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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6-10-29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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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질문을 안고 다시 길을 나섰다. 10년간 몸담았던 아시아 인권평화 단체 '아디'를 떠나며, 내가 처음 평화와 인권 현장에 뛰어들었던 이유를 돌아보고 싶었다. 목적지는 요르단과 이스라엘, 그리고 팔레스타인. 출장이 아닌 개인적인 여정으로 이곳을 다시 찾는 것은 2014년 여름 이후 12년 만이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2005년, 나는 요르단 대학교 어학센터에서 아랍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암만 시내의 허름한 자취방에 살던 어느 날, 아랫집에 살던 이라크 난민 가족의 두 아이가 물을 빌리러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네 살 후세인과 여덟 살 자하라였다. 2003년 이라크 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1년간 바그다드에서 활동했던 나에게, 전쟁을 피해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라크 아이들은 남 일 같지 않았다. 우리는 금세 가까워졌고, 그렇게 아부 아흐메드 씨 가족과 1년 동안 한 식구처럼 지냈다. ▲  2005년 크리스마스, 이라크 난민 아부 아흐메드 가족과의 시간 ⓒ 이동화 2006년 한국으로 돌아올 때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헤어졌다. 그리움은 마음 한편에 켜켜이 쌓였고, 이듬해 다시 요르단을 찾아 그들의 집에서 이틀간 머물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2014년 여름에도 팔레스타인으로 향하던 길에 암만에 들러 무작정 그들의 문을 두드렸다. 가족들은 눈물로 나를 맞아주었고, 내가 사 간 고기와 야채로 어머니가 정성껏 차려주신 음식을 나누었다. 그러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길, '이제는 정말 다시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이 쏟아졌다. ▲  2014년 다시 만난 이라크 난민 아부 아흐메드 가족과의 시간 ⓒ 이동화 그로부터 다시 12년이 흘렀다. 가장인 아부 아흐메드 씨는 독일에서 홀로 힘겹게 난민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고, 큰아들 아흐메드는 결혼 후 이라크로 돌아가 식당 일을 하고 있었다. 가족들이 흩어져 살아가는 현실은 안타까웠지만, 암만에 남은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21년의 시간을 건너 요르단에 도착한 날, 자하라의 남편 모하메드가 직접 호텔로 나를 데리러 왔다. 그를 따라 집으로 향하는 동안 '과연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설렘과 걱정이 교차했다. 하지만 문이 열리고 마주한 순간, 모든 염려는 사라졌다. 네 살 꼬마였던 후세인은 스물다섯 살의 건장한 청년이 되어 있었고, 여덟 살이던 자하라는 어엿한 어른이 되어 자신의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동생 디아나는 니캅(얼굴과 몸전체를 가리는 방식)을 쓰고 있었지만 어린 시절의 반짝이던 눈매는 그대로였고, 어머니의 따뜻한 눈빛 역시 옛 모습 그대로였다. 21년이라는 세월 동안 서로 다른 나라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왔지만, 마주한 얼굴들에는 낯섦보다 반가움이 앞섰다. 마치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다가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  2026년 다시 만난 아부 아흐메드 가족과의 시간 ⓒ 이동화 우리는 빛바랜 사진첩을 꺼내 추억을 되짚고, 가족이 차려준 음식을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식사 도중에는 독일에 있는 아부 아흐메드 씨, 이라크에 있는 큰아들 아흐메드와 영상통화를 연결했다. 비록 한자리에 모이지는 못했지만, 화면 너머로 온 가족의 얼굴이 이어지며 멀리 떨어진 가족이 다시 하나의 식탁에 모인 듯했다. 독일과 이라크, 요르단. 서로 다른 나라에 흩어져 살아가는 가족들이 화면 안팎으로 한자리에 모인 그 순간, 21년이라는 시간과 국경은 잠시 의미를 잃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어도 서로를 완전히 잊지 않고 마음속에 자리를 남겨두었기에 가능했던 재회였다. 그러나 기쁨 뒤에는 삶의 무게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막내 후세인은 이라크 난민이라는 신분적 제약 탓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식당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심리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 앞에서는 줄곧 밝게 웃었지만, 그 웃음 뒤에 가려진 삶의 무거움에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는 독일에서, 큰아들은 이라크에서 각자의 삶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었다. 전쟁은 총성이 멎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은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어야 하고, 가족은 흩어지며, 그 상처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일상 속에 깊게 남는다. 아부 아흐메드 가족과 음식을 나누면서도, 그들이 감당해 온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  아부 아흐메드 가족이 차려준 정성스러운 음식들 ⓒ 이동화 꿈같았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일정을 마친 뒤 다시 찾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집을 나서는 발걸음은 아쉬웠지만, 이번에는 헤어짐이 아닌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인사'였다. 시간은 화살처럼 흐르지만, 어떤 인연은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21년 만에 다시 만난 가족의 얼굴에서 나는 오래전 내가 품었던 마음의 흔적을 발견했다. 다시 현장으로 내가 왜 다시 요르단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으로 향하는지, 아부 아흐메드 가족과의 재회는 그 이유를 새삼 일깨워주었다. 2003년 이라크에서 반전평화 활동을 하고, 이후 팔레스타인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연대했던 시간들. 지난 10년간 인권과 평화를 위해 일하면서도 어느 순간 처음 품었던 질문과 열정을 잊고 지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왜 이라크에서 평화를 이야기했고, 왜 팔레스타인의 자유를 위해 연대했는지 그 답을 한 번에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곳의 사람들을 잊지 않고 다시 찾아가는 일이 여전히 내 삶에 가장 중요한 의미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어느 순간에 아마 희미해져 버린 초심을 찾아 떠난 나의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21년 만에 만난 가족과 나눈 한 끼의 식사, 그 안의 웃음과 눈물, 그리고 서로를 잊지 않았다는 확인이 이번 여행의 첫 번째 선물이 되었다. ▲  독일에 거주하는 아부 아흐메드 ⓒ 이동화 ⓒ 이동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 바다이야기예시 . 다 반가움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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