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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농구팀에서 두 번이나 탈락했다. 농구선수를 꿈꾸던 소년에게 코트는 더 이상 자신의 자리가 아닌 듯했다. 그때 다시 공을 잡을 기회를 내준 곳은 뜻밖에도 교회였다.
훗날 미국프로농구(NBA) 역사상 최초의 최우수선수(MVP)가 된 밥 페티트의 이야기다. 그는 1966년 펴낸 자서전 ‘밥 페티트: 드라이브 위드인 미(Bob Pettit: The Drive Within Me)’에서 “교회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한 내 농구 인생을 구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NBA의 한 시대를 연 페티트가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루이지애나주 자택에서 별세했다. 93세.
1932년 루이지애나주 배턴루지(Baton Rouge)에서 태어난 페티트는 처음부터 농구에 재능을 보인 선수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농구인생을 떠올리며 “처음 농구공을 잡았을 때 나는 형편없었다”고 했다. 큰 키에 비해 몸놀림이 어색했고 기술도 부족했다.
배턴루지고(Baton Rouge High School) 1학년 때는 주니어대표팀의 사실상 ‘벤치 워머(벤치에서 대기하는 후보 선수)’였고 2학년 때는 대표팀 선발에서 아예 탈락했다. 좌절한 그에게 다시 코트를 열어준 곳은 교회였다. 세인트제임스 성공회교회 목회자의 권유로 또래 친구들과 교회 농구리그를 만들었다. 페티트에게는 이곳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조직 농구를 경험한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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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리그에서 실력과 자신감을 키운 그는 이듬해 배턴루지고 농구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년도 채 되지 않아 키도 5인치(약 13㎝)가량 자랐다. 그 후 배턴루지고를 주(州)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그 뒤 소년의 농구 인생은 가파르게 치솟았다. 루이지애나주립대(LSU)를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파이널 포(4강)’까지 이끈 그는 1954년 NBA 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밀워키 호크스의 선택을 받았다. 마른 체격 때문에 프로에서 버티기 어렵다는 의심도 따라붙었다. 그러나 데뷔 시즌 신인왕을 차지했고 이듬해 NBA가 처음 만든 MVP 트로피의 주인공이 됐다. 1958년 챔피언결정전에서는 강호 보스턴 셀틱스를 상대로 마지막 6차전에서 50.을 몰아넣으며 호크스에 우승을 안겼다. 1959년에는 두 번째 MVP를 차지했다. 11시즌에 걸친 선수 시절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올스타에 선정됐다. 은퇴할 때 그의 이름 앞에는 ‘NBA 최초 통산 2만 득.’이라는 기록도 붙어 있었다.
농구와 함께 그가 붙든 또 하나의 축은 신앙이었다. 페티트는 미국기독선수회(FCA) 캠프에 꾸준히 참여했다. 1959년 콜로라도주 에스테스파크에서 열린 FCA 전국대회에서는 청소년들에게 직접 농구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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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위스콘신주 레이크제네바 FCA 캠프에서 페티트의 복음 메시지를 들은 위스콘신대 농구감독 존 에릭슨은 신앙을 받아들였고 훗날 FCA 회장이 됐다.
그의 목소리는 당시 대학생이던 빌 브래들리(Bill Bradley)의 삶에도 흔적을 남겼다. 워싱턴포스트가 1999년 12월 브래들리의 신앙 여정을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프린스턴대 1학년이던 브래들리는 학업과 농구에서 잇따라 어려움을 겪으며 실패에 대한 불안에 빠져 있었다. 어느 날 기숙사에서 FCA가 제작한 음반 ‘언더 더 마스터 코치(Under the Master Coach)’를 틀었다. 그곳에서 자신의 농구 영웅 페티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네 뒤에 있겠다고 말해준 동료를 떠올리면 힘이 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와 같지만 훨씬 더 좋습니다.”
그 말을 들은 브래들리는 자신의 관심이 온통 ‘나’에게 쏠려 있음을 돌아봤다. 성적도, 운동도, 걱정도 모두 자신을 향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눈물을 흘렸고 처음으로 예수에게 개인적으로 기도했다. 훗날 브래들리는 이 경험을 자신의 신앙 여정에서 중요한 전환。으로 회고했다.
페티트의 장례예배는 다음 달 2일 루이지애나주 메타리의 세인트마틴 성공회교회에서 열린다. 농구팀에서 밀려난 소년에게 교회가 내어준 작은 코트. 그곳에서 다시 시작한 소년은 NBA 최초의 MVP가 됐다. 그리고 자신이 받았던 기회처럼 자신의 농구와 이름, 신앙을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데 사용했다.
훗날 FCA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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