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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9월 30일 핵추진잠수함(핵잠) 건조를 위한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핵잠 건조를 국가전략사업으로 추진할 법적 토대를 마련한다는 .에서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법 제정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특별법은 핵잠 사업이 중도에 좌초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완수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튼튼한 ‘가드레일’이 돼야 한다.
이러한 가드레일의 요건을 논의하기 위해 국가전략연구원은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핵추진잠수함 도입 전략 및 입법 과제’를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다. 국회 국방위원장을 비롯해 전문가와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포럼에서는 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다양한 제언이 나왔다. 특히 사업 추진을 담당하는 국방부나 방위사업청이 아닌 연구원이 주최한 자리였던 만큼, 기업 관계자들이 정부에 바라는 .을 보다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 돋보였다. 논의의 핵심은 범정부 추진체계 구축, 안정적인 특별회계 마련, 그리고 기업이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는 합리적인 계약제도 정비였다.
핵잠 건조는 일반적인 군함 건조사업과 차원이 다르다. 선체와 원자로, 핵연료, 추진체계, 안전규제, 국제협상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어느 하나라도 차질이 생기면 전체 사업이 멈출 수 있다. 특히 핵연료 확보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협의는 국내 기업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따라서 특별법은 단순히 사업을 허용하는 법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고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한 실행법이어야 한다.
첫째, 강력한 범정부 추진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정부안에는 국무총리 소속 핵추진잠수함전략위원회 설치가 포함돼 있다. 그러나 위원회가 회의 개최와 부처 간 이견 조정에 머문다면 실질적인 사업 추진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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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속기간마저 한시적이어서 장기간에 걸친 사업을 일관되게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
국방부는 군사적 요구성능을, 방위사업청은 획득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원자력계는 원자로·핵연료 기술을, 외교부는 국제협상을 담당한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독립적인 안전규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처럼 여러 부처가 참여하는 사업에서 책임과 권한이 분산되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서로 책임을 미루기 쉽다.
필자는 대통령실 직속 범정부 사업관리조직(PMO)을 법률로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적어도 국무총리 소속으로 두되, 예산·일정·기술·국제협상을 통합 관리하고 부처 간 이견을 신속하게 조정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핵잠 건조는 부처별 업무를 단순히 합친다고 성공하는 사업이 아니다. 국가 역량을 하나로 결집할 지휘체계가 필요하다.
둘째, 핵잠 특별회계 설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핵잠 사업에는 앞으로 10년 이상 막대한 재정이 지속적으로 투입돼야 한다. 정권이 교체되고 국방부 장관과 군 지휘부가 바뀌더라도 중단 없이 추진돼야 한다. 그런데 매년 일반 국방예산 편성 과정에서 다른 사업과 경쟁해야 한다면 안정적인 건조 일정을 보장하기 어렵다. 예산의 안정적 확보는 군은 물론 참여 기업에도 중대한 관심사다.
특히 원자로 개발, 육상시험시설 구축, 장납기 핵심 부품 확보는 예산 집행이 한 해만 지연돼도 전체 사업 일정이 수년씩 늦어질 수 있다. 특별회계는 이러한 위험을 줄이고 국가의 장기적인 재정 책임을 제도화하는 장치다. 물론 특별회계를 설치한다고 예산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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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법률에 재원 확보 방안과 중장기 투자계획을 명시한다면 정권 교체에 따른 사업의 불확실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특별회계 없는 핵잠 특별법은 추진동력 없는 자동차와 다르지 않다.
셋째, 건조 기업이 적자를 걱정하지 않고 기술개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계약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핵잠은 우리나라가 처음 추진하는 고난도 기술개발사업이다. 사업 초기부터 정확한 원가와 건조 기간을 산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최초 계약금액을 최종 정산금액의 상한으로 고정하지 않는 일반개산계약 특례가 필요하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잠수함인 209급 잠수함과 최초의 한국형 구축함 건조사업에도 적용된 방식이다. 실제 발생한 적정 원가를 객관적으로 검증해 보상하고, 합리적인 이윤도 보장해야 한다. 이는 기업에 무제한의 이익을 허용하자는 뜻이 아니다. 국가가 승인한 기술 변경과 불가피한 개발비 증가에 따른 부담을 기업에 일방적으로 떠넘기지 말자는 것이다. 예산 통제와 투명한 원가 검증 장치는 당연히 병행해야 한다.
지체상금과 보험제도 역시 핵잠의 특수성을 반영해야 한다. 핵연료 공급 지연, 정부의 설계 변경, 인허가 지연 등 기업에 책임이 없는 사유로 발생한 지연까지 건조업체에 지체상금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 귀책사유에 따른 지체상금의 합리적 조정·면제 기준과 국가 차원의 위험 분담 및 보험·배상체계를 특별법에 명시해야 한다. 원자력 관련 위험은 일반적인 선박 건조보험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별도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핵연료 확보의 불확실성이다. 지난해 한미 정상 간 합의로 핵잠 건조의 정치적 기반은 마련됐지만, 핵연료의 공급국과 공급 주체, 농축도, 공급 시기, 군사적 사용에 관한 구속력 있는 합의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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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AEA 안전조치 적용에 관한 별도 협의도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건조 일정부터 정해 놓고 기업에 계약 체결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핵연료가 제때 확보되지 않아 원자로 제작이나 함정 건조가 지연되더라도 기업이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면, 어느 기업이 선뜻 참여하겠는가.
국가는 해결하지 못한 국제협상과 제도적 불확실성에 따른 위험을 기업에 전가하면서 사업 참여만 요구해서는 안 된다. 자칫 국내 최고의 조선·원자력 기업들이 막대한 손실과 경영 위험을 우려해 사업 참여를 기피하거나 거부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국가전략사업이 기업에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을 떠넘기는 사업이 돼서는 안 된다.
따라서 핵연료 확보 지연이나 정부의 책임 있는 사유로 사업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계약기간과 계약금액 조정, 손실 보전 등이 가능하도록 법률에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국가가 감당해야 할 위험은 국가가 책임지고, 기업은 기술개발과 건조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회는 이제 특별법 제정의 속도 못지않게 그 내용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정부 조직 간 권한 배분이나 기존 계약제도의 관행에 얽매여 핵심 조항을 제외한다면 특별법이라는 이름만 남게 된다.
범정부 통합추진체계, 특별회계, 합리적인 계약 및 위험 분담 제도. 이 세 가지가 빠진 핵잠 특별법은 유명무실하다. 핵잠은 정부가 건조하라고 지시한다고 만들어지는 함정이 아니다. 국가가 성공의 여건을 마련하고 기업이 기술력으로 화답할 때 비로소 탄생한다. 국회가 만들어야 할 것은 단순한 핵잠 건조 허용법이 아니라, 대한민국 최초의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반드시 성공시키기 위한 국가책임법이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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