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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현지 시각)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거둔 승리는 상·하원 탈환에 그치지 않았다. 공화당이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100년 가까이 지켜온 ‘보수의 아성’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민주당은 텍사스에서 1988년 이후 38년 만에, 캔자스에서 1932년 이후 94년 만에,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1998년 이후 28년 만에 상원의원을 배출했다. 세 곳 모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년 전 대선에서 두 자릿수 격차로 이긴 지역이다.
보수의 아성이었던 지역을 무너뜨린 주역들은 당 지도부가 내세운 거물이 아니었다. 중학교 교사 출신 주 하원의원, 대형 교회 목사, 20년 가까이 어린이 병원에서 일해 온 소아과 의사 등 워싱턴 정치 경험이 없는 ‘새 얼굴’들이었다.
◇교사 출신 37세 탈라리코, ‘골리앗’ 꺾었다
텍사스 상원 선거에서 승리한 제임스 탈라리코 당선자는 올해 37세다. 중학교 영어 교사로 일하다 2018년 29세에 주 하원의원에 당선돼 당시 최연소 주 의원이 됐다. 의정 활동을 하면서 장로교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한 신학생이기도 하다. 상대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 측근인 켄 팩스턴 텍사스 주 법무장관이었다. 세계 최고 부자인 일론 머스크는 팩스턴 후보를 돕는 데 2억달러(약 2680억원) 넘게 쏟아부었다.
탈라리코 당선자는 낙태·성소수자 같은 문화 전쟁 이슈를 피하고 생활비 부담과 기득권 비판에 집중했다. 그 결과 2024년 트럼프 대통령이 이겼던 댈러스·포트워스 교외 태런트·콜린·덴턴 카운티 같은 승부처에서 승리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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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4일 승리 연설에서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세계 최고 부자와 세계 최고 권력자, 워싱턴 기득권 전체라는 골리앗들과 맞섰다”며 “분열의 정치는 사랑의 정치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했다.
텍사스에서 이변은 상원으로 끝나지 않았다. 주지사 선거에서도 민주당 지나 이노호사 후보가 현직 그레그 애벗 주지사를 꺾었다. 두 사람은 1994년 이후 텍사스 주 단위 선거에서 승리한 첫 민주당 후보가 됐다. 텍사스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주다.
◇목사·소아과 의사… 캔자스·사우스캐롤라이나도 넘어갔다
캔자스에서는 미국 최대 연합감리교회 ‘부활의 교회’를 세운 애덤 해밀턴 목사가 공화당 현역 로저 마셜 의원을 꺾었다. 4일 91% 개표 상황 기준 해밀턴 당선자(51.9%)가 마셜 의원(45.2%)을 6.7%포인트 앞서 당선을 확정지었다. 2020년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11%포인트 차로 이겼던 마셜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로 꼽힌다. 해밀턴 당선자는 한때 무소속 출마를 검토했을 만큼 민주당 색채가 옅은 후보다. 그는 ‘독립적 성향의 민주당원’을 내세워 공화당 성향 유권자들을 파고들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는 소아과 의사 애니 앤드루스(45) 당선자가 공화당 달린 그레이엄 의원을 이겼다. 그레이엄 의원은 지난 7월 심장 질환으로 갑자기 숨진 고(故) 린지 그레이엄 의원의 여동생으로, 오빠의 잔여 정치 유산을 이어 받았다. 이날 94% 개표 상황 기준 앤드루스 당선자는 51.0%, 그레이엄 의원은 46.8%를 얻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2024년 대선에서 18%포인트 차로 크게 이기고, 이번에도 직접 그레이엄 의원 지원 유세에 나섰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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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드루스 당선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선거로 뽑힌 첫 여성 상원의원이 됐다.
앤드루스 당선자는 생활비와 의료비 부담 감소를 주요 공약으로 앞세웠다. 트랜스젠더 정책 등에서는 민주당 진보 진영과 거리를 뒀다. 그는 당선 확정 직후 낸 메시지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분열과 비방, 억만장자와 특수 이익집단, 워싱턴 내부자들이 지배하는 정치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것을 전국에 보여줬다”고 했다.
◇미시간선 엘사예드… 美 첫 무슬림 상원의원
보수 텃밭은 아니지만 대표적 경합주인 미시간에서도 상징적인 승리가 나왔다. 의사 출신으로 디트로이트가 속한 웨인카운티 보건국장을 지낸 압둘 엘사예드(42) 후보는 공화당 마이크 로저스 전 하원의원을 꺾고 미국 역사상 첫 무슬림 상원의원이 됐다. 85% 개표 상황에서 엘사예드 당선자(51.9%)가 로저스 후보(46.1%)를 5.8%포인트 앞섰다.
당내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엘사예드 당선자는 경선 때부터 당 주류와 맞섰다. 그는 지난 8월 민주당 경선에서 그레천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와 게리 피터스 상원의원이 밀었던 헤일리 스티븐스 하원의원을 1%포인트 안팎 차이로 이겼다. 당시 스티븐스 의원 측에는 외부 단체 광고비만 6000만달러(약 800억원) 넘게 쏟아졌다. 본선에서는 JD 밴스 부통령이 직접 미시간을 돌며 로저스 후보를 도왔다.
엘사예드 당선자는 4일 새벽 디트로이트 승리 연설에서 인근 오하이오 출신인 밴스 부통령을 겨냥해 “미시간 1, 오하이오 0”이라고 했다. 선거 기간 내내 그를 따라다닌 종교 공세에는 생활비 문제로 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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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내 이름과 신앙 때문에 여러분이 기름값을 못 내고, 장을 못 보고, 병원에 못 가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이번에 당선된 민주당 새 인물들은 정치 신인으로 노선도 제각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탈라리코 당선자는 성경을 인용하는 진보 성향 기독교인이고, 해밀턴 당선자는 중도를 표방한 목사다. 앤드루스 당선자는 진보 진영과 거리를 둔 의사이고, 엘사예드 당선자는 당내 진보파다. 다만 탈라리코·앤드루스·엘사예드 당선자는 모두 이념 논쟁 대신 기름값과 장바구니, 병원비 같은 생활 문제를 선거의 중심에 세웠다는 공통。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공화 ‘트럼프 이후’ 고민… 2028년 대선 판도 흔들
공화당은 이번에 무너진 지역 상당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이 직접 후보를 지지하거나 유세에 나섰다. 선거 전부터 미 정가에선 공화당이 캔자스 같은 지역을 지키지 못하면 2028년 상원 탈환 길이 크게 좁아진다는 분석이 나왔다. 상원의원 임기는 6년이라, 이번 당선자들은 다음 대통령 임기 대부분인 2033년 1월까지 의석을 지킨다.
선거 승부처로 꼽혔던 공화당 아성이 상당수 무너지면서 차기 대선 구도도 흔들릴 전망이다. 밴스 부통령은 공화당 2028년 대선 주자 1순위로 꼽혀 왔지만, 직접 공들인 미시간에서 패배를 떠안았다. 선거 분석가 네이트 실버는 선거 전 “투표가 집계되는 순간 2028년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고, 공화당이 선거에서 부진하면 트럼프는 ‘슈퍼 레임덕’을 겪게 된다”고 했다. 공화당 전략가 데이비드 어번도 선거 직전 “경제나 전쟁 때문에 등을 돌린 트럼프 지지층이 투표에서 지지를 보내지 않으면, 누가 공화당 다음 기수가 될지 많은 물음이 남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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