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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10-05 00:57 조회 113 댓글 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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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노벨상 발표가 이어진다. 이맘때면 한국은 ‘왜 우리에겐 과학 분야 수상자가 없느냐’는 물음을 되풀이한다. 60년 전 그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젊은 재미 한국인이 이론물리학자 이휘소다. 최형섭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초대 소장이 회고록에서 “한국 사람에게 노벨상을 준다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은 그는 1966년, 막 출범한 KIST에서 일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최형섭 소장은 거절했다. KIST는 산업기술을 개발할 곳이니 기초연구는 미국에서 대성해 달라는 답이었다. 이휘소는 다시 썼다. “언젠가 기초연구를 할 처지가 되면 반드시 저를 제일 먼저 불러주십시오.” 가난한 나라가 천재를 불러들이지 못한 슬픈 일화로 읽기 쉽다. 그러나 이 편지에는 대한민국을 산업강국으로 만든 선택과, 그 선택 너머의 과제가 함께 담겨 있다.
■
「 당장 써먹을 기술 급했던 한국
기초과학자 채용해 기술 개발
21세기 한국, 추격만으론 불가
선도국 되려면 기초연구 필수
」
노벨상 수상자가 인정한 한국의 기적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엘 모키어는 지속성장의 조건으로 두 지식의 결합을 꼽았다. 자연의 원리를 이해하는 지식(과학)과, 만드는 법을 아는 지식(기술)이 서로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즐겨 드는 사례가 제임스 와트다. 글래스고대학 기구 제작자였던 와트는 화학자 조지프 블랙과 교류하며 잠열 이론을 접했고, 이를 바탕으로 분리응축기를 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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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혁명을 일으킨 증기기관의 핵심이다. 모키어는 수상 직후 한국의 성장을 ‘기적’이라 불렀다. 그의 틀로 보면 그 기적의 방정식이 선명해진다. 한국은 과학자와 기술자가 따로 자라 교류하기를 기다릴 형편이 아니었다. 대신 한 연구자 안에 과학과 기술을 함께 녹여 넣었다. KIST 해외 과학자 모집에 지원한 500여 명 가운데 물리학 전공이 400여 명, 금속·기계는 각각 10명 남짓이었다. 기초과학자로 산업기술 연구소를 꾸려야 했다. 최형섭은 추린 78명을 미국 현지에서 면담하며 한국 산업의 실제 문제를 주제로 연구계획서를 쓰게 했다. “절 그렇게 못 믿겠습니까”라고 항의하는 제자에게 그는 답했다. “지금 한국에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연구를 했다가는 곤란하다. 기업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해야 하는데, 그것은 학구적으로 재미없을 수도 있다.” 이에 확답한 18명이 첫 연구진이 됐다.
그 열매가 ‘동복강선(銅覆鋼線)’이다. 강철에 구리를 입혀 값싸고 잘 끊어지지 않는 전화선이다. 당시 세계 네 나라만 갖고 있던 이 기술을 1970년대 KIST와 일진그룹이 공동개발로 따라잡았다. 이 선으로 전국에 통신망을 깔았고, 해외입찰에서 선진국 업체를 제치고 수출까지 했다. 기술 내재화에서 수출입국으로 이어지는 신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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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키어의 이론이 나오기 훨씬 전에 한국은 이를 정책으로 현장에서 실증한 셈이다. 그러나 과학을 산업에 잇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쓸모를 묻지 않는 탐구까지 뒷받침한 것은 아니었다. 추격 단계에서는 ‘왜’보다 당장 작동하는 ‘어떻게’가 급했고, 산업 수요와 거리가 먼 기초연구는 뒤로 밀렸다. 이휘소의 두 번째 편지에는 그 선택의 불가피함과 함께 ‘언젠가’라는 기대가 담겨 있었다.
한국은 이제 추격만으로 성장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AI 반도체의 핵심인 HBM은 한국이 세계 최초로 개발해 시장을 열었고,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는 국가 세수를 웃돈다. 그러나 중국이 여러 첨단분야에서 이미 우리를 앞지른 지금, 남의 정답을 반복해서는 내일의 최초를 만들 수 없다. 산업현장에서 부딪힌 현상의 근본 원리를 캐는 연구는 물론, 우주와 물질의 기원처럼 산업과 무관한 질문을 좇는 연구도 함께 가야 한다. 이휘소의 소립자 물리학이 바로 그런 연구였다.
다행히 현 정부에서 변화가 시작됐다. 내년 예산안에서 풀뿌리형 기본연구를 크게 늘렸다. 양자정보과학기술 사업을 경제성 잣대로 탈락시켰던 R&D 예비타당성조사는 폐지됐다. 연구자가 과제를 따서 인건비를 메우던 출연연의 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PBS)도 단계적으로 없애고, 대학에는 예산을 통째로 주는 블록펀딩을 도입한다. 과제가 아니라 사람과 기관을 믿고 맡기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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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표에 못 미쳐도 값진 지식과 데이터를 남긴 ‘의미 있는 도전’에는 후속연구를 지원한다. 실패도 낭비가 아니라 축적이라는 뜻이다.
질문하고 기다리고 실패해야
정작 어려운 것은 기다림이다. 기초연구의 열매는 수십 년 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맺히기도 한다. 지난해 노벨물리학상을 안긴 40여 년 전의 초전도 회로 실험은 오늘날 양자컴퓨터의 토대가 됐다. 오늘 저녁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수상자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40년 걸리는 질문을 기다려 준 적이 있느냐’다. 예산과 실적을 .검하는 행정의 시계는 해마다 돌아간다. 기초연구마저 논문·특허 건수로 평가한다면, 관료는 성과가 확실한 과제만 고르고 연구자는 잘게 쪼갠 단기성과에 매달릴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세금을 쓰는 이상 행정은 성과를 물어야 한다. 연구자에게는 질문하고 실패할 자유를 보장하면서 국민에게는 투자의 책임을 다하는 길, 성과를 약속할 수 없는 연구를 지탱할 행정의 길은 과연 있을까. 이제 행정도 이 난제에 도전해야 한다. 1977년 42세에 사고로 떠난 이휘소에게 그 ‘언젠가’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의 편지는 ‘처지가 되면’이라는 희망을 적었지만, 오늘의 한국에 기초연구는 형편이 닿으면 하는 선택이 아니라 선도국으로 남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이제는 우리가 부를 차례다. 젊은 이휘소들에게 질문할 자유와 실패할 시간, 오래 버틸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60년 전 그 편지에 보내는 답신이다.
부경호 한국에너지공대 교수
, sans-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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