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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의 주제전시 ‘추사 김정희와 그의 동반자’가 한창이다. 한여름에 시작된 전시인데 이제 한 달 채 남지 않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필 추사 김정희(1786~1856)와 그의 글씨가 궁금하다면 늦지 않게 다녀가시길 권한다.
이번 전시는 제목처럼 추사 김정희의 작품을 다루면서 특히 ‘동반자’에 주목하였다. 전시에는 이러한 주제에 잘 맞는 내용의 작품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바로 <해붕대사영찬첩(海鵬大師影讚帖)>이다. 전통 서예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 서첩의 제목과 내용이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작품의 형식과 글씨, 내용과 사연을 차근차근 읽어가다 보면 어렵지 않게 자신만의 감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제목에도 적혀 있듯 이 작품은 여러 글씨를 엮어 만든 서첩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해붕대사영찬첩>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김정희가 해붕대사(?~1826)의 얼굴을 그린 진영(초상화)에 붙이기 위해 지어 쓴 찬문이고, 둘째는 그의 평생지기인 초의(草衣·1786~1866)가 첩을 만들며 남긴 발문이며, 셋째는 김정희가 찬문을 부탁한 해붕의 제자 호운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이다.
가장 먼저 나오는 찬문에서 추사 말년의 해서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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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희가 1856년(71세) 음력 5월에 짓고 쓴 이 글씨는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해서 작품일지도 모른다. 해서는 흘려 쓰지 않은 가지런한 정자체를 뜻하는데, 찬문의 종이에도 글씨 간격을 고르기 쉽도록 선이 그어져 있다. 그렇지만 김정희의 해서는 힘주어 반듯하게 쓰는 데 연연하지 않고, 글자의 크기나 기울기, 간격에 구애받지 않는 여유롭고 담백한 모습을 보여준다. 김정희는 해붕의 공(空) 사상을 다른 고승들과 비교하여 그 뛰어남을 말하였고, 호운이 만든 진영에서 가늘고 또랑또랑한 눈과 사람을 꿰뚫어 보는 눈동자를 떠올렸다. 일흔을 넘긴 명필이 마지막에 도달한 글씨의 경지가 어떠한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어지는 발문은 초의가 남긴 글이다. 초의는 김정희의 찬문을 첩으로 엮으면서 그 사연을 자신이 즐겨 쓰던 단정한 예서로 적었다. 해붕과 초의, 김정희가 처음 만난 것은 1815년 겨울 수락산 학림암이었다. 당시 서른 살의 김정희는 눈길을 헤치고 암자를 찾아와 공의 깨달음(空覺)에 대해 밤새 토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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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40년이 지난 1856년 호운이 김정희에게 찬문을 받았고, 또 5년이 지난 1861년 뒤늦게 찬문을 본 초의는 ‘내가 옛날을 그리워하며 새로운 일에 감동해서 글씨를 표구하여 첩으로 만들어 돌려보낸다’며 그 사연을 적었다. 세상을 떠난 스승과 친구를 떠올리며 깊은 감상에 젖었던 초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마지막 편지는 김정희가 호운에게 찬문을 보내며 띄운 글이다. 편지는 ‘평생 알지 못하던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편지를 보내온 터라, 매우 기이한 일입니다’라는 소탈한 인사로 시작된다. 김정희는 40년 전 해붕과 초의를 만났지만 호운은 일면식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승을 그리는 제자의 마음에 화답하여 찬문을 지어 보냈다. 편지글은 편한 상대인 경우 주로 실용적인 서체를 쓴다. 김정희도 흘림체인 행초서로 적었는데, 여기서는 찬문과는 또 다른 거침없고 자연스러운 풍모를 보여준다.
이처럼 <해붕대사영찬첩>에는 김정희 노년의 개성 넘치는 글씨와 40년을 뛰어넘는 벗들의 사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첩 속 사람들은 지금 아무도 남아 있지 않지만, 그들이 남긴 흔적은 오랜 시간을 건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김정희의 마지막 붓끝. 그 모습과 사연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막막하게만 느껴지던 옛 글씨에 한 걸음 다가서는 기회가 될 것이다.
송진충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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