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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무역품으로 평가받은 것이 바로 홍삼(紅蔘)이다. 그런데 홍삼의 주요 재료는 산에서 채취한 산삼(山蔘)이 아니라 밭에서 재배한 가삼(家蔘)이었다. 농민들이 생산한 가삼을 개성 상인들이 가공하여 최고의 무역품 홍삼으로 제조했다. 산삼 채취에서 가삼 재배로 전환하였던 전후 사정에서 조선시대 농민의 땀과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조선 후기 농민은 자급자족에서 벗어나 수확물을 장시(場市)와 포구(浦口)에서 거래하기 시작했다. 농업의 목표가 자급을 넘어 .차 부가가치의 생산으로 변화했던 것이다. 이러한 농업의 성격 변화는 인삼을 비롯한 약초 재배 분야에서 가장 뚜렷했다. 지황(地黃), 홍화(紅花) 등이 약재로 팔리며 교역에서 큰 이득을 주자, 상품작물로 재배되었고, 18세기 초반 인삼을 밭에서 재배하는 ‘가삼’ 재배가 성행했다.
18세기 가삼 재배의 성행에는 수요의 증대가 주요했다. 17세기 이후 전통적인 채취 방식으로 감당이 어려울 만큼 국내는 물론, 청나라에서도 조선 산삼에 대한 수요가 증대되었다. 18세기 초 가삼의 재배가 시작되었으나 무역량이 늘며 이 역시 수요를 따라잡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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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 말에 이르면, 가삼의 수출량을 제한하는 이른바 ‘포삼제’가 시행될 정도였다.
조선 최초의 가삼 재배지는 영남의 산간 지대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에서 18세기 초반 개발된 가삼 재배법은 이후 조선 팔도에 보급되었다. 이 재배법은 바다 건너 일본에 비법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면 가삼 재배법은 널리 전파되며, 농서에 수록되었다. 19세기에 이르면 산삼의 노두(蘆頭)를 가삼에 풀로 붙여서 위조 산삼을 만드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영남 산간 지대에서 출발했지만, 조선 후기 가삼 재배로 유명한 곳은 개성과 강계(江界)였다. 가삼 재배는 농민은 물론, 상인도 동참하였는데, 특히 개성상인이 가삼 재배에 적극적이었다. 가삼은 재배 기간이 길어 4~6년이 소요되었고, 관리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개성 지역은 상인의 축적된 자본과 농민의 재배 기술이 조화를 이루며, 생산 관리와 판매가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개성 지역의 가삼 재배는 자본과 기술이 조합되며 기업적 면모를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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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반 개성 주민 대부분은 가삼 재배를 생업으로 삼았다. 개성 주민들은 재배한 가삼을 홍삼으로 가공했다. 가삼이라는 고부가가치 상품을 재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높은 이윤을 추구했던 것이다. 상품성을 높이는 홍삼으로의 재가공 공정이 도입되고, 개성 상인이 독。적으로 판매하며 중국 북경으로 유입되는 홍삼은 모두 개성에서 생산한 것으로 인식될 정도였다. 그만큼, 개성은 가삼의 재배는 물론, 홍삼 무역에서도 독.적 위상을 지닌 곳으로 거듭났다.
19세기 중반부터 홍삼은 조선의 대표적 수출품이었다. 조선은 홍삼을 수출하고 서양목으로 불리던 포목을 수입했다. 당시 무역은 홍삼과 서양목의 교환이라 할 만큼 두 상품의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1837년(헌종 3) 무렵에 이르면, 서양목은 주요 수입품으로 완전히 자리 잡게 되었다. 18세기 초반 영남 산간에서 시작된 가삼 재배법은 다시 홍삼 가공법으로 도약하며, 조선의 무역 상품으로 큰 역할을 담당했다. 조선 농민들이 밭에서 일군 창의적인 기술 개발은 무역 구조를 바꾼 기폭제였다. (한국국학진흥원 전통생활사총서 10)
염정섭 한림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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