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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무실에서 동료와 함께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공간을 모델링하고 기둥과 바닥 등에 재료를 입히는 렌더링 작업을 했다. 마지막 단계에서 인공지능(AI)을 일부 활용했지만 결과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아직 AI는 멀었구나’ 싶었다.》
그런데 다음 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다른 동료가 우리가 작업했던 투시도를 AI 프로그램으로 10분 정도 손봐서 보여줬는데 결과물이 놀라울 정도로 훌륭했다. ‘어제 우리가 하루 종일 한 일은 뭐였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정도라면 2, 3년 뒤에는 정말 사무실 직원이 절반으로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잠시 뒤 그 결과물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물어봤다가 더 놀랐다. AI를 이용해 직접 렌더링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프로그램으로 투시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전의 상식으로는 컴퓨터 프로그램은 전문 프로그래머들이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이제는 컴퓨터 언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건축디자이너가 자신에게 필요한 렌더링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일이 가능한 시대가 됐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완성된 투시도를 세밀하게 수정하는 작업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이다. AI가 임의로 만들어낸 투시도는 멋졌지만 청개구리처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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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하지 말라는 부분을 마음대로 수정하고, 반대로 수정하라는 것은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했다. 건축가가 만드는 투시도는 가상이지만 실제 재료와 공간, 구조를 전제로 한 가상이다. 반면 AI가 만든 투시도는 원하는 분위기를 화면상에만 그럴듯하게 구현하는 데 가까웠다.
그날 AI로 일부 수정한 투시도와 도면을 건축주에게 보냈다. 며칠 뒤 건축주에게서 돌아온 것은 그것에 대한 ‘의견’이 아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가해 AI로 만든 새로운 투시도였다. 여러 결과물 가운데 자신의 생각과 가장 비슷한 ‘이미지’를 골라 보낸 것이었다.
건축주가 보낸 그 ‘이미지’를 보고 한참 고민한 끝에 내가 건축주에게 다시 보낸 것은 의견에 관한 ‘글’이었다. 이전에는 건축주가 생각하는 건물에 대한 정보를 참고 이미지나 말과 글로 전달하면 건축가는 이를 이해하고 해석해 도면과 모형, 투시도로 보여줬다. 그런데 이제는 정반대가 된 것이다. 건축가의 역할에 대해 그동안 가지고 있던 관념을 다시 정의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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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일반인이 자신이 원하는 것과 비슷한 사진이나 그림을 그려 AI에게 보여주고 설명하면 이를 3차원으로 모델링하고 원하는 재료를 입혀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게 됐다. 건축 법규를 검토하고 실제로 지을 수 있는 계획안을 만드는 데는 여전히 상당한 훈련과 경험이 필요하지만, 이 영역에서도 이미 일부는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지금 건축가가 하는 일들을 AI의 도움을 받아 건축주가 직접 할 수 있게 된다면 몇 년 뒤 건축가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최근 오픈AI는 수학계 7대 난제 중 하나인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의 존재성과 매끄러움 문제’에 대해 AI가 약 88시간 만에 해법을 제시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 역대 수상자 25명이 공동성명을 내고 “AI 기업들이 수학 문제 풀이를 성능 벤치마크로 삼아 경쟁적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은 수학이라는 학문 공동체가 추구해 온 목표와는 본질적으로 어긋난다”라고 지적했다. 이들이 말하고자 한 것은 난제를 푸는 것만으로 수학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다.
수학자들은 오랜 시간 연구와 토론을 거쳐 해법을 검증하고, 새로운 개념과 방법을 찾아내 이를 정리하고 단순화한다. 이들은 “문제 풀이 자체는 개념적 이해와 통찰이라는 본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자 대리일 뿐”이라며 “결론만 쏟아낸다면 인류의 아이디어가 자랄 토양 자체를 파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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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도 마찬가지다. 건축은 단지 건물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그 안에는 인류의 기술과 역사, 문화와 생활, 시대정신이 담겨 있다. 앞으로 닥칠 지구적 문제와 공동체의 미래를 고민하고 그 결과를 공간에 담아내는 일 역시 건축의 몫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먼저 질문을 던지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고민하며 그 생각을 공동체에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일. 그것은 질문에 엄청난 속도로 답하는 AI보다 인간이 해야 할 일에 가깝다.
디자인 역시 단순히 형태를 만들고 장식하는 일이 아니다. 통찰과 소통을 바탕으로 인간의 삶의 기쁨과 긍지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행위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과 디자인은 형태를 만드는 것을 넘어 공동체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AI를 단순한 도구로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지나가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최근 “AI가 의식이 없다고 상상하기 어렵다”며 “인류 진화의 새로운 전환.에 와 있다”고 주장했다.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이미 인간의 일과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간과 AI가 어떻게 적절히 공존할 것인지 모색하는 일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이다.
김대균 건축사·착착건축사사무소 대표
성과 매끄러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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