해서 "가을 나무는/어느 아버지,/나는 감동을 받았다./나라 없는 포로의 행렬이/다시 떠난 뒤에도……"로 끝난다. 시의 화자는 자신이 본 세상의 풍경을 '어느'라는 관형사로 한정하면서 보편과 영원의 관。을 유보한다. 그렇게 해서 세상의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니라, 1960년대 '어느 날' 서울의 거리에서 목도한 어떤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리의 마음에도 들어온다. '시들어 떨어진 꽃'은 부정적 이미지다. 그 어머니는 아기를 잃었을까. '나라 없는 포로의 행렬'은 끝난 지 얼마 안 된 전쟁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그저 바람에 이리저리 쓸려가는 낙엽의 행진 같기도 하다. 어쨌든 어떤 아버지는 헐벗은 채로 바람 부는 거리에 서 있었던 모양이다.
명절 즈음에는 아버지, 어머니의 자리를 생각해보게 된다. 근현대의 고단한 시간 동안 한국문학은 '종' '빨치산' 혹은 '개흘레꾼' '달려라, 아비'와 같은 다양한 메타포를 통해 아버지의 자리를 표현해왔다. 근자의 소설에서 어느 작가는 '모자'가 되어 벽에 걸려 있는 무력한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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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면 누구나 언제나 안정적으로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닐 테다. '아버지'는 연민과 안쓰러움 없이는 불릴 수 없는 이름이다.
어린 아들 앞에서 자전거 도둑으로 끌려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영화 <자전거 도둑>(1948)을 최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끝내 잃어버린 자전거를 되찾지 못한 채 집으로 가는 무거운 발걸음을 뗀다. 가족의 생계를 지탱해줄 아버지의 일자리는 자전거와 함께 사라진 상태다. 영화는 사람들 무리에 휩싸여 힘없이 걸어가는 부자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끝난다. 여러 차례 본 영화인데, 이번에는 사람들의 등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들도 아버지이거나 아버지가 될 사람들일 것이다.
미국 소설가 셔우드 앤더슨의 단편 <달걀>(1920)에서 집안을 일으켜보려고 양계에 뛰어든 아버지는 전염병으로 죽어 나가는 병아리와 가망 없는 싸움을 벌이다 십 년 만에 사업을 접고, 어머니의 결단을 따라 읍내로 나와 식당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 일도 힘겹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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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어머니가, 밤에는 야간열차 손님을 기다리며 아버지가 식당을 지킨다. 아버지는 '달걀 마술'로 손님을 끌어볼 궁리를 한다. 그러나 혼신을 다한 아버지의 공연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분노와 좌절감에 휩싸인 아버지는 달걀을 쥐고 어머니와 아들이 자고 있는 식당 이층으로 뛰어 올라온다. 그런데 놀랍게도 소설은 그날 일층에서 일어난 아버지의 곤경을 아들의 눈으로 꼼꼼하게 보여주는 대목으로 넘어간다. 일인칭 화자인 아들은 지금 자신이 보지 못한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해주고 있는 셈이다. "뭐라고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나는 아버지가 낭패를 보는 모습을 마치 현장에서 목격한 것처럼 잘 알고 있다. 사람은 때가 되면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알게 되는가 보다." 소설의 규칙이 깨뜨려지는 순간, 이야기는 커지고 우리는 아버지의 좌절을 상상하는 아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소설의 '마법'이 시작된다. 아들의 상상적 목격담에서 아버지의 달걀 마술은 안쓰러운 실패의 순간을 그리며 생생해지고, 아버지 자신도 알지 못했을 절망과 희망의 고도를 표현한다. 모욕과 숭고는 뒤섞인다. 아버지는 평생에 걸친 달걀과의 싸움에서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지만, 아들은 그 실패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아버지와 연결된다.
정홍수 대표(도서출판 강)·문학평론가
'달걀 마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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