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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주한 헝가리 대사관 주최로 열린 ‘1956년 헝가리 혁명 및 자유 항쟁 70주년’ 기념 행사장 중앙에는 한가운데 동그란 구멍이 뚫린 헝가리 국기가 내걸렸다. 이는 1956년 혁명 당시 시민들이 국기 중앙에 있던 공산주의 정권의 국장을 도려낸 데서 유래한 것으로, 당시 소련의 지배와 공산당 독재에 대한 저항을 상징한다.
이날 셀레잔 어네트 주한 헝가리 대사대리는 “오늘은 헝가리가 소련의 억압에 맞서 싸움을 시작한 지 70년이 되는 날로, 헝가리 역사상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라며 “이는 우리 민족이 자유를 위해 독재와 군사 。령, 폭정에 용감하게 맞섰던 날”이라고 했다. 이어 “안타깝게도 오늘날에도 침략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는 국가들이 있다”며 “헝가리와 바로 인접해 있는 우크라이나도 그중 하나다. 헝가리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자유를 신봉하는 민족으로서 모든 형태의 침략을 단호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1956년 10월 23일 시작된 헝가리 혁명은 소련의 지배와 공산당 독재에 맞서 헝가리 국민이 일으킨 대규모 봉기다. 대학생들의 평화 시위로 시작돼 전국적인 무장 항쟁으로 번졌지만, 결국 소련군의 무력 진압으로 좌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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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헝가리 혁명은 자유와 독립을 향한 저항의 상징으로 남았으며, 10월 23일은 오늘날 헝가리의 3대 국경일 중 하나로 기념되고 있다.
◇평등 약속했던 공산 정권… 경제난·탄압에 시민들 봉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동맹국이었던 헝가리는 전쟁 말기 소련군에 .령된 뒤 소련의 영향권 아래 편입됐다. 이후 ‘작은 스탈린’으로 불리던 라코시 마차시가 권력을 장악하고 스탈린주의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라코시 정권은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평등을 약속하고 헝가리를 ‘철과 강철의 나라’로 만들겠다며 산업화에 착수했으나, 무리한 중공업 육성은 심각한 경제난을 불러왔고 국민들은 생필품조차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렸다.
학생들의 출신 성분을 이유로 진학에 불이익을 주거나, 직장이나 술집에서 정권에 대한 불만을 표했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등 정치적 탄압도 이어졌다. 헝가리 역사학자 포도르 팔과 포크 어틸러는 “거의 모든 계층이 경제적 독립성과 개인의 자유를 박탈당했고, 비밀경찰의 공포정치 아래 놓였다”며 “이는 근대화라는 환상으로 포장된, 국가가 자국민을 상대로 벌인 전쟁”이라고 평가했다.
◇‘소련군 철수’ 외치며 스탈린 동상 철거… 무장 항쟁으로 번져
이렇게 누적된 불만은 1956년 10월 23일 마침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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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천 명의 대학생들은 전날 수도 부다페스트의 공과대학 강당에 모여 ‘소련군 즉각 철수’ ‘자유 총선’ ‘언론·표현의 자유 보장' 등 16개의 요구 사항을 담은 결의문을 채택했다. 23일 거리로 나선 학생들에 시민들도 대거 합류했고, 1만~1만5000명의 군중이 19세기 헝가리 독립운동의 상징인 시인 페퇴피 샨도르의 동상 앞에 모여 “우리는 더 이상 노예로 살지 않으리!”라는 시구를 함께 외쳤다. 시민들은 헝가리 국기 중앙에 그려진 공산주의 국장을 도려낸 뒤 구멍 뚫린 국기를 흔들며 행진했다. 트랙터와 산소절단기를 동원해 부다페스트 퍼레이드 광장에 세워진 높이 8m의 거대한 스탈린 동상도 쓰러뜨렸다.
이후 시위는 전국적인 무장 투쟁으로 번졌다. 23일 밤 부다페스트의 라디오 방송국 앞에서는 시위대와 보안 당국 사이 총격전이 벌어졌고, 이튿날에는 소련군 전차까지 시내에 투입됐다. 25일에는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수천 명의 비무장 시민을 향해 총격이 가해지는 ‘피의 목요일’ 참사가 발생해 최소 88명이 숨졌다.
◇소련군 재침공에 좌절된 혁명… 33년 뒤 민주화로 결실
이후 소련군이 부다페스트에서 철수하고, 개혁파 공산주의자인 너지 임레 총리가 다당제 복원 등 정치 개혁에 나서며 혁명은 한때 성공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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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혁명 발발 13일째인 11월 4일 새벽, 소련군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부다페스트를 재침공하며 다시 위기를 맞았다. 당시 너지 총리는 마지막 라디오 방송에서 “오늘 새벽 소련군이 합법적인 헝가리 민주정부를 전복하려는 명백한 의도로 수도를 공격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혁명정부는 붕괴했고, 시민들의 무장 저항도 며칠 뒤 진압됐다. 헝가리 중앙통계청의 1957년 보고서에 따르면, 혁명 진압 과정에서 2652명이 사망하고 1만9226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약 20만명이 헝가리를 떠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실패한 혁명은 33년 뒤 민주화를 통해 비로소 결실을 맺었다. 1989년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며 그해 10월 23일, 정확히 혁명 발발 33년만에 헝가리 공화국이 선포됐다. 이듬해에는 10월 23일이 혁명을 기리는 정식 국경일로 지정됐고, 1991년 마지막 소련군이 헝가리에서 철수했다. 이후 1956년 혁명은 오늘날까지 헝가리의 자유와 독립을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머저르 페테르 헝가리 총리는 이날 70주년 기념 연설에서 “1956년 혁명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헝가리 자유의 상징”이라며 “이 13일은 폭정의 요새를 뒤흔들었고, 헝가리라는 나라의 이름을 세계사에 영원히 새겨 넣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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