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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글로벌 기술수출(L/O)이 역대급 호황을 맞이하고 있지만, 이제는 '얼마에 팔았는가'라는 외형적 규모를 넘어 '어떻게 유지하고 개발을 완주할 것인가'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글로벌 빅파마와 계약을 체결한 경험을 지닌 패널들 화려한 계약금 뒤편에는 빅파마의 서랍 속에 파이프라인이 갇혀 방치되거나, 모호한 계약 문구 하나로 수년간의 소송전에 휘말리는 '보이지 않는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시작.부터 철저한 사전 준비와 정밀한 계약 설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29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바이오플러스-인터펙스 코리아 2026(BIX 2026)' 전문세션 14에서는 '계약 전엔 몰랐다: 바이오 딜을 흔드는 결정적 변수'를 주제로 빅파마의 문턱을 넘어 실질적인 계약을 끌어내는 '의사결정 논리'부터 개발 중단을 막는 방치 금지 해법까지, 실패를 피하기 위한 실전 딜메이킹 전략이 공개됐다.
이날 좌장을 맡은 남호연 브이에스팜텍 사업개발(BD) 이사는 "지금은 과거의 거래를 단순히 평가할 때가 아니라 실제 경험과 교훈을 나눠야 할 시."이라며 "2027년에는 한국 바이오 기업들이 계약 규모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한 단계 성숙하길 바란다"고 말문을 열었다.
"데이터 양이 능사 아냐"…빅파마의 의사결정을 바꾸는 '논리' 필요
국내 바이오텍이 빅파마와 파트너링 미팅을 진행할 때 가장 흔하게 듣는 거절 문구는 "더 많은 데이터가 나오면 다시 오라(Come back with more data)"는 말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추지희 마운틴 인플렉션 대표는 "많은 바이오텍이 IND 단계 연구나 비임상 독성(GLP tox) 데이터를 추가해 돌아가지만 결국 또 거절당하곤 한다"며 "빅파마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타깃과 질병의 연결고리, 그리고 인체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가'를 증명하는 성공 예측 논리로 단순히 실험을 늘릴 게 아니라, 이 데이터가 파트너사 내부의 의사결정을 실제로 바꿀 수 있는지를 먼저 파악하고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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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혁 지피씨알(GPCR)의 최고사업책임자(CBO)이자 사업개발 이사는 "GLP-1이나 ADC, 인비보 CAR-T 같은 최신 트렌드에 속하지 않더라도 포기할 필요는 없다"며 "당시 아무도 유전자 치료제에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문을 두드린 끝에 22년 전 북경 노스랜드 바이오텍과 체결한 계약이 결실을 맺어 올해 신약 승인과 로열티 창출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무리 비인기 분야라도 가치를 알아봐 줄 파트너를 찾는 작업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NDA부터 텀시트까지…'기업 위생'과 'CMC'가 거절 구실 없앤다
이날 패널들은 비밀유지계약(NDA) 체결 후 조건합의서(Term Sheet)로 넘어가기 전 딜이 좌초되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초기 실사(Due Diligence) 준비 부족'과 '제조(CMC) 리스크'를 꼽았다.
조슈아 T. 호프하이머 글로벌 로펌 시들리 오스틴 파트너 변호사는 "빅파마 BD 팀의 실질적인 업무 중 하나는 수많은 후보 중 '신속하게 거절할 이유'를 찾는 것"이라고 단언하며 특허 양도 서류, 원천 라이선스 계약의 영문 정리 등을 제대로 정비하지 않으면 빅파마는 텀시트 단계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실험실 수준의 성과에 매몰돼 생산 공정을 간과하는 관행에 대한 쓴소리도 이어졌다. 양원석 성균관대 겸임교수 및 머스트바이오 전문위원(박사)은 "실험실에서 만들 수 있다고 해서 상업적으로 GMP 제조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며 "과거 한 스타트업이 공정에 소 유래 알부민(BSA)을 일상적으로 사용했다가, 광우병 우려에 따른 규제로 전체 배양 공정을 전면 재설계해야 했던 사례가 있다. 첫날부터 CMC와 상업적 생산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딜은 깨진다"고 강조했다.
본격적인 텀시트 협상 테이블에서는 계약금(Upfront)이나 마일스톤 등 '숫자'에 가려진 법적·기술적 정의가 추후 대형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도 거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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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석 위원은 "예를 들어 GLP-1/글루카곤 이중작용제로 계약을 맺었는데, 향후 제3자에 의해 해당 분자가 다른 수용체에도 작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파트너사가 그 권리까지 라이선스 범위에 포함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며 "라이선스 제품과 기술, 복합제, 파생물과 개량물의 범위를 텀시트 단계에서 얼마나 정밀하게 규정하느냐가 2~3년 뒤 치명적인 소송을 막는 열쇠"라고 말했다.
호프하이머 변호사 역시 텀시트 단계의 '스코프 크립(Scope Creep·범위 잠식)'을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라이선스 아웃은 회사를 매각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 후에도 독립된 기업으로 지속 성장해야 하는 구조"라며 "계약 이후 도출되는 개량 IP까지 파트너사에 귀속되거나 과도한 경업금지·독.권 조항에 묶이면 회사의 차기 파이프라인 개발이나 잠재적 M&A 기회가 완전히 차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빅파마 '읽씹'·스펙 강요 때는 과감히 털고 나와라"…'Go/No-Go' 해법
협상 과정이나 계약 체결 이후 파트너사의 기류 변화를 읽는 '레드 플래그(Red Flag)'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도 쏟아졌다.
임재혁 이사는 "딜은 연애와 같다. 상대의 이메일 회신이 .。 늦어지며 이른바 '읽씹'을 하거나, 미팅 참석자의 직급이 낮아지고 단독 미팅 대신 '다음 JPM이나 BIO 행사 때 보자'며 미룬다면 상대가 관심을 잃었다는 명백한 신호"라고 말했다.
이어 임 이사와 패널들은 상대가 통제 불가능한 무리한 조건을 내걸 때는 과감히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오는 '워크어웨이(Walkaway)' 결단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퍼스트 인 클래스'나 '베스트 인 클래스' 조건을 달며 "경쟁 약물이 먼저 시장에 나오면 마일스톤을 절반으로 깎는다"거나 "10개 스펙 중 7개를 못 맞추면 감액한다"는 등 개발사가 통제할 수 없는 무리한 제안을 고수한다면 미련 없이 손을 털고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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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지희 대표는 "빅파마의 질문이 언제까지나 전임상 랩 데이터에만 머물러 있다면 진성 바이어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며 "실제 상업화 의지가 있는 파트너는 초기부터 임상 설계, 시장성, 환자 접근성, 라벨링(홍보 문구)까지 역순으로 질문을 파고든다"고 말했다.
계약 체결 후 파트너사의 우선순위 변경 등으로 물질이 방치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대안도 제시되었다. 통상 빅파마가 표준 문구로 고집하는 '상업적으로 합리적인 노력(CRE)' 조항만으로는 실질적인 개발 진행을 강제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 때문이다.
호프하이머 변호사는 "임상 데이터 락(Data Lock) 이후 파트너사가 일정 기간 내에 다음 단계 임상 진행 여부를 반드시 확정하도록 계약을 설계하는 방식"이라며 "상대에게 무리한 일정을 강요하는 대신, 기한 내에 진행 여부를 결정하지 않으면 권리를 원개발사에 반환하도록 해 파이프라인이 사장되는 위험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파트너십의 본질은 신뢰와 체계적인 사후관리
패널들은 성공적인 기술수출을 이끄는 궁극적인 동력으로 '파트너사와의 깊은 신뢰'와 '체계적인 사후 관리'를 꼽았다.
임재혁 이사는 "식사 없는 거래는 없다"는 말을 인용하며 "어려운 고비마다 솔직하게 문제를 털어놓고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힘은 격식 없는 소통과 신뢰 관계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양원석 위원은 "빅파마는 조직 개편과 인력 이동이 잦기 때문에 우리 프로젝트를 밀어줄 '내부 챔피언'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시니어급 얼라이언스 매니저의 역할이 체결 후 1~2년을 좌우한다"고 짚었다. 또한 계약 체결 직후 CEO가 단순 서명식에 그치지 않고 사내 R&D, 임상, CMC, IP, 재무 부서를 한자리에 모아 명확한 실행 목표와 파트너십 철학을 전파해야 실행 단계의 혼선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추지희 대표는 "성공적인 파트너십은 결국 '어떤 결과가 나왔을 때 앞으로 나아가고, 어느 시。에 멈출 것인가'에 대해 양사가 사전에 명확히 합의하는 것에서 완성된다"며 "빅파마가 왜 우리 자산을 필요로 하는지 그들의 시각에서 냉정하게 분석하는 역량이 기술수출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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