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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 관해서 청인들에게 더 이상 예의 바르게 맞춰주려 하지 않게 되자, 소리를 제 방식으로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김 크리스틴 선(46)은 소리를 이미지로 펼쳐 보이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다. 미국에서 태어나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김 작가는 미국수어(ASL)와 기보법, 문자와 도표를 끌어들여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발전시켜 왔다. ‘누가 발언할 수 있으며 누가 배제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소통을 둘러싼 권력 구조를 가시화한다.
최근 ‘천재들의 상’으로 불리는 2026년 맥아더 펠로우십에 선정되고 타임지의 ‘TIME100 Art’에 이름을 올리는 등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 서울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완고한 바위, 무모한 싸움들’과 갤러리현대 ‘달 마음’ 전시를 잇따라 선보이며 한국과의 접。을 넓히고 있다.
지난 9일 경향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어릴 때 저는 소리에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고 다른 사람들이 정한 규칙을 받아들이도록 배웠다”고 말했다. 2008년 베를린의 짧은 레지던시가 전환.이 됐다. “그전까지 저는 농인의 세계 안에 있었어요. 처음엔 농인들이 소리 없이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소리를 매체로 삼는 일이 문화적 의미에서 저를 ‘덜 농인답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죠.” 전환은 청인이 정한 규칙을 따르는 데서 벗어나 소리를 자기 방식으로 다루는 데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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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관심은 소통의 규칙과 권력, 언어 자체로 넓어졌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박스를 채운 ‘완고한 바위, 무모한 싸움들’에서는 영문 제목 ‘Have Many Dumb Fights Against Rock’의 여섯 단어와 미국수어 표현을 옮긴 이미지가 바위를 향해 부딪친다. “바위는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을 뜻합니다. 권력, 땅을 소유하는 사람, 법을 만드는 사람, 역사의 무게, 사람들이 가진 확신의 무게 같은 것들입니다.” ‘무모한 싸움’은 변화를 상상하는 단초이기도 하다.
그의 작업은 언어와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한다. 작품 속 글은 영어 단어로 쓰였지만, 미국수어 표현을 기록한 ‘글로스(gloss)’다. 미국수어는 영어와 다른 고유한 문법과 문장구조로 이뤄져 있다. 그는 “문자 언어는 저와 수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명확한 중간 지。”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7월 국립현대미술관 간담회에서는 김 작가가 미국수어로 한 말은 통역사에 의해 영어로, 또 다른 통역사를 통해 한국어로 기자들에게 전해졌다. 그는 두 사람의 해석에 자신의 언어를 맡겨야 했다. “모든 단계를 신뢰해야” 가능한 소통이다. “독일에 사는 미국수어 사용자인 제게 언어의 겹침, 직역과 의역이 섞이는 방식은 자연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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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에는 한국수어와 국제수어 해설이 마련됐다.
한국에서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요구하며 수년간 벌여온 출근길 지하철 시위처럼, 소수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꿈쩍 않는 사회를 향해 같은 요구를 반복해야 한다. 그는 “같은 요청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잘 안다”고 했다. 미술관에 접근성을 요청하며 겪은 경험이 ‘Ghost(ed) Notes’ 연작으로 이어졌다. 악보선 위에 음표가 놓이는 대신, 선이 음표를 피해 휘어지며 음표들을 선 밖에 남겨둔다. “충분한 접근성을 위한 제 요청과 미국수어 통역사와 함께 작업할 때 드는 비용의 문제 앞에서, 미술관들이 저를 ‘고스팅’하듯 대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제 요청에 더 이상 답하지 않는 겁니다.”
그는 차별과 부조리에 대한 분노를 재치있게 전달한다. 유머는 뉴욕에서 청인들과 부딪치며 익힌 소통의 기술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제가 다루는 주제를 무겁게 느끼곤 합니다. 유머는 제가 어떤 것에 분노하고 있을 때도 사람들이 제 곁에 머물게 합니다.”
흑백의 명료한 선과 문자를 택한 배경에는 청인 중심 사회에서 뜻이 잘못 전달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이번 ‘달 마음’에선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푸른색과 녹색을 소용돌이치는 듯한 붓질로 쌓아 올렸다. 새로운 시도를 따라와 주는 관객이 그에게 자신감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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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처음에 어떤 부분을 잘못 읽더라도 이제는 괜찮습니다.”
‘달 마음’에서는 시선이 내면으로 향한다. 처음 공개한 ‘셰이프드 캔버스’ 회화는 모양을 낸 두 화면이 위아래로 짝을 이룬다. 그 간격은 타인의 해석에 맡겼다. “마음을 무게와 표면, 부피를 지닌 것으로 다루고 싶었습니다. 눌리거나 붙잡힐 수 있는 것으로요.”
달은 딸의 한국 이름이기도 하다. 가족과 한국적 뿌리도 작업에 조금씩 들어오고 있다. “자라면서 농인 정체성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기 때문에 한국계 미국인 정체성은 뒤로 밀려나 있었습니다. 베를린에서 저 자신도 이민자로 살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김 크리스틴 선은 최근 맥아더 펠로우십에 선정됐다. 맥아더 재단은 “소리, 구어, 소통의 정치적, 문화적, 다감각적 차원을 탐구하는 작가”로 소개했다. 그는 “농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일이다. 우리는 시스템 바깥에 놓여 있고, 제 작업의 많은 부분은 바로 그 지.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다감각적’에 대해서는 “초기에는 진동과 저주파가 작업의 중심에 있었다. 이후 소리를 정치적·개념적으로 다루며 .。 더 언어 자체에 주목해왔다”고 변화를 짚었다. 이어 “소리를 감각적 경험뿐 아니라 개념적인 것으로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몇 년간 끊임없이 전시해온 그는 이제 속도를 늦추고 스튜디오에서 실험과 발견을 이어갈 시간을 기대한다. “언젠가는 제 작업을 덜 설명하고 그저 작업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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