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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10-13 03:07 조회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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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했던 재사(才士), 김상철 학생의 현실 비판과 정치적 발언을 옹호하는 김상철의 논리는 정교했다. 먼저 그는 대학생의 현실 비판을 반대하는 입장의 논거를 두 가지로 들었다. 첫째, 학생은 정치적 미성년이다. 그러니 성년의 영역인 정치에 나설 자격이 없다. 둘째, 학생의 본업은 정치가 아니라 공부다. 모든 국민에게는 충실해야 할 본업이 있다. 더구나 장차 나라를 이끌 청년 학생들은 학업에 전념하여 나라의 동량이 될 준비를 하라. 이런 도식적인 학생의 현실 참여 부정론에 대해 상철은 반론을 펴 나갔다. 첫째, 성년·미성년을 특정일을 기준으로 획일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본질을 모르는 단견이다. 미성년자가 어느 날 갑자기 성인이 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성숙한 정치의식을 갖출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성인이 되기에 앞서 성인 될 준비를 해야 한다. 게다가 대부분 대학생은 이미 투표권을 가진, 헌법이 인정하는 엄연한 성년이다. 아직 정식으로 투표권을 얻지 못한 일부 저학년도 사실상 성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회의 통념이 아닌가? 둘째, "학생의 본분은 공부지, 정치가 아니라고 하는데, 그런 논리라면 되묻겠다. 군인의 본분은 정치냐?" 일순간 좌중에 냉기 서린 긴장감이 돌았다. 침묵의 순간이 한참 이어지다가 조심스러운 박수 소리가 뒤따랐다. 자신감을 얻은 그의 논조는 열변으로 변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란 특정 직업이나 세력의 전유물일 수가 없다. 모든 국민에게 선거권이 주어지는 보통선거 제도의 취지는 국민 누구나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주권자로서 투표하는 시험을 치르라는 의미가 아닌가? 평소에 공부하지 않고 어떻게 시험을 치른단 말이냐?" 박수 소리가 커졌다. 당황한 사회자는 서둘러 토론을 마감했다. 학생처장의 종합강평은 준엄한 공개 질책이었다. 학생을 대표하여 공개된 자리에 나선 사람은 전체 학생의 상식과 양식을 대변해야 하거늘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를 이런 자리에서 발언하는 것은 학생으로서 결코 용납받지 못할 일이라며 소리를 높였다. 공개방송이 파하고 해산 인사를 나누면서 사회자는 우리를 쳐다보며 "법대생은 폴리티컬 해서.."라는 말을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뽀빠이릴게임 우리의 대담은 2주 후에 방송을 탔다. 그러나 상철의 발언은 통째로 '편집'되었다. 뒤풀이도 못한 채 뿔뿔이 헤어졌다. 은근히 불안했다. 며칠이나 그는 학교에 보이지 않았다. 한참 지나 들으니 형사에게 끌려가서 혼이 났던 모양이다. 그러나 몇 대 얻어맞았을 뿐이라며 대범하게 웃었다. 내게도 사복 형사가 찾아왔다. 종로5가의 한 다방 건물의 별실로 데리고 갔다. 내가 주된 목표가 아니었는지, 상철과 사전에 모의가 있었는지를 집요하게 추궁했다. 으름장은 놓았지만 물리적 폭력은 없었다. 형사는 심문을 끝내고 나를 '윗사람'에게 인계했다. 나를 넘기면서 귓속말로 뭔가를 보고하는 것 같았다. 40대 중반의 윗사람은 위엄이 넘쳤다. 잔뜩 겁을 먹고 긴장해 있는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뜻밖에도 따뜻한 표정을 지었다. 부모의 이름과 직업을 물었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어머니는 가정주부라고 답했다. 그는 씩 웃으면서 "나는 네 아버지가 누군지 안다. 좋은 사람이지만 위험한 인물이다. 네 어머니가 누군지도 안다. 어머니를 걱정시키는 일을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면서 내 눈을 무섭게 응시하면서 힘주어 말했다. "너는 다른 학생들과는 처지가 다르다. 만약 네가 무슨 일을 저지르면 상황이 엄중해진다. 그러니 너는 친구를 골라 사귀어야 한다. 절대로 무슨 '회(會)'에 들지 말라. 혼자서 조용히 고시 공부나 해라. 고시에 합격만 하면 네 아버지 족쇄도 풀릴 것이다." 내가 '연좌제'의 현실적 고리를 확인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 이전에는 남의 일로만 알았던 연좌제가 나의 일상과 장래를 체포하고 있었다. 이 순간부터 아버지의 어두운 그림자는 어머니의 화려한 불빛에 더하여 내 대학 생활을 짓누르는 두 개의 거대한 가위가 되었다. 나는 그때 그 경찰 간부가 이따금 집안 어른들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차 순경은 아니었을까 하는 소설적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김상철은 능력이 출중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의 가정적 배경과 세상에 대한 야망을 비교적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나는 그를 내 어머니에게도 소개한 적이 있다. 오리지널바다이야기 그는 세상일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학교 수업에도 충실하여 수석 졸업의 영광을 안았다. 나는 졸업과 동시에 군에 입대했기에 둘 사이에 한동안 소식이 끊어졌다. 후일 그의 입으로 직접 들은 이야기다. 1970년 2월 하순 어느 날의 일이다. 박정희 대통령 내외는 관례대로 서울대학교의 각 단과대학 수석 졸업자들을 청와대에 초청하여 오찬을 베풀었다. 참석자 전원이 박 대통령의 위엄에 압도되어 아래만 쳐다보고 말없이 식사에만 열중하고 있는데 마치 경직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는 듯 육영수 여사가 나섰다. 혹시 학생들 중에 대통령께 건의할 의견이 있으면 기탄없이 말해보라는 것이다. 사전 각본이 없었는지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그러자 육 여사는 "법대, 김상철 학생, 말씀 좀 해 보세요"라며 상철을 콕 찍어냈다. 상철은 일순간 당황했으나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어 입을 열었다. "대통령 각하, 젊은 학생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학생들 생각을 무시하시면 나라의 장래가 불안해집니다." 모두가 아연했다. 박 대통령은 몹시 기분이 상한 표정을 지었고 육여사는 좋은 충고 고맙다고 답했다. 서둘러 오찬이 파했다. 이 일로 인해 이한기 법대 학장이 사표를 제출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서울대 수석 졸업생의 청와대 초청 오찬 행사도 사라졌다. 1993년 3월, 김상철은 취임하는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서울시장에 임명되었다 며칠 만에 사임하면서 자신의 소회를 담은 책을 냈다. '7일간의 시장', 그 책에도 이 사건은 언급이 없었다. 그와는 추억거리가 많다. 내가 대학원에 적을 두고, 그는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무교동에서 젊은 여성과 데이트 중인 그를 우연히 만났다. 첫눈에도 심성이 좋아 보이는 건강한 미인이었다. 셋이서 함께 경양식。에 들러 새로 출시한 '노블 와인' '파라다이스'를 마셨다. 예정에 없던 호사라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게 두 사람의 첫 데이트였다고 한다. 얼마 후에 둘은 부부가 되었다.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둔 날이다. 오래 병상에 누워 있던 그가 타계했다. 빈소에 들러 품위있게 나이 들어가는 부인과 잘 자란 아이들을 만났다. 바다이야기릴게임 새삼 옛 일이 가슴에 사무쳤다. 대학 4년 내내 존재감이 미약했던 나는 동기생들과 깊이 교류하지 못했다. 나는 어떤 학술적·사회적 모임에도 적을 둔 적이 없다. 정통의 법학을 탐구하는 모임이든 사회적 의식을 배양하는 모임이든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학생 데모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다 두어 차례 휩쓸려 교문 앞 시위에 몸을 섞은 적이 있을 뿐이다. 무서웠고 비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앞장 서서 민주화·반독재 운동을 주도한 동료들에게 존경과 미안한 마음만은 항상 지니고 있었다. 몇몇 동기생은 만년의 내게 매우 중요한 인적 자산이다. 이사성은 초등학교 이래 줄곧 학생 생활을 함께 한 심우(心友)중의 심우였다. 교수가 되기까지의 내 인생 역정을 '사랑'과 '사상' 두 단어로 집약한 장본인이다. 그는 1987년 11월 27일,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폭파한 KAL기에 타고 있었다. 그가 죽고 난 후로 "말을 해야만 뜻을 전할 수 있는 불편한 세상이 되었다"라고 쓴 적이 있다. 내 삶의 고비고비마다 만약 그가 살아 있었더라면 무슨 조언을 해  줄까, 되묻곤 한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 변함없이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준 훌륭한 법관, 변동걸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지낸 그가 대법관 자리에 오르지 못한 뜻밖의 사실을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근래 펴낸 책에서 별다른 서술어 없이 그의 호(號)를 헌정자로 적었다. 박용일은 법사상적으로 나의 동지다. 나는 대학원 시절 이래 흠모하던 미국 연방대법원의 윌리엄 더글라스 판사(William O. Douglas, 1898-1980)의 전기를 그에게 헌정했다. 권형원은 동기생으로는 가장 먼저 법액(法厄)을 당한 친구다. 160명 중 유일한 상고 졸업생으로 재학 중 농촌법학회에 헌신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농어촌 교사 생활을 하다 공안사범으로 옥살이를 했다. 막장에 몰린 처지에서도 언제나 의연한 대인이다. 김봉수는 한참 늦게 입사한 은행의 노조 위원장으로 '을'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훈련을 쌓았다. 이따금 실비집에서 셋이 막걸리 잔을 나누며, 달라진 세상을 안주 삼아 세월을 씹는 맛도 노인의 입에 크게 나쁘지 않다. 안경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한 '노블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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