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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11-06 04:23 조회 20 댓글 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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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경북 울진 죽변항 수협 어판장. 바다에서 돌아온 23t짜리 어선 창경호가 부려놓은 생선이 어판장 바닥을 가득 채웠다. 만새기다. 큰놈은 사람 팔 한쪽만 하다. 따뜻한 바다를 떠도는 이 물고기를 하와이에서는 ‘마히마히’라 부르며 두툼하게 토막 내 스테이크로 구워 먹는다. 여기서는 대부분 사료로 나간단다. 경매시장을 기웃거리며 생선을 줍던 한 할머니의 대못 같은 품평. “맛 엄따, 저그는. 줘도 안 묵는 기다.” 같은 생선인데 바다 건너에선 귀한 몸이고, 여기선 사료 포대에 담기는 신세다. 만새기를 배 하나 가득 잡아온 창경호 선원들의 표정이 무겁다.
울진이라면 대게 아니냐고? 대게는 아직 못 잡는다. 11월 30일까지 금어기다. 경북자망협의회가 정한 올해 투망일은 12월 1일. 그날 넣은 그물을 일주일쯤 뒤 걷어 올리니, 첫 대게가 경매에 오르는 건 12월 7일 무렵이다. 철이 돌아와도 문턱은 높다. 울진과 영덕은 물론이고 요즘은 동해안 횟집 간판마다 대게를 내걸고 있다. 객단가가 가장 높고, 이문이 가장 많이 남는 메뉴라서다. 대게는 한 마리에 기십만 원을 호가한다. 가격 대신 ‘시가’라고 적어놓은 차림표부터가 불안하다. 판돈이 얼마짜린지 알 수 없는 노름판에 끼는 심정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번 울진 길에선 대게를 뺐다. 얼추 대게 몸값과 비슷해진 홍게도 뺐다. 대신 그 빈자리를 지금 한창인 대구, 방어, 가자미, 강도다리 같은 바다 것들과 울진의 골목 식당과 산자락 두부집으로 채웠다. 마침 6일부터 8일까지 울진 죽변항에서 죽변항수산물축제가 열린다. 대게 금어기에, ‘대게 빼고’ 열리는 축제다.
# 경매사 회식 자리엔 ‘이백이’가 오른다
죽변항 어판장 바닥엔 만새기만 있는 게 아니다. 방어, 참가자미, 기름가자미, 삼치, 고등어, 곰치, 대구가 흔전만전하다. 죽변수협 임준식 경매사에게 지금 뭐가 맛있느냐고 물었다. 참돔과 돌돔, 기름가자미 세꼬시가 한창이란다. 방어와 부시리도 이제 막 맛이 들기 시작했다. 같은 방어라도 여름 것은 살이 푸석하다. 찬물 속에서 기름을 채운 가을·겨울 방어와는 견줄 게 못 된다.
어판장에선 방어를 무게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2㎏ 남짓이면 ‘이백이’, 4㎏이면 ‘사백이’, 6㎏쯤이면 중방어, 그보다 크면 대방어다. 그렇다면 경매사들이 모인 회식 자리에 올리는 건 어느 쪽일까. 대방어가 아니다. 이백이다. 값에 견줘 가장 맛있는 회라는 것이다. 생선값을 매기는 사람들이 제 돈 내고 먹는 건 가장 큰 놈이 아니다.
이날 중방어와 대방어를 섞어서 내놓은 방어가 경매에서 마리당 8만8900원에 팔렸다. 철이 무르익으면 대방어 한 마리가 30만 원을 넘나든다. 문어는 거꾸로 귀해졌다. 예년 1㎏에 3만 원 하던 것이 올해는 5만 원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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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바뀌고 있다. 항구마다 넘치던 오징어는 귀한 몸이 됐고, 그 자리를 방어와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만새기가 채웠다. 국립수산과학원 집계로 동해 표층 수온은 1.90도 올라 서해·남해보다 오름폭이 컸다. 데워진 바다가 어판장 바닥의 물고기를 바꿔 놓았다.
# 물텀벙의 맑은국
곰치도 한때는 천덕꾸러기였다. 흐물흐물한 몸에 험상궂은 얼굴. 그물에 걸리면 도로 바다에 ‘텀벙’ 던져 ‘물텀벙’이라 불렸다는 것쯤은 다 아는 얘기. 그 곰치가 지금은 비쌀 때면 경매가가 마리당 30만 원까지 오른다. 오늘 헐값에 팔려나가는 만새기의 내일을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죽변에서 후포로 내려간다. 후포항 ‘호암수산’은 곰치국 한 가지로 이름난 집이다. 맑은 국물의 곰치국은 한 숟가락 뜨면 속이 확 풀릴 만큼 시원하고, 흰 살은 숟가락 끝에서 부드럽게 무너진다. 곰치국 인기를 ‘한철 유행’쯤으로 여겼는데, 이곳의 곰치국을 맛보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호암수산의 주방은 조국진(64)·이상희(66) 부부가 지킨다. 찾아간 날 이 씨는 깁스한 손으로 국을 끓이고 있었다. 오래 이 맛을 보려면 건강하셔야 한다고 했더니 이 씨가 웃으며 남편을 가리켰다. “남편 솜씨도 훌륭해요.” 빈말이 아니다. 조 씨의 손맛도 만만찮다.
울진 토박이인 조 씨는 후포항 수협 경매에 나서는 중도매인이다. 이 집의 맛은 거기서 출발한다. 곰치는 깊은 바다에 살다 겨울이면 알을 낳으러 연안으로 붙는다. 예전엔 그때 그물에 걸린 걸 먹었다. 풍랑주의보로 배가 묶이면 곰치는 열흘이고 보름이고 그물에 걸린 채 바닷속에 있었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끓이면 살이 풀렸다. 지금은 깊은 바다에 놓은 통발로 산 채 끌어올리고, 영하 2~3도로 맞춘 배 안 냉각 수조에 담아 온다. 죽변이며 후포 횟집 수족관마다 곰치가 그득한 건 그래서다.
“곰치는 살아 있어야 살이 살아 있어요. 오래된 건 싹 풀어져요. 곰치국에 김치를 넣었던 건 그걸 덮으려고 그런 거지.”
감출 게 없으니 맑게 끓인다. 손님 열에 아홉은 곰치 맑은국을 찾는다. 울진 사람들은 껍질부터 챙겨 먹는데 서울 손님들은 껍질만 남기고 간다며 조 씨가 웃었다.
문 연 지 10년쯤 된 집이다. 이 씨가 몸이 크게 아파 열 달 가까이 문을 닫은 적이 있는데, 언제 다시 여느냐는 전화가 끊이지 않았단다. 차림표엔 ‘시가’라 적혀 있다. 곰치값이 날마다 출렁이는 탓이다. 이날의 시가는 2만 원이었다.
# 떨어진 대게 다리의 행방
대게를 뺀다고 했지만 대게 다리 이야기는 하고 가자. 대게를 잡고 옮기다 다리가 떨어진 대게를 ‘파지’라 불렀는데, 그렇게 떨어진 다리를 울진 사람들은 밥상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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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가 없을 때니 보존을 위해 떨어진 게 다리를 말리거나 장(醬)에 박았다. 다리를 쪄서 사나흘 볕에 말린 해각포는 훌륭한 주전부리 겸 술안주였다. 고추장에 박은 다리로는 찌개를 끓였다. 김장에도 대게 다리가 들어갔고, 지짐도 부치고 장조림도 했다.
대게값이 뛰면서 이 음식들은 모두 사라졌다. 예전엔 떨어진 대게 다리는 버리다시피 했던 것인데, 이제는 떨어진 다리까지 모아 경매에 부친다. 그러니 버려지던 다리로 만들었던 향토음식이 살아남아 있을 턱이 없다.
울진 근남면 ‘왕비천 이게대게’는 그렇게 지워진 음식 하나를 다시 차림표에 올렸다. ‘대게짜박이’다. 떨어진 다리가 상하지 않게 간장이나 고추장에 박아 뒀다가 찌개로 끓여 먹던 음식이다. 집에서나 해 먹던 것이라 울진 사람 중에도 모르는 이가 많다. 울진을 다 뒤지고 수소문했는데 대게짜박이를 파는 식당은 이 집뿐이었다.
주인 정인우(67)·오연주(71) 씨 부부는 울산과 경주 출신이다. 거제에서 오리고기 식당을 하던 부부가 울진에 놀러 왔다가 반해 2011년 거처를 옮기며 차린 집이다. 참게탕과 민물매운탕을 팔았는데 장사가 신통찮았다.
마침 울진군농업기술센터가 향토음식.을 모집해 지원했다. 가게는 일본 게 요리를 벤치마킹해 대게 코스요리를 내는 고급 식당으로 탈바꿈했다. ‘이것이 대게’라는 뜻의 상호도 기술센터가 지어 준 것이다. 장사는 그럭저럭 됐는데 앞으로 남고 뒤로 밑졌다. 행정이 앞장선 컨설팅은 음식에만 신경을 썼을 뿐, 원가계산은 뒷전이었다는 게 정 씨의 설명이다.
궁리 끝에 찾아낸 게 울진의 향토음식 짜박이였다. 전해지는 대로 대게 다리를 장에 박았다 끓였더니 짜서 먹을 수가 없었다. 단맛을 더하고 손을 거듭 본 끝에 지금의 짜박이가 나왔다. 옛 음식을 그대로 살려 낸 게 아니라, 오늘의 입맛으로 다시 쓴 향토음식이다.
대게짜박이는 달큼한 고추장 양념에 대게살이 걸쭉하게 엉긴다. 태국의 ‘푸팟퐁커리’가 떠오른다. 저쪽은 카레, 이쪽은 고추장이 바탕이니 전혀 다른 음식인데, 혀에 감기는 질감과 맛의 결은 놀랄 만큼 닮았다. 짜박이에 게살 돌솥비빔밥을 곁들인 차림이 가장 인기다. 대게는 냉동을 쓴다. 생물은 끓이면 살이 풀어져서다.
상호 앞의 ‘왕비천’에는 사연이 있다. 곁을 흐르는 내의 이름은 왕피천(王避川)이다. 왕이 난리를 피해 숨어들었다는 데서 왔다. 정 씨는 식당 이름에 ‘피할 피(避)’ 자를 쓰기가 마뜩잖아 ‘왕비 비(妃)’ 자로 바꿨다고 했다.
# 초록빛 면발의 짬뽕
바닷가엔 짬뽕 잘하는 중국집이 많다. 해물이 흔하고 싱싱하니 그럴 수밖에. 요즘 울진에서 가장 ‘핫’한 집은 죽변의 ‘예원’이다.
김성민(56) 사장은 스무 살에 대구에서 중식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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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에서 중국집을 냈다가 주방 일이 너무 고돼 손을 놓았다. 2017년 울진에 와서 고깃집을 하다 코로나가 덮치자, 다시 잡은 게 중식이었다. 2021년 4월 고깃집 간판을 내리고 중국집 간판을 걸었다. “중식에서 도망쳤다가 막판에 정면으로 도전한 거죠.”
정통 중국집으로 꾸리다 내놓은 회심의 메뉴가 죽변짬뽕과 수사짜장이다. 수사(秀師), 빼어난 요리사라는 뜻이다. 두 메뉴가 입소문을 타자 문어탕수육, 게살멘보샤 등을 잇달아 내놓았다.
죽변짬뽕은 한 그릇에 2만2000원. 짬뽕치고는 비싸다. 그런데 받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대게살과 오징어, 새우, 홍합이 그릇 위로 수북하다. 국물은 깊고 칼칼하다. 요즘 유행하는 ‘불맛’을 입히지 않은, 정통에 가까운 맛이다. 면은 초록빛이다. 미역과 다시마를 비롯한 여러 해초를 넣어 반죽했다. 국물에도 해초를 곱게 갈아 넣는데, 짬뽕 맛의 비밀이 거기 있지 싶다. 손님은 외지인과 주민이 반반이다. 인근 원자력발전소 직원들이 단골이다.
울진읍 ‘청목신신짬뽕’의 차돌짬뽕, 죽변 ‘제일반.’의 달걀프라이를 덮어 내는 비빔짬뽕면도 이름났다.
# 경쟁 없는 식당과 주민들의 횟집
죽변항에는 서로 마주 보는 식당 두 곳이 있다. ‘죽변우성식당’과 ‘돌섬식당’이다. 비슷한 메뉴의 식당이니 경쟁 상대로 여길 법한데, 두 곳 다 늘 단골손님들로 붐벼 경쟁할 겨를조차 없다. 메뉴가 겹치듯 단골도 겹친다. 어제 ‘저기’였다면 오늘은 ‘여기’다. 밥에 비비기 좋게 맵게 볶은 문어볶음, 칼칼한 장치탕, 맑은 대구탕, 살 보드라운 가자미찌개. 두 집을 오가며 날마다 바꿔 먹을 수 있는 울진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두 집은 실은 한 뿌리다. 지금 돌섬식당을 하는 김명랑(62) 씨가 우성식당을 차려 오빠에게 물려줬고, 지금 사장이 그 가게를 사들였다. 뿌리는 같아도 맛은 조금씩 다르다. 동네 사람들은 우성식당에선 대구탕을, 돌섬식당에선 장치탕을 쳐준다. 여행자라면 가릴 것 없다. 한쪽이 붐비면 맞은편으로 건너가면 그만이다.
맛집을 찾을 땐 동네 사람에게 묻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 횟집만큼은 예외다. 우선 바닷가 사람들은 횟집에 잘 가지 않는다. 생선을 사다 직접 떠먹으면 그만인데, 번듯한 횟집에 웃돈을 얹어 줄 까닭이 없다. 입맛의 기준도 다르다. 도시 사람이나 여행자는 정작 회보다 상다리가 휘게 깔리는 ‘쓰키다시’(곁들이찬)에 더 감동한다. 바닷가 사람들은 곁들이엔 영 관심이 없다. 회를 숭덩숭덩 썰어 푸짐하게 내면 그걸로 됐다. 장식도, 모양도 필요 없다. 그러니 마을 사람이 엄지를 치켜드는 횟집에 가 보면 여행자는 십중팔구 실망한다.
울진읍 읍남리의 ‘공석횟집’이 여행자라면 실망할지도 모르는 딱 그런 집이다. 상의 주인공은 숭덩숭덩 썬 회다. 곁들이찬은 기본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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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사람들이 질색하는 마요네즈 버무린 옥수수 따윈 없다.
그래서일까. 손님은 죄다 중년을 넘긴 남자들이다. 찾아간 날 식당 안 손님은 모두 52명이었는데, 그중 여성은 딱 3명이었다. 여성 둘은 주인과 아는 사이였고, 한 명은 모임에 따라 나온 이였다. 울진에서 여러 식당을 다녔지만 손님 성비가 이렇게 한쪽으로 기운 곳은 처음이었다. 이런 종류의 횟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기만큼 흡족한 곳도 없겠다.
여기 소개하는 식당들이 누구에게나 최고일 리는 없다. 모두에게 최고인 맛집은 드물고, 긴 줄을 기꺼이 감당할 만한 집은 더 드물다. 그런데도 여행자들은 식당 하나 고르는 데 애를 태운다. ‘한 끼도 실패하지 않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얼마간의 실패를 처음부터 예정하고 있다. 조금 너그러워져도 좋겠다. ‘그만하면 괜찮은’ 집을 만났다면 단.보다 장。을 찾는 편이 낫다. 실패는 피하는 게 좋다. 그래도 크고 작은 실패가 모여서 여행이 되는 법이다.
# 산판 나무로 세운 두부집
이제 울진의 내륙으로 들어가 보자. 덕구온천 가는 길의 ‘할머니순두부’에선 곤드레밥과 순두부에 반찬 열 가지가 깔린다. 콩자반, 무말랭이, 깻잎, 고들빼기, 된장에 찍어 먹는 고추, 김치에 모두부와 김치전, 도토리묵까지 오른다. 곤드레는 강원 정선에서 들여온다. 울진에도 심어 봤지만 벌레가 먹어 안 되더란다. 콩은 맛이 낫다는 강원도 가곡 것을 쓴다.
두부는 남편 김충길(79) 씨 몫이다. 코로나 이전에 순두부만 팔던 시절엔 한 해에 콩을 1.5t씩 썼다. 트럭 한 대 분량이다. 힘에 부쳐 한동안 곤드레비빔밥에 미역국이나 시래깃국을 곁들여 냈는데, 손님들이 순두부를 찾는 바람에 다시 조금씩 끓인다. 모두부를 사 가겠다는 손님이 많아도 팔지 않는다. 상에 반찬으로 나갈 만큼만 만든다. 하루 100그릇이 팔리면 오후 3시든 10시든 문을 닫는다.
최근숙(75) 씨가 이 식당을 맡은 건 1991년 무렵이다. 그 전엔 덕구온천 호텔 앞에서 여동생과 기념품 가게를 했다. 하루는 형편이 어렵던 한 사내가 찾아와 가게 앞에 칡차 팔 자리를 한 평만 내 달라고 했다. 최 씨는 망설이다 사람이 괜찮아 보여 일단 해 보라고 했다. 장사가 될 것 같지 않아 자릿세는 받지 않았다. 대신 가게가 바쁠 때 일손이나 좀 거들어 달라고 했다.
그 사내가 자기 산판의 나무를 베어다 지은 집이 지금의 할머니순두부다. 그는 여기서 ‘토담집’이라는 두부집을 열었다. 손님이 줄을 설 정도로 장사가 잘됐는데, 사정이 생겨 1년 만에 가게를 접어야 했다. 다른 이와 흥정까지 끝내 놓고도 그는 최 씨에게 가게를 넘겼다. 최 씨는 친정어머니가 함께 있을 때라 간판을 ‘할머니순두부’로 바꿔 달았다. 그때 간판 속 할머니는 친정어머니였는데 이제 간판 속 할머니는 최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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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안에는 그 사내가 산에서 베어 온 나무 기둥이 앞뒤로 여섯 개씩, 모두 열여덟 개가 서 있다. 돈이 없어 다듬지도 못하고 세운 기둥이다. 그 기둥을 쓰다듬으며 최 씨가 말했다. “세상 인연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어.”
# 회밥은 8000원, 소주는 2000원
울진읍에는 오일장인 바지게시장이 있다. 보부상들이 지고 다니던 바지게를 이름 삼은 시장이다. 시장 골목 안에는 ‘칼국수식당’이 있다. 이름은 칼국수식당인데 주 메뉴는 회밥과 회국수다. 회밥이란 메뉴가 낯설지만, 들여다보면 회덮밥이다. 그날 받은 자연산 회가 수북하게 올라간다. 참가자미가 주로 들고, 도미나 광어가 섞이는 날도 있다. 양념장도 훌륭하고, 따라 나오는 육수도 좋지만, 무엇보다 황송할 정도로 넣어주는 회가 압권이다. 회국수도 회밥도 8000원. 혼자 여행하면서 회 맛을 보고 싶다면 이만한 선택이 없다.
칼국수식당은 1978년 도원규(56) 씨의 어머니가 지금 자리의 초가집에서 시작한 식당이다. 개업 초기 칼국수 한 그릇에 500원, 회 한 접시에 2000원을 받았다. 도 씨는 대구에서 지내다 2000년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식당을 꾸려 왔다. 병석의 아버지를 돌봤고, 아버지를 보낸 뒤로는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10년 넘게 집에서 모셨다. 그러느라 결혼도 못 했다. 올해 1월 어머니를 의료원으로 옮긴 뒤에도 이틀에 한 번은 꼭 면회를 간다. 울진문화원은 지난 2월 그를 제1회 소헌효행상 수상자로 뽑았다.
도 씨는 몇 달 전 결정을 하나 내렸다. 회를 직접 뜨지 않기로 한 것이다. 직접 회를 치면 재고가 남거나, 거꾸로 재료가 일찍 떨어져 오후 장사를 접는 날이 많았다. 지금은 믿을 만한 곳에서 그때그때 회를 받아 쓰고, 그 대신 양념장과 곁들여 내는 육수에 온 힘을 쏟는다. 육수는 15시간을 끓인다. 회를 그날그날 받으니 오히려 더 싱싱한 회를 낼 수 있게 됐다.
어판장의 대방어는 성수기면 한 마리에 30만 원을 넘고, 한 달 뒤면 대게 횟집 차림표에 다시 ‘시가’가 붙을 것이다. 그래도 칼국수식당의 회밥은 8000원이고, 소주 한 병은 2000원이다. 도 씨는 병석의 어머니 말고는 챙겨야 할 가족도 없고, 돈 욕심도 없다고 했다. “여행 온 사람들이 부담 없이 회에 소주 한잔하고 가는 집, 울진 하면 좋은 기억으로 남는 집이면 돼요.”
■ 죽변항
가을 울진 바다의 맛을 한자리에서 보려면 죽변항으로 가면 된다. ‘2026 죽변항 수산물축제’가 오는 6일부터 8일까지 오전 11시∼오후 7시 죽변항 일대에서 열린다. 대게 금어기라 대게는 빠지지만, 지금 막 맛이 드는 방어와 가자미, 대구가 그 자리를 채운다. 동해안 제철 수산물을 맛보는 것은 물론, 맨손 활어잡기와 수산물 즉석경매 같은 체험 프로그램도 준비됐다. 울진군수가 서울 지하철역에 나가 ‘회개하십시오! 회가 개맛있는 곳! 죽변항으로!’라는 피켓까지 들었을 만큼 공을 들인 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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