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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10-08 01:25 조회 4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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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을 주도하는 한흑구가 ‘검열난’을 삼중고의 하나로 꼽았다시피 일제(조선총독부)는 라디오 방송도 엄혹하게 검열했다. 1937년 평양방송국에는 1933년 경성에서 ‘극예술연구회’ 회원으로 활약한 희곡작가 이석훈이 근무하고 있었다. 한흑구와 자주 어울렸다. 그는 이석훈의 외모에 대해 “키가 크고 늠름한 평민 타입인데 미국의 평민 타입을 대표하던 배우 게리 쿠퍼와 같은 인상을 주는 쾌남풍”이라 했다. ‘쾌남풍’ 친구의 요청으로 한흑구는 여러 차례 영미문학에 대해 방송했다. 기어이 검열의 칼날을 피하지 못한 사단이 일어났다. 그때로부터 서른네 해 뒤, 포항에서 회갑을 넘어선 한흑구는 1971년 7월호 ‘현대문학’에 실은 ‘석훈과 효석’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내가 20분간 이야기할 방송 원고를 만들어서 일주일 전에 석훈에게 보내고, 그것이 평양도청을 거쳐서 총독부 도서과를 통과해서 나와야 했다. 원고를 써 보낸 지 며칠 후에 석훈이 도청에 불려가서 톡톡히 훈시를 받고, 또 사무상에 실수를 하였다는 시말서를 쓰고 나왔다. “한 형, 미안해. 흑인문학에 대한 방송원고는 전문 삭제를 당했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상기된 그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개자식들! 오해를 할까 봐 삭제를 했다구! 참!” 그의 얼굴이 분노에 넘쳐서 어쩔 줄을 모르는 표정이었다. “자식들! 청취자들이 오해할까 봐! 오해할까 봐 너희는 걱정이지만, 우린 이해를 못할까 봐 걱정인데.” 석훈과 나는 서러이 마주 바라보면서 쓴웃음을 웃고 말았다.> 전문 삭제를 당한 원고는 다음과 같았다. <흑인들은 아프리카의 원시림 속에서 백인들에게 납치돼 자연과 자유를 빼앗긴 채 미국의 신대륙에서 노예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문학은 노예해방을 전후해서, 이 비참한 노예생활을 그려낸 것입니다. 흑인 시인 랭스턴 휴스의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검둥이들은 무엇하려고 태어났을까! 이 세상엔 목화 딸 사람이 없어서 우리 검둥이가 태어났다네. 조지아나 텍사스주의 목화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흑인들 사이에서는 이런 노래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릴게임,릴박스,릴짱,게임몰,릴게임사이트 흑노(黑奴)들은 아프리카의 바나나 숲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동경하고 늘 고향의 집을 안타까이 그리워합니다. 그들의 시나 노래의 주제는 모두 집을 생각하고, 고향을 찾자는 것입니다. ‘버지니아의 나의 집’이라든지, ‘켄터키의 옛집’, ‘스와니강가의 나의 집’, ‘행복한 집, 나의 집(Home, Sweet Home)’ 등 그들은 언제나 그들의 옛집, 그들의 고향을 안타까이 그리워하고 찾으려고 울부짖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흑구는 흑인 노예들이 ‘집’, ‘고향’을 동경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우리도 잃어버린 우리의 집, 우리의 조국인 대한을 찾아야 하겠다는 것을 은유로 삼아서 썼던 것이다. 일본 관리들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때 일제 검열관이 삭제했던 흑인의 노래들을 필생에 걸쳐 술자리 애창곡으로 삼게 되는 한흑구는 1937년 4월 총각 시절을 마감한다. 스물여덟 살이었으니 당시로는 늦은 결혼이었다. 신부는 황해도 출신의 방정분(方貞分). 신랑보다 네 살 아래였다. 이화여전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이화여전 다니는 한흑구의 여동생 덕희가 오빠와 자기 친구를 맺어줬다. 홍난파 교수와 공연도 하고 야학 교사도 해온 신부는 이름난 여대생이었다. ‘평양으로 시집가는 바람에 황해도는 아까운 재원 하나를 잃었다’라는 가십 기사가 나오게 했던 방정분은 마치 인생의 미래를 어느 누가 알겠는가 하듯이 결혼 후 열다섯 해쯤 지난 무렵부터는 포항에서 중고등학교 음악교사로 봉직하게 되고···. 1931년 가을에 이미 만주를 。령한 일제는 1937년 7월7일 중일전쟁을 일으킨다. 그 포성이 터지기보다 딱 열흘 앞, 한흑구와 방정분이 신혼 단꿈을 백 일도 못 채운 1937년 6월28일, 한승곤과 한흑구(세광), 아버지와 아들은 안창호, 김동원, 이광수, 주요한 등과 함께 전격적으로 일경에 체포되었다. 작가 한흑구로서는 단편소설 ‘이민일기’를 ‘백광’ 6호에 발표한 바로 다음이었고, ‘백광’의 주간 한흑구로서는 7호를 마감하는 중이었고, 지아비 한흑구로서는 이듬해 3월에 태어날 장남이 아내의 자궁 속에 생명을 잉태한 바로 다음이었다. 야마토게임 이른바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 사건’이다. ‘흥사단(동우회) 사건 검거에 관한 건’, 京鍾警高秘 제7735호(1937년 10월28일)에서 일본 특고는 날카롭게 서술한다. “동우회는 단순한 수양단체가 아니라 흥사단 운동으로서 동우회라는 명칭은 당국을 위장하는 수단이다. 그 흥사단에서 정해진 일반단원, 예비단원, 특별단원 등 자격은 동우회의 일반회원, 예비회원, 특별회원 등의 자격에 각각 해당되며 흥사단원이 조선에 귀국하면 아무런 수속도 필요 없이 그 자격에 맞게 동우회원으로 된다. 또한 동우회원으로서 상해 및 미국에 건너가면 마찬가지로 자격에 응하여 흥사단원으로 된다는 제도가 있다.” 이 사건으로 1938년 3월에 이르기까지 183명이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 “왜경은 조사로 조진다”라는 말도 있었다시피, 철창 속 구류 상태에서 취조실로 불려 다니는 기간의 하루하루는 정식 징역살이의 하루하루보다 훨씬 더 가혹한 시간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똑같이 징역살이에 들지는 않았다. “기소중지: 평양부(平壤府) 이하 부정확함. 신의주부(新義州府): 자동차업: 상민: 한세광: 32세 전후” ‘32세 전후’의 ‘한세광’은 물론 한흑구다. 연령 추측은 ‘이하 부정확함’이란 그대로 한참 틀려서 28세였다. 당시 그는 생계 수단으로 평양과 신의주를 오가는 트럭 운송업을 시작한 참이었다. 한승곤은 세 해 남짓 옥살이를 하고 쇠약한 몸으로 풀려난다. 도산 안창호와 아버지를 비롯한 흥사단 지도자들과 단우들을 철창에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온 한흑구는 조금씩 아랫배가 불러오는 아내를 지켜보며 평양상공회의 요청을 받아 ‘대평양’ 제3호를 상공업 중심의 혁신호로 발간해준다. 하지만 그는 곧 평양을 떠난다. ‘대평양’도 사라진다. 7호 발간을 눈앞에 뒀던 ‘백광’도 그만 불이 꺼진다. 한반도의 어둠을 거부하는 별빛 하나가 우주의 저편으로 가뭇없이 사라진 사건이었다. 한흑구가 시에서 ‘님’이라 부르기도 하며 가장 존경한 도산 안창호는 1937년 12월에 병보석으로 석방되나 이듬해 3월10일 경성대학부속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황금성릴게임 파란만장한 독립투쟁의 길을 걸어온 선각자는 그렇게 겨우 회갑을 앞둔 때에 고투의 생을 마치고 식민지 지배로 핍박받는 조국, 그 되찾지 못한 하늘로 불려 올라가 생전의 눈빛처럼 반짝이는 새 별로 부활한다. 평양의 사라진 ‘백광’을 대신하듯이. 그때, 한흑구의 새 거처는 평양에서 육십여 리 떨어진 평남 강서군 성태면 연곡리, 조상들의 체취와 유산이 남은 산골로, 일제의 감시와 억압과 회유가 조금은 헐거워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는 손수 밭을 일구었다. 과수원도 꾸렸다. 시골집에다 ‘성대장(星臺莊)’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성태면(星台面)이니까 ‘별’ 때문에 시비 걸릴 것도 없었다. 그러나 조선 문단은 친일문학의 광풍에 휩쓸리고 있었다. 그는 결심을 세웠다. 차라리 펜을 놓더라도 스스로 정신을 굴절하거나 배반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감시를 받으며 글을 빼앗긴 것과 다름없는 칩거 신세가 얼마나 답답하고 스산했겠는가. 1939년 ‘사해공론’에 실린 수필 ‘재떨이’에서 한흑구의 잠들지 못하는 꼭두새벽을 엿볼 수 있다. “시계침은 오전 세 시를 L자(字)로 그리고 있고, 담배를 빨고 누운 나의 입술은 긴 겨울의 밤을 세 번이나 울어 고하는 닭의 소리를 차디차게 감촉한 것이다. 내가 촌으로 와서부터 가지게 된 한 가지 생리적 습관이라는 것은 밤 세 시에 깨어서 닭의 울음을 귀담아 듣고 담배를 한 대씩 태워 버리는 그것이다.” 새벽 세 시에 일어나 담배를 태우는 그러한 날들을 한흑구는 ‘동면(冬眠)’이라 했다. ‘동면’은 그의 마지막 시로 남았다. 1940년 6월 ‘시건설’에 실린 ‘동면’ 4연이다. “나는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머구리와 같이 동면을 계속한다. 다만 앞동리(洞里)의 연못이 썩지나 않았나 앞겨울 보금자리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흑구는 농사를 짓고, 방정분은 태어난 아이들을 키웠다. 부부는 시골 사람들의 요청을 받아 야학도 열었다. 이러한 생활을 그가 ‘동면’이라 부른 시절에 친일문학이 조선 문단을 풍미했다. 태평양전쟁까지 일으킨 일제가 조선 문학인들을 겁박하고 회유했으니, 성대장 주인도 칼을 차고 나타난 제복과 수시로 상대했다. 그러나 한흑구는 ‘다만 앞동리의 연못이 썩지나 않았나?’ 하고 암흑기에 들어선 조선 문단을 염려하며 ‘봄이 온다는 것’을 믿고 기다리는 정신으로 끝내 친일문학을 거부한다. /이대환 작가 ground-c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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